월간문학 2024년 11월 월간문학 2024년 12월 6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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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탄한 길인 줄 알았습니다
저희가 어렸을 때는
자식들에게 햇과일 사다 주신다고
먼 시장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다녀오시던 어머니를
오늘은 휠체어에 모시고 병원 가는 길
평탄한 길인 줄 알았는데
어머니의 휠체어를 밀어보고서
얼마나 험난한 길인지를 알았습니다
깔 때는 평평하게 깔았을 텐데
세월 좀 지났다고 울퉁불퉁해지는 보도블록들
원래는 고우셨을 텐데
주름이 진 어머니 살결
어머니는 휠체어 위에서
당신께서 이제까지 걸어오셨던 길들을
떠올리시는 듯합니다
뒤에서 밀어주는 아들에게
길이 나빠서 네가 고생이 많다고
안쓰러워하십니다
휠체어 아래에서는
개미 한 마리가
자기 몸집보다 훨씬 큰 빵조각을 물고
튀어나온 보도블록을 넘어가려 애씁니다
어머니의 지난날을 보는 것 같습니다
‘멀리서 볼 때는 평탄한 길이지만
가까이서 볼 때는 험난한 길이
인생길’ *임을 깨닫습니다
*찰리 채플린의 명언“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를 인용·변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