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2024년 11월 월간문학 2024년 12월 6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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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 내실에 나는 없었다
현관에 벗어 놓은 신발도 보이지 않았다
장맛비 쏟아지던 지난여름
잠시 빌려 신었던 목 긴 회색 장화가
신발장 풀린 문틈으로 빼꼼히 발뒤꿈치 한 자락
내밀며 지각생 같은 인사를 건네 왔다
내가 없는 그 집 내실에
나의 실존을 증명해 줄 주인장도 출타 중이었다
벽에 걸린 그의 갈색 외투도 모자도 보이지 않은 채
지난 겨울 선물한 붉은 벽돌색 손뜨개 털스웨터만
보호자 없는 아이처럼 거실 소파 모서리에 방치된 채
온기 잃은 빈 실내를 지키고 있을 뿐
황무한 광야처럼 텅 빈 무(無)의공간
언어와 언어가 돌아앉아 등만 보이는 동거
체온과 체온이 따로 누워 산악을 떠도는 불면
노래와 노래가 흐르지 않는 안개 자욱한 비손 강
스트라빈스키가 문을 걸고 동토로 떠난 뒤 소식 없는
오늘은 그와 내가 부재중인 우리라는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