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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나(2)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이안

책 제목월간문학 2024년 11월 월간문학 2024년 12월 6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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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다. 병원복을 입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한다. 여기가 어딘가? 병원 같은데… 내가 병원 침대에 누워 있다. 내가 왜 여기에 누워 있지? 눈을 감고 생각해 본다. 그래! 집에 들어오려는데 집 번호가 생각이 안 났어. 이것, 저것 눌러보아도 아니야. 우리 집이 아닌가 하고 집 밖으로 나가 주변을 살펴보았어. 우리 집이 맞는 것 같은데…. 한참을 그러다가 어떤 이가 들어가길래 따라 들어갔어. 그런데 이번에는 우리 집 번호가 생각이 안 나. 그래서 계단에 앉아 집 번호를 기억해 내려고 골똘히 생각했어. 그러고는… 모르겠어.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이 들어온다. 의식이 없이 병원에 온 지 5일째고, 여기는 중환자실이고, 그 사이 의식이 없는 상태로 병원을 3군데나 옮겼단다. 그래! 내 이름이 생각났다. 아들 둘 이름도 생각이 났다. 그런데 내 전화번호가 생각이 안 난다. 두 아들 전화번호도 도무지 모르겠다. 종이를 달래서 적어 보았다. 글을 쓰자니 손이 떨리고, 힘이 없어 도무지 글씨가 써지지 않는다. 글씨가 내 글씨가 아니다, 낯설고 울퉁불퉁하다. 이게 내 전화번호인가? 아닌 것 같은데…. 내 번호인가 하고 적어 보면 아닌 것 같고, 아들 번호인가 하고 적어 보면 내 번호 같고, 머릿속에 떠오른 번호가 모두 낯설다. 두 아들 번호랑 내 번호가 섞여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전혀 낯설어 남의 번호 같다. 아마도 틀리는 다른 번호인지도 모르겠다. 머리도 흔들거리고 어지러워 글자를 쓸 수가 없다. 우리 집 주소는 아예 생각이 안 나 모르겠다.
얼마나 지났나? 특별히 그 병원에서는 치료할 부위가 없다면서 종합병원에서 또 다른 병원으로 보내졌다. 그런데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내 생각을 찾지 않으면 도무지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몸 상태였다. 문제는 기억력이다. 겨우 생각해 낸 게 내 전화번호와 아이들 전화번호뿐이고, 그것도 적어서 겨우 외워도 금방 잊어버렸다. 날짜, 숫자, 요일, 간호사 이름도 10분도 안 돼 또 잊어버린다. 내가 오늘 뭘 해야 하는지, 밥은 몇 시에 먹는지, 심지어는 아들이 온다고 해도 몇 시에 오는지 들었는데 또 생각이 안 난다. 기억이 재생이 안 되는 건 고사하고 연결도 안 될 뿐만 아니라 지속이 되지 못했다.
병원으로 두 아들이 왔다. 병실에서 면회실로 가는데도 간호사가 부축을 하지 않으면 어지러워 걷기가 힘들다. 애써 태연한 척해 보지만 서서 걷는 게 이리 힘든 일인 줄 처음 알았다. 두 아들의 얼굴을 보니 초췌하다. 아이들도 나처럼 힘든 상태가 역력하다. 아들이 와서야 그동안의 경과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새벽 1시가 넘어 같은 건물에 사는 젊은이가 복도 계단에 의식을 잃고 쓰러진 나를 발견했다. 내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젊은이의 어머니가 내 아들에게 연락해서 병원 응급실로 싣고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왜 병원에 왔는지, 병원을 몇 번 옮겼는지 또 지금 어떤 상태인지도 알았다. 병명은 뇌내출혈이었다. 뇌 바깥쪽인 대뇌쪽은 괜찮은데 뇌 안쪽의 기능이 정지됐다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시일이 지나면 뇌 안쪽의 기억이 돌아온다고 한다. 문제는 기억이 돌아오는 그 시일이 언제가 될지는 누구도 모른다는 것이다.
환자 담당 치료사가 기억을 찾기 위한 프로그램 수업을 하루 6차시를 했다. 제일 기억을 못 하는 건 오늘이 몇 년 몇 월 며칠인지와, 내가 먹은 음식을 기억 못했다. 어제 먹은 것은 고사하고 방금 먹은 것도 기억이 안 난다. 그래선지 교사는 매일 그걸 물어봤다. 병원생활이 익숙해지면서 글자카드, 숫자카드, 동물카드, 식물카드, 사물카드 등을 공부했다. 그래서 공책에 매일 기억해야 할 것들을 꼬박꼬박 적으면서 암기를 하고 잊어버리면 또 적고, 외우고 하는 게 내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석 달 반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여니, 아들이 보내준 꽃이 화병에서 드라이플라워가 되어 있다. 냉장고에 있던 식품은 다 말라버렸고, 냉동실에 있던 것도 유통기한이 다 지나 있었다. 여기저기 아들들의 흔적이 보였으나 사람 체취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병원에서 챙겨온 물건들을 보니 병원생활하는 동안 기록한 자잘한 메모와 전화번호가 있었다. 기억이 안 나 뭉개고, 글자가 안 보일 만큼 새까맣게 고쳐 쓰고, 아닌 것 같아 또 지우고 한 고민의 흔적들이다. 백번도 더 적었을 것 같은 구구단 공책이 집에 가고자 하는 애절한 내 맘을 말해주고 있었다. 적으면 또 잊어버리고, 돌아서면 또 잊어버리니, 영영 기억이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은 무서운 생각이 들어 자꾸 적었던 내 공포심들이다.
이 시점에서 기억이 머릿속에서 멈추면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기억을 잃으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잃는다. 나를 잃는다는 건 내 모든 삶을 보이지도 않는 날강도에게 송두리째 빼앗기는 것이니 천금을 줘도 얻지 못할 내 살아온 삶이 모두 없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제일 무서웠다. 제발 그런 일이 없기를 매일 염원했다. 치매를 제일 무서운 병이라고 단정 짓는 것도 환자가 기억을 잃어 주변과의 인간관계가 끊어지기 때문이 아닌가?
퇴원할 때 의사 말이 당분간은 어지럽고, 퇴원하고도 시일이 지나 뇌 속에 고여 있는 불필요한 물질이 몸 밖으로 다 빠져나갈 때까지 어지러울 테니 약을 꼬박꼬박 먹으라고 한다. 그게 언제쯤일지는 개인차가 있어 의사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래선지 예상 밖의 후유증이 많이 남아 있었다. 걸음을 걸으면 발이 공중에 떠서 걷는 것 같아 몸에 중심이 잡히지 않았고, 머리가 늘 어지러웠다. 퇴원하고 첫째로 중요한 일은 정신을 잃은 나를 아들에게 연락하게 해 준 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것이고, 갑자기 하던 일을 멈추어 주변을 힘들게 한 직장 동료에 대한 미안한 맘을 전하는 것도 꼭 해야 할 일이었다.
몇 달 만에 집에 와서 컴퓨터를 열어보니 처음 본 것처럼 낯설다. 머릿속에 있던 많은 기억과 정보가 다 흐트러지고, 감쪽같이 사라져 전혀 낯선 정보다. 키보드 자판이며, 이메일 등의 여러 기억이 컴퓨터에는 있는데, 머릿속의 기억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없는 것이다. 그걸 찾아서 기억 창고에 다시 채워야 하는 만만찮은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내 생각과 컴퓨터의 생각이 같아지도록 컴퓨터의 글들을 읽고 또 읽었다. 컴퓨터 속에 저장한 생각이 조금씩 내 머릿속으로 돌아오는 게 내게는 선물 같았다.
집에 온 지 1년이 지났다. 매일 조금씩 운동과 산책을 하며 서툴어진 워드를 다시 익히고 있다. 이제는 발이 공중에 떠 있지 않아 어지러운 증세가 거의 없어지고 머리도 맑다. 처음에는 기억이 안 나던 것들이 생각이 많이 돌아오니 글쓰기가 수월하다. 못할 것 같았던 내 생각을 기록할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예전처럼 손가락이 빠르지는 못하지만 좀 느리면 어떤가. 고맙게도 생각이 온전하니 맘 편히 컴퓨터에 앉는다. 내 생각 속에 내가 있음을 생각이 다 기억한다.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내가 나임을 스스로 인지한다. 그래서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느낀다. 지금은 그게 제일 고맙다. 온전하게 나로 다시 돌아온 것이 참으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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