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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로고 김수영(여주)

책 제목월간문학 2024년 11월 월간문학 2024년 12월 6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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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5일장이 서는 날입니다.
나물을 파는 할머니, 도시에서 유행하는 옷을 파는 멋쟁이 아줌마, 붕어빵과 오뎅을 파는 아저씨, 쿵짝쿵짝 신나는 가요 CD를 파는 할아버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여러 가지 물건들이 총집합하는 날입니다.
순대국밥집 옆에서는 할아버지와 손자가 나란히 앉아 콩이나 쌀, 보리, 옥수수 등 곡식과 누룽지를 튀겨 주기도 하고 뻥튀기를 팔기도 합니다.
할아버지가 눈으로 사인을 하면 영철이는 호루라기를 힘차게 불면서 큰소리로 외칩니다.
“자, 여러분, 귀를 막아 주세요. 뻥 튀깁니다.”
초등학교 2학년인 영철이는 3년째 할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뻥튀기 장사를 하고 있어요.
장마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오늘따라 손님이 많네요. 오늘은 검정콩과 누룽지 뻥튀기 주문이 많이 들어옵니다.
“할아버지, 오늘은 우리 큰아들 생일이라서 빨리 들어가야 해요. 우리 것 좀 빨리 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다녀오세요. 잘 튀겨서 봉지에 담아 놓을게요.”
할아버지는 신이 났어요. 오늘은 단골손님도 많이 찾아오고 평소보다 주문이 많기 때문입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있네요.
“영철아, 오늘은 일찍 들어가자꾸나.”
“아직 장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할아버지 피곤하세요?”
“아니다. 그냥 일찍 들어가서 맛있는 요리도 해서 먹고 우리 영철이도 좀 놀아야지.”
다른 날보다 수입이 좋아 할아버지는 정육점에서 돼지고기를 사고 영철이가 좋아하는 피자를 사서 집으로 향합니다.
할머니는 아주 오래전 병으로 돌아가셨고, 영철이가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할아버지가 영철이를 키우고 계신답니다.
영철이가 학교 가는 날은 할아버지 혼자 장사를 나가시고 주말에는 영철이도 함께 다니고 있지요. 그래서 할아버지와 영철이는 주말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요.
땡볕 더위가 서서히 수그러지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9월입니다. 영철이는 일어나자마자 달력에 색연필로 동그라미를 그립니다.
9월 25일. 이날이 어떤 날일까요?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동그라미가 25일 숫자가 안 보일 정도로 겹겹이 그려져 있네요.
“영철아, 뭐 하는 거니? 달력 앞에서….”
“할아버지 생신 돌아오잖아요. 히히, 이날 제가 요리해 드릴게요.”
“요리는 무슨 요리. 내 생일은 없다. 그러니 쓸데없는 일 만들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렴.”
“할아버지도 내 생일 때 맛있는 요리 해주셨잖아요. 학교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은혜는 꼭 갚아야 한다고 하셨어요.”
오늘따라 영철이가 의젓해 보이는지 할아버지는 씨익 웃으시며 장사 나갈 준비를 하십니다. 어?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까맣게 끼기 시작하더니 장대비가 내리네요.
“할아버지, 비가 와서 오늘은 장사 못 가겠네요.”
“일기예보엔 비 소식이 없었는데….”
할아버지의 힘없는 말에 영철이도 시무룩해집니다.
“영철아, 오늘은 김치부침개나 해 먹으면서 집에서 푹 쉬자꾸나. 팔 다리가 쑤셔서 좀 쉬고 싶었는데 잘됐구나.”
영철이의 시무룩한 얼굴을 보시더니 할아버지는 얼른 말을 돌리시며 주방으로 가셨어요.
영철이도 오늘은 특별히 할 일이 있답니다. 할아버지 생신날 선보일 깜짝 이벤트를 연구하는 날이랍니다.
‘그래, 이렇게 하면 할아버지도 깜짝 놀라실 거야. 히히.’
영철이는 작은방으로 가더니 뭔가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둥근 뻥튀기에 초코파이를 얹었습니다. 초코파이가 자꾸 떨어져서 물엿을 묻혀서 떨어지지 않도록 꼭꼭 눌렀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또 뻥튀기를 얹고 검정콩 볶은 것을 얹었습니다. 계속 반복해서 5단 케이크를 완성했어요.
‘드디어 완성이다. 부서지면 안 되니까 할아버지 몰래 숨겨둬야지.’
영철이는 숨죽이며 뻥튀기로 만든 케이크 감추기 작전을 시작합니다. 밖에서는 고소한 김치부침개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영철아, 뭐 하니? 나와서 부침 먹어라.”
“네, 잠잠 잠깐만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곧 나갈게요.”
영철이의 심장이 갑자기 콩닥콩닥 뛰기 시작합니다. 할아버지는 어제 먹다 남은 사이다와 김치부침을 가지고 안방으로 오셨습니다.
“식으면 맛없으니까 얼른 먹어라.”
영철이는 할아버지가 만드신 김치부침을 단숨에 먹어 치웠습니다.
“역시 우리 할아버지 요리 솜씨는 끝내준다니까요. 음, 이 맛….”
영철이는 할아버지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내밀었어요. 영철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본 할아버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어요.
토요일 아침. 아침마다 울던 매미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살랑살랑 가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할아버지와 함께 장사를 가는 날입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계시지 뭐예요.
“할아버지, 오늘 장사 안 가실 거예요?”
영철이는 누워 계신 할아버지를 흔들었어요.
“할아버지 어디 편찮으세요?”
“아니다, 그냥 감기 기운이 있어서 그러니까 서랍에서 약봉지 좀 가져오렴.”
할아버지 이마에서 식은땀이 주르르 흐르고 있었어요. 영철이는 겁이 덜컹 났어요. 언젠가도 할아버지가 편찮으셔서 119를 불러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거든요.
“영철아, 약 먹고 조금만 누워 있으면 금방 나으니까 할아버지 걱정은 말고 나가 놀다 오너라.”
할아버지는 영철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친구들과 놀다 오라고 하셨답니다. 영철이는 할아버지가 누워 계시는 동안 뻥튀기를 들고 나갔어요.
아파트 건널목에 자리를 펴고 뻥튀기를 작은 봉지에 몇 개 담아 놓고서 팔기 시작했어요.
“자, 뻥튀기 세일입니다. 오늘 하루만 특별 세일을 합니다.”
하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어요.
“아니, 할아버지는 어디 가시고 너 혼자 나왔니?”
“저희 할아버지가 오늘 하루는 휴가라서 제가 나왔습니다.”
영철이는 할아버지가 아픈 게 아니라 휴가 가셨다고 생각을 했어요.
‘우리 할아버지는 아프지 않아. 지금 휴가 중이시기 때문에 곧 오셔서 다시 장사하실 거야.’
영철이는 혼자 중얼거리며 열심히 장사를 했어요.
“자, 뻥튀기 세일입니다. 이제 얼마 안 남았습니다. 빨리들 오셔서 사 가세요.”
파란 불이 켜질 때마다 영철이는 큰 소리로 외쳤어요. 오늘이 주말이라서 그런지 뻥튀기가 순식간에 팔렸어요.
뻥튀기 판 돈으로 영철이는 약국에 들러 할아버지 약을 사고 슈퍼에서 장을 봐 갔어요. 왜냐면 내일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할아버지 생신이기 때문입니다.
“영철이 왔니?”
영철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할아버지가 일어나셨어요. 영철이는 얼른 부엌으로 나가서 슈퍼에서 사 온 죽을 끓이기 시작했어요. 지난번 할아버지 아프실 때도 영철이가 죽을 끓여 본 적이 있어 지금은 죽 도사가 되었답니다.
“할아버지, 죽 드세요. 아까 슈퍼에서 사 왔어요.”
“친구들과 놀다 오라니까 이건 왜 사 왔니? 우리 영철이 이젠 다 컸구나, 죽도 끓일 줄 알고.”
어린아이로만 생각하고 있던 영철이의 대견스러운 모습을 보니까 흐뭇하셨어요.
할아버지가 죽을 드시고 계시는 동안 영철이는 작은방에 가서 몰래 만들어 놓은 뻥튀기 케이크를 가지고 나왔어요.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할아버지 생일을 축하합니다.”
“아, 아니, 이게 뭐냐?”
“할아버지 생신 축하합니다. 이건 제가 만든 케이크예요. 참 그리고 이건 양말인데 근사하죠?”
할아버지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어요.
“우리 영철이 고맙구나, 고마워.”
“할아버지, 빨리 나으세요. 그리고 이젠 아프지 마세요. 아셨죠?”
영철이 눈에서도 눈물이 나왔어요.
이 세상에서 딱 한 분인 할아버지가 아플 때면 영철이는 힘이 없어집니다.
“그래, 앞으로는 안 아플게, 우리 영철이를 위해서 더 건강해야지, 암 그렇고 말고.”
그날 저녁 하늘에서 달님도 별님도 영철이를 응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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