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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한국문인협회 로고 지연희

시인·수필가

책 제목월간문학 2024년 11월 월간문학 2024년 12월 6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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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타너스 나뭇가지가 떨어뜨리는 가을의 잎새들이 툭툭 여기 하나 저기 하나 보도블록 위에 슬픔처럼 내려앉는다. 어른 손 바닥 크기보다 큰 누렇게 마른 잎을 마주하는데 바스스 누군가의 발끝에 밟히는 조락의 슬픔을 들을 수 있었다. 그토록 작열하던 2024년의 여름이 비로소 고개를 숙였다는 증거이다. 급격히 계절의 틈을 비집고 들어선 변혁의 웅비를 꿈꾸는 개척자의 위 용처럼 차디찬 바람이 불고 있다. 몸서리칠 만큼 낯선 기루를 타고 가파른 파도의 물결로 맹렬하게 젖어들고 있는 것이다.
순수의 기백을 자랑하던 낯설음의 언어, 모험하고 도전하던 창의적 언어를 기반으로 문학예술인들은 펜과 붓으로 꿈을 펼치 곤 했다. 그리고 인공지능이라는 인간의 지능이 지닌 학습에 의한, 추리, 적응, 논증 따위의 기능을 갖춘 컴퓨터 시스템의 활약 에 손뼉을 치며 기대하곤 했었다. 그 즈음 2016년 대국에 이어 2019년 세기의 바둑 챔피언 이세돌과 AI의 대결이 이루어지며 전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이세돌은 인공지능 구글의 알파고에게 4대 1로 참패하 고 말았다. 이때 이세돌은 “이세돌이 패한 것이지 인간이 패한 건 아니”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후‘AI 기능은 우리의 삶을 더 편리하게 해 주는 대상’이라는 경이로운 기대로 미지의 삶을 예단하게 했다. 하지만 2025년을 가까이 하고 있는 우리는 무장한 점령군의 군화 소리를 듣는 공포의 위협에 당면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AI는 인간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사람의 손과 발을 묶어 놓고‘뇌신 경과 학습능력, 상식의 이해력을 흉내낸 기능을 지닌 컴퓨터 기술’로 치밀하게 사람이 주재하던 순수의 영력을 무장시키고 있다. 똑똑하지만 경이로운 놀라움을 지구촌에 펼쳐내면서, 물밀듯이 다가오고 있는 이 현실이 염려되지 않을 수 없다.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존재하게 하 는 일, 이는 창조이며 생존의 힘이라고p 했다. 존재하지 않는 바탕에 인 간은 끊임없이 무엇을 존재하게 한다. 까닭에 존재하지 않는 바탕을 향 한 창조의 노력은 문학예술 발전의 길잡이임에 분명하다. 더구나 문학 이라는 언어예술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는 절대성을 지니는 일이 무엇 보다도 중요하다. 인공지능 AI는 문학인의 자존과 영혼의 질서를 허물 어뜨리고 있다. 인공지능이 시를 쓰고 수필과 소설을 쓰는 오늘날 그들의 지능은 무섭게 진화하여, AI가 쓴 모조품의 시가 발표되는 현실을 맞이하는 상황이다. 작가의 특정한 감성으로 표출되던 문학은 이미 본 질이 무너졌다고 한다.
인공지능 AI는 인간이 컴퓨터에 입력해준 무수한 정보를 데이터베이스에 통합 저장하여 가장 효율적인 데이터를 산출하고 목적(시, 수필, 소 설등쓰기)에 적합하게 사용하는 기계화된 인식의 전달일 뿐이라고 생각 했었다. 사전적 언어로 서술하는 언술의 나열에 지나지 않아 살아 있는 생명의 감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을 지녔었다. ‘한국과학창의 재단과 학문화협력단장’인 최연구 박사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섰다면 인간의 사고력 창의력으로 이루어지는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인 간을 넘어설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봐야”한다고 했다. 연산 데이터 분석, 처리는 물론이고 고도의 창의성이 요구되는 음악, 미술 등 예술분야까지 인공지능은 인간의 영역을 넘보고 있다는 것이다. 인공 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앞서게 되는 시점을 미래학자들은 특이점 (singularity)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요즈음 매스컴에서 기획하여 방영하는 음악프로그램에서는 진짜 가 수의 노래를 학습한 AI에게 부르게 하고 실물가수의 노래를 조합하여 진위를 관객들이 평가하는 프로가 있다. 그만큼 인공지능이 가수가 부른 노래를 얼마나 완벽하게 따라 부를 수 있는지를 분석하는 프로이다. 놀랍게도 인공지능과 진짜 가수가 부른 노래는 큰 격차를 느낄 수 없을 만큼 멜로디를 완성하고 있었다. 인간의 고도화된 감성지능이 어디쯤에서 AI를 무력하게 할 수 있을지 염려할 뿐이었지만 이젠 그게 아니라 는 것이다. 감성의 표현은 인간이 소유한 절대적인 전유물이 아니라는 일이다. 미술, 음악, 문학, 어떤 예술장르도 인공지능은 섭렵하려 노력 한다.
인공지능은 인간 뇌의 기능을 닮아 가고 있다. 사람처럼 생각하는 능 력을 키워 나가고 있는 것이다. 글을 쓰는 감성 표현도 시작했다고 한 다. 그림, 음악, 영상에 이르는 종합예술 어느 것도 못하는 것이 없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문학이다. 구조를 만들어 주는 역할에서 시작하더니 스스로 감성을 다스리는 능력을 키워 나가고 있다. 그러나 제 아 무리 인공지능이 생산한 문학작품이 그럴듯하더라도 어딘가 모순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인간은 위대한 능력으로 탄생한 지구상에서 가 장 우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행여나 인공지능의 산물이 어이없이 내 시가 되고 수필로 둔갑하지 않도록 늘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인공지능은 활용할 수 있는 정 도만 수용해야 한다는 설이 적지 않다. 계절은 다시 또 앙상한 나목의 시간을 준비하고 있다. 나무는 거듭 동토의 겨울 속 묵상에 들어도 여전히 생멸(生滅)의 의미를 헤아릴 것이다. 살을 에는 삭풍의 계절로 몸에 걸쳤던 속세의 모든 가치들을 내려놓으며 선에 들 것이다. 꽃으로 지녔던 영화, 열매로 다스리던 몇 알의 결실들 다 내려놓고 저 나무는 면벽기도에 들 것이다. 무엇을 쥐고 무엇을 놓아야 했는지. 가지를 물 들이던 단풍잎들 저토록 냉정하게 떨쳐내는 까닭을 침묵으로 설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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