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2024년 11월 월간문학 2024년 11월 669호
36
0
시우는 만 네 살 한국 나이로 다섯 살인 남자아이예요. 직장 맘인 엄마 대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돌봐줘요.
“싫어! 오늘 유치원 안 갈 거야.”
가끔 유치원에 도착해서 들어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기도 해요.
“어휴, 저 떼쟁이!”
할머니가 한숨을 쉬며 말합니다.
어느 날부터 시우가 말끝에 꼭 ‘요’자를 붙여요.
“할아버지 공원 가자요.”
“할머니 나랑 놀자요.”
할머니는 ‘시우가 높임말인 줄 알고 쓰나 보다’고 생각했어요. 몇 달이 지나 엄마가 퇴근길에 시우를 데리러 온 날입니다.
“안녕히 계세” 하면서 엄지와 검지를 턱밑에 대고 고개를 살짝 돌려 얼굴을 찡끗거려요.
‘요’자를 빼고 고개 돌리며 인사하는 엉뚱한 말과 익살스런 표정에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까지 웃음이 빵 터졌어요.
“시우가 청개구리 기질이 있나 봐요.”
할머니의 말에 할아버지는 대답 대신 사랑스런 눈으로 시우를 바라보며 잘 가라고 손만 흔듭니다.
시우 할머니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 게 취미예요. 할머니 손에는 항상 책이 들려 있어요. 시우엄마 역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시우가 잠 들기 전에 동화책을 여러 권 읽어줘요.
“요즘 동화책은 참 다양하더라.”
할머니는 시우 엄마가 저녁마다 읽어주는 동화책에 대해 손자 손녀 키우는 친구들에게 소개 겸 말해줘요.
시우는 엄마바라기입니다. 아침마다 출근하는 엄마와 떨어지기 싫은 마음에 엄마가 곁에 있어도 “엄마, 언제 와”하고 습관처럼 말해요. 그리고 엄마 얼굴을 끌어안고 부빕니다. 코로 머리카락 냄새도 맡고 쪽쪽 소리를 내며 입맞춤을 합니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엄마!” 시우가 입에 달고 사는 말입니다.
할머니는 시우 잠재울 때가 가장 힘들다고 해요.
어느 때는 아이답지 않게 말해 대화가 통한다고 대견한 표정을 짓기도 합니다.
엄마를 입에 달고 살던 시우가 어느 날 갑자기 할머니한테 엉뚱한 말을 했다고 해요.
“할머니, 내가 목화를 생산해서 할머니 옷을 만들어줄게.”
“목화솜이 어딨어?”
할머니가 물었어요.
“여기 있어. 내가 고생해서 만들었어.”
“조금만 기다리면 이게 할머니 옷이 될 거야.” 깜짝 놀란 할머니가 또 물었어요.
“어디서 났니?”
“목화를 구하려고 살펴봤지롱. 이불에 구멍 뚫어 손가락을 넣어보니 그 안에 솜이 있잖아.”
저녁에 할머니가 목화솜 이야기를 하자 시우 엄마가 말했어요. “시우가 어느 날부터 나를 찾지 않고 조용히 뭔가를 하고 있어서 가만히 지켜보았어요.”
“얇은 아사 이불을 찢어 그 안에 있는 솜을 꺼내 모으고 있더라고요.”
시우에게 물었대요.
“시우야, 솜을 꺼내 뭘 하려고?”
“할머니가 엄마 없을 때 나를 사랑해주니까 선물로 옷 만들어 줄려고…”
“차렵이불은 못 쓰게 됐지만 시우가 목화솜을 마련해서 할머니 옷을 만들어 줄 수 있다고 큰소리쳤던 걸 이제 알겠네요.”
‘기특하고 고마워라!’
시우엄마의 말을 들은 할머니는 너무 행복했어요.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자기 전에 시우한테 목화솜이 실이 되고 옷이 되는 과정을 읽어주었어요.”
시우 엄마의 말에 할머니는 시우가 신통하다고 말했어요.
띵동. 할머니가 현관문을 열자 친하게 지내는 이웃분이셨어요. “약밥을 만들어서 좀 가져왔어요. 시우도 맛있게 먹어라.”
이웃분이 가시자 평소 밥 먹이기에 애를 먹던 할머니가 맛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약밥을 먹기 시작했어요. 할머니를 보고 있던 시우가 말했어요.
“할머니, 나도 약밥 먹어 볼래.”
잘 먹는 시우를 지켜보던 할머니가 물었어요. “약밥 맛있니?”
“할머니!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는 밥이에요. 누가 만들었어요?”
“아까 왔다간 할머니 친구가 만들었지.”
“다음에 만나면 내가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었다고 그 할머니한테 꼭 말해주세요.”
시우의 말을 전해들은 할머니 친구는 엄청 기뻐하셨어요. 약밥을 또 만들어 시우 먹으라고 갖다 주셨어요.
시우는 유치원 앞에서 기다리는 할아버지를 보자마자 조릅니다. “할아버지, 하리보라는 곰젤리 사주세요.”
할아버지가 사준 곰젤리를 할머니 할아버지는 못 준다고 말합니다. 손에 꼭 쥐고 혼자 먹다가 놀이터에서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친구들에게 나누어 줄까 말까?’
잠시 고민하는 시우에게 할아버지가 말했어요. “시우야, 친구들이랑 나눠 먹어야지.”
그때 이웃집 애기 엄마가 자기 아이에게 하는 말을 시우가 들었어요. “상대방에게 물어보고 줘라, 원하지 않을 수도 있어.”
시우는 그 아이가 엄마 말대로 하는 걸 보았어요. 시우도 일일이 물어보면서 하리보 젤리를 동네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어요.
“할아버지,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나눠 주니까 너무 기쁘고 신나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할머니는 ‘아프리카에서는 온 마을 사람들이 아이를 키운다’는 글을 떠올렸어요. ‘동네에서 아이를 키우는구나’하며 고마웠다고 말합니다.
‘나눠먹으면 모두 친구가 된다.’
시우가 행동으로 스스로 알게 된 말이에요.
시우는 그 이후로 친구에게 나눠줄 하리보를 매일 사들고 가자고 할아버지를 조릅니다. 아빠가 시우에게 말했어요. “너 돈도 없으면서 왜 할아버지 돈 쓰게 하니?”
“돈 아니야. 할아버지는 카드만 있으면 돼. 나는 할아버지만 있으면 돈 필요 없어.”
아빠는 시우의 나름 논리적인 말에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어느 날 동네 놀이터에 딸 둘을 키우는 엄마가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어요. 시우할머니에게 인사를 하며 말을 건넸어요.
“큰애는 여섯 살, 작은애는 세 살인데 둘의 성장이 다르니 놀이나 먹는 간식이 달라요.”
“큰애가 먹는 건 작은애를 피해서 줘요. 그러니 큰애는 늘 동생을 멀리하면서 피해 다녀요.”
그러면서 시우가 너무 논리 있게 말을 잘한다고 칭찬하며 이유를 말해주었어요.
“언니가 동생을 잘 데리고 놀아야지 왜 혼자서 놀아?”
시우가 그 말 한 이후로 동생인 예담이의 손을 꼭 잡고 데리고 다닌다고 합니다.
“할머니, 나는 예담이가 좋아.”
예담이가 좋다며 오빠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걸 압니다. 예담이 엄마는 시우만 보면 좋아서 입이 벌어진다고 소문이 났어요.
“예담이 전담 마크해서 예담이 엄마 좋겠다.”
이웃집 엄마들은 시우를 보면 모두 예담이 엄마를 부러워한답니다.
“요즘 혼자인 애들이 많은데 놀이터에서 만나면 다들 좋은 친구가 되는 것 같아요.”
시우할머니가 시우 칭찬하는 엄마들에게 하는 말이랍니다.
시우는 애지중지하는 변신 로봇이 한 개가 있는데 집 안에서만 가지고 놀아요. 하루는 놀이터에 시우와 동갑이고 한글도 다 읽고 잘생긴 친구가 변신 로봇 장난감을 가지고 왔어요.
“나 민준이야.”
민준이는 가지고 나온 장난감을 선뜻 시우에게 하나 건네고 같이 놀자고 말해요. 시우는 그때부터 민준이랑 친해져서 놀이터에만 오면 민준이를 찾고 안 보이면 올 때까지 기다려요.
놀이터에 나온 민준이 엄마가 할머니께 묻습니다. “시우가 말을 잘하는 걸 보니 책을 많이 읽나 봐요.” 할머니는 팔을 저으며 전혀 아니라고 합니다.
“질문이 많아 현실적인 이야기를 못 알아들어도 네가 크면 배울 거야.” 그렇게만 말해준다고 했어요. 그때 할아버지가 낮에 돌보는 여자동생이 같이 끼어서 놀려고 왔어요. 오빠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같이 만져보고 싶었나 봐요.
“세빈아, 이건 민준이 오빠가 아끼는 거야. 네가 만지고 싶으면 허락을 받아야 해.”
시우가 여자 동생인 세빈이에게 말했어요. 그러자 옆에 있던 민준이의 큰 목소리가 들려요.
“세빈이는 부러뜨려서 안 돼!”
시우는 가지고 있던 과자를 세빈이 손에 쥐어주며 할아버지한테 데려다주었어요.
그날 밤 잠이 든 시우는 꿈속에서 집에 있는 장난감들을 담아 놀이터로 갑니다. 놀이터에서 기다리는 세빈이 앞에 장난감을 펼쳐요. 세빈이는 환호성을 지르며 신팔짝팔쩍 뛰어요. 장난감을 가지고 세빈이와 놀아주는 시우에게 달님이 환한 빛으로 내려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