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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로고 임옥순

책 제목월간문학 2024년 11월 월간문학 2024년 11월 6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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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종 소리가 길고 짧게 들립니다. 소꿉놀이에 한창 떠들썩 했던 민이와 수는 후닥닥 일어납니다. 앞치마를 두르고 엄마 노릇을 하던 민이와 수건을 머리에 동여매고 아빠 흉내를 내며 놀던 수는 장난감을 버리고 출입문으로 달려갑니다.

“누구세요?”

“엄마다!”

“야, 신난다.”

둘이는 서로 달라붙어 먼저 문을 열려고 한동안 승강이를 벌입니다. 문이 열렸습니다.

“엄마, 왜 이제 와!”

유치원에 다니는 민이는 재빠르게 엄마 품으로 안기더니 항의를 먼저 합니다.

“형, 저리 비켜, 울 엄마야.”

“아니야, 울 엄마야.”

“왜들 이러냐? 엄마 힘들어.”

엄마는 형을 내려놓고 동생 수를 안아 주려고 합니다. 형은 떨어지지 않으려고 엄마 팔에 대롱대롱 매달립니다. 엄마는 한쪽 팔에 수를 안았습니다.

“엄마는 나빠!”

수는 울먹이면서 엄마 얼굴에 제 얼굴을 비벼댑니다. 수의 콧물 눈물이 엄마 얼굴에 얼룩집니다.

“수야, 왜 또 응석이지?”

“힝, 나빠. 엄마?”

“우리 아기 왜 심통 부려요? 어서 내려요. 엄마가 사 온 우유 먹자.” 엄마는 동생을 내려놓습니다. 그러나 수는 엄마를 떨어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치맛자락에 매달려 다시 엄마 가슴으로 파고들더니 목을 껴 안습니다.

“우리 수야, 몇 살이지?”

“세 살.”

“내년엔 어린이집에 갈 텐데 이러면 못써요. 엄마가 저녁 맛있게 해 줄게. 어서 내리세요.”

“힝, 엄마 나빠. 매일 우리만 두고 학교 가잖아.”

“우리 아기 착하지, 엄마는 학교 선생님이라고 했지? 학교에서 종일 아이들 가르치고 오는 거야.”

“싫어, 나하고 집에서 놀아야지.”

수는 엄마한테 자꾸 떼를 쓰기 시작합니다.

“저리 비켜! 엄마 힘들어.”

그때 옆에서 잠자코 동생 하는 양을 보고 있던 민이는 입을 쑥 내밀더니 수의 팔을 잡아당기는 것입니다.

“형 좀 봐라. 얼마나 의젓하니?”

엄마는 빙그레 웃으며 두 아들을 바라봅니다. 민이도 씩 웃습니다.

“싫어, 형 나빠!”

수는 있는 힘을 다하여 엄마 팔에 매달립니다. 엄마의 얼굴에 피곤한 모습이 순간 지나갑니다.

 

“왜들 이러니? 엄마 힘들어. 옷 좀 갈아입고 보자.”

엄마는 간신히 빠져나와 방 안에서 옷을 갈아입습니다. 작은 꽃무늬의 월남치마와 까만 블라우스를 입은 엄마는 참 예쁩니다.

엄마는 주방으로 서둘러 들어갑니다. 쌀을 씻어 불에 올려놓습니다. 도마에 칼질하는 엄마의 손이 빨라집니다.

민이와 수는 주방으로 졸졸 따라 들어갑니다.

“우유 먹었니?”

“아니.”

“빨리 먹어요.”

“싫어, 그까짓 우유 안 먹어.”

“어서 먹어요. 밥 끓여 놓고 시장 데리고 갈게!”

“정말?”

“그래 우유 먹어야 튼튼한 어린이가 되는 거예요. 아빠도 시골에서 지금 젖소를 키우고 있잖아요. 모두 우리 민이와 수를 튼튼하고 훌륭하게 키우려고 열심히 일하시는 거예요. 엄마한테 자꾸 떼쓰면 착한 아이가 아니에요.”

엄마는 가슴이 콩닥콩닥 자꾸 뜁니다.

 

민이는 언제나 계집애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좋아합니다. 심지어 옷을 입는 것까지도 계집애 옷을 입고 싶어 합니다. 꽃핀을 사 달라고 졸라 머리에 꽂거나 꽃반지를 끼고 다니기를 좋아합니다.

오늘도 민이는 그 많은 장난감 중에서 소꿉놀이하는 놀잇감을 한 아름 안고 있습니다. 집에는 인형을 비롯하여 여자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이 수두룩합니다. 엄마는 속이 상했습니다. 생긴 모습도 동생 수와는 달리 계집애처럼 예쁘장하기만 하고 약해 보여, 튼튼한 사내아이처럼 키우고 싶은 게 엄마의 소망입니다.

장난감을 사 준 엄마는 두 아이의 손을 잡고 가게를 나오면서 해지는 저녁노을을 바라봅니다. 엄마의 얼굴이 노랗게 물이 듭니다.

“너희들 다음에 커서 어떤 사람이 될 테야?” 엄마는 두 아이의 표정을 살핍니다.

“응, 난 씩씩한 군인 될 거야. 이 총으로 나쁜 사람, 빵, 쏠 거야.” 수는 한길에서 신이 나게 총부리를 겨누고 떠들썩합니다.

“민이는?”

“엄마 될 거야. 엄마처럼 치마 입고 주방에서 밥 짓고 빨래할 거야.”

“애걔, 형은 엄마 된대. 난 아빠 될 거다. 아빠처럼 젖 짜고 술도 먹을 거야.”

“난 엄마 될 거다. 엄마 되어서 울 엄마 밥해 주고 도와줄 거야.” 엄마는 콧등이 시큰해집니다. 퍼뜩 정신이 듭니다. 내일 민이가 소풍 간다고 말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민이는 신발 가게를 기웃거립니다. 아직 새 신발이지만 엄마는 문득 민이에게 운동화를 사 주고 싶습니다. 여름철 더울 때는 편했던 고무신이지만 이제 날씨가 선선한 가을엔 운동화를 신겨야겠다고 생각하며 그 신발 가게 앞으로 갔습니다.

“얘들아, 신고 싶은 신발 골라 보렴.”

수는 신이 났습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벌써 골라 신었습니다. 야구 방망이가 새겨있는 멋진 운동화입니다. 민이도 골랐습니다. 빨간 나비 무늬가 달린 하얀 구두입니다.

“형? 그것은 계집애 신이야.”

민이가 고르는 것마다 여자 신발인데 엄마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민이가 마지막 골라 신은 것은 분홍빛 꽃신입니다.

“민아!”

엄마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습니다. 민이는 그만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습니다.

“너, 고추 달렸나 보자!”

주인아저씨는 민이에게 가까이 다가와 번쩍 안아보려고 두 팔을 벌렸습니다. 그러자 민이는 주춤주춤 뒷걸음치며 와락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큰일입니다. 태권도나 웅변을 가르쳐서 담력을 키워 주십시오!” 머쓱해진 가겟집 아저씨가 고개를 저으며 눈길을 돌렸습니다. 엄마는 잠자코 카드를 내밉니다. 입맛을 쩝쩝 다시며 계산을 마치고 아저씨는 카드를 건넸습니다. 꽃신을 꼭 안고 눈물을 닦던 민이는 뒷걸음질 칩니다. 엄마는 두 아이의 손을 잡고 가게 문을 나섭니다.

돌아오는 길에 민이와 수는 좋아서 깡충깡충 뛰었습니다. 민이는 꽃신을 볼에 비비며 비로소 계집애처럼 굳었던 표정을 풀고 환하게 웃습니다. 어느 틈에 해가 뉘엿뉘엿 서쪽 하늘을 향하여 숨어버립니다. 그때 민이가 걸음을 멈췄습니다. 해가 넘어간 하늘이 붉게 물들었습니다. 대단한 모습을 발견한 듯 민이는 갑자기 손뼉을 힘껏 마주칩니다. 그리고 큰소리로 엄마를 향하여 소리쳤습니다.

“엄마, 하늘빛이 엄마 얼굴 같아!”

엄마는 깊은 생각에서 퍼뜩 깨고 말았습니다. 두 아들을 번갈아 바라보던 엄마는 민이와 수를 양쪽에 꼭 안은 채 얼굴을 비벼댑니다. ‘그래. 민이가 꽃신을 골라 신으면 어때? 아직은 계집애처럼 마음이 여리지만 커가면서 씩씩한 성격으로 바뀔 거야.’

어느새 엄마의 눈가엔 이슬이 가득 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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