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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이발사의 행복한 삶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두환(경기)

책 제목월간문학 2024년 11월 월간문학 2024년 11월 6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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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신체는 쓸모없는 부위가 하나도 없다. 조물주가 사람을 탄생시킬 때 쓰레기로 버려지는 일이 없도록 엄청난 노력을 하셨을 것이다. 모든 인체는 매우 느리게 성장한다. 빨리 성장했다가 잘못되는 일이라도 있으면 도로 물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빨리 자라고 어느 정도 자라면 잘라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이 머리카락이다. 이런 일 때문에 적어도 한두 달에 한 번 정도는 이발소나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자르게 된다. 물론 머리를 기르는 여성이나 일부 남성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 이발이란 개념이 도입된 것은 일제 강점기 시절이었다. 조선말 고종 때 상투를 자르고 머리를 짧게 깎으라는 단발령이 내려졌다. 그 이후로 이발소의 영업이 시작되었다. 사업을 하려면 그것을 광고하는 도안(圖案)이 필요하다. 이발이 발달했던 유럽에서 사용하던 도안을 우리는 그대로 차용했다. 이발소의 표지인 삼색 선은 프랑스에서 고안된 디자인이라고 한다. 당시 유럽에서는 외과 의사가 이발까지 담당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도 면도기는 매우 예리한 칼이었다. 그것을 사용하여 수술까지 하게 되니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흰 선은 붕대, 붉은 선은 동맥, 푸른 선은 정맥을 나타냈다고 하니 이발소가 아닌 병원의 상징으로 써야 마땅함에도 현재까지 이발소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지금은 많이 퇴색되었지만 과거에는 명절이 가까이 다가오면 목욕탕과 이발소가 붐볐다. 조상에게 차례를 올리려면 용모를 단정하게 갖추어야 했다. 그러니 목욕탕과 이발소는 그때가 대목이다. 나그네는 어린 시절부터 한 달에 한 번 정도 이발소에 갔다. 어릴 때는 키가 작으니 이발 의자에 나무판을 올려놓고 거기에 앉아서 머리를 깎았다. 그런데 머리만 깎으면 잠이 쏟아졌다. 머리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면 이발에 지장이 있기에, 그때마다 이발사한테 꾸지람을 들었다. 나이가 들어가니 잠이 없어서인지 그때처럼 잠이 쏟아지지 않는다.

머리를 깎는 곳이 이발소가 있고, 미장원이 있는데, 나그네는 미장원보다 이발소를 주로 이용하고 있다. 이발소도 이곳저곳 다니는 것이 아니고, 한 곳만 가게 된다. 지금 다니는 이발소는 이발만 하고 머리는 감겨주지 않는 곳이다. 이발사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하고 있다. 그는 칠십 대 중반을 넘었고, 이발 경력도 오십 년이 넘었다고 한다. 자주 가는 이발소이다 보니 머리를 깎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된다. 대화는 나라 걱정은 물론이거니와 자식의 근황까지 주제는 여러 가지로 그때그때 조금씩 다르다.

이발사는 어린 시절 가정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만 졸업했다. 가족을 위해 스스로 밥벌이를 찾아야 했다. 밥벌이는 돈을 버는 것이 아니고, 가족의 입 하나를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주로 일을 해주고 숙식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수습생인데 돈을 받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겠지만, 흰 가운을 입고 이발하는 모습이 너무 멋지게 보여 그 직업을 좋아하게 되었다.

열네 살 되던 해, 처음 이발소를 찾아가서 일을 하고 싶다고 했지만, 어린아이가 일을 하겠다고 했으니 막바로 퇴짜를 맞았다. 그는 거기에 굴하지 않고 아침마다 이발소 마당을 쓸기 시작했다. 얼마 후 이발소 사장은 그의 품성이 착하다는 것을 알고 그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일을 하면서 그의 성실함 때문에 이발소 사장의 신임을 얻었다. 이발소에 들어가서는 궂은일을 도맡아 하면서 열여덟 살에 이발사 자격증을 받았다. 이발사 자격을 받고 얼마 후 자신의 가게를 열었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심성으로 이발소는 자리를 잡아갔다. 고향마을에서 그가 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퍼지니 사기꾼이 접근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이발 일만 하다 보니 고향 사람의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들려 투자를 했다. 결과는 젊은 시절 힘들게 모은 돈을 모두 잃어버리는 아픔을 겪었다. 그는 워낙 성실한 품성이라 다시 재기했고, 다른 동생들 모두 결혼시키고, 자신은 맨 나중에 결혼했다. 이발 기술 하나로 가족을 부양했고 성장한 자식을 결혼시키고, 이제 쉴 만도 하지만, 지금도 일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배운 이발 기술 하나로 평생을 살아온 경험으로 이 분야에서 명장(名匠)의 반열에 올라섰다고 볼 수 있다. 젊은 시절에 어려움도 많았지만 나이가 들어 자신의 삶을 가꾸고, 일구는데 이발 기술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칠십 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지만 계속 이발 일을 하는 것을 보고, 가족들은 그만 쉬라고 이야기하지만, 자신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을 계속하겠다고 이야기한다. 친구들은 모두 일이 없어서 그냥 쉬고 있는데 자신만 직업을 가지고 일하고 있으니 자랑스럽다고 한다.

일이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고,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수입도 생기게 된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행복의 조건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자신의 일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목표가 있다면 행복의 조건을 갖춘 것’이라 했다. 나이가 들어 이런 조건을 갖추기란 쉽지 않다. 젊은 사람들 역시 대동소이할 것이다. 우리가 찾는 신기루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조금만 노력한다면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지금도 일하고 있는 그는 아침이면 출근을 할 수 있고, 그곳에서 일을 할 수 있고, 일을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 자신은 누구보다 행복한 삶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인생은 목표를 가지고 생활해야 활기찬 삶이 될 수 있다. 동네 이발사처럼 건강이 허락하는 한 성취할 수 있는 목표를 가지고 자신을 키워 간다면 정신적인 건강이 육체적인 건강을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모든 것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실천한다면 행복한 삶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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