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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래져 가는 결혼사진

한국문인협회 로고 장용대

책 제목월간문학 2024년 11월 월간문학 2024년 11월 6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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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벽에 걸린 여러 사진들 중 1973년 10월 9일 가족 친지들과 수십 명이 모여 찍은 결혼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반짝반짝 빛나던 사진과 틀은 흐릿하고 누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마침 아내가 저녁 먹으라며 다가와 사진을 바라보는 나를 향해 묻는다.

“뭘 보고 있소?”

“응, 당신도 좀 보구려.”

둘은 서로 마주 보게 되었다. 그런데 사진보다는 더 기막힌 것은 둘이 검은머리는 어디 가고, 흰머리로 변한 헤어와 탐스럽고 뽀얀 얼굴이며 그 좋은 체격이 바싹 마름에 둘은 번갈아 보며 사진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누구누구 하며 연신 추억을 떠올리자 지나간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여보, 우리 결혼한 지 얼마나 되지?” 하고 물으니 아내는 “당신 금년 몇이야?” 고 되묻는다.

“이런, 남편 나이도 모른단 말야? 78이야. 봄에 당신이 생일 차려주었잖아.”

그제서야 계산해 본다. 당신은 27살, 나는 24살에 결혼했으니 벌써 52년째 같이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게 뭐야? 아직 빌라에 살고 있단 말이지. 정말 능력 없다.” 비아냥거리며 부엌으로 가서 저녁이나 먹자고 한다.

나는 저녁 먹으면서 그동안 잘 살아보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나 생각해 봤다. 남의 것 탐내지 않고 스스로 일어나려고 부모한테 재산이라고는 한 푼도 받은 것 없이 벌어서 상가도 지어 봤고, 단독주택도 사서 살아도 보고, 아파트도 매입하여 살아보고, 결혼 전엔 베트남전쟁에 참전도 해보고, 결혼하여 사우디 건설에 뛰어들어 보고, 고등학교에서 당직으로 몇 년씩 근무해 보고, 연초 소매도 해보고, 군에서 부사관으로 보장된 직업군인도 팽개치고, 아내 만나서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물론 이사 몇 번에 아내가 시집올 때 그 좋은 자개농 차단스 분단장 세트 등 마음먹고 마련해 온 것 모두 망가지고 어디서 겉만 번지르하게 무늬만 붙인 농짝이어서 미안한 마음이다.

친정에서 큰딸이 시집간다고, 시골에서 20년 이장을 보시고, 근방 사람들은 명심보감 이상 모르는 이 없어 모두들 양반동네라며 결혼식이 성대하였다. 더욱이 월남전에서 맹렬히 전투하다 귀국했으니 나는 더욱 인기 대상이었다.

막상 결혼을 하여 사회에 뛰어들어 생활해보니 만만하지 않았다. 차라리 군대생활이나 할걸 하는 미련이 잠깐 들었었다. 강원도 산골짜기에서는 여자 만나기란 하늘에 별 따기보다 더 어려웠다. 제대하여 사회에 나가면 이만 못하랴 하고 과감히 전역 상신으로 1972년에 전역하고 지금의 아내와 중매로 만났다.

2남 2녀 중 남매는 어려서 잃고 지금의 큰딸은 48, 아들은 45살. 모두 결혼을 잘하여 현재까지 잘들 살아가고 있다.

서경에 5덕 6극이 있다. 다섯 가지 덕을 취하고 여섯 가지 흉을 피하며 살아가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남남끼리 만나 똑같은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희망일 뿐, 그저 알면서 넘어가고 보듬고 포옹으로 위로하며 살면 되는 것이다.

애경사에 빠지지 말고 참여해 주고, 의좋게 이웃하며 살아가는 것이 경제와 사회를 구성하여 크게는 나라를 지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백구과극, 년시매최. 빨리 가는 세월을 되뇌며 또 한 번 사진을 들여다보니 먼저 떠나신 분들이 수십 명이 되었다. 한쪽은 꼬맹이들이 벌써 결혼하여 사위를 보네 며느리를 얻네 하는 것을 보니 확실한 것은 세월이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변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못다 이룬 공부를 꾸준히 하여 2019년에 중어중문과 3학년 1학기 문화교양학과, 4년 6년 만에 졸업장을 거머쥐었다. 재미있는 것은 ‘좌경천리 입경만리’라는 말을 가끔 들 한다. 이는 교양학과 공부를 해보니 세계 각국을 가보지도 않고도 누가 말만 꺼내면 그에 끼어들어 아는 체하게 된다.

그리스 문명과 동양의 문명은 가히 다투어볼 만한 공부였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등 정의란 무엇인가, 동양의 공맹자의 극기복례 노장자의 자연무위라든가 독특한 한자도 1급을 득하여 도처에서 초대받아 일정한 아동들을 교육할 수 있었던 것 등.

부사관으로 예비군 중대장도 해보고 졸업장에 문학사를 받다 보니 인천문인협회·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는 것은 순전히 지금의 바래져 가는 사진 속 아내의 큰 협조였다.

2022년 고을에서 1위로 문학상에 뽑혀 아내와 같이 갔었다. 많은 축하객이 모였다. 이때 상패와 금일봉 50만 원을 받았다. 여기서 우리 부부는 이 사진을 찍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조금 떨어져 오면서 여기저기에 전화로 결혼 50년 만에 처음으로 기분 좋은 날이라며 자랑하는 것 같았다. 없이 살아도 그때의 부부 우애는 더욱 두터웠다.

그런데 남들은 단편, 중편, 장편 또는 시를 잘 써서 베스트셀러로 일약 스타가 되는 문학가들이 많은데 나는 무엇 하나 발표를 못하고 있다.

일모도원이라 해는 지고 갈 길은 멀고 해놓은 일은 없고 할 일은 많은데 이는 아마도 노력 부족은 물론 실력 차이인 것이다. 괜히 희로애락도 훌쩍 보내고 영고성쇠라 명예와 재산 같은 것은 속전속결이다. 이제 눈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생로병사인 듯. 얼굴은 덕지덕지 검버섯 피어나고 주름살은 십 리를 패었네. 통통한 살집은 어디 가고 가죽만 따라 나오는가!

이와 비슷한 글꽃은 피어 어디로 가는지 이리도 쉬 지는가. 푸르고 푸르던 잔디도 누릇누릇 누루나니, 어찌 이 인생 청산처럼 감당 못할까!

바래져 가는 결혼사진을 보며 회한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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