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2024년 11월 월간문학 2024년 11월 6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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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것과 연약한 것의 대비를 본다. 상호보완 관계라거나 어울리는 부분이 전혀 없을 듯한데 그 중심에 자리한 공생을 본다. 억세고 강하여 구부러질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고철의 본질에서 이성을 발견하고, 여리디여려 작은 충격에도 쉽게 꺾이는 꽃의 본질에서 감성을 발견한다면 억지일까. 이성과 감성. 두 성질의 분배가 사람에게 균등하게 주어질 때 참된 인간성이 성립되는 게 아닐까. 그날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의 손수레 앞에서 한참 생각에 잠겼다.
요즘 턱없이 오르는 물가상승에 주부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뉴스를 자주 접한다. 한 번 오르기 시작한 물가는 내리기는커녕 그 선이 기준이 되고 있다. 불평불만을 내뱉는 것도 잠시, 순순히 현실에 적응하며 산다. 한참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은 먹성이 좋아 돌아서면 먹거리를 찾는다. 일정한 수입이 정해져 있는 가정은 가끔 질보다 양으로 충족시켜 급한 불부터 끈다고 한다.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게 우선이고 그 또한 지혜로운 방법일 테니까.
그들 편에 서 있다가 실속 있는 장을 볼 때가 있다. 많은 양의 묶음을 사서 나누면 이득이 많다. 한편 저렴한 가격의 공동구매를 논할 때면 슬쩍 빠진다. 소량을 취급하는 나에게는 맞지 않아서다.
그날도 시장을 돌아 나오는데 저만큼 아지랑이 일듯 일렁이는 꽃물결에 시선이 갔다. 두 노인이 앞에서 끌고 뒤에서 미는 것은 분명 꽃수레였다. 의외였다. 노인은 고철과 공사현장의 폐기물을 실어나르던 분이었다. 그런 분이 꽃수레라니. 생뚱맞다 생각하면서 은은한 꽃향기에 홀리듯 가까이 다가갔다. 다양한 색의 장미와 안개, 라넌쿨러스와 스타티스 등 작은 묶음의 꽃다발이 손수레에 가득하다. 향기로운 꽃에 둘러싸인 늙수그레한 노인의 표정은 고철을 나를 때와는 다르게 마냥 해맑다. 꽃향기에 지난한 삶이 잠시 순화되어서일까.
꽃은 한 다발에 오천 원부터 칠천 원이다. 저렴하다. 일반 꽃집에서는 그 가격으로는 어림없다. 재래시장에 낯선 꽃수레가 들어서자 어지러이 흩날리던 발걸음이 잠시 모여드는가 싶더니 다시 흩어졌다. 아무래도 꽃보다는 먹거리가 급선무인가 보다. 나 역시 방금까지 찰지고 짭조름한 토마토 다섯 개, 성주 참외 다섯 개 만 원인 가격에 망설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나 꽃수레 앞에서는 사정 불문하고 속수무책으로 선뜻 서너 다발을 골랐다.
노인은 꽃을 에워싼 투명한 포장지를 가뿐히 들어 올렸다. 고철을 다루던 투박한 손에 들린 화사한 꽃다발이 눈부시게 빛났다. 고철과 꽃.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에서 묘한 감동이 일었다.
합계 26,000원이란 우직한 말투에 강단이 서려 있다. 한 송이 덤으로 달라는 말은 감히 꺼내지도 말라는 듯 계좌이체 번호가 적힌 두꺼운 종이를 내민다. 현명했다. 직접 돈을 주고받는 것보다 계좌이체를 통해 견물생심의 원리를 자극하니 말이다. 손끝 몇 번 두드리자 결제의 알람 소리가 따랑∼ 하며 들린다. 급격히 변하는 세태에 뒤처지지 않고 나이 들어서도 현실에 바짝 밀착하는 감각이 훌륭해 보인다.
혀끝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보고 느끼는 감각에 마음을 실었다. 일시적인 즐거움보다 마음의 풍요가 더 오래 갈 테니까. 사실 노인의 참신한 발상과 생활력에 감탄한 나머지 존경심이 우러난 선택이었다. 팔순을 넘긴 연세에도 끊임없이 본인의 삶에 충실하고 적잖은 보상과 기쁨을 만끽하고 있지 않은가.
가끔 시장길에서 만나는 그 노부부의 손수레에는 고철이 가득했다. 그런 날은 어느 집이 리모델링하는 날이거나 이사 가는 날이었다. 버려지는 가전제품이나 철재류 등 돈이 될 만한 것을 알뜰히 챙겼다. 집에서 손수 만든 주먹밥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틈틈이 두꺼운 상자나 폐지도 손수레에 담아 밀고 끌며 그렇게 계절을 건너간 것이다.
요즘 일자리 구하기도 어렵지만 불편하고 귀찮은 것은 피한다.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 굳건한 의지로 살아 볼 일이다. 강한 것과 부드러운 것의 본질을 잘 아우르며 살아가는 노인의 모습에서 한 수 배웠다.
식탁 위에 놓인 라넌쿨러스가 제 향을 한껏 뿜어낸다. 배경이 된 안개꽃에 주홍색이 더욱 선명하다. 페스츄리 마냥 여러 층의 꽃잎이 지난 세월의 흔적처럼 겹겹이 서려 있는 듯하여 내가 즐겨 찾는 꽃이다. 지금보다 젊었을 땐 순수한 기쁨의 홑꽃으로 보았다면 지금은 기쁨과 슬픔을 아울러 지닌 겹꽃이다. 세월을 이만큼 건너오고 보니 무엇 하나 흔적 아닌 것이 없다.
꽃다발을 풀어 이것저것 조화롭게 엮어 가까이 있는 지인들에게 나누고 나니 서너 송이가 남았다. 한 송이인들 그 충만한 기쁨이 달라질 리 있으랴. 바람결에 꽃잎이 파르르 떤다. 오늘 하루를 찬찬히 새기느라 몸을 부리는 게 아닐까. 평범한 일상을 비범하게 탈바꿈한 경이로운 장면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다. 투박하고 거친 손으로 건네준 꽃다발은 찬란한 기쁨이었다. 고철과 꽃은 오묘한 공생관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