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2024년 11월 월간문학 2024년 11월 6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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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한껏 차려입고 학교에 가는 나를 보며 “내도 마음은 니하고 똑같다” 하셨었다. 그러면서 어머니 눈에는 내가 예뻐 보였는지 등교하는 나를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파트 복도 난간에 기대서서 바라보시곤 하셨다. 아파트 모퉁이를 돌아서며 위에 계시던 어머니께 손을 흔들고 등교를 하곤 했는데 그 당시는 어머니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살아보니 새록새록 어머니가 왜 그런 말을 하셨는지 알게 된다. 어느 사이 환갑을 넘기고 60대가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데도 가끔 혼란을 겪는다. 물론 이것은 나만의 현상은 아니다. 가끔 만나 수다 떠는 동갑내기 친구들도 운동으로 단련된 체력과 잘 가꾼 외모 덕분에 예전의 60대처럼 나이 들어 보이지는 않는다.
어느 틈에 찾아와 이제는 돋보기 없이는 책도 읽지 못하고 카톡 문자도 보지 못하는 노안을 비롯해 8000보 이상을 걸으면 아픈 오른쪽 발, 얼굴은 떠오르는데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단체 카톡방의 명단에서 보고 카톡을 보내야 하는 잦아지는 건망증은 혹시 그 무섭다는 치매의 전조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두려운 마음마저 든다. 그런데 이런 증상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가진 증상이라는 것이 조금 위안은 되지만 어머니 세대의 60대보다 외현적으로는 젊어 보여도 결국 60대가 가진 노화 현상이 비켜 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나도 “내 마음은 그때나 똑같은데…” 하는 말을 되뇌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래서 어머니의 말씀이 새록새록 생각나는 것이다.
나이 들어가는 것에 비례해 나이 들어가는 육체는 어쩌면 참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어쩌다 돋보기를 쓰고 화장대에 앉아 얼굴을 보게 되었을 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손등을 바라보았을 때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피부의 노화현상을 보면 차라리 가까운 것이 안 보이는 노안이 낫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래서 나이 들면 보지 말아야 할 것은 적당히 눈감아 주고 귀 닫아 주라는 의미로 시력과 청력이 조금씩 나빠진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나이 들어도 변하지 않는 그 마음이라는 것이 어찌 보면 우환의 원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작년 3월 바이크가 너무 타고 싶어서 빨간색의 예쁜 스쿠터 한 대를 사서 지인께 도움을 요청해서 레슨을 받은 적이 있었다. 며칠 배워서 스쿠터를 익숙하게 타게 되면 정말 제대로 된 오토바이 한 대 사서 라이딩을 가리라는 꿈에 행복했지만 현실에서 나는 겁이 많은 나를 만났다. 스쿠터 타는 법을 정말 잘 가르쳐 주셔서 간신히 북악산 스카이웨이를 돌아올 때는 라이딩의 꿈에 부풀어 올랐지만 막상 지하주차장에 주차해둔 스쿠터를 스타트하려고 하면 겁이 나서 6개월 이상을 주차만 시켰다가 저렴한 가격에 처분해야 했다.
주변에서 왜 이제 시작하느냐고 만류했지만 처음 운전 연수할 때를 떠올리며 나를 스스로 세뇌해 보아도, 배달의 민족답게 질주하는 수많은 배달오토바이를 보며 저 사람들도 다 하는데를 반복해 보아도 겁이 나는 것이었다. 대학교 다닐 때 스쿠터를 타고 다녀 걱정을 안겨주던 큰아들도 “엄마! 그건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위험해요” 해서 “너도 타고 다녔으면서 왜 나는 안 되니?” 했더니 “비가 오거나 낙엽이 구르는 계절에는 위험요인이 너무 많아요” 하며 만류했는데도 “멋지게 보여 주어야지” 했는데 결국은 접어야 했다.
스쿠터를 팔던 날과 장만한 라이딩복과 운동화를 조카에게 넘겨주던 날은 많이 서운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잘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겨울 엄동설한에도 며칠 따뜻한 기온이 지속되면 양지바른 곳에 개나리나 목련이 피었다가 갑자기 눈이라도 내리면 여리디여린 꽃들이 눈을 맞은 채 얼어붙는 경우처럼 의욕만 앞세웠다가 위험할 수도 있었을 테니…. 그래도 용감하게 시작하려고 했던 내 용기에는 스스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골프를 치시던 분들이 부상과 비용의 문제로 파크골프로 많이 이동한다고 하고 은퇴를 한 부부가 캠핑카를 장만해 전국의 명소를 찾아 여행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고 하던데 이처럼 자신에게 오는 변화에 순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잘 나이 드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태어났기에 이 세상을 살게 되는 것이고 사노라면 늙고 병들고 죽는 경과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이제 나이가 들어 노(老)의 단계에 들어선 내가 그것을 부정하고 젊어지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순리가 아니라 내가 노의 단계에 들어섰음을 자각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Well-Aging이 아닐까? 이것이 『100세 철학자의 인생, 희망 이야기』의 저자 김형석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진정으로 자신의 성장을 게을리하지 않는 행복한 삶을 사는 지혜가 될 것이다.
아침 해가 떠오를 때도 찬란하고 아름답지만 지는 해가 물들이는 세상은 고즈넉하고 평화로우며 아름답다. 그래서 평소에 일출을 보러 가는 사람보다 일몰을 보러 가는 사람이 더 많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떠오른 해도 뽐내며 떠오르지 않지만 지는 해도 서러워하지 않는다. 우리도 잘 나이 들어 아름답게 세상을 물들이는 황혼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