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자전거 타는 인생사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기덕(일검)

책 제목월간문학 2024년 11월 월간문학 2024년 11월 669호

조회수36

좋아요0

7월이 오면 강변도로에는 자귀나무꽃들이 지천이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만개해서 산책 나온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마치 수많은 공작새가 화들짝 날개를 펼치면서 화려한 예술의 미와 기예를 뽐내는 듯이 그 광경은 실로 환상이다. 이곳은 자전거 전용도로이며 시내 초입에서 금광호수로 가는 나들목이다. 자귀나무꽃이 100미터 이상 터널을 이루고 나머지 5킬로미터는 벚나무 터널이다. 자전거도로 옆 호수로 가는 자동차 전용도로에는 메타세콰이어길이 또한 장관이다.

나는 이곳을 요즘은 파란색 신사용 자전거가 아닌 주홍색 신사용 자전거를 타고 날마다 신바람 나게 운동한다. 마비된 오른쪽 다리가 더 이상 퇴화하는 것을 막고 왼쪽 다리는 정상이나 강인한 힘과 전신의 운동으로 몸과 마음을 숙련하고자 한다.

나는 사색하면서 자전거 타기를 좋아한다. 소중한 아내와 딸과 아들 같은 사위가 있으니 세상 부러운 것이 없는 행복한 가정이다. 7월 중순 장마철인데 오늘따라 하늘에는 구름 한 점이 없이 온통 주홍색의 천국이다. 자전거와 잘 어울린다. 자전거 타기를 멈추고 영롱한 꽃에 취해서 오랜 시간을 자귀나무꽃 아래 벤치에 앉아서 충분한 사색과 휴식을 취하니 그동안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가 한 방에 사라지면서 몸과 마음이 한결 가볍다.

곱고 화려한 자귀나무꽃을 바라보면서 파란만장했던 지난날의 삶을 되돌아본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꺾이지 않고 밝고 아름다운 삶을 추구해 온 수족 같은 내 딸이 항상 대견스럽다. 항상 아빠 엄마를 생각하는 송이가 자랑스럽다. 칠순 선물로 송이는 파란색 자전거가 아닌 주홍색 자전거를 선물했다. 안전도에서 눈에 확 띄는 주홍색이 적격이라고 설명한다.

하루 10km 이상의 거리를 매일 운동한다. 헬멧과 사이클 전용 선글라스를 끼고 변함없이 오늘도 페달을 힘 있게 밟는다. 파란색 신사용 자전거를 타던 어린 시절부터 오늘까지 55년의 파란색 자전거 타기를 고집했던 지난날들을 뒤돌아본다.

중학교 1학년 때 친구한테 자전거를 배웠다. 3살 때 소아마비로 오른쪽 다리가 마비된 상태에서 수없이 넘어지고 깨지고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서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 타는 것은 위험하고 사람 잡는 일이라고 만류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한 달 두 달… 수개월 연습을 하니 비로소 자전거 타는 기술과 감각은 절로 익히게 되었다. 그때부터 자전거를 홀로 탈 수가 있었다. 그때의 심정은 세상을 다 얻은 기쁨으로 어린 마음에서도 꿈이 있는 녹색 신호등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께서는 날 덥석 안고 뜨거운 눈물을 보이셨다. 10년 동안 전국 각지를 전전하면서 침과 독한 마취약으로 소중한 생명을 유지해 왔는데 네가 꼭 해 낼 것이라고 엄마는 굳게 믿고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읍내 자전거 파는 가게로 가셔서 파란 신사용 자전거를 사 주셨다.

새 자전거는 내 마음의 녹색 신호등, 세상을 다 얻은 기쁨과 자신감으로 모든 일에 꿈과 희망을 찾았고 도전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모든 일을 계획하고 시행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청년 시절에 자전거는 나의 수족이면서 역시나 내 마음의 녹색 신호등이었다. 낯선 서울에서 거동이 불편하여 시내버스와 지하철 타기가 어렵고 위험해서 자전거를 타고 서울 거리를 누비면서 20년 이상을 통학과 통근을 하였으니, 자전거는 이 세상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안내자가 되었다. 걷기는 힘들고 버거우나 자전거를 타면 비호처럼 빠르고 없는 힘도 샘이 나서 힘이 넘쳤다. 걷다가 넘어지는 일은 다반사 있지만 자전거를 타고 넘어지거나 실수해서 다친 적은 거의 없다.

30대 중반 신혼생활에서 자전거는 우리 집 보물 1호가 되었다. 파란 신사용 자전거를 타고 청량시장과 경동시장을 누볐다. 뒤에는 아내를 태우고 앞에는 보조 안장에 아기를 태웠다. 시장 상인들은 신랑 새색시 아기공주가 왔다고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송이 장난감을 사주었고 떡과 빵 순대 그리고 나물 미역 등 반찬거리 등을 챙겨주는 호혜가 남달랐다.

결혼 전에 나는 청량리에서 학원강사와 과외를 지도해서 시장에는 학부모들이 많았고, 청량시장 순댓국 맛집에서 신혼살림을 하고 있으니 시장 사람들과 친숙해서일 것이다. 고향에 와서는 아내와 함께 자동차 면허를 취득했다. 전국을 탐방할 수도 있고 내 마음의 녹색 신호등은 더 넓게 그리고 멀리 달릴 수 있었다.

자동차는 빨간색 진주색 검은색 그리고 흰색 계통으로 35년 동안 줄기차게 100만 km을 사고 없이 눈앞에 두고 있다. 모두 다 자전거로 익힌 녹색 신호등의 덕분이 아닌가 생각을 해 본다.

오늘도 녹색 신호등의 자전거는 전용도로를 힘있게 달리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한두 시간씩 운동한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나의 자전거 사랑은 끔찍하다. 내 몸의 일부라고 할 정도로 수족 같은 자전거이기 때문이다.

50대에는 K우유 홍보차 사은품으로 받은 조립식 접이형 자전거를 탔다. 파란색 신사용 자전거를 원했기에 파란 수족을 얻었다. 자동차를 많이 이용해서 자전거 타는 일은 적었으나 체력과 다리 힘을 기르기 위하여 자전거 타기를 소홀히 생각하지 않았고 뱃살 빼는 데도 주력했다. 그러나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서 뱃살은 늘어만 갔고 비만으로 자전거 타는 시간을 늘렸다.

60대는 날마다 고삼호수 주변 농노길을 누비면서 하루 3시간 이상씩 날마다 자전거를 탔다. 하루 12km 이상을 질주했으며 콩지(애견)와 함께 대갈리 동그랑산과 한내천을 따라 고삼호수 둑까지 다시 고삼면사무소에서 근동 농노기를 누볐다. 사계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자전거를 탔고 그런 덕분에 다리와 팔의 근육이 돌처럼 단단해졌고 기형 상태가 확연하게 드러났지만, 자신을 꾸짖지는 않았다. 헬스 선수 못지않았다.

지금도 칠순 나이에 자전거를 탄다고 지인들은 날 많이 걱정한다. 거동이 불편하고 지팡이 없이는 걷지도 못하는 사람이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보면 날쌘 제비처럼 빠르고 민첩하다고 놀라는 지인들이 다수다. 건강과 내일의 꿈과 희망을 위하여 오늘도 아름다운 강변도로를 질풍처럼 진입하여서 페달을 힘있게 밟았다. 자전거 전용도로 지평선의 소실점을 향하여!

광고의 제목 광고의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