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2024년 11월 월간문학 2024년 11월 6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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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공원으로 향하는 길은 사월 하순인데도 바람 때문인지 제법 썰렁하다. 주공아파트 쪽으로 걸어가니 벽에 붙은 붉은 현수막이 바람에 춤을 춘다. 지역신문에서 이 아파트가 곧 헐리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 미세먼지가 많은 날인데도 길을 나섰다. 그리 먼 곳이 아닌데도 차를 타고 지나가기만 했지 직접 찾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스산한 분위기가 걱정이 되었지만 살던 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막아 놓은 쪽문을 열고 들어갔다. 재개발을 위해 모든 주민이 이 주한 아파트는 적막했다. 쓰러져가는 아파트에 색색의 꽃이 지천으로 피어나 <고향의 봄>에 나오는 동네 같이 알록달록했다. 어디선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릴 것 같아서 계속 두리번거렸다.
내가 신혼시절 때 살았던 아파트. 일자산을 배경으로 멀리 남한산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나무들이 숲을 이루어 산골동네를 방불케 했다. 결혼하기 전 서로 모은 돈에 은행 대출을 보태어 이 아파트를 장만했다. 대출이 반이나 되었지만 누구의 도움도 없이 아파트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한다는 기쁨으로 설레던 곳이기도 하다. 집만 있었지 대출금을 내고 나면 생활비가 빠듯해 전전긍긍 했던 시절이었다. 길 쪽에서 넓은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면서 이 안에 내 집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뿌듯해지곤 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난 뒤에는 ‘집 가꾸기’와 ‘알뜰히 살기’에 전념했다. 단지 건너편에는 재래시장이 있었다. 더 싸게 사기 위해 떨이가 있는 늦은 시간에 장을 볼 때도 있었다. 그 집에서 오년을 사는 동안 두 아이가 태어나고 집값이 대출금만큼 오르는 바람에 큰 집으로 이사할 수 있는 행운도 누렸다. 아이들이 대학교에 들어갈 즈음 그쪽으로 지나간 적이 있다. 옛날 생각이 나서 재래시장에 들렸는데 생선 가게 주인이 흥정을 하다 말고 나를 쳐다보더니 놀라서 말했다. “어머! 새댁 어쩐 일이야. 이사 왔어?”
세상에나 이십년 전에 생선을 사먹던 단골 생선가게 주인이었다. 아이 돌잔치 때는 생선회를 배달해 주기도 했다. 당시 지금의 내 나이쯤 이던 아줌마는 이제 환갑을 지나 할머니 태가 났다. 아줌마에게 내가 하나도 안 변했다는 말도 들었겠다 기분이 좋아 양 손에 생선 봉지를 가득 들고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다. 강산이 두 번 바뀌었는데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는 동네. 흥정을 하고 덤도 얻어오던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다.
내가 살던 동 옆으로는 만개한 벚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지어진 지 사십 년이 넘어 서며 나무들이 커서 아파트 높이를 훌쩍 넘었다. 철거를 앞둔 건물과 쓰레기 더미 사이에서 홍매화와 명자나무가 사람들이 떠난 자리를 환하게 지키고 있다. 오층 아파트가 삼십층 이상으로 변신 한다니 모든 것이 다 파헤쳐지리라. 이 많은 나무들을 옮겨 심을 수 없으니 건물과 함께 폭파하거나 갈아엎을 것이다. 이듬해 꽃을 피우기 위해 아무 것도 준비할 수 없는 나무들. 꽃이 진 자리를 다음 꽃에게 물려 줄 수 없기에 이 봄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감지한 탓인가. 모든 꽃들이 유난히 황홀하게 피어 있다.
한 시간을 걷는 동안 아무도 만날 수가 없더니 카메라를 둘러메고 사진 찍는 사람이 보였다. 이 풍경을 마지막으로 담아두고 싶었는지 계속 셔터를 눌러댔다. 지상에서 사라질 누군가의 보금자리였던 집과 마당…. 기쁘거나 슬프거나 집 안에 쌓여있던 숱한 사연들이 먼지처럼 흩어져 있는 곳.
사십년 전 일 단지 입구 폐자전거가 쌓여 있는 공터에는 과일 노점상이 있었다. 남편은 토요일 마다 양손 가득 비닐주머니에 과일을 사 가지고 들어왔다. 그 시절에는 토요일도 반공일이라 부르며 근무했었는데 나는 저녁을 일찍 해놓고 아이를 안고 벚나무 아래로 남편을 마중 나가곤 했다. 멀리서 어른 머리만한 수박과 과일을 양손에 들고 남편은 달리다시피 언덕길을 올라왔다. 그때나 지금이나 웃을 때가 제일 멋있어 보이는 씩씩했던 남편 모습이 떠오른다. 집 대출금에 시동생 학비까지 대느라 살림꾼인 내가 과일을 조금 사는 줄 눈치챘을 것이다. “우리 먹는 것은 아끼지 말자.” 상해서 버리지 않으려면 먹겠지 하는 마음이 읽혀져서 잔소리하려다 말곤 했다. 첫아이의 볼에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미소가 꽃처럼 피어나던 그 시절이 그립다.
깊숙이 걸어 들어가니 상가 일층에 ‘well spring’이라는 반쯤 무너진 찻집이 보인다. 이렇게 커피 한 잔이 간절하게 생각날 수가…! 이 허물어진 공간에 커피 향기가 퍼지면 다시 생기가 돌 것 같다. 찻집 옆엔 기울어진 빈 공중전화 박스만 덩그러니 서 있다. 순간 누구에겐가 휴대폰이 아닌 공중전화를 걸고 싶어졌다. ‘뚜뚜뚜’ 신호음이 울릴 때까지 계속되던 얘기 “내일 또 전화할게” 군대에서 시간을 아끼며 급하게 끊던 목소리. 남편은 직장을 다니다가 늦게 군대를 갔었다. 그동안 일편단심으로 기다렸었지. 내 직장에서 남편의 별명은 ‘안녕하세요’였다. 업무 시작하기 전 매일 아침마다 나를 바꿔달라는 전화의 첫인사였으므로. ‘그런 애틋한 시절은 어디로 갔을까.’
오래 되어 철거된 아파트처럼 기억 속에 사라진 것인지 요즘은 서로 마음을 몰라준다고 화내기 일쑤다. 손주를 넷이나 보며 같이 산 세월이 얼마인데 서로 자기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큰소리 내고 때로는 내 잔소리가 지겹다 한다. 할 말도 참으면서 서로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 주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
바람이 불자 찢어진 비닐봉지들이 하늘로 오르다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바람의 힘으로 멀리 날아가고 싶었겠지. 하지만 별 수 없이 그 근처에 내려앉는다. 뾰족한 가지에 찢기고 구멍 나고 상처받은 영혼처럼 가엾다.
그 옆에 고양이 한 마리 피하려는 기색도 없이 나를 올려보고 있다. 버림받았는지 야생인지 가늠하는데 마주친 눈길이 날카롭다. 모든 것이 허물어져버린 어수선한 풍경 속에 고양이의 눈빛만 살아 있다. 이 아파트의 마지막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다가 제 갈 길을 가겠다는 신호처럼 보였다. 혼자서 빈 아파트를 지키고 있는 고양이의 집념인가. 문득 길 건너 편의점에서 참치캔이라도 사서 두고 가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어 며칠 뒤 찾은 아파트는 완전 통제가 되어 있고 나무들은 다 엎어져 있었다. 정겨웠던 그 마당은 폭격 맞은 듯 낯설었다.
추억은 시간이 흐르면 변하고 사라져가지만 어떤 한순간을 만나면 새롭게 피어난다. 갈아엎은 이 땅에도 나무의 잔뿌리가 남아 새순을 밀어 올리겠지. 고층아파트가 들어서고 모든 것이 편리해져도 더러 불편하고 모자랐던 옛날이 그리울 때가 있다. 충분하지 않아서, 그렇게밖에 해주지 못해 미안해서, 서로에 대한 배려와 따뜻함으로 채울 수 있었던 시절. ‘사라지는 모든 것들을 위하여.’
바삐 사느라 잊고 있었던 얘기들을 기억의 창고에서 꺼내어 오래도록 음미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