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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의 미학

한국문인협회 로고 이상수(서울)

책 제목월간문학 2024년 11월 월간문학 2024년 11월 6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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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한 후에 집에서 지내는 날이 많아지고 있다. 나태해지고 게으른 생활습관도 함께 찾아오는 것 같다. 매일 똑같은 일상 속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무료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럼에도 세월은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게 잘도 흐른다. 잠깐이면 한 달이요. 조금만 더 지나면 일 년이니 붙잡을 수 없는 것이 세월이 아닌가 싶다. 직장에 다닐 때는 바빠서 못했던 일을 원하는 만큼 충분히 할 수도 있을 텐데. 못 만났던 친구나 친척들도 만나보고 가보지 못했던 여행도 실컷 해보고 싶었으나 세월만 흐르고 성과는 별로 없다. 좋은 글도 많이 쓰고 싶었는데 글을 쓰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어렵게 느껴지니 이것이 정상인지 아닌지 당혹스럽기만 하다.

어느 신학교에 공부는 하기 싫어하고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게 해달라고 기도만 하는 학생이 있었다. 교수가 공부하라고 아무리 타일러도 그는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눅 11:10)라는 성경 말씀을 외우며 기도실을 떠나지 않았다. 드디어 시험시간이 되었다.

공부를 하지 않았던 그는 문제의 답을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라는 단 한 문장만 답안지에 써놓고 교실을 빠져나왔다. 담당 교수는 채점란에 이렇게 써 놓았다. ‘하나님은 다 아시니 100점, 학생은 다 모르니 0점.’ 세상에는 믿음으로 산다는 명분 아래 자기 편리한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게을러서 노력하지 않는 것을 자신이 세상에 초연(超然)하기 때문이라거나 또는 믿음으로 살기 때문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신다. 귀찮고 피곤한 일을 슬쩍 뒤로 미뤄두는 것도,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도, 육신을 핑계로 게으름 피우고 있는 것도… 이 사례를 보면서 혹시 나는 그러지 않았는지 조용히 내 자신을 되돌아본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게으름을 질책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잘 닫히지 않는 창문은 아예 열지도 않고, 깜빡대는 전구는 꺼서 마침내 어둠에 익숙해지는 자기를 발견하곤 한다”라고. 자신의 게으름을 질책하는 안타까운 그의 목소리가 나에게까지 들려오는 듯 아릿하다.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게으름과 나태는 죄악으로 여겨져 왔다. 고대 그리스에서 게으른 자는 살인을 범한 자나 남의 물건을 훔친 자와 마찬가지로 사형에 처했다. 중세 기독교 문화에서 나태는 교만, 탐욕, 질투 등과 함께 7대 중죄에 포함되기도 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데후 3-10)라는 성경 구절도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의 한 사람인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은 “게으름은 쇠붙이의 녹과 같다. 노동보다 더 심신을 소모시킨다”라고 하며,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고 경고한다. 게으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에서 한 말과 행동이 아닐 수 없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게으름은 더 이상 부정적이고 나쁜 의미로만 쓰이지 않는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란 저서에서 “당신이 즐겁게 허비하는 시간은 낭비가 아니다”라고 했다. 심리학자이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같은 노벨상 수상자이자 『넛지(Nudge)』의 저자인 리처드 탈러(Richard H. Thaler)에게 “게으름이야말로 그가 가진 최고의 자산”이라고 칭찬하고 있다. 탈러가 호기심을 느끼는 중요한 문제에만 정신을 집중하게 한 것이 그를 경제학자로 성공시킨 비결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Bill Gates)는 어려운 일은 일부러 게으른 사람에게 시킨다. 게으른 사람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 비해 보다 쉬운 방법을 잘 찾아내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의 많은 발명품은 인간의 게으른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은 아니었을까.

현대사회에서 게으름이 재평가된 것은 게으름이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상과 상상력을 이끌어내 혁신이나 발명으로 이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은 가만히 앉아 공상(空想)하는 시간을 업무 일과에 포함시키고 있다. 폭넓게 생각하고 새로운 창의력을 발휘하기 위해 일부러 게으름을 즐기게 하는 것이다. 성과가 없거나 즐겁지 않은 행동은 피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합리적 게으름(rational laziness)’이라고 한다.

<특종세상 세상에 이런 일이>란 TV 프로그램에서 게으른 발명가 이야기가 나온다. 중학생인 아들이 매우 게을러서 그의 부모는 많은 걱정을 했었다. 어느 날 아이에게 집안 청소를 시켰더니 리모컨으로 조종하는 장난감 자동차에 걸레를 매달아 청소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아들의 이 모습을 지켜보면서 발명가의 꿈을 키우고 있는 자식에 대해 매우 대견해 하고 있었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이것이 바로 합리적 게으름의 좋은 사례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소에게 먹일 풀을 베다가 힘들고 귀찮아지면 먼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누군가 풀 베는 기계를 만들어서 나의 힘든 일을 대신해 주면 좋겠다는 상상의 나래를 펴곤 했다. 반세기가 훨씬 지난 요즈음 내가 소망했던 기계는 이미 현실에서 그대로 사용되고 있음을 본다. 그것이 단지 꿈으로 끝나지 않고 발명품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합리적 게으름의 덕분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나는 그런 기계를 발명하지 못했지만 창의적이면서 합리적으로 게으른 사람들에 의해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바뀌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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