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2024년 11월 월간문학 2024년 11월 669호
36
0
2024년 올해 여름은 유난히도 덥고 길었다. 나의 고향 김포는 곡창지대였고 특히 우리는 시골 쪽이었다. 열대야에 시달리고 있는 요즘 아련한 추억! 그 옛날 학교 종소리 듣고 달려가서, 오후 수업까지 끝나면 가방 둘러메고 새집 털기도 하고, 집게벌레(사슴벌레) 잡으러 다니고 계곡으로 달려가서 차가운 물로 멱감고 가재 잡아 깡통에 넣어 가져와서 구워 먹기도 하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시골집의 사랑채 툇마루에 앉아서 곰방대 담배 피우시던 할아버지와 어르신들도 생각난다. 겨울에는 따뜻한 햇볕 맞으며 걸터앉아 장난치고 댓돌에서 비석 치기, 말뚝박기, 구슬치기, 오징어게임도 생각이 난다.
비 온 후에는 장화 신고 바구니 들고 아버지 따라 앞산으로 버섯 따러 가서 청기와버섯, 계란버섯, 싸리버섯, 항아리버섯, 느타리버섯 등등 바구니 수북하게 담아와 툇마루에 앉아 정리해서 버섯 된장국 끓여 먹던 그 옛날이 아련하다. 요즘 학생들은 툇마루 댓돌이 생소하리라 생각된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우물 깊숙한 곳에 김치통 수박통 줄에 매달아 늘어뜨려 내렸다가 줄을 당겨 꺼내 먹던 추억이 지금도 눈앞에 삼삼하다. 윗마을 아랫마을 왕래하며 점심때는 감자에 호박 썰어 넣은 수제비에 오이(노각)생채 무쳐서 배불리 나누어 먹던 정감 있던 조용한 마을! 밤이 되면 한여름엔 더위 식히려 마당에 멍석(밀거적) 깔아 놓고, 부채 손에 들고 윗마을 사람, 아랫마을 사람들이 둘러앉아 왁자지껄, 옥수수 감자 쪄서 먹는 즐거움이 최고의 피서였었지.
마당 가장자리에는 싸리나무와 해바라기 우쭉우쭉 꽃이 자라고, 쑥 뜯어서 불 피워 모기 쫓아내면서 도란도란 둘러앉아 깔깔깔 웃고 즐기다 갑자기 빗방울이라도 우둑우둑 내리면 혼비백산 뛰어들어가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요즘이야 에어컨 냉장고 등 시절이 변하여 천지개벽이라는 성어가 맞을 듯싶다.
손에는 사람마다, 비싼 돈 내면서 손 도깨비방망이(휴대폰) 하나씩 들고 다닌다. 옛날 기준으로 보면 분명 휴대폰이 도깨비방망이가 분명하다. 옛날 분들이 환생하여 요즈음 지하철 커피숍 길거리 온 세상이 휴대폰 들고 쳐다보는 광경을 보면 기절초풍할 듯…. 나 어릴 적 동네 최장수 91세 할아버지께서 흑백 티브이 보시다가 화면에 사람이 나오니까 도깨비라고 도망가셨다는 실제 이야기가 있었다.
시대 흐름에 따라 살지만 이 또한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지 않는가? 사랑채, 툇마루, 댓돌, 멍석…. 단어만으로도 장년 노년층들은 정겨운 옛 시절을 떠올릴 듯싶다. 예나 지금이나 삶이 녹록지 않은 인생살이지만, 화조풍월(花鳥風月) 풍류 인생에는 술이 빠질 수 없지 않은가? 우리 툇마루는 꽤나 널찍해서 그곳에서 어른들이 약주 드시며 한 곡조 읊는 광경도 심심치 않게 목격하며 성장했다.
그 시절, 술상 차리시느라 할머니, 어머니들께서는 얼마나 힘드셨을지 가늠이 된다. 그 어렵던 시절에 배곯아 가시며, 5∼6남매를 어떻게 키우셨을까? 늘 생각하는 일이지만 예전의 여성, 대한민국의 여성은 참 존경스럽고 훌륭하다. 양육(養育)과 방육(放育)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형제들끼리 부대끼며 형성되는 자연스러운 인성(人性)이 형성되어, 좋은 정(情)이 있는 사람들로 성장해 가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요즘엔 풍요로움 속에서 공부만 강요하고 인성 교육의 부재는 사회를 둔탁하게 만들고, 어지러운 사건 사고가 많은 험한 세상 속에서 다시 한번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그 시절에 힘든 일상을 위로받을 시설 공간 놀이문화가 무엇이 있겠는가? 그것이 최고의 피로와 애환을 달래는 안식처, 내지 보상책이 되리라 생각이 된다. 또 궂은 날씨에는 비를 피하여 고추나 나물 등을 널어놓고 말리는, 때로는 놀이터, 그야말로 고마운 다목적 공간이 될 수 있다. 올여름 사상 유례없이 긴 열대야 시대에 살면서도 그 시절을 그리면 마음이 시원해져 체감온도도 1도 내린 듯하다.
어차피 한세상! 어른들은 한결같이 짧은 인생 눈 깜빡할 새 지나왔다고 하신다. 예전에 몰랐는데 요즘은 감이 잡힌다. 좋은 말 좋은 글 그대로 실천하며 살면 얼마나 좋으련만…. 노력할 뿐이지 늘 인생 숙제를 안고 산다.
인생은 좋은 일 기쁜 일 힘든 일도 있지만, 좋은 일보다 힘든 일이 훨씬 많은 것이 인생이다.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하고 잘 견디고 이겨내며 기쁨을 만들 때 보람이 있지 않은가?
하나 해결하면 또 한 가지 일이 생기고, 잘됐다 싶으면 건강에 이상 신호, 세월은 그렇게 흐른다. 팍팍하고 각박한 도시에서 살면서 같은 건물 아래윗집 옆집도 잘 모르고 사는 요즘 시대에 사랑채 툇마루에서 정감 넘치며 웃는 세상을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