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2024년 11월 월간문학 2024년 11월 6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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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켠다. 리모컨으로 자주 보는 채널로 바로 갈 수 있지만 하나씩 순서대로 누른다. 중간중간에 홈쇼핑 채널이 있다. 구입하고 싶은 물건이 있어 찾아본다기보다 습관적으로 그냥 본다. 어느 날 한 쇼핑 방송에 꽂혔다. 젊은 남성 모델이 입은 셔츠가 너무 멋있게 보였다. 저 옷을 입으면 나도 조금은 더 멋스럽게 보일 것 같았다. 잠시 고민하다가 점을 찍었다. 그런데 우송된 옷을 입어보니 생각과는 달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TV에서 느꼈던 멋진 셔츠 이미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정년퇴임한 지 한참 지난 내가, 젊은 모델과의 다름을 아직도 실감하지 못하다니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식탐이 있다. 어릴 적부터 말랐다는 얘기를 수없이 들어온 나는 식사 때 가능한 한 양껏 먹는다. 조금이라도 살붙는다는 음식이면 무엇이든 먹는다. 하지만 빼빼하다는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노력은 헛수고로 끝날 듯하다. 먹는 양을 조금 늘리면 배가 더부룩해 불편해지거나 설사를 해버리는 등 몸이 받아주지 않는다. 어떤 지인은 내가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있어 부럽다고들 하나, 남 속 모르고 하는 소리다. 난 여름을 싫어한다. 무더위도 문제지만, 여름엔 어쩔 수 없이 내 몸의 골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얇고 짧은 옷을 걸쳐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탤런트 노주현씨 같은 통통하고 멋진 사람을 본보기로 삼아 야윈 내 이미지를 바꾸려고 애쓰고 있다.
이미지가 좋아야 인정받는 세상이다. 물건의 품질이나 기능, 쓸모보다 이미지의 좋고 나쁨을 더 중히 여긴다. 상품, 회사, 학교는 물론이고 사람도 이미지가 나쁘면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 TV를 보다 보면, 어떤 상품을 홍보하는지 감을 잡지 못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특정 회사 상표를 나타내면서, 편안하고 기분 좋은 느낌이 들게 해주는 광고를 가끔 접한다. 세상에 나온 지 한참 된 제품이라도 디자인, 색 등을 바꾸는 이미지 변신으로 매상이 껑충 뛰어오르는 현상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우리가 명품을 좋아하는 것은 품질이 뛰어나고 실용성이 높아서라기보다 그것이 풍기는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실재를 중요시하는 모더니즘 사회에서 이미지를 강조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로 변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유명 연예인이나 정치인은 이미지를 통해 일반 사람과 소통한다. 나도 좋아하는 가수나 정치인을 직접 만나본 적이 거의 없다. 만나려고 해도 만날 수가 없다. 신문, TV, 인스타, 유튜브 등을 통해 이들을 접했을 뿐이다. 그 매체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통해 이들과 함께 호흡하고 공감한다. 그가 선한지 악한지, 성격이 좋은지 나쁜지, 어떤 취미나 특기를 가진 사람인지 그 실재를 알기 어렵다. 자기 마음에 들고 느낌이 좋으면 맹목적으로 그를 따르고 숭배하기도 한다.
한때 인기리에 방영된 영화 <트루먼 쇼>는, 사람이 이미지에 의해 조작된 사회를 실재로 믿고 살아가는 상황을 절묘하게 그린 영화다. 주인공 트루먼은 태어날 때부터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사회, 즉 조작된 거대한 스튜디오를 실재 사회로 알고 살아간다. 그의 친구, 직장 동료, 동네 주민, 아내, 심지어 부모까지, 그가 관계 맺고 있는 모든 사람이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연기자임을 꿈에도 의심하지 않는다.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해 어떤 것이 실재인지 고민할 겨를 없이, 쫓기듯 살아가는 현재의 우리를 보는 듯하다. 거짓으로 치장한 이미지를 실재로 믿고 사는 주인공 트루먼처럼.
다른 사람이 자기를 보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 타인과 만날 때 어떤 옷을 입을까, 넥타이는 맬까 말까, 무슨 신발을 신을까 등에 신경 쓰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비치는 자신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닐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도 내가 온전한 주인이 되기보다 타인을 더 의식하며 산 적이 많았다. 진정한 나와 한참 거리가 있는 나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준 적도 적잖았다. 누군가에게 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나의 실재와 겉으로 드러난 이미지의 간격이 넓을수록 마음속 불만은 더 커졌다. 얼마 전, 1970년대 젊은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한 가수가 TV에 출연했다. 순수한 외모와 맑고 청량한 목소리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그녀도 세월의 흐름을 비껴갈 순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인위적 이미지로 실재를 포장하지 않은 그녀의 겸손하고 솔직한 자세는 참으로 본받을 만했다.
체면, 관행, 명예, 지위, 눈치 등으로 진정한 나와 덧칠한 이미지가 일치하는 삶 살기는 어려운 것 같다. 그럼에도 이미지 과잉 시대에 내가 진정으로 주인 되는 법은, 가식적 이미지를 줄이고 현재의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