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2024년 11월 월간문학 2024년 11월 6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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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교통사고래요! ”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와 냅다 욕부터 내지르는 강현수였다. 인하가 교통사고를 당해 K병원에 와 있다는 것이다.
비명과 신음, 의사와 간호사들의 발걸음이 분주한 응급 실에서 인하를 찾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여기저기 두리 번거리다 한 칸막이 커튼을 젖히고 나오는 강현수를 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는 말없이 커튼을 밀치고 칸막이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침대 위의 인하는 머리에 빨간 약 인지 피인지 모를 벌건 색이 밴 붕대를 칭칭 감고, 오른팔 에 깁스, 역시 깁스를 한 오른쪽 다리는 베개를 높이 돋우어 올려놓고 있었다.
어쩌다…? 내가 강현수를 쳐다보며 눈으로 묻자, 그는 인하가 덮고 있는 담요 자락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몰라요. 경찰 연락받고 왔어요. 씨발, 어떤 년인지 놈인지가 사고 내고 토꼈나 봐요. 눈깔은 어떻게 뜨고 다니는지, 재수도 더럽게 없어요.”
강현수는 속이 끓는지 얼굴이 벌게서 욕을 해댔다.
“어디를 얼마나 다친 거예요? ”
“뇌출혈이라네요. 팔다리도 부러졌구. 수술을 막 끝내서 아직 마취에서 안 깨났어요. 수술도 두 시간이나 하더라구요.”
“생명엔… 지장 없는 거죠? ”
“수술은 잘 됐다는데, 경과를 지켜보재요. 돌팔이 같은 새끼가 수술 잘 됐으면 깨나게 해야지 뭘 지켜보자는 건지, 씨발….”
우리는 응급실을 나와 흡연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강현수가 담배를 빼어 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보호자 동의가 있어야 수술 들어갈 수 있다고 해서, 내가 와서 사인 했어요. 씨발, 병원에서 사람 먼저 살려 놓고 봐야지, 동의는 무슨….”
“고맙네요.”
“뭘요…. 저, 미안한데… 내가 밤에 일하는 놈이잖아요. 가게에서 전화를 해싸서 그러는데, 수아 엄마가 병원에 좀 있어 줄랍니까? ”
“그래야죠. 그런데 이수는요? 어디 심부름 갔나요? ”
“썩을 년이 아무리 전화를 해도 안 받네요.”
“제가 한 번 해볼게요.”
이수가 아빠 전화를 받지 않을 수도 있다. 부모가 이혼한 지 5년째다. 인하가 아무리 아빠를 미워하지 말라고 했어도 이수는 그럴 수 없었을지 모른다. 이혼 사유가 아빠에게 있었고, 더구나 이수는 그때 중2였다. 한창 사춘기 때 아빠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했을 아이가 아빠 전화를 살갑게 받을 리 없을 것이다.
“그럼 부탁합니다. 난 날이 새야 올거구만요.”
강현수가 담배를 비벼 끄고 저만치 갔을 때 나는 이수 전화번호를 눌렀다. 벨이 두세 번 울렸을까 말까 한데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수는 인하에게 엎드려 한참 울고 나서야 눈물범벅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엄마 아무일 없겠죠?”
“그럼! 수술도 잘 됐대.”
“근데 왜 아직 응급실이에요? ”
“입원실에 빈 침대가 없어서 대기 중이야. 낼 오전에 방이 나는 대로 옮겨 준대.”
또 설움이 북받치는지 이수는 인하의 붕대 감은 얼굴을 쳐다보며 오열했다.
나는 이수 등을 다독거려 응급실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자판기에서 생수를 꺼내 이수에게 건네주고 함께 정원 의자에 앉았다.
“아빠가 와서 수술동의서에 사인했어. 너 아빠 전화 안 받았다며? ”
“전 그런 줄도 모르고….”
“아빠가 이번에 큰일 해 줬다.”
“큰일은! 그까짓 일이 무슨….”
“그래도 그게 아냐. 새 가정 꾸미고 사는데 전 부인한테 그러기 쉽지 않아.”
“…….”
“일 끝내고 새벽에 다시 온대. 너한테 연락이 안 된다고, 자기 올 때 까지 여기 좀 지켜 달라고, 엄청 걱정하더라.”
이수는 생수병을 입술에 댄 채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생각에 골똘히 잠겼다.
인하는 일반병실로 옮기고 닷새가 지났는데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의사는 환자의 동공반사도 괜찮고 혈압도 괜찮은데 뇌가 좀 부어 있어 잠자는 약을 쓰고 있다, 사나흘 후에 약을 끊으면 의식이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이수가 학교 갈 때 외에는 인하 옆을 비우지 않았고, 이수가 없는 동 안은 내가 자리를 지켜 주었다. 노래주점을 운영하는 강현수도 저녁에 출근하면서, 또 새벽에 퇴근하면서 매일 병실에 들렀다 자기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러는 강현수를 이수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흘겨보았다. 말을 붙이면 단답형으로 짧게 대답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강현수는 강현수대로 이수 대하기가 부자연스럽고 어려운가 보았다.
강현수는 무뚝뚝하니 감정 표현을 잘 안 해서 그렇지 어린이수를 늘 자기 무릎에 앉혀 지냈다. 벙어리가 아닌가 걱정될 정도로 말이 늦게 터진 이수가 온종일 재재거리며 이건 뭐야, 저건 뭐야 물을 때도 귀찮아하는 빛 없이 짧지만 꼬박꼬박 대답해 주곤 했다. 이수가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는 오후에 숙제를 봐주고 아침에 꼭 준비물을 챙겨 주었다.
그런 아빠가 이수에게 어느 날 문득 남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수는 인하 모르게 많은 날을 울면서 지냈다. 새벽 일찍 학교 갈 때 울고, 밤늦게 책상 앞에서 울곤 했다. 그러다 아무 연락도 없는 아빠를 미워하기 시작하면서 제 정체성을 정립해 나간 것이다.
*
인하는 서른여섯이 될 때까지 홀어머니와 남동생을 뒷바라지하며 가 장 노릇을 해오다 동생이 장가든 연후에야 독립해 살면서 여덟 살 연하 강현수를 만났다.
“능력 좋네! ”
인하는 주위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무슨 능력? ”
“남편이 어리니 얼마나 좋니? ”
“어려서 뭐가 좋은데? ”
인하가 정색하고 물으면 상대방은 할 말을 잃었다.
그때 인하는 세무사사무실에 나가고 있었다. 아버지 사고 사망으로 보험금과 상속세를 상담하러 왔던 강현수가 인하를 밖에서 만나자고 졸랐다. 강현수는 석 달간이나 거의 매일 오전에는 전화하고, 오후엔 사무실 빌딩 앞에서 퇴근하는 인하를 기다렸다. 별말도 없이 그냥 커피 나 한잔하자는 것이었다. 그때 인하는 강현수에게서 수줍어하면서도 집요한 소년의 열정을 보았다.
“내가 착하대.”
인하는 내게 강현수 이야기를 처음 꺼내며 배시시 웃었다.
인하는 대학을 졸업하고 어엿한 직장이 있었지만, 강현수는 아버지가 남긴 약간의 재산으로 일수놀이를 하는, 거의 백수나 다름없었다. 주위 몇몇이 그들의 사귐을 걱정하고 반대했다. 경제력과 학력 차이 때 문이기도 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연하였다. 어린 남편이 늙어 가는 아 내를 언제까지 봐줄 수 있겠냐, 바람을 피울 게 뻔하다는 논리였다.
강현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찰학교에 붙은 후, 외삼촌에게서 입학하기 전 한두 달 자신이 운영하는 이발소를 봐달라는 부탁을 받았 다. 소위 퇴폐이발소였는데, 그 당시 본가가 시골이었던 강현수는 이발 소에서 기거하면서 면도사와 첫 경험을 가졌다. 아이가 셋이나 딸린 열 네 살 연상 이혼녀였는데, 여자 경험이 전혀 없는 강현수는 그녀의 성 적인 유혹에 쉽게 굴복됐다. 그 관계는 강현수가 경찰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경찰서 근무 배치를 받고 나서도 계속되었다. 그 여자가 계속 강현수를 떠받들며 찾아다녔던 것이다. 강현수가 연상의 여자들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어떤 면에서 마구 대하는 것도 그 습관 탓일 수 있 었다.
직장에 그녀와의 일이 알려져 상사의 나무람을 받은 강현수는 그와 한바탕 드잡이하고는 경찰서를 그만두었다. 그러고는 인하를 만날 때 까지도 부적절한 만남을 계속하고 있다가 인하에게 끌린 것이다. 강현 수에게 인하는 자기가 좋아한 첫 여자였다.
인하는 강현수에게 조건을 내걸었다. 그 여자랑 헤어질 수 있느냐, 그 여자를 정리한다면 생각해 보겠다. 강현수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대 답했다.
인하는 아무래도 자기가 연상의 여자 성적 노리개로 지내는 강현수를 구해줘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너도 연상이잖아.”
내 말에 인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강현수가 성적으로 필요한 게 아냐. 저러고 사는게 안됐고, 남녀 간의 진짜 사랑이라는 게 뭔지 알려 주고 싶어. 그런 다음 나를 떠나도 상관없어.”
나는 그때 인하의 얼굴에 어떤 결의가 서리는 것을 보았다. 자기가 여태껏 뒷바라지해 온 동생같이 느껴져서 챙겨 주고 싶은 것인지, 아니 면 정말 그를 사랑해서 함께 지내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시골에서 농사짓다 서울로 이사 온 강현수 어머니는 여덟 살 연상의 여자와 결혼하겠다는 강현수를 오냐오냐 해 주진 않았다. 맏이인 네가 개혼을 잘해야 동생들도 혼인을 잘할텐데, 도대체 왜 그 여자가 네 색싯감이어야 하냐고 반대에 반대를 거듭했다. 강현수에게 남편이 남긴 돈을 몽땅 맡기고 아들이 하자는 대로 하던 어머니가 아니었다. 그때 이미 인하의 배 속에는 이수가 자라고 있었다.
“착한 여자라구요! ”
강현수는 어머니에게 냅다 소리를 지르고는 인하의 집으로 가방을 싸 들고 왔다. 인하가 홀어머니에게 그런 식으로 반발해서는 안 된다, 집으로 들어가 어머니를 설득하고 허락을 받으라고 간곡히 만류했으나 강현수는 듣지 않았다.
그러고 얼마 안 있어 이수가 태어났다. 이수의 백일이 가까워져서야 시누이가 연락해 왔다. 아기 데리고 집에 한번 다녀가라며, 자기 어머니는 가꾸는 여자를 좋아하니까 예쁘게 하고 오라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어서 와라, 내 손을 잡으며 반가워하셔서 좀 놀랐어. 시고 모 두 분이랑 고모부들도 와 계셔서 더 놀랐고. 다들 좋은 분들인 것 같아. 강현수만 집안에서 별종이래.”
시댁에 다녀온 인하가 전화로 내게 한 말이다.
“널 맘에 들어 하셔? ”
“꼭 그런다기보다, 애 낳고 사니까 그냥 받아들이기로 하셨나 봐. 시고모님들이 요즘은 연상도 괜찮으니까 결혼시키라고 하셨대.”
그런데 인하 쪽에서 문제가 생겼다. 이수를 낳을 때까지도 별말이 없던 인하 어머니가 백수건달 같은 강현수가 마뜩잖다고 결혼을 반대하 고 나선 것이다. 기왕 애는 낳았으니 내가 길러 주마, 연애나 하고 결혼 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인하 어머니가 의외로 강경했다. 남동생은 저 보다 나이 어린 매형이 무슨 말이냐고 입을 내밀었다. 처한테 얼굴이 서지 않는다며, 굳이 결혼하겠다면 앞으로 누나를 보지 않겠다고까지 했다.
인하는 학비며 결혼비용을 댔던 남동생에게 그런 말을 듣고도 서운해 하지 않았다. 미안하기만 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달랐다. 등을 보이고 앉아 있는 어머니를 며칠을 찾아가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볼멘소리를 했다.
“엄만 꼭 내가 이수 데리고 혼자 살아야 속이 시원하겠어요? 딸년이 늙도록 혼자 사는 게 보기 좋아요? 무슨 엄마가 그래요? 잘 살아라 빌 어 주진 못하고! ”
결국 이수 백일날 시댁 식구들을 집으로 초대하라는 어머니 허락을 받아 냈다. 그리고 그해 결혼식을 올리고 시댁으로 들어가 두 시동생과 막내 시누이와 함께 얼마간은 평탄하게 살았다. 그러나 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강현수에게 시간이 많고 현금이 좀 있는 게 탈이었다. 돈놀이합네 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강현수는 노름판 뒷전에서‘꽁짓돈’을 대주다 노름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전문노름꾼에게 걸려 현금을 몽땅 털리고 말았다. 그러자 낮에는 실컷 자고 밤이면 돈 되는 것은 무엇이든 들고 나가 노름방에서 세월을 보냈다. 결혼반지며 목걸이며 죄 다 팔아 없애고, 심지어는 주택부금이며 보험마저 해약해 돈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강현수의 어머니는 체념도 빠르고 강인한 분이었다. 강현수의 건달 노릇에 혀를 끌끌 찰 뿐 별다른 말씀 없이 당신이 아침저녁으로 남의 집 일을 다니며 식구들 호구를 맡으셨다. 어쩌면 당신의 아들이 재기하리라 끝까지 믿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계시고 시동생들이 있으니까 싸움도 못 해. 이수 데리고 놀이터에나 끌고 나가서 잔소리하는데….”
하우스인지 뭔지 다니는 거 제발 좀 그만해라, 지금 이수와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기나 하냐, 제발 무슨 일이라도 해서 우리를 좀 먹여 살려 봐라, 가진 돈 다 날리고 어머니한테 미안하지도 않냐, 인하가 열 심히 이야기를 하면 강현수는 다 듣고 나서‘그런데 대체 뭐가 문젠데? ’하고 되물어 인하의 기운을 뺐다. 더구나 자기에게 누나 노릇 하 지 말라고 못 박는 강현수에게 인하는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늦은 결혼을 이유로 다니던 회계사사무실을 그만둔 처지라 인하는 돈이 궁했다. 전세 보증금을 빼 결혼 비용으로 쓰고 남은 것으로 그동안 살아왔는데 그마저 바닥이 난 것이다. 시어머니에게 손을 벌릴 수도 없었다.
“L에 가서 이수에게 닭다리 하나를 사 줬는데, 글쎄 맛있게 먹고는 하 나 더 먹겠다는 거야. 내 지갑에 그거 하나 더 살 천삼백원이 없는데 말이야…. 간신히 달래서 데리고 나왔어.”
인하의 결혼생활 형편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나는 인하 어머니가 결혼을 반대한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딸은 그 어머니가 제일 잘 안다. 참을성 있고 희생적인 인하가 강현수 같은 남자를 만나 어떻게 살 것인 지 인하 어머니는 머리에 그림을 그리고 계셨던 것이다.
인하는 그 무렵 한 달에 한 번 하는 생리를 두 번씩 했다. 신경성 생리 불순이었다. 그리고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가끔 만날 때마다 전보다 더 마른 모습에 나는 가슴이 저렸다. 시어머니 소개로 어느 분식집에서 김밥을 말고 있다는 말에는 어이없고 화가 나기도 했다. 인하 어머니 말씀마따나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았더라면 저런 고생은 하지 않을 텐 데 싶었다.
3년을 빈둥거리던 강현수는 마침내 백수생활을 청산했다. 외삼촌이 룸살롱 운영을 시작하면서 조카를 데려다 쓰기로 한 것이다. 강현수는 열심히 일하러 다녔다. 워낙 낮에 자고 밤에 활동하는 사람이어서 오히려 안성맞춤 직장이었다. 강현수가 일을 시작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자 신통하게도 인하의 생리는 정상이 되었다. 그리고 살이 오르기 시작했다.
“난 이수 아빠가 시외삼촌 가게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몰라. 그냥 운 전만 한대. 아가씨들 관리하고. 지저분하니까 알려고 하지 말래. 밖의 일은 일절 말을 안 하니까 어떤 면에서는 사내답기도 해. 입이 거칠어서 좀 문제지만.”
강현수가 돈벌이를 시작하면서 시어머니는 인하를 분가시켜 주었다. 강현수가 경찰서에 다닐 때 세 얻어 살던 아파트가 재건축되면서 임대 아파트 신청을 한 것이 마침 완공되어 입주를 시작했던 것이다.
이제 좀 편히 살겠구나 생각했는데, 강현수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 이 많아졌다. 그러나 인하는 남자의 외박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려고 하지도 않고 간섭도 하지 않았다.
“결혼 전에 내가 말했어. 다른 여자가 생기거든 두 여자 모두한테 죄 짓지 말고 나한테 얘기하라고. 내가 나이가 많으니까 물러나 줘야지. 한 십 년 살면 많이 사는 거라고 생각해. 지가 좋아하는 여자 생기면 보 내 줘야지. 안 그래? ”
인하는 어려서부터 뭐든 저 혼자 할 수 있도록 이수를 훈련시켰다. 아주 어릴 땐 장난감이며 그림책 정리를 시켰고, 아이가 귀찮아하면 보 는 데서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나중 다시 꺼낼 생각이지만, 네가 정리 안 하면 이렇게 버릴 거야, 하는 걸 보여 주었다. 그러면 이수는 울면서 그것을 꺼내 책장과 바구니에 정리하곤 했다. 여섯 살 때부터는 목욕을 혼자 하게 했다. 다 씻었어, 하고 목욕탕에서 나오는 이수의 목 뒤며 뒤 통수에는 비누거품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그럴 때면 우리 이수 참 잘 했어, 하고 다시 목욕실로 데리고 들어가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 주는 체하는 한편 샤워기로 비누거품을 씻어 주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는 팬티와 양말, 심지어 운동화까지 빨게 했다. 그리고 감기라도 걸리 면 병원에도 혼자 다녀 버릇하게 했다.
인하는 자기가 이혼하게 되면 이수를 제 아빠와 살게 할 거라고 공언했다. 그래서 만약 이수가 새엄마와 살게 됐을 때, 친엄마도 안 해 주던 것들을 새엄마가 안해 준다고 새삼 서럽지 않을 것 아니냐고 했다. 제 가 다 할 줄 알아야 불편함이 없을 테니 미리미리 준비시켜 준 것이다.
*
하루는 인하에게 사촌동생 인선이 술에 취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왔다. 자정이 다 된 시간이었다.
“언니, 별일 없어? ”
“응, 그래.”
“형부는 잘 들어와? 생활비는 꼬박꼬박 갖다줘? ”
“얘는…. 그런 건 왜 물어? ”
사실 전날도 강현수가 외박했지만 사촌동생에게까지 시시콜콜 말하고 싶지 않은 인하였다.
“언니! 제발 바보처럼 살지 좀 마! ”
“느닷없이 뭔 소리야? ”
“나 지금 한잔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언니가 알아야 될 것 같아서 전화했어. 형부한테 여자 있는 거 알아? ”
“뭐? ”
“언니가 아는 게 좋을까, 모르고 그냥 사는 게 좋을까 고민하다 전화 하는 거야.”
인선이가 아는 어떤 아가씨가 충무로 무슨 룸살롱에 나가는데, 그 아가씨 수다를 듣다 보니 제가 잘 아는 사람 같아서 재우쳐 물어 보았다. 그 사람 이름이 뭐니? 강현수야. 인선이 형부 이름이었다.
룸살롱 사장 조카라는 사람이 아가씨들 출석을 체크하고, 손님들이 2 차 나갈 때 아가씨와 함께 차에 태워 호텔에 데려다주는 일을 한다. 키 가 크고 가슴이 떡 벌어져서 아가씨들에게 인기가 있다. 그 사람이 거 기 나오는 아가씨들을 거의 다 한 번씩은 따먹었다. 그런데 애가 둘 딸 린 사십대 이혼녀가 매점의 새 주인으로 왔는데 요즘 그 여자와 좋아지낸다. 자기랑 잔 아가씨들이 있거나 말거나 시시덕거리며 가슴을 만지고 입을 맞추고 눈꼴시어 못 봐주겠다. 여편네하고 딸도 있다는데 가끔 집에도 안 들어가는 것 같다.
인선이는 어느 하루 작정을 하고 그 아가씨를 따라 나가 룸살롱 근처 에 숨어 있다가 강현수가 출근하는 것을 보았다. 때마침 웬 여자가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오다 강현수를 보고 반색했다. 긴 머리를 틀어 올려 핀으로 묶고, 얼굴이 갸름하니 예쁘장했다. 강현수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여자를 안고 입을 맞추고 엉덩이를 두드렸다. 인선이는 냅다 뛰어나가 니들 뭐야? 한바탕 소동을 벌일까 망설이다 그냥 돌아왔다. 그리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언니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벌써 일 년 전이야. 아직도 그 지랄들 한대. 어떻게 하고 싶어? 우리 세 자매가 가서 한바탕 들었다 놓을까, 어쩔까? 언니가 원하는 대로 해 줄게.”
인선이는 인하의 작은아버지네 세 자매 중 맏이였다. 그 동생들도 모 두 기가 셌는데, 그들을 데리고 가서 매점여자 머리채라도 꺼들어 줄까 묻는 것이다.
“아니, 내가 알아서 할게.”
인하는 전화를 끊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 여자한테 무슨 죄가 있겠어. 강현수가 문제지. 여자가 유혹했다고 해도 강현수 제 마음이 굳었다면 결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강현수가 일회성 유희가 아니라 정말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다면 보내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 자신은 강현수가 그 열네 살 연상의 여자와 헤어지게 하는 게 목적이었고, 그런 다음 자신을 떠나도 괜찮다는 생각을 늘 해 왔었다. 자기가 강현수의 인생에 어떤 디딤돌 역할을 해 주는 것도 나쁠 거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강현수가 문을 따고 들어왔다.
“아, 피곤해! 밥 줘! ”
전날 외박하고는 다른 때보다 일찍 들어와서 태연히 밥을 내놓으라는 강현수였다. 만약 강현수가 평소대로 다음 날 새벽에 들어왔다든가 연일 외박이라도 했다면 인하는 그날 아무 일도 벌이지 않고 그냥 지나 칠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때는 아니었다. 체념과 부아가 섞여 끓어오르는 중이었다.
“내가 너 밥 주는 사람이니? ”
강현수는 양말을 벗다 말고 놀랐다. 인하가 표정 없이 나지막하게 내 뱉는 말투에 이 여자가? 하는 눈치였다.
“매점여자한테 가서 달라고 해. 그 여자가 몸은 주고 밥은 안 주데? ”
“뭔 소리야? ”
“뭔 소린 줄은 니가 더 잘 알잖아! ”
잠든 이수가 깰까 싶어 인하는 목소리를 죽이고 외쳤다.
“그 여자 너한테 어떤 여자야? 다 알고 하는 얘기니까 눙칠 생각일랑마.”
조용하지만 단호한 인하의 말투에 강현수는 질리는 듯했다. 잠시 말 이 없다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냥뭐…착해….”
변명이라든가 거짓말을 기대했던 인하는 강현수의 대답에 냉정해 졌다.
“착해? 그럼 얘기 끝났네! 이 집에서 니가 나갈래, 내가 나갈까? ”
인하가 더 이상 시비 걸지 않고 결론짓자고 들이대자 강현수는 천장을 쳐다보고 앉았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내가 나갈게….”
강현수는 인하가 마음을 한 번 굳히면 절대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수는 어떡할까? 니가 키울래, 내가 키울까? ”
“그야… 이수한테 물어 봐야지….”
*
인하는 강현수와 헤어질 때 마음고생이 많았다.
우선은 이수에게 아빠와 헤어지기로 했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아이 가 받을 충격 때문에 선뜻 말을 꺼내지 못했다. 중2였다. 하필이면 제 일 예민하다는 사춘기였다. 밝은 성격이지만 인하를 닮아 내성적인 면 도 없지 않았다. 인하는 만약 강현수와 헤어지게 되면 이수를 아빠와 살게 하겠다고 내심 정해 놓고 있었지만, 막상 일이 눈앞에 닥치니 강현수를 믿을 수 없었다.
고심하던 인하는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이수를 돌려 앉혔다.
“딸! 엄마가 지금부터 무슨 이야기를 하나 할 건데…, 잘 듣고 대답 해. 응? ”
“뭔데? ”
약간 긴장하는 이수에게 인하는 살짝 웃어 주고 차분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빠에게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는데, 엄마는 아빠가 그 여자와 살도록 해 주는 게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아빠가 싫어져서가 아니라 아빠를 사랑하는 엄마의 배려이다. 너도 아빠 미워하지 마라. 그런데 이수가 어른들의 이기심 때문에 상처를 받을 것 같아 너무나 가엾고 미안하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다. 문제는 이수가 아빠와 엄마 중 누구와 살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인하의 이야기를 다 들은 이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런 말이 없었다. 빨리 대답하라고 채근할 수는 없었다. 이수가 입을 열기까지 인하는 기다려 주었다.
“나, 엄마랑 살래! ”
한동안 손톱으로 방바닥을 긁고 앉아 있던 이수가 불쑥 입을 열었다.
“그럴래? 엄마와 살면 지금보다 많이 가난하게 살 수도 있는데? ”
“그래도 엄마랑 살래. 아빠한텐 좋아하는 여자가 있지만, 엄마는 아무도 없잖아.”
인하는 울컥 눈물이 솟구쳤다. 아이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커피를 타러 나오는 척하며 눈물을 훔쳤다. 그러고는 커피를 타서 또 이수와 마주 앉았다.
“엄마는 아무래도 괜찮아. 이수가 아빠와 산다고 만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니까. 엄마 생각해 주지 말고 너한테 좋게, 너한테 이롭게 결정하면 좋겠어. 그리고 앞으로도 어떤 결정을 할 때는 너한테 이롭게, 너 좋 을대로 결정해야 돼. 누구를 생각해서 불이익당하면 안 돼. 알았지? 누구랑 살겠다는 거 꼭 지금 대답하지 않아도 돼. 생각 좀 해 볼래? ”
“아니, 엄마랑 살래. 결정했어.”
그러고 이수는 제 방으로 가면서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인하는 이수에게 저만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더 이상 아는 척하지 못했다.
강현수는 강현수대로 인하의 속을 썩였다. 인하는 강현수를 저 좋아 하는 여자에게 깨끗이 보내 줄 생각이었으나 강현수가 끈질기게 달라 붙었다. 집을 나가 후배의 자취방에서 기거하며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하며 사흘돌이로 이수를 핑계 삼아 집에 들어왔다.
“너 아빠랑 살기 싫다고 했다며? ”
강현수가 말을 붙이자 이수는 쌀쌀맞게 대꾸했다.
“응! ”
이수는 아빠를 어색해했다. 강현수의 농담 같은 질문에 늘 응, 아니 짧게 대답하고는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마지막 석 달 동안 인하와 강현수가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나눈 대화가 15년 동안 살면서 나눈 이야기보다 훨씬 많았다. 대화 끝에 강현수는 매번 잠자리를 요구했지만 인하는 한 번도 응해 주지 않았다. 강현수가 자기를 마지막으로 안으려고 집에 오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 인하는 마침내 아트박스를 사다가 강현수의 옷가지를 쌌다. 이수가 아 빠 운동화와 구두, 칫솔과 면도기까지 박스에 넣어 주었다.
강현수가 마지막으로, 하고 또 온 날 인하는 현관에 내놓은 박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내일 부치게 주소 적어 줘. 그리고 이제 더는 오지마. 현관 키 번호도 바꿀 거야.”
“씨발! 아직 내 거처가 완전히 정해지지 않았잖아.”
“그럼 어머니한테 보내 놓을게. 나중 거처가 정해지면 거기서 옮겨.”
“알았어, 알았어! 에이 씨발! ”
“욕 좀 하지 마. 이제 나이 들어 가면서 좀 점잖게 늙어라.”
“씨발, 씨발, 씨 팔! ”
그러고 나서야 강현수는 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강현수 어머니가 찾아와 인하를 달랬다. 니가 한번만 봐 줘라. 애비가 잘못한 거 알지만, 이수도 있고 하니 니가 참아야지. 이수를 애비 없는 자식으로 만들래.
“그래서 내가 어머니, 사위가 바람피워서 아가씨가 못 살겠다 할 때 도 참아라 하실래요? 그랬더니 암말 못하시더라. 바람피워서 못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여자와 살라고 비켜 주는 건데 왜 이해를 못 하는지 모르겠어.”
인하의 전화 목소리였다.
실은 나도 그러는 인하가 이해되지 않았다. 남편이 바람피운 걸 싹싹 빌면서 용서해 달라고 하면 대부분의 여자들은 감시의 눈초리를 번득이며 함께 살아간다. 그런데 인하는 그러지 않았다. 좋아하는 여자와 살라고 보내 준다는 것이다. 하기야 강현수는 그때까지도 그 매점여자와 헤어지겠다는 말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아니, 첩으로 인정해 주 면 안 되겠냐고 인하에게 물은 적이 있다. 헤어질 의사가 전혀 없는 거였다. 인하는 그 점을 문제 삼지는 않았다. 자기가 강현수를 보내 주는 건 단지 자기의 사랑법이라고만 말했다. 그리고 법원에 다녀왔다.
*
반년이 지났을 무렵, 강현수가 느닷없이 인하를 찾아왔다. 남방셔츠와 단추를 내밀며 좀 달아 달라는 것이었다.
“아니, 그 여자는 단추 달 줄도 모른데? ”
“아 그냥 달아 줘.”
인하가 바느질을 시작하자 강현수는 앞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실은… 나, 여자가 또 생겼어.”
인하는 강현수를 쳐다보았다.
“나랑 동갑인데, 노래방 도우미 하는 년이야. 애가 셋인 이혼녀구.”
“그런데? ”
“매점년하고 도우미년하고 나 어느 년이랑 살아야 되지? ”
“뭐? ”
인하는 당황스러웠다. 이를테면 두 여자 중 누구와 사는게 좋겠냐고 전 마누라한테 의논이란 걸 하러 온 거였다. 인하는 말없이 단추를 달아 강현수에게 건네며 다정한 누나처럼 말해 주었다.
“니가 좋아하는 년 말고 너를 좋아하는 년하고 살아. 니가 좋다는 것 은 언제고 또 싫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치? 그리고 이왕이면 돈 많은 년하고 살고. 돈 없는 년하고 살면 니가 벌어서 그 새끼들 치다꺼리 다 해야 되잖아.”
“그럼 매점년이군. 하긴… 내가 도우미년 만나고 다니니까 매점년이 죽는다고 면도칼로 손목을 그어서 소동이 좀 있었어.”
그러고 몇 달 지나지 않아 강현수가 매점여자 집으로 들어가 산다는 소식을 전화로 알려 왔다. 또 몇 달 후에는 외삼촌의 룸살롱을 그만 두고 그 여자와 종로 어디에 노래주점을 차렸다는 소식도 전했다.
강현수는 가끔 전화를 걸어 인하와 이수의 안부를 묻곤 했다. 이수와 통화하고 싶은데 막상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어떤 때는 비가 와서, 더워서, 눈이 오니까 그냥 이야기나 하자고 전화를 걸어오는 일도 있었다. 그럴 때면 인하는 응응 좋게 대꾸해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곤 했다. 마치 서로 마음이 잘 맞는 좋은 친구 사이 같았다.
이수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여고를 거쳐 대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인 하는 하루도 쉬지 않고 분식집에 나갔다. 강현수에게 위자료나 양육비를 받는 대신에 강현수 명의로 되어 있는 임대아파트에 그냥 살기로 했기 때문에 일을 해야 했다. 풍요롭진 않았지만 그런대로 평화로운 나날 이었다. 무엇보다도 이수가 제 속은 어쩐지 몰라도 겉으로는 밝게 커 주는 것이 대견하고 고마웠다. 저녁이면 팔을 주물러 주는 이수에게 위로를 받으며 인하는 외롭지 않았다. 강현수에게서 이수를 얻은 것을 인 하는 인생의 큰 선물이자 보물로 여겼다.
*
열이틀 만에 인하가 깨어났다.
“엄마! 괜찮아? ”
이수가 깜짝 반가워하며 묻자 인하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다 대답했다.
“응, 나 조금만 잘게.”
그러고는 다시 며칠째 편안한 모습으로 잠만 자고 있다. 나는 차라리 그 잠이 고마웠다. 그동안 휴식이라곤 없던 인하였다. 그 잠이 오랫동안 고생해 온 인하를 위한 보상 같았다.
CT촬영이나 모든 수치적인 소견은 정상인데 계속 자는 이유가 약간 의 수두증 때문인 것 같다고 의사는 뇌에 바늘을 꽂는 시술을 했다. 뇌척수액을 뽑아 뇌압을 떨어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강현수가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인하에게 쏟는 정성은 눈물겨웠다. 따뜻한 물에 수건을 적셔다 얼굴이며 몸을 닦아 주기도 하고, 머리를 빗기기도 하고, 이수가 방금 전에 갈아입힌 환자복을 간호사에게 떼를 쓰다시피 다시 받아다 갈아입혔다. 매일 의사를 만나 경과를 물어 보고 간호사에게 링거 체크를 단단히 하라고 소리를 높이고….
어느 저녁 무렵, 나는 꽃바구니를 하나 사 들고 병원에 갔다. 어쩌면 오늘 밤, 내일 아침에라도 인하가 눈을 떴을 때 꽃을 보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였다. 병원 정문에 다다랐을 때 어떤 여자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강현수를 보았다. 나는 얼른 몸을 숨기고 그들을 지켜보았다.
“니가여길왜와? 씨발, 빨리안가!”
“나도 좀 보자구! 애 엄마가 어떤 상태인데 왜 매일 아침저녁으로 여길 오는 거야!”
“시끄러, 빨리 가! ”
강현수의 악다구니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조금도 물러설 기세가 아니었다.
“가빨리! 진짜 가만 안둔다?”
강현수가 악을 한 번 더 쓰자 여자는 한쪽 발을 탁 굴러 몸을 튕기고 는 돌아섰다. 그녀가 돌아서는 것을 보고 강현수는 병원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여자는 두어 발자국 떼다 말고 다시 돌아서서 황급히 강현수 뒤를 따라갔다. 나는 사이를 두고 병원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현관 안에서 또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여자는 같이 가겠다고 하고, 강현수는 돌아가라고 남의 눈도 아랑곳없이 소리를 질렀다. 내가 태연히 그 앞을 지나가자 강현수가 나를 발견하고 멈칫했다.
“아, 수아 엄마! ”
나는 무슨 일이냐고 눈으로 물었다. 강현수는 그 여자를 힐끗 돌아보며 소리를 지르려다 꾹 눌러 참는 모습으로 소리를 낮췄다.
“이수 엄마 친구야. 자기 먼저 가게로 가. 곧 뒤따라갈게. 내가 병실 가르쳐 줄 테니, 나중에 자기 혼자 가만 와서 보구 가면 되잖아.”
그제야 여자는 나와 꽃바구니를 훑어보던 눈길을 거두고 현관을 나 갔다.
“얼마나 의심이 많은지! 내가 멀쩡한 이수 엄마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만나러 다니는 줄 알고 저래요.”
강현수와 나는 병실에 들러 인하를 잠깐 보고 복도로 나왔다.
“난 요즘 이수 엄마하고 헤어지는 게 아닌데 잘못했다는 생각이 자꾸 드네요. 사실 헤어지자고 했을 때 내가 들러붙었으면 이수 엄마도 날 그냥 받아 줬을 거예요. 그런데 내가 지레 저 푼수가 어떻게 될까 봐 겁 나서 그러자고 했죠. 에이 씨발! 내가 참 멍청했어요.”
“…….”
“하긴 내가 원체 잡스러워 놔서 이수 엄마가 그 성격에 날 못 참아 준 거지만요.”
나는 오른손 검지로 이마를 긁적이며 속상하다는 듯 말하는 그에게 빙긋 웃어 주었다.
“못 참아 준 게 아니라, 아마 인하가 이수 아빠를 아주 많이 사랑해서 일 거예요. 자기는 아무래도 괜찮으니 이수 아빠가 원하는 삶을 살길 바란 거지요.”
“바로 그게! 그게 바로 푼수잖아요! 남의 식당에서 김밥이나 마는 주제에 뭐 그리 잘났다고! ”
강현수는 침을 튀기며 억울한 듯 소리를 지르다 목소리를 낮췄다.
“그래도 난 이수 엄마에겐 진심이었어요. 정말 착하거든요.”
강현수의 진심이었다는 말은 사실일 것이다. 그에게 착하다는 곧 사랑한다는 의미니까.
“이수 엄마 일어날까요? 안 깨나면 어쩌죠? ”
강현수 눈에 걱정이 어렸다. 그러더니 이내 빛을 내며 말을 이었다.
“어제 이수년이 깨끗이 정리하고 집으로 다시 들어올 생각 없냐고 묻데요. 지 애비가 잡놈인 줄은 모르고….”
1)가수 박강성의 <문밖에 있는 그대> 차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