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2024년 11월 월간문학 2024년 11월 6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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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글 맛을 느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문협에 갈 일이 있을 때 만나는 문우에게 불쑥 묻고 싶은 질문이다. 오래전에 『근원수필』을 여러번 정독하듯 읽었던 적이 있었다. 얇은 부피의 책으로 펜이 끄적이는대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듯, 물 흐르듯 글을 써내려 간 근원의 글이 좋아 수필가로 등단을 하고 강산이 한번 바뀐 세월이 되어도 마치 교본처럼 곱게 책장에 꽂아 두고 가끔 펼쳐 든다. 글 맛이란 것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다방면의 책을 읽고 인생으로서 쓴 맛, 단맛을 다 본 뒤에 저도 모르게 우러나오는 글’이 수필이라고 말한 근원 선생. ‘마음 속에 부글부글 괴고만 있는 울분을 어디 호소할 길이 없어, 가다오다 등잔 밑에서, 혹은 친구들과 떠들고 이야기하던 끝에 공연히 붓대에 맡겨 한 두장 씩 끄적거리다 보니 그게 그만 수필이었다’는 그는 글만빼어나게 잘 쓴 것이 아니라 그림에도 흥미를 가져 유화로 그려진 자화상과 수묵화, 친구들과 잘 모이던 곳 수향산방과 벗 김환기 화백의 모습도 먹으로 그려 놓았다. 근원 김용준의 초상화를 우연히 변월룡 화백의 화집을 뒤적이다 보게 되었다. 예기치 못한 곳에서 좋아하던 작가를 직접 그림으로 그 모 습을 마주하는 것은 몹시 흥분되는 경험이었다. 근원이 월북하여 전통 회화인 묵화의 발전을 위해 변월룡 화백과 교류할 때, 변월룡 화백이 그린 그의 초상은 한마디로 전형적인 인텔리 모습이다. 묵화 한 점을 들고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근원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우리가 잃 어버린 천재화가, 변월룡』책에 근원과 변월룡 화백이 주고받은 편지를 공개했는데, 그 당시 근원의 묵화 발전을 위한 고뇌를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그의 노력으로 결집된『조선미술대요』도 찾아서 언젠가 꼭 보려고 한다. 개인적으로 과거 뛰어난 월북한 화가들의 작품도 다시 재 조명되는 작업이 이루어져 늦었지만 몹시 다행으로 여긴다.
발터 벤야민의 『일방통행로』에 좋은 산문을 쓰는 작업 세 단계를 언급하고 있다. 구성을 생각하는 음악적인 단계-조립하는 건축적 단계-짜 맞추는 직물적 단계로 구상, 구성, 쓰기 과정이라 했다. 문득 대위법의 거장 바흐가 생각난다. 음악분석 시간에 복잡한 악보를 펼쳐놓고 음정 간의 거리를 숫자로 계산하며 정확하게 공식에 맞춰 다성의 선율을 쌓은 바흐의 천재성에 감탄을 했던 적이 있었다.
“야만의 기록이 아닌 문화의 기록이란 결코 없다”라고 한 발터 벤야민. 현실 세상은 대위법같은 큐브법칙이 통하지 않았던지 자신이 투영된 파울 클레의 그림 <새로운 천사>를 평생 지니고 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몸집보다 머리가 큰 모습인 <새로운 천사>를 친구에게 유언으로 증여한 그는, 야만의 땅에서 살다 생을 비극적으로 마감한 날지 못한 천사였는지 모른다.
내게 수필은 무의식의 묵은 찌꺼기를 긁어 쏟아내는 비움의 힐링 과정이다. 독일계 유대인 사상가의 가지런히 정돈된 뛰어난 가르침보다 난 자연스럽게 마음속에 부글부글 괴고만 있는 울분을 붓대에 맡겨 수필이 되던 근원의 붓끝을 따라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물 흐르듯 산전수전 다 겪고 무르익은 글이 빼어나진 못해도, 잠시 발걸음 멈추고 한 순간을 공유하는 귀한 인연으로 내 글이 읽히기를 바란다. 글 맛을 알아도 좋고, 몰라도 그만이다. 잠시의 사색 나눔이면 족하다. 내 글은 내가 투영된 거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