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2024년 11월 월간문학 2024년 11월 6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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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에서 주식을
윤회와 탈윤회가 부처님 안에서 하나라고 법장스님 말씀하실 때 고개를 끄덕거린 후 해우소 가는 길에 뒷마당에서 휴대전화 앱으로 주식 시세를 확인하고
얏호!
그 기쁨이 아니었으면
일주문에서 봉황문까지
빈 지게를 짊어진 모양으로
허위허위 올라가는 노스님의 걸음에서
색을 비운 세상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살아있는 것은 쉬지 않고 색을 뿜는데
죄를 덜 묻히는 길은
어디에 있나,
생각하며
그 생각을 덜어내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마르칸트 음악제에서
중앙아시아 푸른 돔의 도시
낙타를 따라 사막을 걷던 어느 점성술사가
오늘 이렇게 동과 서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음악의 강물이 넘실댈 것을 예언했을까.
처음 만난 갈색머리의 당신이
동쪽의 노래인지 서쪽의 춤인지 묻지 않고
내 손을 이끌어
어깨동무의 한 마당으로 나아간다.
어느 언어가 이처럼
만국의 경계를 허물어트릴 수가 있을까,
세상의 모든 말들과 말 사이의 불통을 잊고
우리는 여기서
노래하고 춤추자.
하나의 제국을 만들겠다는 헛된 꿈으로,
칼로, 돈으로 서로를 쓰러트린 저들의 죄를
이 강물로 씻어내자.
끝내 세상은 나아지지 않는다 해도
오늘 내가 너를 껴안았으니
이젠 됐다,
나를 위한 소망
수수꽃다리 향기에 취해
봄 한가운데 누워있는 동안
내 사랑 고요히 다가와
내 길쭉한 손톱을 깎는다
혼곤한 잠 속에서 내 얼굴을 닮은 나비가
만족하여 웃는다
나비의 웃음이 그치기 전에
어머니를 만나야 한다
봄이면 봄마다
슬픔 속에 갇혀 계시기엔
어머니는 너무 젊지 않으신가
15년째 서른아홉이신 당신
시간의 무덤에서 자라나는 풀을
때마다 깎아드리지만
꿈속에서라도 한 번 웃지 않으신다
얼굴 한 번 보여주지 않으신다
하여 내 손톱을 깎는 내 사랑
오래 살아다오.
침묵으로부터
세밑의 저녁 위로
흰 눈이 싸락싸락 내리고
바람이 멎는다
겨울도 깊어지면
소리가 없는 것
산 아래 마을에서
패 다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홀홀히 털고 웃으며
미리 만드는 무덤
그 속에 악플 들어가지 않아
생애로부터 잡풀 솟지 않고
뜻없이
흰눈만쌓여있게되기를.
전국노래자랑 송해
세상 고샅고샅 노래를 전하는
삐에로를 자처했으나
그는 망향의 시간을 다스리느라
나날이 면벽한 도인이었는지 모른다
어느 날 도통해 청춘으로만 살게 돼
푸른 계절의 빛을 노래에 실어
가을과 겨울에도 마구 퍼트렸다
무거운 세월을 경쾌한 웃음으로 바꾸고
취흥에 겨워서 흔들거리는 척
모든 계절의 곡조를 다 품어주다가
툭, 사라졌으나
지금도 누구 눈에는 그가 보인다
노래하고 춤추며 웃는
그 봄의 마음들 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