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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시초(詩秒)를 서재에서 어루만지다

한국문인협회 로고 장재선

책 제목월간문학 2024년 11월 월간문학 2024년 11월 6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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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서 꽤 많은 글을 쓴다. 직장 업무인 신문 기사를 만들고, 문학 작품을 끄적거리기도 한다. 창작 산실이라고 하긴 민망하지만, 그 비슷한 일이 서재에서 벌어진다.
몇 년 전 이사를 올 때 아내가“이 방은 당신 서재로 하지요”하고 말했을 때,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그렇게 해 주면 고맙지”했다. 집안 권력 서열 1위의 아내는 방 하나를 내게 떡 내주면서도 생색의 기운을 최대한 자제했다. 별 가진 것 없이 자존심만 뻣뻣한 서생 남편과 오래 함께 살아온 현자다운 처신이다. 물론 나도 황감한 마음이 음성과 표정에서 드러나지 않도록 애썼다.
서재는 문화와 체육을 함께 품고 있다. 서화 작품들과 운동 기구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그 사이에 각종 상패들이 자리하고 있다.
서재는 역시 이름값을 하느라고 수백 권의 책을 거느리고 있다. 그동안 수차례 책 정리를 했음에도 내 곁에 살아남은 것들이다. 이것들을 꺼내서 자주 들여다보진 않는다. 하지만 책들의 겉면만 봐도 무언가를 짓고 싶다는 자극을 느낀다. 물론 가끔은 “저렇게 많은 책 중 내 것 하나가 더해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엄습해올 때도 있다. 창작은 직장의 내 책상에서 이뤄질 때도 있다. 물론 회사 책상은 동료, 후배 기자들이 써 온 기사를 첨삭하거나 내가 직접 기사를 작성하는 용도로 제공된 것이다. 대부분은 그런 용도로 사용한다. (라고 굳이 기록한다. 밥을 벌기 위해 직장 생활을 더 해야 하므로.)나는 모든 기자들이 퇴근한 후 편집국에 가끔 홀로 앉아 있곤 한다. 그 적막한 분위기가 좋기 때문이다. 그럴 때 이어폰을 귀에 꽂고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거나, 이것저것 끄적거린다.
창작을 할 때 먼저 들여다보는 것이 휴대전화의‘노트’이다. 이 노트엔 나의 수많은 단상들이 적혀 있다. 그 중‘시초(詩秒)’라는 제목을 단 것들이 수백여 개쯤 된다. 이 시초들은 대부분 산책을 하다가 얻어진 것이다. 그러니 길거리는 서재와 더불어 내 창작 산실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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