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10월 6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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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 수상자 발표가 났나 보다. 남편이 기운이 없어 보인다. 코를 훌쩍이다가 이비인후과에 다녀온다고 한다. 매 번 저러면서도 그 고난의 길을 오래도 가고 있다. 글 쓸 때는 쓰느라 수험생처럼 매달려 있고, 응모하고 나면 희망 고문에 시달린다. 그리고 발표가 나면 바닥난 체력을 드러낸다.
옆에서 보는 나는 응원하다가 위로하다가 쉬엄쉬엄하라고 하다가 이제는 그만의 전투 같아서 방관 단계이다.
남편은 단편소설을 쓸 때는 어느 정도 시간을 내 함께 여행도 하고 여유를 보였다. 퇴직 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 남편은 줄곧 글만 써온 작가들을 부러워하기도 하면서 어느 날 부터인가 공모전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끔 당선도 되었다. 남편은 공모전 당선은 많은 경쟁자가 있다는 점에서 글쓰기 최고의 단련 방법이라고 한다. 당선은 상금의 크기나 등수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글 쓰는 스트레스를 한 순간에 희열로 바꿔 놓는다는 것이다. 당선 전화를 받는 날 이면 옆에 있는 사람도 평소와 다른 목소리에 기뻐하게 된다.
그런데 장편소설 응모는 당선되기가 정말 어려운가 보다. 장편 응모에 매달려 있는 남편을 보면 이카로스의 날개가 떠오른다.
미궁(迷宮)을 만들었던 다이달로스는 크레타의 왕 미노스의 노여움을 사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라비린토스라는 미궁에 갇힌다. 크레타의 공주인 아리아드네에게 실타래를 이용해서 미궁을 빠져나오는 방법을 가르쳐준 벌이다.
자기가 만든 미궁에 갇혀 죽게 된 다이달로스는 미궁의 작은 창으로 날아들어 오는 새의 깃털을 모아 거대한 날개를 만든다. 그 날개를 자 기와 아들의 몸에 미궁 곳곳에 맺힌 벌집에서 얻은 밀랍으로 붙인다. 다이달로스는 날 수 있게 되자 아들과 탈출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바닷물에 날개가 젖지 않도록 바다 가까이 내려가지 말 것과 태양 가까이 다가가면 밀랍이 녹아 버리니 주의할 것을 당부한다. 하지만 더 높이 날고 싶은 이카로스는 아버지의 말도 잊고 태양 가까이 날다가 밀랍이 녹아 날개가 떨어져 나가고 바다로 떨어져 죽게 된다.
결혼 전 신춘문예 최종선까지도 갔던 남편은, 가족 부양을 위한 직장이라는 미궁에 갇혔다가 퇴직의 날개를 달고 탈출했다. 다시 글 쓰는 세상을 만난 그는 나는 것이 신이 난 이카로스처럼 갈수록 경쟁이 더 치열한 공모에 도전했다. 나는 그러한 남편을 보면서 글을 쓰는 것도 적당히 즐기는 일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병이라도 날까 봐 다이달로스가 되어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몇 년 전이다. 하루 종일 글만 쓰던 남편이 어느 날 몸이 이상하다고 했다. 참는 성격이라 몸이 이상할 정도면 큰 병인 것 같아 바로 가까운 병원에서 검사했다.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의사의 말에 남편보다 내가 더 놀랐다. 흔히 드라마나 영화 같은 데서 보면“큰 병원으로 가보세요”란 말은 절망을 나타내는 말로 표현되곤 하지 않았던가. 큰 병원은 한 달 후에나 예약이 잡혔다.
그래도 공모 마감일에 쫓겨 책상에 앉아 일어날 줄 모르던 남편은 밤에 심한 통증이 와 방을 뒹굴었다. 병원 예약 날짜가 한참 남은 때라 119를 불러 응급실로 갔다. 병원은 환자가 통증에 고통스러워하는데도 병실이 없다면서 남편을 응급실에 그냥 두었다. 마약 진통제라는 주사를 맞았지만 여전히 심한 통증을 안은 채 하룻밤을 보내고 진찰을 받았다. 검사 결과 담관이 막혔다고 하며 원인은 지나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했다.
수험생은 어느 기간 동안 공부하느라 힘들어도 시험을 보고 나면 끝 이다. 끝과 결과가 있는 수험생은 차라리 낫다. 남편은 공고가 나면 응모하고 떨어지면 다시 쓴다. 바위를 정상에 굴려 올리지만 굴러떨어지면 다시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와 다를 바 없다.
나도 수필을 쓰는 작가지만 힘들게 쓰지는 않는다. 글 쓰는 일이 내 삶을 정리해 주고 방향을 제시해 주니 좋아서 쓴다. 독서도, 전시회 관람도, 신문 읽기도, 뉴스 보기도 모두 글을 쓰는 길로 통하게 된다. 그럼에도 나는 거의 남는 시간에 글을 쓰게 되고, 남편은 글 쓰는 일이 전 부이고 남는 시간에 겨우 지인과 만나거나 나와 시간을 보낸다.
영문학을 전공한 우리는 학교 교정에서, 가끔은 술집에서 문학 토론을 많이 하며 대학생활을 보냈다. 그래도 나는 글을 쓴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그는 소설가가 되고 싶어 했다. 문학을 논하는 그에게 빠져 결혼까지 했지만,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그의 펜을 꺾은 것이 결국 나였다. 결혼생활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기에는 현실적으로 맞지 않았다. 결혼 후 우리는 문학의 길이 아닌 각자 다른 길로 갔다. 그는 꿈을 접고 직장생활에 충실히 임하며 가장으로서 임무를 다했다. 정년퇴직 후에야 등단해서 창작에 몰두했다. 옆에서 보면서 저렇게 글 쓰는 일이 천직 같은데 어떻게 참고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해왔는지 고맙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좀더 일찍 직장을 그만두게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아니 결혼하면서 취직하지 않고 소설 창작에만 몰 두하게 했더라면 지금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남편 서재에서는 여전히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나처럼 글 쓰는 일이 생활의 활력소가 되면 좋은데 남편은 당선이 돼야 성취감이 밀려 온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어떤 연유로든 이카로스의 날개를 달고 더 높이 날고 싶어 하지 싶다. 뭔가에 몰두할 수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비록 한계를 느끼기도 하고 욕심이라고 자책도 해보지만 그러면서 추락도 하고 또 재기도 하지 않는가.
암담했던 식민지 조선의 현실에서‘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하던 이상의「날개」는 어쩌면 여전한 현실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걸어왔고 또 그런 희망으로 걸어갈 것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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