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10월 6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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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본 아들이 마침내 결혼식을 치렀다. 작은딸을 시집보낸 지 십 년이 넘고, 코로나19가 끝나가는 무렵의 일이었다.
그런데 일 년이 넘도록 아들네에게서 별다른 소식이 없다. 주변에서 물어오고 나도 아내를 향해 의문을 표했으나 핀잔만 돌아왔다. 부부의 일이란다. 그가 사는 충청도를 찾아가 볼까도 생각했으나 체통을 지켰다. 차분히 기다리기엔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그렇듯 조급한 내색을 한 것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지가 주된 원인이었다. 살아생전에 그토록 아들을 원하셨지만 끝내 당신은 손자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는데, 그 다음 해, 내 나이 사십대 중반에 아들녀석이 태어났다. 감격적이 었지만 그 당시 산아제한의 정서로는 겸연쩍기도 했다. 바로 그 녀석이 장가를 들어 신접생활을 맞은 것이다.
혹시나 하는 걱정과 우려가 시작될 시점에 소식이 들려왔다. 임신, 게다가 아들이라고. 사실인가 싶었다. 수시로 오가는 대화로 태아의 상태를 관망하며 설렘과 조바심의 나날을 보냈다. 이윽고 출산을 알려왔을 때, 나는 기지의 사실임에도 내가 득남했을 때보다 더한 흥분을 느꼈다. 당장 달려가 보고 싶었지만 방역 상 면회가 불허라니 어쩌랴.
아기가 빵긋 웃을 무렵 그들은 멀리 경기도 내가 사는 집을 찾았다. 늙은 내외만 사는 집에 학수고대하던 녀석이 모습을 나타냈으니, 집안에 3대가 꽉 찬 경사 아닌가. 한 아기의 출생이 안겨준 결과다.
아들은 자주 아기 사진을 보내준다. 어미 품에 안겨 젖을 빨아대고, 잠투정을 하고, 낯가림을 한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모습이라, 나는 밤낮 없이 궁금하지 않은 때가 없다. 길을 가다가 강보에 싸인 아기를 발견하면 슬며시 비교를 하게 되고, 뛰노는 아이들을 보면 머지않아 우리 손자도 저 속에 끼어들겠거니, 그려본다. 다음 달이 첫돌인데, 가방을 메고 등교하는 학동의 모습이 떠올려지는데 아, 어서 봤으면 좋으련만. 어찌 세월이 이토록 늦은 것인가, 절로 탄식이 인다.
친구들 모임에 나가면 이구동성으로 늘어놓는 푸념이‘나이 드니 어찌 세월이 이토록 빠른가’아닌가.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부질없는 노 욕을 탓해 보지만, 나름 손자의 출생을 맞아 이렇듯 기쁨과 희망을 지닐 수 있음에 여한이 없다. 무릇 삶의 완성을 구가하는 느낌으로 흐르는 세월을 만끽한다고나 할까.
그런데 왜 이 땅의 사람들은 아기의 출생을 놓고 주저하며 말도 많고, 급기야 인구 소멸 위기마저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혼인율 자체도 저조한데다가 결혼한 부부는 아기를 갖는 일이 마치 엄청난 희생을 떠맡거나 못할 일을 겪는 것처럼 고개를 썰레썰레 젓는다. 가정을 이룬 부부가 흔히 하나 낳는 게 고작, 아니면 무자녀이고, 두 자녀를 낳으면 임무를 다한 것으로 여기니 이 나라 인구증가율이 세계 꼴찌 수준인 것은 당연하다. 산아제한 목표를 달성한 결과다. 전 세계 인구는 증가 추세라는데 말이다.
어쩌라는 것인가. 국민은 정부의 요구를 따랐을 뿐이다. 자고로 이 나라 백성은 착했다. 나라에서 요구하는 일이라면 선악을 불문하고 따랐다.
지난날 인구과잉 현상이 일자 국가는 국민에게 강력히‘산아제한’을 주문한다. “덮어 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며겁을주고“둘 만 낳아 잘 기르자”더니“하나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며 출산 감소를 부추겼다. 끝내는 예비군 훈련장에서 젊은 남편들에게 단산 정관수술까지 권하고, 회유책으로 아파트 당첨권까지 등장했다.
우리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과연 무엇을 얻었는가. 지금 생각하면 그토록 배격하던 그 인구가 이 나라 산업을 일으킨 역군이었음에 반해 사람들의 뇌리엔 다수 가족에 대한 거부감만 깊게 자리를 잡았다. 국가는 치밀하지 못한 인구정책으로 머지않은 미래에 대한 예측조차 못했다. 조정 절차도 없이 잘 따르는 착한 국민에게 돌연 정책을 바꾸어 다 출산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국가는 출산 장려방안을 놓고 경제적인 문제점을 해결한다며 설레발치고 있지만, 현실과는 멀다. 그것만 해결한다 해서 끝날 일도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요건은 모든 국민이 혼사와 출생에 대한 당위성을 인식하는 일이다. 특히‘능력 없으면 결혼도 자식도 가질 자격이 없다’는 식의 사회적 요구가 사라져야 한다. 산아제한 시의 허울 좋은 주장이다. 이제라도 국가는 과거의 오류를 사과하고 호소해야 한다. 국가가 존립하기 위해서는 기본요소인 가정의 구성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그 필요충분조건이 부부, 부모자식임을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엄마와 아빠 될 기회를 저버리고 하릴없이 공허한 삶을 보내고 있는가. 내 주변의 많은 친구들도 할아버지가 될 기회를 잃고 황량한 노년의 광야에 우두커니 서 있는 걸 본다. 모두가 편협한 정책 구현 때문이리라.
이제라도 인구회복에 몰두하고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재촉해야겠다. 이제 나의 노파심이 발동하는가. 새로 태어난 우리 녀석이 동생이 생겨 부디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한 출생 못지않게 중요한 일은 인력 유지다. 당부한다.
“사랑하는 나의 손아, 이 세상은 이미 과거가 아니거든. 너희들이 이 나라의 주인이란 말이다. 그 누구도 주인에게 부당한 행동이나 희생을 요구할 수 없다. 굳게 지키기 바란다. 이 나라도, 너 자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