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10월 6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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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퇴직 후 지금까지, 올해로 거의 십 년째 나는 지역아동센터에서 논술을 가르치고 있다(말이 논술이지 한글 공부 시간이라 해야 맞을 것이다). 사무실에서 센터장과 대화를 마치고 나오는데 덩치가 산만한 녀석이 앞을 떡 가로막는다.
“안녕하세요? ”
들릴 듯 말 듯 허스키한 저음으로 인사를 건네고 유유히 정수기 앞으로 사라지는 중딩 녀석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어릴 적 그의 초롱초롱하던 눈망울이 생각났다.
아이가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않았을 때니 아마도 일고여덟 살쯤 되었을 것이다. 신년 초에 센터 내에 있는 모든 아동의 새해 소망을 동영상으로 담아보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연말에 자기 것을 다시 보여주고 본인의 느낌을 말해 보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나, 둘 소원을 말하며 동영상을 찍고 거의 마지막 즈음 그중 막내녀석이 핸드폰 카메라 앞에 앉았다.
“자, 시작합니다. 우리 친구의 새해 소망은 무얼까요? ”
“나의 새해 소망은 음∼음∼.”
“ 말해, 괜찮아. 자연스럽게 새해 소망을 말해 보세요.”
“음∼ 내 새해 소망은…. 하룻밤만이라도 우리 엄마와 같이 자보고 싶어요.”
동그랗게 뜬 눈을 끔벅이며 내뱉는 그 한마디의 절규에 나는 그만 얼 굴을 돌려야 했다. 어린 것이 얼마나 엄마 품이 그리웠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고 콧등이 시려왔다.
그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아빠는 외지에서 일하느라 한 달에 한두 번 집에 들어오고, 엄마는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일 년에 몇 번 전화 통화만 하는 것이 고작이란다.
그렇다. 지역아동센터 아동들 구성원 대부분이 비슷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 조손가정이나 한부모, 그리고 이모나 숙모, 고모 집에서 사는 아동도 있다. 보호자로 의지하고 있는 그들마저도 거의 매일 일터에서 밤늦게야 집으로 들어오는, 그래서 아동이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도 누구 하나 그들을 거둘 수 있는 어른이 없는 환경이 대부분이기에, 정부에서는 이런 아동들을 방과 후 돌볼 수 있는 기관으로 지역아동센터를 설치 운영토록 지원하고 있다.
승합차로 대기하고 있다가 아동들이 학교 수업을 마치면 센터로 데려와 숙제를 봐 주고, 때로는 외부 강사를 초빙하여 영어, 수학 등 과외수업을 해주기도 하며, 독서와 과학 체험활동, 체육활동 등을 통하여 정서함양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저녁과 간식을 제공한 후 보호자가 집으로 들어올 시간쯤 되어 일일이 집까지 데려다주는 것이 센터 역할이다.
어느 날, 일과를 마치고 귀가 차량에 탑승하려고 대기 중이던 초등고 학년 여학생이 슬며시 내게 다가와 장난을 걸어온다.
“선생님, 저 사랑한다면서요.”
“그래. 선생님이 널 사랑하지.”
“정말요? 그 말 참말이지요? ”
“이 녀석이 속고만 살았나. 선생님이 널 진짜 사랑한다니까.”
“선생님, 그러면하늘에예쁘게떠있는저달좀따다주세요.”
“뭐야? 예끼 이 녀석, 선생님이 아무리 널 사랑해도 하늘에 있는 달을 어떻게 따다 주니.”
“호호호, 선생님은 바보. 선생님이 그것도 몰라요? 저 달 사진 찍어서 저한테 보내주면 되잖아요. 그러면 달을 따다 주는 거지 뭐. 까르르….”
‘그래, 그래. 선생님을 놀려서라도 너희가 웃을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얼마든지 놀림당해 주고, 속임 당해 주지. 암 그렇고말고.’
그날 그 녀석에게 달을 두 개씩이나 따 주었다. 센터에서 출발할 때 지붕 위에 솟아 있는 달 하나 따서 주고, 두 시간 반 후 집에 도착하여 녀석이 있는 곳에서 사백리쯤 떨어져 있는 달을 또 하나 따서 보내주고.
센터 차량으로 아동들을 귀가시키던 어느 날 밤, 마지막 집 마당에 들어서니 차 소리를 들었는지 외등이 켜지며 꼬부랑 할머니 한 분이 문밖으로 나왔다.
“할머니∼.”
등에 멘 제 덩치만 한 가방을 뒤뚱거리며 쏜살같이 달려가 등 구부러진 할머니 품에 안기는 어린 아동의 뒷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연신 고맙다고 손짓하는 어르신을 뒤로하고 차를 돌아 나오는데, 순간 급정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집 마당에서 어렴풋이 무엇인가가 고개를 내밀고 마치‘제발 날 갈리지 말아주세요’하는 것 같았다. 하마터면 그냥 바퀴 속으로 들어갈 뻔한 상황,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 차에서 내려 살펴보니 꽃이다. 언제 깔았는지도 모르게 다 해져 여기저기 금이 가고 깨진 상태인 앞마당 콘크리트 틈새로, 채송화 한 송이가 고개를 내밀고 앙증스럽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고 있던 나는 갑자기 진한 감동이 몰려왔다.
‘그래, 아이야! 깨진 마당에서도 채송화는 피는구나. 삶이 춥다고 너무 움츠리지 말아라. 길이 어둡다고 너무 무서워하지도 말고, 꿈이 느려진다고 너무 지치지도 말아라. 터널의 끝은 반드시 있단다. 신이 준비한 너에게 줄 선물이 아직 개봉되지 않았을 뿐이란다. 비록 지금 삶이 저 깨진 콘크리트처럼 험하고 아플지라도, 너는 반드시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이다. 잘 참고 견뎌내렴. 네 꽃은 더 향기가 짙을 거야. 오늘 밤 행복하게 잘 자라. 좋은 꿈 꾸고 다시 만나자.’
그날의 장거리 귀갓길은 꿈으로 가득한 가슴 벅찬 여행으로 기억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