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10월 6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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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자와 피지배자, 승자와 패자, 강자와 약자, 갑과 을, 지 금까지 그들은 함께 어우러져 살아왔다. 인류뿐만 아니라 군집 생활하는 모든 동물은 그런 서열 관계를 이루며 살아 온 것이다.
이긴 자만이 태양같이 유일하게 존재하고 나머지는 그에 굴복하고 복종해야 하는 것이 역사다. 고대와 중세에 이르기까지 주종관계는 그런 인연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문명이 극도로 발달한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싸워서 이긴 자만이 누릴 권리가 있고 존재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고 있다. 그것이 현실이다. 정치판에서도 같다. 이긴 권력 자만이 살아남는다. 세상은 그런 사람에게 줄 서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 얄팍한 권력을 등에 업고 상대를 밟고 선다. 상대적으로 이기지 못한 자는 지옥 이상의 낭떠러지로 내몰린다. 그를 짓밟는 현실은 매몰차고 비정하다. 패자에 대한 배려는 아예 없다. 더러 패자의 배려와 위로는 인사치레고 동정심일 수도 있지만 그것조차 그리 넉넉하지 않다.
그저 찬바람 도는 썰렁한 한겨울 풍경이다.
돌아보면 어릴 때부터 일등을 요구했었다. 남보다 먼저 두 발로 걸어야 했고 남보다 먼저 입을 떼고 말하는 일에 환호했다. 심지어 “우리 아 이는 천재야”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 했다. 건강하게 자라나야 하는 아이들을 향해 전교에서 일등, 반에서 일등, 직장에서도 일등하기를 바랐다. 수석이라는 이름을 더 선망했고 더 열광적이었다. 보통의 삶이 아니라 남보다 우월한 지위를 희망했다. 누가 어찌하든지 간에 우월적 권리를 누림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자족감과 선민의식에 대한 기대, 그 발로가 아닐까 싶다. 우리 삶은 늘 그 연장선상에 있다.
치열한 경쟁에서 이겼을 때 누리는 짜릿한 희열과 기쁨이 있다. 대리 만족이란 이름으로 공유하기도 한다. 스포츠 경기가 그렇고 숱한 대회가 그렇다. 직접 경쟁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우열을 가리는 일에 더 진심이고 혼신을 다한다. 그 뜨거운 순간과 흥분으로 밤샘을 마다하지 않는다.
일등이면 좋다. 일단 선택되면 기세등등하다. 그 일등을 누리는 일에 다 상대를 얕잡아보거나 승리감에 도취해 오만 방자한 경우도 있다. 독불장군처럼 인정사정도 없고 때론 안중무인의 추태도 보인다. 그런 일 등에 물불가리지 않는다. 때론 일등에 목숨을 걸곤 한다. 일등일 필요도 없는 일인 데도 줄곧 일등만 고집하는 것이다. 볼썽사나운 일이다. 과유불급이라 했는데.
일등을 좋아하는 일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다. 세상사는 모든 일에 오직 일등만이 최고의 선이라는 확신이 있다. 희소성 때문이라는 그 생각에 동의한다. 하지만 가끔씩 이해하기 어렵고 동의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등은 상대적인 상황이 전제되어야 하고 배경이 되는 패자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혼자서 일등은 일등이 아니다. 그냥 혼자다. 승자, 그것은 결국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결론이다. 원초적인 생존 방식은 약육강식이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다. 아주 이기적인 생존방식이 아닐 수 없지만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현실은 피 터지는 전쟁터가 아니더라도 치열한 생존경쟁의 숨막히는 현장이다. 일등만 요구하는 세상, 언제부턴가 선택되지 않으면 낙오하는 것이라는 절박감으로 압 박 받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단박에 실패한 것으로 평 가하는 일에도 주저하지 않는다. 과연 꼭 일등이어야만 할까.
기실 일등을 위한 노력은 결국 남을 밟고 올라서야 하는 일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또래 집단에서 발군의 실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원형경기장의 검투사가 아니더라도 상대를 누르고 올라서는 일이다. 그 강박관념은 심한 스트레스로 이어지고 심지어 고통을 견딜 수 없어 심리적 아노미 상태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불안과 공 황 장애 같은 심리적 갈등으로 사는 내내 병원 신세를 지거나 오롯이 그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 현실이 안타깝고 참으로 애처롭다.
가끔 삶이 서열에 매몰되어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볼일이다. 정복자의 기쁨과 희열에 함몰되어 정작 중요한 일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세상의 모든 것이 내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소중한 것들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든 것이 그냥 전리품이라는 어리석음에 빠져 있지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일등 아니면 슬프다. 일등 아닌 자에 대한 배려는 없다. 세상에는 일 등 아닌 것도 분명 존재하지만 아예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세상에는 오직 일등만 존재하고 패자에겐 관심도 없다. 패자의 슬픔과 좌절감은 안중에도 없다. 패배에 대한 굴욕감 정도는 아예 눈에 차지도 않는다.
함께 사는 세상에는 일등이 아닌 사람이 더 많다. 성실하더라도 각광 받지 못한 사람이 더 많다. 하지만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주변을 돌아보면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더 많다. 어떤 장소를 가리지 않고 궂은 일마다 않으며 묵묵히 일하는 사람이 더 많다. 어떤 난관이더라도 누군가를 탓하지 않고 주어진 일을 말 없이 감내하는 듬직한 사람들이 더 많다. 하는 일이 힘들고 극한의 상 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선택되지 않더라도, 누군가 관심을 두지 않더라도, 특별하지 않더라도 곳곳에서 열심히 사는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일등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감초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살고있다.
격렬한 생존경쟁에 지쳐 고단할 때 위로가 되어 주는 누군가에게 더 큰 고마움을 느낀다. 그 작은 배려와 따뜻함에 더 감격한다. 아픈 사람에게 위로가 되어주고, 일등 아닌 꼴찌에게 박수를 보내고 패배자에게 따뜻한 격려와 응원을 보내는 배려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더불어 사는 세상, 한정된 범위라고 하더라도 굳이 일등, 이등 서열을 가릴 것이 아니라 최소 인원만큼만 선택하는 지혜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패자를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세상, 일등이 아닌 자에게 더 따뜻한 사 회였으면 좋겠다. 약자에게 더 편한 세상, 굳이 서열을 매기지 않는 세상, 더불어 누구나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면 더 좋겠다. 우리 모두가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 될 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