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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장난은 졸업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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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10월 6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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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희수니? 얜 우리 아들 경진이란다. 좋은 친구로 지내라.” 
“안녕? 희수야. 난 너랑 동갑이야.”
경진이가 싱글벙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벚꽃이 활짝 핀 주말이었다. 서울에서 손님이 왔다. 외국에 살다가 얼마 전 온 가족이 다 한국으로 들어왔다는 아빠 대학 친구라고 했다.
경진은 희수보다 한 뼘 정도나 더 컸다. 형인가 싶었던 희수는 친구라는 말에 조금 놀랐다.
“와! 경진 오빠? 멋지다. 나는 수연이야. 만나서 반가워.” 
붙임성 좋은 수연은 그새 경진을 오빠라 부른다.
“안녕?”
희수는 멋쩍게 인사를 건넸다. 희수는 훤칠한 경진 앞에서 왠지 자신이 작게 느껴졌다.
“경진이랬지? 우리끼리 나가 놀자.”
“나도, 나도.”
“넌 그냥 집에 있어. 남자들끼리 할 게 있단 말이야.” 
“싫어. 싫어. 나도 갈 거야. 경진 오빠, 나도 데려갈 거지?”
수연이 먼저 메롱, 혀를 내밀며 달려 나갔다.
“우리 저 뒷산에 가볼래? 거긴 군 훈련장이었는데 이젠 폐쇄됐거든.” 
희수는 별 것 아니라는 듯 경진을 쳐다보았다. 경진도 괜찮다는 듯 어깨를 으쓱한다.
“오빠. 거긴 어른들이 가지 말, 읍.”
수연이는 오빠가 못마땅했지만 자기를 떼놓고 갈까 봐 얼른 입을 다물었다.
키도 크고 얼굴도 하얘서일까? 희수는 괜히 심통이 났다. 수연이가 대장처럼 의기양양 앞서가고 경진은 수연이랑 발을 맞춰 걷는다. 희수만 조금 떨어져 말없이 뒤따랐다. 사실 훈련장은 어른들이 조심해야 한다고 가지 말라는 곳이다. 그런데 지금 희수는 그곳으로 경진을 데려가고 있다. 폐쇄된 훈련장이라 해도 경진은 무섭지도 않은가 보다. 오히려 경진은 희수를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대했다.
“희수야. 저 큰 나무는 이름이 뭐니? 저기 저 새는? 저 노란 꽃들에게도 이름이 있니? 나, 아직 한국 시골은 잘 몰라.”
경진은 쉴 새 없이 질문을 해댄다.
“서울 오빤 모르는 게 많구나. 저 나무는 우리 동네를 지켜주는 당산나무, 다리가 긴 저 새는 왜가리. 그리고 저 노란 꽃들은 애기똥풀꽃이야.”
희수에게 물었는데도 수연이 열심히 알려주었다.
“경진 오빠, 저기 보이지? 저기가 훈련장이야.”
조금 멀리 보이는 민둥산을 가리키며 수연이가 말했다. 모르는 게 참 많은 경진을 보니 희수 어깨도 조금 펴지는 듯하다. 기분도 좀 나아졌다. 재잘재잘 떠들며 한참을 걸어가니 훈련장이 나왔다.
군인들의 오랜 훈련은 커다란 산등성이를 벌거벗은 산으로 만들어버렸다. 훈련장은 문 닫은 지 꽤 되었지만 아직도 작은할아버지 머리처럼 민둥민둥했다. 철조망까지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와, 이게 훈련장이야? 이렇게나 넓다고?”
경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연신 감탄한다. 희수랑 수연이는 그런 경진이가 더 신기하다. 셋은 철조망도 밀치고 움푹 파인 참호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노래도 군가처럼 크게 부르며 여기저기 헤집었다. 빠바방, 딱쿵딱쿵, 뻥야, 막대기를 휘두르며 전쟁놀이도 했다.
이런저런 놀이에 열중하고 있을 때였다. 경진이가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이게 뭐니? 야 희수야, 수연아. 이리 와 봐. 이거 무슨 트로피인가?” 
희수랑 수연이가 달려갔다. 경진은 반쯤 땅에 박혀 있는 쇠붙이를 발견하고는 이미 땅을 파고 있었다. 파 올리니 쇠붙이는 아기 팔뚝만 했다. 
“야, 좋은데. 녹이 슬긴 했지만 모양은 말짱하잖아? 꽃병인가?” 
“꼭 무같이 생겼네.”
수연이 말에 두 오빠가 막 웃었다. 희수도 본 적 없는 물건이었다. 
‘어, 이거 위험한 건 아니겠지?’
순간 희수는 생각했지만 호기심이 더 빨리 생각을 지워버렸다. 
“나도 처음 봐. 집에 가지고 가서 아빠한테 물어보자.”
희수가 먼저 녹슨 물건을 끌어안았다.
“오늘 수확이 큰데. 그치? 얼른 가자.”
경진은 으쓱거렸고 수연인 또 씩씩하게 앞장선다. 아이들은 승리한 군인처럼 행진했다. 희수와 경진은 바통을 이어받듯 이상한 물건을 서로 바꿔가며 안고 걸었다.
수연이가 우당탕, 대문을 활짝 열었다. 아빠랑 아저씨는 마당에서 무슨 이야기 중인지 큰소리로 웃고 있었다.
“아빠. 아저씨. 저희가 멋진 선물을 가져왔어요.”
“여기 보세요. 여기요. 이게 뭘까요?”
아빠랑 아저씨의 눈이 경진이가 안고 있는 물건과 마주쳤다. 그 순간 아이들은 두 아빠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는 걸 보았다.
“거기 멈춰. 너희들, 그냥 거기 가만히 있어.”
아빠가 두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아저씨도 입을 딱 벌리고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이들은 벼락같은 소리에 깜짝 놀라 얼음처럼 굳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아빠는 깔고 있던 방석을 들고 뛰어와 녹슨 물건을 감싸안았다. 그리고 방을 향해 소리쳤다.
“여보. 빨리빨리. 빨리 파출소에 전화해요. 여기 불발탄 있다고.” 
아빠는 방석을 껴안고 집에서 먼 밭 가운데로 달려가 조심스레 놓았다. 곧이어 사이렌이 울리고 경찰차가 왔다. 사이렌 소리에 골목 사람들도 다 뛰쳐나왔다.
“그게 어디 있나?”
“저기, 소장님은 날 따라오게.”
“어이쿠, 큰일 날 뻔했네 그려. 아이들이 무사해서 천만 다행이구먼! 정말 다행이야.”
소장은 아빠 친구다. 소장은 묵직하게 생긴 네모 박스에 불발탄을 넣어 파출소로 보냈다. 순경들은 또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갔다.
아이들은 이 갑작스러운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얼떨결에 일어난 일에 혼이 빠졌다. 정말 뭔가 큰일을 저지른 것 같았다.
“다 수거한다고는 했지만 이렇게 불발탄이 남아 있다니 참 걱정입니다. 다시 전부 세세하게 검사를 하겠습니다.”
소장이 말하고 돌아가자 놀랐던 마을 사람들도 휴! 안심하며 돌아갔다. 벌집 같았던 골목은 그때서야 조용해졌다.
이상하게도 아빠와 아저씨는 놀란 아이들을 더 이상 혼내지 않았다.

경진도 서울로 가고 소동이 난 지도 며칠이 지난 휴일이었다. 마을회관으로 동네 사람들 다 모이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아이들도 다 불려 나왔다. 소장이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오늘부터 훈련장은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모두들 명심하세요. 불발탄이 더 있을지도 모르니 조사가 다 끝날 때까지 훈련장 절대 드나들지 마세요.”
훈련장 출입금지 통보였다. 아이들을 위한 특별교육도 있었다. 다큐멘터리 영상을 틀어 녹슨 불발탄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었다. 영상은 끔찍하고 무서웠다. 마지막으로 훈련장에서 고물을 찾다가 다쳐 다리를 저는 윗동네 아저씨가 나왔다.
“고물이라고 주운 불발탄이 얼마나 위험한지 아니?”
그리고는 한쪽 바지를 걷어 올렸다. 의족을 떼어내자 무릎 밑으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이들은 많이 놀랐지만 비명은 지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희수랑 수연이는 다시는 그런 위험한 짓을 하지 않겠다고 아빠한테 약속했다. 희수는 동생까지 데리고 위험한 일을 저지른 자신을 반성했다. 더 크고 잘생긴 친구를 샘내 쓸데없이 호기를 부린 것이 부끄러웠다.
희수가 먼저 경진에게 전화를 했다.
“경진아. 괜찮니? 많이 놀랐지? 정식으로 널 초대할게. 우리 시골에는 다른 재미있는 일이랑 좋은 데가 참 많아.”
“그래 곧 또 갈게. 근데 희수야. 우리 멋진 경험이었지? 우리 위험한 장난은 이걸로 졸업이겠지?”
경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우리 위험한 장난은 이걸로 졸업이겠지?”
같은 말을 하며 경수와 희수는 서로 웃었다. 수연은 큰 소리로 경진 오빠 보고 싶다고 애교를 떨었다. 창밖 벚꽃나무에서는 꽃비가 흩날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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