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10월 6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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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은이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어요. 입학을 며칠 남겨둔 날, 나은이는 엄마와 아빠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어쩌나? 다른 곳으로 전학을 시킬 수도 없고.”
아빠는 고개를 흔들었어요.
“학교는 집에서 가까워야 해. 입학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 그냥 보내요. 나은이가 잘 적응할 거야.”
나은이는 무슨 일일까 궁금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어요. 입학식 날, 나은이는 엄마, 아빠, 친할머니, 할아버지와 학교에 갔어요. 입학을 축하한다며 할아버지, 이모가 사준 책가방과 새 옷을 입고 새 신발을 신으니 기분이 참 좋았어요. 걸을 때 저절로 깡충깡충 뛰게 되더라고요. 학교 교문에 들어서니 현수막에 커다란 글씨로 ‘김나은 양의 입학을 축하합니다’라고 쓰여 있지 뭐예요. 나은이가 현수막을 가리키며 물었어요.
“아빠, 저 김나은이 나야?”
아빠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교문 앞에 서 있던 여자분이 다가와 말했어요.
“제가 이 학교 교장 이현숙입니다. 나은아, 우리 학교에 온 것을 환영한다.”
교장선생님은 앞장서서 강당으로 갔어요. 강당 입구에는 언니, 오빠들이 서 있다가 나은이가 들어가자‘와’소리치며 박수를 ‘짝짝’ 쳤어요. 어떤 언니는‘김나은! 방가 방가’라며 손가락 하트를 만들기도 했지요. 나은이는 놀라 아빠 손을 얼른 움켜쥐었어요. 입학식이 시작되었어요. 선생님이 나은이 이름을 부르며 부모님도 함께 무대 위로 올라오라고 말했어요. 나은이와 엄마, 아빠가 올라가자 한 언니가 꽃다발을 건네주었어요. 교장선생님이 아빠에게 ‘입학 축하금’ 이라며 봉투를 내밀었지요. 입학식이 끝나자 나은이가 물었어요.
“엄마! 다른 애들은 다 어디 있어? 왜 나만 가지고 그래?”
그제야 엄마가 말했어요.
“나은아, 이 학교는 학생이 모두 78명이래. 그런데 올 입학생은 너밖에 없다는구나. 작년에는 7명이었다는데. 그래서 네가 인기 짱이 된 거야.”
친할머니가 말했어요.
“교장선생님이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꼭 이 학교에 다니게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는구나. 네가 안 나오면 1학년이 한 명도 없게 된다고 말이야.”
나은이는 뾰루퉁한 얼굴로 물었어요.
“그럼 난 누구랑 놀아?”
“애는 친구하고 놀 생각만 하네. 걱정 마. 놀 사람이 생기겠지.”
이튿날 나은이는 등교를 돌봐주기로 한 할머니와 학교에 갔어요. 교문 앞에는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나은아, 내가 네 담임 선생님이야. 앞으로 재미있게 공부하고 놀자.”
복도를 지나가는데 큰 언니들이 교실 창문에서 머리를 내밀고 손을 흔들었어요. 나은이는 부끄러워 눈을 내리깔고 교실로 들어갔지요. 커다란 교실에는 선생님과 나은이 달랑 둘이었어요. 선생님은 나은이 책상 앞에 마주 앉아 학교에서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 설명해 주었어요. 나은이는 친절한 선생님이 단번에 마음에 들었어요. 쉬는 시간에는 화장실도 같이 가 주고 급식실에도 같이 갔어요. 하지만 선생님과 둘밖에 없으니 조금 심심했어요.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언니들처럼 나은이도 친구들과 놀고 싶은데 말이지요. 저녁을 먹으며 엄마가 장난스럽게 물었어요.
“나은 아가씨, 오늘 처음 학교 갔다 온 소감 한마디 해주세요.”
나은이가 고개를 흔들었어요.
“재미없어. 나 혼자 있으니 심심해.”
엄마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어요. 하지만 애써 위로했지요.
“혼자라 선생님이 너만 예뻐하시니 얼마나 좋아? 애들이 많으면 너한테 관심이 적을 텐데.”
“난 친구랑 놀고 싶어. 선생님이 나만 졸졸 따라다녀 싫어.”
이튿날 나은이는 공주 세트를 가지고 갔어요. 인형놀이를 하려는 것이었지요. 선생님이 말했어요.
“나은이가 심심했구나. 그런데 인형놀이를 하기에는 쉬는 시간이 짧은데 어쩌지? ”
집에 돌아온 나은이는 반갑게 달려드는 말순이를 보고 번뜩 생각이 났어요. 나은이는 저녁에 말순이 사료와 배변 봉투를 챙기고 목줄도 가방에 넣었어요. 이튿날 아빠와 엄마가 출근하고 나자 할머니가 오기 전에 말순이를 외투 속에 품고 학교로 갔어요. 밖에 나가는 것이 신난 말순이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좋아했지요. 교실에 들어간 나은이는 말순이 목줄을 의자에 매어놓고 단단히 일렀어요.
“넌 오늘부터 우리 반 학생이야. 공부할 때는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해. 알았지?”
선생님이 말순이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어머, 학교에 웬 강아지?”
나은이가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내 친군데요. 앞으로 나랑 같이 학교 올 거예요.”
“음, 엄마가 허락하신 거니?”
“우리 엄마는 일찍 출근해서 못 봤고요, 할머니 오시기 전에 얼른 나와서 할머니도 몰라요.”
선생님은 곤란한 표정으로 말순이를 쳐다보았어요.
“나은이는 유치원 다닐 때도 말순이를 데리고 갔어?”
“아니요. 그때는 다른 친구들이 많았거든요. 말순이는 얼마나 얌전하다고요. 말도 잘 들어요.”
그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말순이가 낑낑거리기 시작했어요. 묶어 놓은 목줄을 풀어달라는 거였어요. 나은이가 손가락을 입에 대고 조용히 하라고 해도 눈치 없이 낑낑대지 뭐예요. 쉬는 시간이었어요. 나은이가 뭘 하고 있을까 궁금해진 옆 반 언니들이 나은이 교실을 들여다 보았어요.
“어? 강아지다. 강아지가 학교에 왔네. 귀여워라.”
언니들은 우르르 교실에 들어오더니 말순이를 서로 만지려고 야단이 었어요. 아이들의 소란에 놀란 말순이가 멍멍 짖어대기 시작했죠. 난데없는 강아지 소리에 교장선생님까지도 무슨 일인가 달려왔어요. 조금 있으니 할머니가 헐레벌떡 교실로 들어왔어요.
“나은이 학교 데려다주려고 집에 갔더니 애도, 강아지도 없더라고요. 얼마나 놀랐는지… 나은이 엄마가 학교에 가 보라고 해서 왔어요.”
엄마는 학교에 말순이를 데리고 가면 안된다고 타일렀어요. 나은이는 골이 나서 투덜댔어요.
“그럼 나 학교 안 갈 거야. 말할 친구도 없고 심심해.”
이튿날 나은이는 길에서 종이상자에 담겨 있는 병아리들을 보았어요. 쪼그리고 앉아 병아리들을 구경하는 나은이를 보고 할머니가 말했어요.
“예쁘지? 건강한 애기들이야. 한 마리에 천 원인데 두 마리 사면 깎아준다. 세마리 사면 더 깎아주고.”
나은이는 집에 가서 용돈을 들고 나왔어요. 할머니는 병아리 세 마리에 이천 원을 받고 좁쌀도 덤으로 주었어요. 나은이는 조그만 병아리들이 가냘픈 소리로 삐악대는 것이 귀여웠어요. 엄마는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길에서 파는 병아리는 잘 자라지 않고 금방 죽어요. 네 맘대로 병아리를 사면 어떻게 해? 돈은 어디서 났어?”
“병아리 파는 할머니가 건강한 애들이랬어. 돈은 외할머니가 용돈 주신 거야.”
나은이는 병아리들을 종이상자에 넣어 학교에 갔어요. 그리고 담임 선생님에게 말했어요.
“병아리들은 말순이처럼 시끄럽게 하지 않으니까 괜찮죠?”
선생님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어요.
“지금은 어리니까 교실에서 키우고 좀 더 크면 밖에서 키우자. 크면 상자에서 뛰쳐 나올거니까.”
“와, 좋아요. 내가 잘 키울게요.”
나은이는 미술 학원에서 유치원 친구 혜나를 만났어요. 나은이가 물었어요.
“너네학교좋아?”
“응. 좋아. 학교도 얼마나 예쁘다고.”
“너네 학교는? ”
“응 좋아. 그런데 너네 반 애들 몇 명이야?”
“열 명쯤? ”
“좋겠다. 우리 반은 나 혼자라 심심해. 너 우리 반에 오면 안 돼?”
“싫어. 네가 와. 우리 반은 안 심심하거든.”
나은이는 엄마를 조르기 시작했어요.
“엄마, 나 지혜네 학교로 전학시켜 줘. 거긴 애들이 많대.”
“언제는 병아리랑 친구 한다고 하더니 벌써 싫증 났니?”
“병아리는 수업시간에도 떠들어. 말도 못 알아듣고.”
나은이 부모님은 걱정이었어요.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이 어떻게 하면 나은이가 학교생활을 즐겁게 할까에 고민했지요.
며칠 후, 학교 갔다 온 나은이가 신나는 목소리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엄마! 선생님이 오늘 친구를 데려왔어.”
“어머, 정말? 참 잘됐다. 친구가 전학 온 거니?”
“이름은 루리고 여자애야. 근데 좀 이상하게 생겼어.”
“뭐가 이상해? ”
나은이 목소리가 갑자기 작아졌어요.
“눈은 완전 동그랗고 말소리도 이상해. 선생님이 그러는데 나랑 친구 하라고 공장에서 데려왔대.”
“뭐 공장? ”
“로봇이란 말이야. 그래도 친구가 생겼으니 난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