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열두 살의 복숭아

한국문인협회 로고 신난희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10월 668호

조회수28

좋아요0

한마디로 나는 별 볼 일 없는 애입니다. 공부도 그렇고 특별한 재주나 장기가 있는 것도 외모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키가 큰 것도 거기다 장난치는 것만 좋아해서 종종 사고를 치기도 합니다.
그러니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누구 하나 눈여겨봐 주는 사람 없이 길고양이처럼 어슬렁거리거나 밭의 잡초처럼 귀찮은 존재로 취급받고 억울한 일이 생겨도 하소연할 데 없이 깡통이나 걷어차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 내가 바뀌었습니다. 괜히 배실배실 웃음이 나오고 학교 가기가 좋아졌고, 세상이 내 편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건 순전히 민 선생님 덕분입니다. 민 선생님은 이번에 새로 오신 육학년 우리 반 담임이신데 우리가 누나라고 부르고 싶을 만큼 젊고 친절했고 무엇보다 공정했습니다.
공부 잘한다고 특별 대우를 하지도 않고 잘사는 애라고 더 잘 봐주시지도 않았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나 같은 별 볼 일 없는 애들은 속이 시원하다 못해 살맛이 났는데, 결정적으로 내가 민 선생님 바라기가 된 것은 얼마 전 체육시간의 일입니다.
그날 우리는 편을 갈라 축구를 했고 공교롭게도 공을 차려던 내 발에 걸려 준서가 넘어졌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준서의 코피가 터졌습니다. 준서가 누굽니까, 우리 반에서는 물론 전교 1등을 놓친 적 없고 각종 대회에서 수상을 휩쓰는 자타공인 우리 학교의 별인데 나같이 별 볼 일 없는 애의 발에 걸려 코피까지 났으니 다음 일은 안 봐도 본 듯했습니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달려오고 준서를 에워싸고는 다정스런 눈빛으로 걱정을 해주는 반면 나에게는 차갑고 무시하는 눈빛으로 쓰윽 한 번 훑어보고는 쯧쯧 혀를 차겠지요. 그런데 민 선생님은 달랐습니다. 준서에게 하는 것은 다른 선생님과 똑같았지만 나에게 하는 것은 달랐습니다.
“일부러 그런 것 아니에요.”
소용없는 변명이 될 것이 뻔했지만 무뚝뚝하고 거친 말투로 내가 지레 방어를 했습니다.
“그래, 샘도 알아. 넌 안 다쳤어? 축구 열심히 하다 보니 그런 건데. 괜찮아!”
참으로 다정한 목소리였고 거기다가 부드럽게 내 머리가지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이 낯선 상황에 처음엔 놀랐고 그다음엔 울컥했습니다. 눈물을 흘리진 않았지만 뭉클했습니다. 말 한마디가 이렇게 따듯할 수 있다는 걸, 한 사람이라도 내 편이 있으면 세상이 이리 든든하게 느껴진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교실로 올라가 일부러 그랬다고 째려보는 준서에게 사과를 할 때도 억울하지도 밉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둥둥 떠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습니다.
다음 날 나는 학교 가기 전 복숭아밭으로 나갔습니다. 학교 가기도 급급했던 내가 일찍 밭으로 나오자 아빠 엄마가 깜작 놀랐습니다.
“아니, 네가 왠 일이야? 복숭아 따는 거 도와줄려고?”
“그게 아니고 내가 먹으려고.”
“집에 흠집 난 복숭아 많은데, 그거 먹어도 맛있는데!”
“왜 맨날 흠집 있는 것만 먹으라는데! 좋은 것 먹고 싶단 말야.” 
말도 안 되는 투정을 하며 복숭아나무로 갔습니다. 나무에 달린 복숭아들이 잎새 뒤에서 빼꼼빼곰 발그레한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나는 가장 예쁘고 맛있어 보이는 복숭아를 하나 따서 뽁뽁이로 감싸 가방에 넣었습니다.
학교에 가니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창가 선생님 자리로 가서 탁자 위에 복숭아를 올려 두었습니다. 어제 일에 대한 고마움이랄까, 내 편인 생긴 것에 대한 기쁨이랄까, 암튼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의 표현인 것만은 분명했습니다.
교실에 오신 선생님이 환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어, 누가 갖다 놓았지. 이렇게 에쁜 복숭아도 있네. 하트 같애!” 
하트! 하트란 말이 귀에 와 박혔습니다.
‘그거였구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것이!’
우리 집은 오랫동안 복숭아 과수원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복숭아는 참으로 많이 보았는데 한 번도 하트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민 선생님이 하트라고 하는 순간 갑자기 마음이 두근거렸습니다.
그 뒤로도 나는 종종 예쁘게 생긴 복숭아를 선생님 탁자로 배달하였습니다. 그건 아마도 내 마음을 배달하는 것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물론 아빠 엄마한테는 내가 먹는다고 시치미를 떼었지요.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아빠 엄마도 모든 걸 다 아셨던 것 같습니다. 가장 맛있는 품종의 복숭아를 따는 날, 좋은 복숭아 한 상자를 담아 놓고 나를 불렀습니다.
“너 민 선생님네 집 알지? 이거 드리고 와.”
“왜, 왜요?”
“너 사고 안 치고 학교 재미 붙인 것이 다 민 선생님 덕분이잖아. 엄마가 고마워서 그러지!”
아무리 시치미를 떼도, 나중에 안 말이지만 사랑과 기침은 감출 수 없다니 티가 났을 테고요. 옆집 사는 같은 반 수다쟁이 지혜가 벌써 다 고자질을 해 놓았겠지요.
민 선생님 집은 우리 동네에서 마을 버스를 타고 가면 다섯 정거장쯤에 있습니다. 본집은 멀리 서울에 있고 학교 가까운 조용한 마을에 작은 집을 얻어 혼자 살고 있는 거지요. 주말에는 본집으로 가셨다가 일요일 오후에 오시고요.
나는 민 선생님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신발은 230으로 좀 작고 수수한 과꽃을 좋아하며 티비보다는 음악 듣는 걸 좋아하고 짜장면보다는 하얀 우동을 좋아한다는 것까지요.
콧노래를 부르며 엄마가 손잡이까지 만들어 묶어 준 복숭아 상자를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선생님 집에 가려면 집 아래 자두나무 정류장에서 터미널을 거쳐 오는 마을버스를 타고 다섯 정거장 가면 됩니다. 운이 좋으면 본집에 다녀오는 선생님이 타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나는 산등성이 억새처럼 최대한 목을 길게 빼고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그리 오래지 않아 저쯤에서 연두색 마을 버스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까치발을 들었습니다. 아, 오늘은 정말, 정말 운이 좋은 날입니다. 얼핏 민 선생님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버스가 가까이 오면서 민 선생님 옆에 어떤 남자도 보였습니다. 뭐가 좋은지 나란히 서서 활짝 웃으며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남자의 손이 민 선생님의 어깨 위에 올라가 있었고, 얼굴에 날리는 머리카락을 떼어 주는 것도 같았습니다. 드라마에서 보았던 것처럼 버스가 내 앞을 아주 느리게 느리게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버스를 타지 않았습니다. 왜 타지 않았는지 설명할 수 없지만 뭔가 잃어버린 것 같기도 했고 말도 안 되지만 뭔가 뺏긴 것도 같았습니다. 어쩐지 집으로는 갈 수가 없어 둑 아래 샛강으로 나갔습니다. 노을 내리는 강가에 앉아 복숭아를 하나 꺼내 먹었습니다. 부드럽고도 달콤했지만 나도 모르게 흐른 짭조름한 눈물이 섞이어 처음 맛보는 이상한 맛이 되어 버렸습니다. 처음 맛보는 어른스런 슬픔의 맛인지도 모르지요. 복숭아가 아직 많이 남아 있는 복숭아 상자는 다시 집으로 가지고 갈 수 없어강물에띄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열두 살의 복숭아가 멀어졌습니다.

광고의 제목 광고의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