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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한집

한국문인협회 로고 윤재석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10월 6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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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늑하다. 화려하지 않지만, 바람을 막아주고 하늘의 유수를 받아 주니 살 만한 집이다. 뜰에는 감나무와 사철나무, 동백나무가 있어 봄이 오면 잎 피우고 꽃 피우면서 계절을 알리니 계절이 돌아오고 떠나는 순리를 배우면서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마음이다. 때로는 수리도 하면서 자식 낳고 기르 며 살아온 지 40년이 넘어서인지, 나만이 느끼는 아늑함과 자유로움을 누린다.
아침의 공기가 싸늘하다. 입춘이 지났는데도 2월의 추위가 겨울 날씨에 뒤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듯하다. 이웃집 대나무에 불어오는 바람 소리가 소소하여 아직도 겨울 같은 정취다. 이 추위도 자연의 순리에 물러나고 따뜻한 봄이 올 것이니 조용히 기다리는 여유를 갖자.
창문으로 들어오는 초봄의 하늘이 파랗다. 구름이 이곳저곳 군데군데 무리 지어 자리하고 있어서 아침 하늘이 어느 산수화와 같다. 누구에게 부탁한 것도 아닌데 아침부터 자연이 그려낸 멋진 풍경화를 보고 있으니, 마음 편안하다. 오늘도 정녕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파란 하늘에 그림을 보고 있으니, 앞이 활짝 열려서 좋다. 우리 집에 봄바람과 꽃향기가 올 것이니 살 만한 집이다.
은행나무에 까치집 두 개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크고 높은 나뭇 가지에 지어 놓은 까치집이 나무와 함께 흔들린다. 새들이 사람보다 부지런하다. 까치가 일찍부터 제집을 바삐 드나들고 있다. 여름 장마와 태풍을 염려하여 집수리하는지 입에 막대를 물고 돌아온다. 한 마리가 집에서 나오면 기다렸다 다른 녀석이 집으로 들어간다. 새끼도 낳아서 길러야 하고 비바람을 견디려고 일찍 단단히 수리하고 있는가 보다. 너희 집도 남향에 햇볕이 잘 드니 살 만한 집이다. 그 녀석들의 사는 모습을 보니 금실이 좋아 보인다.
고양이가 눈치를 살피며 걷고 있다. 언제부터 고양이의 수가 많아졌는지 우리 곁에서 살고 있다. 고양이의 민첩함을 보면 담장을 오르거나 내려갈 때 용수철 같은 탄력을 이용하는 모습이 놀랍다. 지금은 반려동물을 기르는 시대가 되었다. 거리에 나가면 반려견을 마치 자식처럼 껴안고 다니는 모습을 자주 보곤 한다.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자신이 기르는 반려동물에게 정성을 다한다. 한 가정의 식구처럼 다정해 보인다. 반려견은 기르지 않으나 고양이가 가끔 와서 아내가 주는 먹이를 먹고 간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집식구가 되어 함께 살고 있다.
시대에 따라 주거 환경이 변한다. 아파트란 주거 환경이 우리에게 익숙해졌다. 예전에는 단독주택이라도 생활에 불편을 몰랐다. 그런데 아 파트가 생겨나면서 생활공간이 아주 편리하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많은 사람이 선호한다. 사람은 편하고 쾌적한 곳을 좋아한다. 그래서 아파트 는 인기 있는 주거 공간이 되었다. 여러 세대가 모여 살다 보니 때로는 부작용도 있다. 층간 소음이나 주차 공간의 부족 등이다. 조심성 있고 서로를 배려하고 양보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단독주택은 이에 비해 편리한 점은 적어도 자유롭고 편안한 공간이어서 살 만하다.
단독주택은 가끔 수리한다. 몇 해 지나면 페인트가 퇴색해서 다시 도색 공사를 해야 한다. 조용하고 편안한 생활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두 해 전 수리를 했다. 목조로 된 유리창을 2중창 새시로 바꿨다. 실내 보온을 위해 방열 벽으로 수리했다. 새시로 바뀌고부터는 바깥소리를 들을 수 없다. 밖에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새들이 와서 지저귀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나무가 움직이는 모습이나 빗방울 보고서 알 수 있다. 조용해서 좋기는 해도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점이 아쉽다. 겨울이면 따뜻하고 여름이면 시원하니 아늑하다. 누구의 눈치나 간섭이 없으니 자유로워서 좋다.
40년간 살았으니, 흔적이 있는 곳이다. 아들딸 낳아 기르고 가르치면 서 애환이 깃들었다. 그때는 넉넉하지 못한 시대여서 부지런히 일하고 검소와 절약이 삶의 덕목이었다. 지금은 풍요가 넘치고 있다. 먹을 것 걱정이 아니라 비만이 걱정거리가 된 시대다. 비만으로 인한 건강 상태를 걱정하면서 살고 있다. 한때는 빈곤이 문제요 요즈음은 넘쳐서 고민이다. 넘치지 말고 모자라지도 않도록 지혜로운 생활이 요구되는 시대라 하겠다.
이제 비둘기 같은 생활이다. 한 집에서 자식들 기르며 살던 때의 그리움이 가슴속에 피어나고 있다. 탈 없이 자라준 덕택으로 제 짝을 만나 각자 저희 가정을 이루고 있다. 우리 내외뿐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거실 의 화초가 반기고 새들이 찾아와 지저귐으로 인사한다. 하루해가 다 가도 바쁠 일이 없다. 서로의 바람은 아무 탈 없이 건강히 지내는 일이다. 나이 들수록 서로가 필요해진 삶이다. 둘만이 남은 비둘기 집이다.
행복은 내게서 오는 것으로 생각한다. 아들딸 낳아 길러 제자리 잡아 보내면서 우리는 먼 길을 걸어왔다. 그의 종착점이 언제인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보다는 짧을 것은 자명하다. 행복하게 살아왔다. 앞으로도 행복할 것이다. 물어보고 대답한다. 행복은 많이 가져서가 아닌 마음 편한 것에서 오는가 싶다. 스스로 족함을 알면서 사는 지혜가 행복의 길이라 여긴다. 
후회도 하지 말자. 걱정도 하지 말자. 이 나이에 후회는 때늦은 일이다. 걱정도 그렇다 괜히 번거로움을 초래할 뿐 생활에 보탬이 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는 그리워서 좋고 현재는 일이 있어 즐겁고 앞날은 궁금해서 호기심이 발동한다. 오늘에 충실하면 후회도 걱정도 없으리라 믿는다. 

아침 햇살이 창문으로 찾아오고 새들이 뜰에서 지저귀면서 인사하니 살 만한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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