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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견례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인희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10월 6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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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일찍 상견례를 위해 서울로 출발했다. 아들이 결혼하게 되어 가장 중요한 관문을 통과하는 절차였다. 대전에서 지내고 있는 딸은 금요일 저녁 집에 왔다. 남편은 토요일 일을 접었고 가족 모두 합심했다. 남편은 주말에 서울 도로가 막힐 것이라고 염려하면서 대중교통으로 가야 하나, 승용차로 가야 하나 망설였다. 대중교통이 불편하다는 두 여자의 말에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승용차로 가기로 했다.
아들과 며느리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우리나라 바다를 지키는 해군 장교로 막중한 임무 수행 중이다. 두 주인공은 진해 근무지에서 당일 서울 상견례 장소로 이동하겠다고 미리 알려왔다. 진해에서 서울까지 버스로 장장 6시간의 장거리 이동이라고 했다.
서울에 접근하면서 우려했던 대로 도로가 막히기 시작했다. 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거북이걸음보다 느린 속 도로 움직였다. 서울까지 오는 내내 사돈댁 만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첫 대면에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하나, 어떤 말을 해야 하나 생각하면서 오늘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도했다. 막 상 도로가 정체되기 시작하니 상견례장에 제시간에 당도할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결례를 범하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다. 천만다행으로 정체 구간을 벗어나면서 차는 속력을 냈고 약속 장소에 늦지 않게 도착했다.
서울로 오는 자동차 안에서 딸이 “아빠, 말씀하실 때 사투리 많이 쓰지 않도록 신경 쓰세요. 아빠는 말씀이 없으실 때 표정이 어둡게 보여 요. 살짝 미소 짓는 거 잊지 마세요. 그렇다고 너무 환하게 웃으면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보일락 말락 살짝 미소 지으세요. 엄마, 엄마 는 워낙 말씀을 조신하게 하시니까 걱정 안 해요. 엄마, 행사에서 사회 보듯이 엄마가 대화를 주도하면 안 돼요. 아, 그리고 두 분 음식 드실 때 소리 나지 않게 드셔요. 입은 다물고 천천히 소리 나지 않게 드시고 남은 음식은 아깝다고 다 드시면 안 돼요. 오히려 약간 남겨도 좋아요. 아셨죠? ”하고 구구절절 신신당부했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 교육이랍 시고 잔소리를 많이 했었는데, 딸의 말을 들으면서 내 모습이 오버랩되 어 자꾸 웃음이 나왔다. 딸은 멈추지 않고“엄마, 대학교 수업에서 교양 과목으로 상견례 예절 등을 다루면 좋겠어요. 요즘 애들이 뭘 알겠어 요? ”하고 했다. 나는 딸의 말을 듣고‘지도 요즘 애들이면서’하고 폭 소를 터뜨릴 뻔했다.
상견례 장소인 한정식 식당은 분위기가 조용하고 편안했다. 사돈댁에서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바깥사돈, 안사돈, 며느리, 언니네 가족이었다. 아들의 안내에 따라 차례로 남편과 나, 아들, 딸이 앉았다. 맞선을 보듯 한 사람씩 마주 앉았다. 아들이 “저희 가족을 먼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아버지 아무개, 어머니 아무개 그리고 누나 아무개입니다”라고 소개를 마친 후 며느리가 예쁜 목소리로 “저희 가족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아버지 아무개, 어머니 아무개 그리고 언니 아무개입니다. 대학생 동생은 참석하지 못했습니다”라고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목소리로 말했다.
바깥사돈께서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았다, 비 피해는 없나 등 일상적 인 인사로 대화의 물꼬를 텄다. 다소 경직된 남편은 바깥사돈의 인사에 응수하면서 긴장을 푸는 눈치였다. 이어서 안사돈께서 나를 보면서 “이 서방에게 어머니께서 글을 쓰는 문인이라고 들었어요. 올해 박사 학위를 받으셨다고 하더군요. 꿈을 위해 노력하고 결실을 맺은 훌륭한 분을 사돈으로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하면서 막힌 담을 허물었다. 나는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로망인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사돈 댁에 비하면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 격이지요. 좋은 가문과 인연을 맺게 되어 큰 영광입니다”라고 말하면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안사돈께서 아들을 가리켜‘이 서방’이라고 호칭할 때 기분이 좋았다. 나는 며느리를 몇 번 만났는지라 친숙하여 이름을 불러 호칭했다. 돌이켜 생각하니 안사돈께서 언짢으셨으려나, 후회막급이다.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는 중간에 음식이 들어왔다. 음식은 코스요리로 상차림할 때마다 매니저가 음식을 먹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대화가 멎으면 숟가 락 소리, 음식 먹는 소리, 간간이 호흡소리만 들렸다. 어려운 자리임을 부인할 수 없었다.
어른들 중심으로 오고 가는 대화의 방향을 예비부부의 윗사람들에게 돌렸다. 사돈처녀와 우리 딸, 둘 다 동생들을 먼저 결혼시키게 되었다. 살며시 둘에게 말할 기회를 주었다. 먼저 사돈처녀가“동생이 결혼한 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걱정되었던 건 사돈 어르신이었어요. 이렇게 뵙고 보니 인상이 좋으셔서 안심이 되었어요. 동생이 잘살 거 같아요” 라고 말했다. 우리 딸도“저도 사돈 어르신들을 뵙게 되어 기쁩니다. 예비부부가 군인 장교로서 많은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요. 둘이 잘살 것 같아요”라고 인사했다. MZ세대인 사돈처녀와 딸의 말이 예의 바르고 교양 있다. 반듯한 두 가문이 인연을 맺게 되어 한없이 기뻤다.
식사를 마치고 후식으로 나온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매듭지었다. 내 가 먼저 “둘이 모두 알아서 한다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네요. 그렇더라도 엄연히 사돈댁에 갖추어야 할 예의 법도가 있는데요. 안사돈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라고 안사돈께 여쭈었다. 안사돈께서는 “저도 좋은 날 택일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그러나 요즘 은 예식장 사정에 따라 날짜가 정해지나 봐요. 저도 할 일을 못 했어요. 애들이 알아서 한다고 하니 믿고 맡겨요. 따로 신경 쓰지 마세요”라고 말씀하셨다.
아들이“오늘 저희를 위해서 시간을 내주시고 축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잘살면서 효도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며느리도“오늘 저희를 위해 모두 한자리에 모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상견례 장소로 유명한 곳이 있었는데 몇 개월까지 예약이 되어 있어서 아쉽게 이곳으로 정했습니다. 다음에 꼭 그 장소에서 식사대접하겠습니다. 저희 잘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상견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평안했다. 남편은 넥타이를 풀었고 잔뜩 긴장했던 딸은 뒷좌석에서 잠들었다. 자동차 안에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그 선율을 타고 감사가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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