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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를 청하는 방법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도원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10월 6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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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찾으러 왔습니다. 낯선 청년의 느닷없는 물음이었다.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 입고 선 남자는 네 살 때 헤어진 어머니를 찾는 중이라 했다. 청년의 눈빛은 진지했고 간절함이 깃들어 있었다. 소란했던 공간이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어떤 말을 해야만 하나 망설이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청년은 자신이 결혼한 지가 일주일 정도 되었으며, 네 살 되던 해에 부모님은 이혼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런 이유로 어머니를 못 뵌 지가 한참 되었으며 얼굴도 희미하다고 했다.
여태껏 어머니를 뵐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았는데 막상 결혼을 하니 어머니의 존재가 더 간절해져서 찾아왔노라고도 했다. 덧붙여 어쩌면 어머니는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을 수도 있고, 가정을 이미 꾸리고 있다면 자신의 존재가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니 먼 발치에서라도 잠시 보고 가겠다고 했다. 엇갈리는 감정을 마음에 품고 삼십여 년을 살아온 청년의 섬세한 감성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졌다.
아무에게도 쉬이 꺼내지 못하고 가슴에만 품고 살아왔을 그의 애틋한 연민과 애정을 나의 감각들도 감지한 듯 팔에도 오소소 소름이 돋고, 마음은 장대비라도 맞은 듯 착잡해졌다.
그의 어머니는 당시 우리 동네에서 꽤 이름있는 사람이었다. 남편과 단둘이 살고 있었고, 카페를 운영했으며 혼인신고는 하지 않은 상태였다. 어쩌면 그분도 오늘처럼 아들이 올 것을 대비해서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개인정보보호법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후라, 주민등록이 함께 되어 있지 않은 그에게 어머니의 주소를 말할 수는 없었다. 당시의 법은 그랬다. 동글동글한 청년의 인상은 무척이나 부드럽고 맑아 보였다. 섣불리 판단을 못하고 미적대는 나에게 담담하고도 간곡하게 말하는 청년의 어투에서 왠지 믿음이 갔다. 나는 속마음으로‘어머니가 안 계셔도 잘 자랐구나’라고 지레짐작했다.
거제에서 서울까지의 거리는 당시 버스로 8시간 이상이 걸렸다. 게다가 버스 운행 회차도 몇 없었다. 청년의 목소리는 약간의 떨림은 있었지만, 나름은 태연한 척 애쓰고 있는 듯했다. 순전히 내 느낌인지 모르겠으나 울먹이는 듯도 했다. 그러나 법은 법이다. 이 법을 지켜야 하는 상태에서 어찌해야 하나 싶은 갈등이 풍랑처럼 내 마음에 일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너무나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헤어진다. 같은 상황이라도 사람에 따라 결과는 셀 수 없을 만큼 다르게 나온다는 것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미 터득한 후였다. 겉이 말끔하다고 하여 다 올바른 사람도 아니고 허술하고 비틀대는 듯해도 명확한 사람도 있다. 어머니의 심정을 헤아려야 하는데, 법에 어긋난다는 사실에 나는 집중하고 있었다.
그때 연결을 시켜줬는지, 안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추측해 보면, 어디로 가보라는 말 정도는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말이다. 그 당시를 떠올려보면 이혼한 사람은 흔치 않았고, 남의 일이라도 안 좋은 일은 쉽사리 입에 올리지를 않았었다. 그것이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라는 생각이었고, 사실이 그랬다.
그러나 요즘은 사람들의 사고와 시각이 많이 변한 것 같다. 우연히 티비에서 <우리 결혼했어요>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하게 되었다. 그 방송은 실제 부부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청춘남녀 한 쌍이 가상으로 결혼하여 함께 생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결혼을 가상으로 하다니!. 나의 편협한 시각에서는 신성한 결혼을 가상으로 한다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왠지 결혼이라는 의미가 퇴색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이혼 한 부부의 만남을 주선하여 서로의 마음을 엿보는 프로그램까지 등장 했다. 시대는 변했고, 그 나름의 긍정적인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현대적인 사람이 못 되었다. 여전히 이런 프로그램을 대할 때면 너무 사적인 부분이라서 저래도 되나 하는 노파심을 갖게 되는 것 이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시대가 변했다고 생각 할 뿐이고, 이럴 때 나는 내 나이가 많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이혼한 부부들이 다시 만나서 그 당시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면서 오해를 푼다는 내용에는 일부 공감이 된다. 미처 다하지 못했던 얘기를 꺼내어서 지금이라도 오해를 푼다면, 마음에 남겨져 있던 앙금이 풀리어 홀가분해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긍정성 때문이다. 그러나 불특정한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런 오해와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사적인 입장에서는 상당한 부담이 될 것 같다. 특히 인기를 갈구하는 연예인의 습성을 섬세하게 새겨본다면 그것이 개인의 이미지에 흠이 될 것 같아 조심스럽다.
누구에게나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은 있다. 그리고 마음 깊이 간직해 야 하는 것들도 있다. 다 드러내는 것이 옳은 것도 아니고, 마음에 모든 것을 차곡차곡 쟁여두고 가슴앓이를 하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니다. 자신 의 아픔이나 슬픔 그리고 기쁜 일을 타인과 나누는 것은 중요한 일이 다. 그렇지만 불특정 다수 앞에서 속속들이 들추어내는 것은 조금 더 고려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아무리 대중이 그런 것을 좋아한 다고 해도, 자신의 결핍이나 결점을 세상에 폭로하는 것은 삼가야 하리라. 남의 삶을 엿보기보다 자기의 내면을 세세하게 살펴보는 것이 익어 가는 세월 속에서 완성의 길로 접어드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인생의 가을이 깊어질수록 이런저런 생각이 깊어진다.
그때 청년은 어머니를 뵙고 갔을까? 부둥켜안고 울지는 않았더라도 따스한 차를 두고 마주하며, 조곤조곤 정담으로 모자의 정을 나누었으리라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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