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10월 6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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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간에 쥐 한 마리가 있다. 햇살을 받으며 배를 깔고 누운 모습이 더없이 평안하다. 고양이도 새도 인기척에 놀라지 않게 된 세태가 이윽고 쥐에게도 이르렀나 보다. 객(客)이부 산스레 드나드는 문 앞에 대자로 누운 쥐라니. 안방이 따로 없다. 한낮의 쥐가 태평해 보이고 오후는 더디 간다.
쥐를 비켜 지나 대웅전으로 들어선다. 초를 밝히고 향을 피운다. 속이 문드러지고 눈이 시려 옴은 손에 쥔 것을 놓지 못해서 일터. 화가 치솟았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내려 놓자고 들어선 곳에서 헛된 욕망을 대면하게 되니 헛된 염불이 따로 없다.
경내를 돌아 나온다. 쥐는 그 자리에 그대로 뻗어있다. 회색 털을 뒤집어쓴 생명이 꼼짝없이 누워 있는 게 누군가 설치해 둔 조각상 같아 보인다. 팔자 좋은 쥐라는 생각도 잠시. 쥐 아래 놓인 벌건 무엇이 시야를 지나간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리만치 움직임이 없다. 죽음이 가져오는 서늘함이 등골을 타고 내린다.
이 무심함을 어찌해야 할지. 쥐에게서 고개를 돌려 선다.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서둘러 문지방을 넘어선다. 서두르는 발길이 무겁다. 몇 걸음 못 가 멈춰서서 두 발을 붙들려는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본다. 소화 시키지 못해 보이지 않는 데 내려두었던 그 일이 발목을 잡고 있다. 이른 아침 도착한 문자 메시지에 잠을 깨서는 한동안 불면에 시달리게 된 그 날을 되돌려본다.
아들이 죽었다고 했다. 장례식 날짜를 알려왔는데 왜인지 가겠노라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너를 대면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잠자리에 든 아들의 몸에서 배어 나던 냉기를 입에 올리며 너는 소리 없이 울었다. 너는 하룻밤새 아들을 잃었고 나는 비틀거리는 네게 어깨를 내주지 못했다.
장례는 미국식으로 치른다고 들었다. 지인들과 함께 오전에 아들을 배웅하고 올 거라는 말이 귀를 건너왔다. 가능하면 참석하겠댔는데 무리해 일정을 조율하지 않았다. 죽음이 죽음 같지 않아서 너의 상실이 믿기지 않아서 만리타국에서 장례를 치러야 하는 네 현실을 수긍할 수 없어서. 나는 끝내 너의 마지막 배웅을 함께 하지 못했다.
일정을 소화하며 네게 남겨진 두 아이와 부인을 떠올렸다. 슬픔과 상실감을 저만치 덜어 두고 네 등을 눈앞에 소환했다. 굽고 푹 팬 어깨가 시야를 채워왔다. 그 옆으로 혹 같은 산 하나가 떨어져 나와 있는 것을 보았다. 산 위로 너만큼 큰 몸을 가진 세 살 지능의 청년이 겹쳐 보였다. 양육에 신음하던 네 한숨이 생생히 되살아났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하며 시름을 덜어냈다. 안도할 수 있음은 거리를 확보하고 있다는 뜻일 터. 숨을 내뱉던 그 순간 나는 너에게서 철저한 타인이었다.
주니어의 사망은 구체적인 원인을 알 수 없는 의문사로 남았다. 냉정 한 나를 채근하며 내생이 있다면 그때는 더 길게 너와 아들의 인연이 닿기를 기도했다. 그러면서 예리한 이성이 빚어낸 비현실적인 이별을 내내 곱씹었다. 수만 번을 반추해 봤지만 그게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살아있는 나이기에 죽음을 들여다보지 못했고 아이를 잃어보지 않은 나이기에 아비의 마음을 알지 못했던 까닭이었다. 그리하여 결국 소화해내지 못한 생사는 그대로 가슴에 박혀 남았다.
응고시켜 둔 죽음을 꺼내 본다. 전염병이 퍼지면서 아침마다 새로운 죽음을 맞아온 검은 날들이 지나간다. 수치로 남겨진 수많은 이들의 떠 남을 생각하며 무심한 속을 가만 들여다본다. 간밤에 숨을 거두었다는 이름 모를 사망자들이 어제까지 숨을 쉬고 밥을 먹으며 살아 있던 사람이 아닌 게 된 현실이 멍울이 되어 가슴에 남아 있다. 이야기 속 사건이 자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할 사태로 남은 죽음이라니, 이것은 실로 비극이다.
예상 못한 비극이 애도와 존엄을 앗아갔다. 병이 잡히지 않으면서 인 간도 때려잡으면 그만일 미물과 다르지 않게 되어갔다. 이동이 제한되고 동선이 까발려지고 개개인이 바이러스 인자로 인식되고. 널브러진 시체와 쌓여가는 관과 날 선 시선 속에서 죽음은 사무적으로 처리되었다. 사망조차 개인의 부주의에 의한 것이 되어 돌아오고 마는 비극 속에서 우리는 온기를 상실해 갔다.
죽은 자를 그리는 마음을 애도라 했던가. 무심함은 냉정함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거리를 메운 시체와 한방 가득한 관과 번지는 악취. 그게 현실일 수는 없었다. 검은 그 시간을 뒤돌아보며 생각한다. 전염병 확산 방지를 명목으로 수치를 내세우기 전에 고개를 먼저 숙여야 하지 않았을까, 시대의 비극으로 인해 생이별을 겪은 이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 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들의 치열했던 삶에 작별 인사를 건네야 하지 않았을까, 하고.
이렇듯 죽음에서 서글픔을 느끼고 있는 것 또한 산 자의 지독히 이기 적이고 서늘한 낭만일 터. 산 자가 고개 숙여 주지 않는 죽음은 안식에 들 수 없다. 가슴에 생긴 메워지지 않는 구멍을 만진다. 차고 쓰리다.
남겨진 생을 채 다 채우지 못하고 세상과 결별한 이들을 향해 손을 흔든다. 너무 늦어 미안하다며. 긴긴 여정 잘 살펴 가라며 고개를 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