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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양정

한국문인협회 로고 임현택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10월 6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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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를 훑은 바람은 호젓한 정자를 휘감아 돈다. 망루에 올라서서 동해를 한눈에 굽어본다. 노송과 어우러진 절경을 빚어 놓은 울진의 망양정 단청에 시선이 머문다. 계자난간에 기대어 활처럼 휘어 오른 겹처마 아래 우주 만물이 서로 어우러져 좋은 기운을 자아내라는 화려한 단청은 서양 건축처럼 여러 가지 색채도 아니다. 얼핏 화려해 보이지만 그저 청색, 적색, 황색, 백색, 흑색인 오방색이 전부다.
날렵한 처마는 위엄 있게 호령하는 나라님을 닮은 듯하다. 안온한 단청은 세상을 품어 안은 단아한 국모를 연상하니 평온하다. 망양정은 고려에 망양리 해변 언덕에 세워졌으나 세월이 흘러 허물어져 조선 세종 때 현종산 기슭으로 옮겼다. 그 후 오랜 세월 풍우로 낡아 중건 낙성한 것을 현 울진 군에서 이곳에 재보수한 것이다. 정자 하나가 허물어져 내려앉은 것이 무엇이 대수라고 예부터 나라와 지방에서 이전 하였는지 자못 궁금하다. 선인은 후인에게 무엇을 전하려 그리 많은 시간을 들여 보수하였는지 머릿속에 끝없이 물음표가 꼬리를 문다.
문인들의 시문이 편액된 망양정 마루에 앉으니 선인의 숨결이 부드럽게 감싼다. 편액을 보면 세속적 이익보다 학문과 덕성을 키우며 굴하지 않던 선비들, 정자에서 풍광을 빗대어 나랏일을 근심하고 염려하는 문인들의 고뇌가 묻어있다. 시인 묵객이 앞다투어 풍류를 노래하던 정 자, 발자취를 따라가니 마음이 두근거린다. 조선 숙종은 망양정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관동팔경 가운데 제일이라 하여‘관동제일루’라는 현판을 하사하였다. 정철 선생은‘하늘 끝을 못 보고 망양정에 올라서 하는 말이 바다 밖은 하늘인데, 하늘 밖은 무엇인고 가뜩이나 노한 고래 누가 놀라게 했길래 물을 불거니 뿜거니 어지럽게 구는구나.’「관동별 곡」중의‘망양정’절경을 이렇게 노래했다.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누구라도 풍광에 취해 시가 절로 나오니 빼어난 비경 망양정은 가히 관동팔경 중의 으뜸이다. 그 절경에 취해 모두가 시 한 수를 읊었으니 선 인께서 망양정을 낙성한 이유지 싶다.
동해안 절경에 심취되어 도포를 질끈 동여맨 세조대 자락이 흩날리며 시를 읊는 선비의 모습이 얼핏 스친다. 겸재 정선이 그린 망양정을 보면 깎아지는 듯 한 바위 절벽 위에서 파도가 너울거리는 동해안을 굽어본다. 정자 뒤로 송목이 우거져 있는 망양정 그 빼어난 비경 앞에 모두가 넋을 놓는다. 예나 지금이나 화가들은 망루에서 웅장하게 서 있는 망양정을 화폭에 담는다. 화선지에 위에 너울거리는 붓놀림 가늘고 굵게 번지는 바림, 정자를 휘감은 은은한 묵향에 취한다. 점 하나를 찍고 휘몰아치듯 화폭 위에서 창조되는 선비의 산수화 그 멋스러움에 숨이 멎는다. 정자에서 글과 그림으로 세상을 논할 때 단원 김홍도는 농촌이 나 전원 등 생활 주변의 풍경을 사생하는 데 관심을 두었다. 무동도, 씨름도, 대장간도, 주막도 등 지난한 서민의 소소한 일상을 그림으로 표현했으니 그나마 위안이 된다.
정자에 매료된 나는 시간만 있으면 동양의 건축을 사진으로 기록하여 산수담채화처럼 자연경관을 데생으로 화폭에 담아 소통한다. 꽉 채우지 않은 여백 고매한 인품과 학문이 녹아내린 망양정 풍경처럼 사색할 수 있도록 화폭 위에 여백을 남긴다. 고요한 사위 한 폭의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하려 소맷자락을 움켜잡은 화가의 마음도 이러했으리라.
산세가 수려하고 송림이 둘러싸인 기암절벽이 있는 곳이면 정자가 있다. 관동팔경만 해도 그렇다. 한반도의 척추인 백두대간 줄기로 이어 진 동해안의 명승지에 풍류와 시선이 곳곳에 남아 있는 정자다. 사회의 지배계층으로 양반과 서민들의 차별화된 생활로 양반가들이 즐겼던 곳 이어서 외면했다. 명예와 직책에 연연하지 않고 후학을 양성하는 깊은 뜻이 있음에도 양반과 권문세가의 풍월을 읊는 유희 장소라 여겨 부러 거리를 두었다. 누구나 호의호식하고 싶다. 벼슬아치들의 풍류 문화로 한가로이 즐기는 모습은 서민들의 서글픈 삶의 눈엣가시가 되어 아프게 찔러 된다. 마음이 궁핍하면 세상을 탓한다더니 쪼그라든 마음에 가 시를 세운 고슴도치처럼 화가 치민 내 영혼이 슬프다.
시인 묵객의 심금을 울렸던 아담한 정자를 톺아보면 건물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경치를 더 중요시한 것 같다. 수려한 곳에 사방이 훤하게 트인 고아한 정자에 머문다. 그곳에서 세상을 논하고 끊임없이 학문과 덕성을 키우며 꼿꼿한 선비정신을 다스렸으리라. 노송이 울창하고 햇살에 더없이 맑은 물이 흐르는 벼랑 위에 정자를 짓고 선인은 제자들에 게 수학을 양성하였다. 도를 닦는 마음으로 흰 도포에 좌선한 유생들의 학문을 논하는 차담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신의를 중요시 한 선인은 세파에 부딪혀 상처 난 마음을 자연에서 수련했으리라.
선인이 읊은 시는 신의를 지키는 우리의 정신문화를 떠받친 주춧돌 이요 기둥이다. 선비의 얼이 담긴 이곳, 이 시대 정신적 빈곤을 채울 수 있는 숨결이 살아 있는 정자가 아닐는지. 삶을 배우는 데 일생이 걸린다고 한다. 현세대의 직책과 높은 자리에 매달리는 이들에게 가슴 깊이 울림이 있으리라. 진정 나는 명예와 권세에 연연하지 않았는지 허울 좋은 문인이라는 이름만 붙여 놓은 아둔함은 없는지 되뇌어본다. 수년 동안 문단에 입회하여 글을 쓴다고 쫓아다녔는데 아류는 없었는지 우려가 앞선다. 세상을 굽어보는 망양정에서 나 자신을 먼저 신뢰하며 무늬 만 어른이 아닌 진정한 어른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 상념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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