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10월 6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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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협회 카드 발급을 하려면 대표자가 사인해야 한다며 함 차장이 농협에서 나를 만나자고 했다. 농협에 가면 내가 할 일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확인 작업이며 증명 입회에 불과하다. 따라서 나는 오랫동안 우두커니 앉아 있어야 한 다. 그래서 보르헤스의 소설 한 권을 들고 갔다. 그리고 농협 넓은 매장에 앉아 읽었다.
지하 감옥 중앙을 가로지르는 쇠창살 앞에 재규어가 있다. 재규어는 으르렁거리고, 오래된 그의 눈은 암흑에 빠져 버렸다. 신의 비밀 노트는 쇠창살 반대편에서 으르렁거리는 재규어의 몸 한가운데 얼룩무늬 사이에 씌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신의 비밀 노트를 해독했다. 이젠 그걸 말하면 된다. 이 쇠창살을 부수기 위해, 밤 속에 낮이 들어오기 위해, 젊어지기 위해, 영원히 죽지 않기 위해, 불타버린 피라미드를 재건하기 위해,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한마디 말 만하면 된다. 40 음절, 14 개의 단어. 그러나 나는 그 단어들을 결코 말하지 않을 것을 안다. 호랑이들에 쓰인 비밀은 나와 함께 죽으리라.
신문을 읽고 싶어도 종이신문이 사라진 지 오래다. 그렇다고 오래된 아무 잡지나 뒤적이는 것도 그렇다. 생면부지 아무나 붙잡고 이야기나 하자고 말을 걸기도 내 수줍은 성격이 허락지 않는다. 그래서 그렇게 앉아 책을 읽는데 여직원 하나 활짝 웃으며 달려와 묻는다.
“책을 읽으시네요? ”
그렇다고 답을 한다는 것도 안 한다는 것도 의미 없는 일이다. 그냥 우두커니 읽던 대로 앉아 그녀를 마주 보았다.
“그 연세에 글씨가 보여요? 연세 많으신 분들이 책 읽는 걸 보면 참 좋아요.”
그래, 그런데 그것만도 아닌 것 같다. 아무래도 일반 공중도덕에 부 합하는 장면은 못 되는 모양이다. 노골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어딘지 그런 뉘앙스가 풍긴다.
내가 이런 인사, ‘노인이책읽는것을보면좋다’라는 말을 들은 것 이 6개월 사이에, 세 번째다. 원주 부론면의 작은 병원에서 처방전을 들고 찾아갔던 약방의 여자 주인이 그랬고, 여주 삼성 내과의 처방전을 들고 갔던 약방의 약사도 그랬다. “연세 많은 분이 책 읽는 것은 보기 좋다”고. 그리고 오늘, 이 농협 로비에서.
처음엔 그 인사말을 액면 그대로 믿었다. 책 읽는 내가 진짜 부러움 의 대상이며 보기에도 좋은 줄로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오래된 이야기다. 고등학교 동창생을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때도 나 는 책을 들고 있었다. 그때가 첫 번째 수필집을 내려고 원고를 수집해 수정 중이라 시간이 나면 언제 어디서든지 책을 뒤적여 오타나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야 할 때였으니까. 그런데 이 친구 다짜고짜 “이××, 네 가왜책을읽어!” 하며책을 뺏지 못해 악을 쓰지 않는가. 아아, 이게 웬일일까. 급히 피한 적이 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공부란 걸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손뗀지오랜데, 나는 아직도 책을 들고 다니며 읽는다는 게 그가 보기엔 약이 올랐던 모양이다. 여간 꼴 보기 싫은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니꼽고, 더럽고, 치사하고, 역겹고, 구역질 나고….
‘늙어 아무짝에 쓸모없는 놈이 책을 읽다니. 이젠 책 안 읽는 게 미덕이란 것을 몰라? 이 멍텅구리 같은 놈아.’
아무래도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지난달 약사의 인사도 그렇다. 최근 에 다시 들렀더니 책을 들고 갔던 날과는 딴판으로 쌀쌀맞은 얼굴로 평 소보다 더 차갑게 처음 보는 사람 대하듯 냉랭하게 복용법을 설명했다. 사무적이다. 평상시 아는 체하던 웃음도 접었다.
‘그래 너. 다 늙은 놈이 어쩌자고 책을 들고 다녀. 학자는 대학에 얼 마든지 많아. 뭣 좀 안다는 놈들 도서관에 넘쳐나. 너 같은 놈이 길거리 에서 대기실에서 약방에서 학자 연하는 꼴은 옛날에나 거실의 풍경화 액자처럼 유효했지, 지금은 화장실의 낙서만도 못해. 인류의 잃어버린 희망을 소환한다는 것은 AI 시대의 공해야, 공해.’
내가 봐도 그렇다. 언젠가, 어느 병원에선가, 약방에선가, 노인 한 사람이 책을 읽는데 열심히 내용을 숙독해 가며 읽는 거 같지는 않았다. 어찌 보면 보여주기식 독서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가시지 않았다. 어딘가 뻣뻣한 자세며 힘이 들어간 표정이며 눈길의 어색함 등등….
추했다. 보기 싫었다. 나도 저렇게 보이겠지. 다시는 공공장소에서 책 절대 읽지 말아야 하리라. 정 읽고 싶다면 스마트폰에 전자책으로 내려받아 읽어야 하리라. 그런데 그것도 모든 책이 e북으로 전환된 것 은 아니다. 도대체 전자책은 몇 권이나 읽을 수 있을까. 인문학을 위한 전산화 작업이 잘 되었으리라 믿을 건 못 된다. 의외로 생각보다 저조한 분야도 수두룩하다. 그러나 어쩌랴 공공의 적, 표적이 되느니 그것이라도 감지덕지해야지.
10여 일 전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졸음에 겨워 힘들게 늘어진 젊은 학생의 스마트폰에 까맣게 입력된 대학노트 한 권 분량의 지식이 알알이 박혀 있었다.
봐라, 세상은 이처럼 완전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