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10월 6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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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근처를 흘러가는 강변에는 수심이 얕은 여울목이어서 돌들이 널려 있다. 모든 돌이 크기와 모양이 다르지만 하나같이 둥글고 매끄럽다. 물살에 떠내려 오는 동안 서로 부딪치면서 만들어진 돌들이다.
돌멩이가 부딪치면 약한 돌은 깨지고 모난 돌은 둥글어지면서 본래의 모양은 사라지고 새로운 돌이 만들어진다. 어 떤 돌은 심사를 거쳐 선발된 미인들처럼 좌대에서 버젓하게 뽐내고 있는 수석이 되지만 대부분의 돌은 자잘한 자갈이 되어 물살에 휩쓸려 굴러다닌다.
돌이 만나면 형체가 달라지는 것처럼 무쇠 덩어리도 다른 쇠와 부딪히면 변한다고 한다. 쇠가 마찰하면 겉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과학자들은 쇠 조직의 내부에 미세한 움직임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돌과 쇳덩어리만 서로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흐르는 물이 장애물을 만나면 흐트러지듯이 모든 만물은 다른 사물에 의해서 형상이 달라진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강물에 떠내려 오는 돌처럼 다른 사람들과 만나서 삶의 모습이 만들어진다.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바람결처럼 스치기만 해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진열대를 장식하는 수석처럼 고매한 인물이 되지만 모난 사람을 만나면 구렁텅이에 빠진 채 허우적거리는 낙오자가 되는 것이다.
사람이 가까이 있으면 돌과 쇠가 부딪칠 때처럼 몸과 마음이 금방 반응을 일으킨다. 좋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요람에 있는 듯 편안하지만 어떤 사람은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처럼 긴장감이 들면서 온몸의 세 포가 오그라들게 한다.
겉으로는 멀쩡해도 무쇠덩어리가 부딪칠 때 내부의 조직이 변하는 것과 같이 몸 안에서 이상 증상이 일어난다. 뇌의 신경계가 반응을 일으켜 서 가슴이 두근거린다. 머리가 어지럽고 소화불량 증상이 나타난다. 상대방의 기운이 내 몸 안으로 전달되어 파장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 복통으로 신음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반듯하게 뉘여 놓고 배를 문질러 주면서 ‘엄마 손이 약손이다, 엄마 손이 약손이다’라고 하면 어느 사이에 통증이 사라진 경험도 모성애의 영험한 기운이 작용했을 것이다.
바람처럼 스쳐가기만 해도 영향을 받는다. 설사 이름도 모르고 얼굴이 기억조차 없더라도 이미 상대방의 혼이 내 안에 들어오고 내 혼이 상대방의 어딘가에 들어가서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필연이든 우연이든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의지적으로 선택할 수가 없다.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신이 주 는 가장 큰 은혜라는 말도 그래서 있을 것이다.
나는 살아오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한결같이 경외심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마치 강물에 휩쓸리지 아니하고 산 위에 웅장하게 버티고 있는 큰 바위들처럼 우러르고 있다.
학창 시절, 실습 결과가 엉망이어서 풀이 죽어 있을 때, 모 교수님이 불쑥 ‘실망하지 말게. 자네는 인복이 있어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와 주는 사람이 나타날 것일세’하셔서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내가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것은 그 말씀이 씨앗이 된 듯하다.
중학교 시절에 만난 선생님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뭉클하다. 내가 학교 운동장에서 빈혈을 일으켜서 쓰러졌을 때, 등에 업고 다니면서 치료를 받게 해주고 이십 리 떨어진 산골에 있는 집까지 부축해서 동행해준 선생님의 선한 얼굴이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다.
기억하기 싫은 사람도 있다. 나에게 올무를 씌워서 곤혹을 치르게 한 사람이다. 사회 초년 시절, 이웃에 사는 몇 사람과 모임을 가졌다. 그 중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던 중, 참석하지 않은 사람을 지목하고 험담해서 나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조했다. 바로 이튿날 아침에 당사자가 오더니 행패를 부리기 시작해서 오랫동안 온갖 수모를 당했다. 나와 대 화를 나눈 사람이 헤어진 직후에 당사자를 찾아가서 이간질을 했던 것 이다. 그때를 계기로 누군가에 대해서 부정적인 말이 나오면 듣지 않으려고 회피한다. 나를 둥글게 만들려고 했던 사람한테 얻은 교훈이다.
나는 세월의 강물에 휩쓸려 굴러다니는 한 개의 돌이다. 부딪치고 깨 져서 만들어진 작은 돌이다. 고향에 가면 강변을 거닐면서 얼마나 매끄러운 돌이 되었는지 되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