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10월 6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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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학교의 폐교가 늘어나고 있다. 저출산과 인구의 도시 집중에 따른 농촌 인구의 감소로 적령 취학 아동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을 닫거나 아니면 겨우 10여 명의 학생으로 유지되고 있는 초등학교도 있다. 궁여지책으로 일찍이 한글을 깨우치지 못한 시골 노인들에게 문해(文解)의 기회가 되기도 하여 노인 학생들로 폐교의 위기를 버티어 나가는 학교도 있다.
글을 깨우치지 못한 국민이면 누구나 초등교육을 받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지만 한 교실에서 증손자와 증조할머니가 한 선생님 밑에서 함께 배운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이 시대의 풍속도가 아닐 수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제라도 한글을 깨우치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의욕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한평생 문맹의 고통속에서 살아온 한이 맺혔기 때문일 것이다. 자꾸만 멀어지려는 글자를 한 자 한 자 눈으로 익혀가며 또박또박 써 나가는 그 진지함은 가히 구도자의 모습이다. 그것은 혼을 담아내는 일이다. 그만큼 사무쳤기 때문일 것이다. 한 자 한자 알아가는 것이 얼마나 신기할 것인가. 한 평생 노동으로 일그러지고 굳은살 박인 그 손끝에서 글자가 만들어져 나오는 것을 보면 스스로 얼마나 대견스러울 것인가.
나는 손글씨를 대하면 그 사람의 얼굴을 대하는 것 만큼이나 반갑고 진심이 느껴져 마음이 편안해진다. 손글씨에는 그 사람의 혼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필적을 보고 필자를 알 수 있다는 것은 글씨가 곧 그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손주가 할아버지 생신에 손글씨로 편지를 써 왔다. 얼마나 반듯하게 잘 썼는지 읽고 또 읽었다. 내용이야 어떻든 그런 건 문제가 아니었다. 얼마나 오랫 만에 받아보는 손글씬가. 사실 아들도 손글씨를 잘 써서 초등학교 때 쓴 공책 한 권을 내가 몰래 보관 하고 있는 중이 아닌가. 글씨도 손재주라 하였으니 집안의 내력이 아직 이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한결 흐뭇해진 마음이 되어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본다.
공책은 무엇을 쓰거나 그릴 수 있도록 백지를 묶어 놓은 것이다. 요즘 말로 빈 노트이니 공책은 옛날 말이다.
노트에는 줄이 그어져 있지만 옛날의 공책에는 줄이 그어져 있지 않았다. 일정 간격으로 줄을 그어 놓고 선 따라 바르게 글씨를 쓰고 싶었지만 선생님은 공책에 줄을 긋지 못하게 하셨다. 글씨도 꼭 연필로 써야만 했다. 그것은 잘못 썼거나 비뚤어진 글씨는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여 글자를 익히게 하고, 밑줄이 없는 백지에도 글씨를 바르게 써 나가도록 하기 위한 수련의 과정이었다는 것을 뒤에야 알았다.
그 시절, 과목마다 공책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공책 한 권에 초등학교 전 과목의 이것저것을 다 써야 했다. 그래서 어른들은 공책을 잡기장(雜記帳)이라고도 했다. 물자가 너무 귀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중학교에 진학해서야 비로소 줄이 그어진 노트에, 잉크를 찍어 쓰는 펜글씨로 노트 정리를 할 수 있었다. 펜은 잉크를 많이 찍으면 펜촉으로 흘러내려 한 방울 뚝 떨어지기 일쑤였다. 글씨가 빨리 마르지 않아 다음 장으로 넘기려면 입으로 호호 불어 가며 한참을 기다리기도 했다. 그러기에 펜글씨를 익히는 데는 많은 시간을 들여 요령을 터득해야 했는데, 그렇게 익혀서 쓰는 펜글씨는 글자에 힘이 넘치고 정리된 글은 인쇄처럼 선명했다.
그 시절 면사무소의 서기라도 하려면 우선 글씨를 잘 써야 했다. 글씨 잘 쓰는 사람은 책상머리에 앉은 행정사무가 맡겨지고 글씨가 시원찮으면 현장 업무가 맡겨졌다. 글씨 잘 쓰는 사람이 곧 업무능력이 뛰어난 사람으로 평가받던 시절이었다. 군대에서도 글씨 잘 쓰는 사람은 행정요원으로 뽑혔다.
사무직일 경우 글씨를 반듯하게 잘 쓰지 못하면 직장에서도 어려움이 많았다. 모든 문서는 손글씨로 작성해야 하는데 글씨가 반듯하지 못 하면 글씨 잘 쓰는 동료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하다 보니 글씨 쓰기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이를 필경사(筆耕士) 라 했다.
관공서에서는 기관장의 결재를 받아야 하는 주요 문서를 대필(代筆) 하는 필경사를 따로 두기도 하였는데 그들의 행세가 대단했다. 동료 직원이라도 친소(親疏)에 따라 긴급한 문서의 필경을 뒤로 미루기도 하여 애가 닳았다. 그러나 그들도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거나 다른 잡무를 맡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컴퓨터의 출현은 행정사무뿐만 아니라 모든 글쓰기의 혁명이었다. 삭제와 보완이 자유로울 뿐 아니라 다양한 크기와 다양한 글체와 다양한 색상의 글자로 읽기 편하고 이해하기 쉽도록 편집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잘쓴손글씨일지라도 이에 견줄 바가 아니었다.
지금은 컴퓨터가 아니고서는 긴 글을 쓸 수가 없다. 특히 문필가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신속성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밀어내고, 끼워 넣고, 오려 붙이고, 이리저리 옮겨 놓고, 복사기로 뽑아내고, 모든 과정이 능률적이다. 그냥 손가락으로 콕콕 찍기만 하면 된다.
이제는 공책도 필요 없게 되었다. 모든 자료는 컴퓨터에 저장해 놓고 필요시마다 열람하거나 프린터기로 뽑아내면 되니 손글씨로 옮겨 써서 보존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문명의 결과로 요즘 젊은이들에게서는 손글씨 쓰는 일이 사라지고 있다.
예쁜 색종이에 정성껏 써서 오고 가던 연분홍 사연의 연애편지도, 어머니를 눈물 짓게 하던 아들의 군사우편도 이제는 먼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단정한 손글씨에 마음이 끌린다. 잘 써진 한 줄의 손글씨를 보면 마음이 두근거린다. 산골 마을의 할머니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한글을 배우는 장면에는 마음이 뭉클해진다. 연필에 침 묻혀 가며 공책에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쓰는 그 순박하고 진지함에 내 스스로가 젖어 드는 느낌이다.
컴퓨터 글씨는 기계에서 빠져나온 공산품이지만 손글씨야말로 정성으로 빚어낸 수제품이니 글쓴이의 진심이 담긴 친근함이고 진정성이며 다정함이 아닌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쓰는 손글씨의 여유가 요즘 세상에서도 누구에게나 일상의 한 자락으로 이어져 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