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10월 6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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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석 달 전부터 병원에서 누워 지냈다. 몸은 이미 굳을 대로 굳었는데 가끔씩 정신이 돌아오면 마른 입술을 움직거렸다. 엄마의 입술이 하는 말을 나는 눈으로 읽었다. 오빠를 찾았고 막내 순미를 찾았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지가 눈앞에 있는 듯이 바라보며 알아 듣지도 못할 말을 중얼거렸다.
“저기… 안, 안 돼…저기…가지 마, 저….”
앙상한 엄마의 손끝이 가리키는 그 어디쯤에 누군가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아버지든 오빠든….
오빠는 지상에서 사라진 사람처럼 행방이 묘연했다. 오빠를 생각하면 난 양미간이 올라붙는다. 그런 내 마음을 알면서도 엄마는 오매불망 오빠 생각뿐이다.
여동생 순미는 돈을 벌어가며 양재기술을 익힌다는 핑계로 밤낮 없이 바빴다. 그러다 보니 엄마 가까이 있는 내가 자연스럽게 엄마의 간병을 하게 되었다. 시장 상인사무실에서 경리사무를 보는 나는 퇴근하면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가야 했다.
“니가 고생이구나. 쯔쯔.”
우리 집 사정을 아는 시장 상인들은 나를 동정했다. 엄마는 이미 식물인간에 가까웠다. 지금이라도 산소 호흡기를 떼면 그대로 숨이 멎을 것이었다. 연명치료거부는 차마 할 수 없었다.
병원에 먼저 누운 건 이모였다. 길을 가다 그냥 픽 쓰러졌다는데 이모는 그 길로 구급차에 실려 갔다. 엄마는 이모의 입원 소식에 자신이 입원한 것보다 더 불안해했다. 엄마는 극도의 불안 증세로 손을 떨었다.
“이모는 어디가 편찮으셔요? ”
“아직 모른다. 며칠 입원해서 종합검진을 해봐야 안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오히려 안심했다. 이모의 종합검진은 대학병원 간호사인 현미 언니가 서둘렀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늙으면 다들 죽어야 하는데… 늙으면 다들 여기저기 아프지, 안 아픈 사람이 어디 있냐. 그래도 현미는 지 엄마를 끔찍하게 챙기더라.”
엄마가 말하는 종합검진은 해마다 국가에서 시행하는 건강검진 이야기가 아니었다. 대학병원에 예약해서 하는 특별한 건강검진을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엄마는 뭐든 이모가 하는 대로 하고 싶어 했다.
자식이라고는 달랑 현미 언니 하나뿐인 이모는 언니를 지극정성으로 키웠고, 언니는 보답하듯 이모에게 극진했다.
달랑 딸 하나 낳아 지극정성으로 키운 이모에 비해 엄마는 자식을 셋이나 두었다. 가난한 살림에, ‘지극정성’은 오빠한테나 해당되는 것이 었고 나와 여동생 순미는 겨우 고등학교까지만 다닐 수 있었다. 그나마 엄마의 공치사를 수도 없이 들어가면서!
“내가 느그들 키운다고 등골이 다 휘었다.”
그런 말을 할 때도 오빠는 늘 예외였다. 오빠는 공부를 잘 해서, 소위 말하는 S대 법대에 들어갔다. 오빠가 합격 증서를 엄마에게 보여드리던 날, 엄마는 오빠를 끌어안고 눈물콧물 다 흘려가며 울었다. “이제 고생 끝났다. 행복시작이다.”
설마.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엄마의 말은 틀렸다. 기숙사로 들어가기 전만 해도 오빠의 눈은 순하고 착하고 어질었다. 어서 출세해서 가난한 집안을 일으켜 보겠다는 의지도 단단했다. 엄마는 정말로 등골이 휘게 오빠 뒷바라지를 했다. 생선 장사를 하면 어떠랴, 밥을 제대로 못 먹으면 어떠랴, 계집애들 고생 좀 하면 어떠랴, 지들 오라비가 성공하면 다 보상해 줄 텐데. 이 어미 고생한 것도 다 알아줄 텐데….
엄마의 마음은 그랬다. 국립대학이라 학비가 많이 드는 건 아니었지만 오빠에게는 학비 따위가 문제되는 게 아니었다. 세상을 만만하게 보았던 오빠는 급기야 가난한 집안을 원망하기에 이르렀다.
“썩은 동아줄이라도 있어야 뭘 잡아보지.”
그 말을 하는 순간부터 눈빛이 달라진 오빠는 우리 식구가 아니었다. 오빠의 그 말에 엄마는 기가 팍 죽어 아무 말도 못했다. 잘 키운 아들은 사법고시에 몇 차례 떨어지더니 집을 나가버렸다. 주워들은 말로는, 아무리 똑똑해도 그 바닥에서 승승장구하려면 집안이 받쳐줘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못하면 평생 한직을 떠돌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가난 한 집안의 수재는 부잣집 딸과 결혼을 한다지. 그건 어찌 보면 야합이고 거래이고 신성한 결혼에 대한 모독일 수 있지만, 그래도 그런 결혼은 마땅히 축복받았고 충분히 신성하게 여겨졌다. 한때 신데렐라의 환상을 믿었던 나는 그런 일들이 속물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빠는 어찌 된 일인지 사법고시에 번번이 떨어졌고, 멀쩡하게 잘 생겼으면서도 부잣집 딸 만나는 일조차 쉽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소망은 점점 간절해졌고 순미와 나는 점점 힘들어졌다. 월급을 타면 고스란히 엄마에게 바쳐야 했다. 나중에 니 오라비가 다 보상해 줄 거여, 라는 말로 엄마는 당당하게 두 딸의 입을 막았다.
사실 엄마의 그 말은 주술 같은 힘이 있었다. 순미는 엄마의 그 말을 믿었다. 나중에, 니 오라비 친구 중에 착실한 놈 하나 골라 시집가면 될 거고. 그 말도 믿었다. 하지만 오빠는 가족의 기대를 배신하고 사라 졌다.
엄마에게는 그즈음부터 건망증이 찾아왔다. 칼을 들고 칼을 찾는다 거나, 이불과 이불 사이에 돈을 넣어두고 못 찾는 일이 잦았다. 그러다 돈을 찾으면 공돈이 생긴 듯이 기뻐했다.
“아이구, 이 돈이 공돈이네. 이걸로 시장이나 봐야겠다.”
그런 날은 나와 순미를 앞세우고 시장에 갔다. 그럴 때 우리는 다른 날과 다른 혜택을 누렸다. 시장에 있는 냉면집에서, 보기만 해도 절로 군침이 도는 비빔냉면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러한 일은 평소에 누리지 못 하는 특별한 혜택이었다. 철없이, 오빠가 집을 나간 덕이라 생각했다.
오빠가 집을 나간 후 엄마는 단 한 번도 오빠의 안부를 궁금해 하지 않았다. 어쩜 오빠와 엄마가 몰래 연락을 주고받는 거나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할 정도로 엄마는 일체 오빠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았다. 이웃들이 오빠에 대해서 물으면 미국으로 공부하러 갔다고 능청스럽게 말했다. 그러고는 오빠가 선물을 보내왔다고도 했다. 그건 미제 립스틱이 나 미제 연필, 혹은 미제 깡통 같은 것들이었다. 사실 그런 것들은 남대 문시장에 가면 얼마든지 살 수 있는 물건들이었다. 돈이 있다면!
오빠가 사라진 뒤로 엄마는 일을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장 상인회 사무실에서 일하는 나와 양장점 시다로 취직한 순미가 돈을 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순미와 나는 마치 빚을 갚듯이 월급 받으면 꼬박꼬박 엄마에게 가져다 바쳤다. 그러면 엄마는 큰 선심이라도 쓰는 듯이,
“엣다, 이건 용돈이다.”하며 쥐꼬리의 일부를 떼어주었다. 나중에 순미가 악을 쓰며 내게 덤볐다.
“언니가 엄마한테 월급을 다 드려야 한다 해서 요 모양 요 꼴이잖아. 난 양재학원 다녀서 양장점 내고 싶은데 돈을 모을 수가 없잖아! 이건 착취다 착취! ”
순미는 나보다 계산속이 밝았다. 내가 세상에 먼저 나왔다 뿐이지,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순미가 훨씬 빨리 깨치고 있었다. 그렇게 바락바락 덤벼들던 순미가 어느 날 집을 나가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뭐, 뭐라고? ”
순미의 말에 엄마가 풀썩 주저앉았다. 이미 오빠의 가출만으로도 엄마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간 상태였다. 얼굴이 하얘진 엄마가 벌벌 떠는 모습을 본 순미가 풀죽은 목소리로 순하게 말했다.
“양장점에서 숙식하면서 양재 배우려고요.”
의심쩍었던 엄마는 양장점까지 가서 확인을 했다.
“아유, 염려 마세요, 애가 야무지고 성실해서 성공할 거여요.”
양장점 주인의 말에 엄마의 걱정이 사라지는 듯했지만, 집에 들어오 지 않는 날부터 순미는 월급을 내놓지 않았다. 한숨 쉬는 엄마가 내 몫 이 되는 건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경미야, 너만 불쌍해졌구나.”
시장 상인회 아주머니들이 혀를 끌끌 찼다. 눈물이 찔끔 나왔지만 그 누구도 원망할 수 없었다. 엄마가 자주 하는 말, ‘찌그러진 내 팔자’라 는 말이 내 머릿속에 맴돌 뿐이었다.
가족이라는 건 서로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있을 때 형성되는 관계다. 엄마, 아빠, 오빠, 나, 순미는 가족이었다가 뿔뿔이 헤어졌다. 아니, 흩 어졌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오빠는 오빠대로, 순미는 순미대로, 계 산속이 영악한 두 사람은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서 가족들을 등졌다. 엄 마는 내가 다른 생각을 못하도록 못을 박았다.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건 당연한 일이지. 예부터 맏딸은 살림밑천이랬다.”
왜 나만, 하는 불만은 목울대를 넘지 못했다. 양재를 배운다는 핑계로 집을 나간 순미가 집을 찾은 것은 엄마 생신 때였다.
“언니, 엄마 생신 때 내가 식사 대접할 테니까 힘들게 미역국 끓이고 그러지 마.”
케이크 하나 사들고 와서 중국청요리를 대접한 순미는 엄마에게 선물까지 내밀었다.
“이게 뭐냐? ”
엄마의 눈에 기대감이 그득했다.
“내가 며칠 밤새워서 만든 작품이야.”
순미의 표정은 행복해보였다.
“뭔 작품? ”
엄마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선물포장지를 찢었다. 그 속엔 정성들여 만든 조그만 헝겊 가방이 들어 있었다.
“이걸 니가 만들었다고? ”
엄마는 순미가 만들었다는 헝겊 가방을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만족 한 선물은 아닌 듯했지만 가방을 만지는 손길은 따뜻했다. 조각헝겊을 이리저리 덧대어 손바느질한 조그만 가방은 아름답고 고급스러웠다. 순미는 그 가방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엄마에게 만 원짜리 일곱 장을 세 어 내밀었다. 순미가 무심하게 말했다.
“럭키 세븐, 가방 가득 돈 들어오라고.”
순미가 내민 일곱 장의 지폐는 간절한 기도였을 것이다. ‘7’이라는 숫자는 맹목적인 행운의 숫자였다. 그래, 이 가방이 넘치도록 돈을 모으마. 그렇게 말하며 잠시 웃음을 보인 엄마는 그 날 이후로 그 가방을 늘 끼고 다녔다.
퇴근하고 순미를 만나러 갔다. 명동 바닥 어디쯤, 후미진 골목에 있는 그 양장점은 그런대로 손님이 많은 듯했다. 방금도 잘 차려 입은 여자가 주인의 배웅을 받으며 나왔다. 순미는 보이지 않고 몇 번 본 주인 여자가 쭈뼛쭈뼛 안을 살피는 나를 먼저 알아보고 알은체를 했다.
“순미 언니네. 어쩐 일이야? 순미 보러 왔어? ”
붉은 립스틱 사이로 가지런한 하얀 이가 참 예쁜 여자였다.
“네에, 본 지가 오래 되어서요….”
나는 무슨 죄라도 지은 아이처럼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어쩌나, 순미 학원 갔는데.”
“하, 학원요? 무슨 학원요? ”
“일 끝나고 양재학원 다니잖아. 순미 고것이 얼마나 야문지 몰라. 낮 에는 일하고 일 끝나면 학원 가 공부하고, 돌아와서는 청소까지 깔끔하게 해놓고 자거든.”
“네에….”
“순미 언니는 이름이 뭐야? ”
“경미요.”
“그럼 경자는 무슨 경 자 써? ”
양장점 주인은 만날 때마다 쓸데없이 이것저것 물었다. 호기심이 많은 여자였다.
“서울 경 자요.”
“호호호, 서울 경 자면 서울 살아야 되는 거 아냐? ” 농담인지 뭔지, 기분이 나빴다.
“아버지가 다치시기 전에는 서울 살았거든요.” 나는 조금 샐쭉해져서 여자를 흘겨보며 말했다. “그래? 어디 살았어? ”
“상도동이요.”
“상도동 어디? ”
“장승배기요.”
나는 순한 아이처럼 묻는 말에 고분고분 대답했다.
“아, 장승배기? 나도 몇 번 가본 적 있어. 고만고만한 집들이, 비탈길을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동네잖아.”
여자는 명동에서 양장점을 한다는 게 자랑스러운지 고개를 약간 쳐들고 말했다.
“거기서 왜 시골로 간 건데? ”
순미라면 그 많은 질문 중 어디쯤에서 ‘그런 걸 왜 묻는대요? ’라거나 눈을 내리깔고 대답을 안 했을 것이다. 수원에 산다는 건 그녀에게 시골일 뿐이었다.
“아버지가 편찮으셔서요.”
아버지 병원비 때문에 집을 팔고 수원으로 이사 갔다는 말은 나에게 도 그리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음, 그랬구나…. 순미 돌아오려면 10시는 돼야 하는데 기다릴래? ” 여자가 목에다 부드러운 밍크목도리를 두르며 나를 바라봤다. “그, 그래도 될까요? ”
사무실에서 퇴근하는 길로 집에도 들르지 않고 서울 행 기차를 탔다. 나는 사실 배도 고프고 몹시 피곤했다.
“그러렴, 기다렸다 자고 가도 돼.”
여자가 고개를 까딱거리며 살짝 웃었다. 자고 가도 된다고? 그러고 보니 순미와 할 이야기가 많은 것도 같았다. 어쩔까, 생각하며 창밖으 로 시선을 돌렸다. 겨울이라 어둠이 일찍 내려앉고 있었다. 핸드백을 챙겨든 주인 여자가 향수 냄새를 풍기며 나갔다. 구석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여자아이가 살그머니 내 곁으로 다가와 앉아 종알대기 시작했다.
“우리 사장님, 어디 사는지 아세요? ”
“몰라요.”
“집이 영등포 문래동이거든요. 아까 상도동 이야기할 때 문래동이 더 후진 동네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아….”
나는 생각 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명동에서 양장점 하는 걸 대단하게 생각하는지 사람만 보면 꼭 어디 사냐고 물어본답니다.”
여자애가 입을 삐죽대며 창밖을 향해 눈을 흘겼다. 그와 동시에 벽시 계가 뎅뎅 울렸다. 여자가 벽시계를 보더니 몸을 일으켰다.
“우리 사장님, 겉으로는 상냥해도 무서운 여자예요. 석유 눈금도 퇴근하기 전에 다 확인하고 적어두는 분이죠. 추워도 참으셔요.”
그녀가 서둘러 석유난로를 끄고 나가면서 말했다. 그녀가 사라진 가게에서 나는 어둠 속에 버려진 인형처럼 멀거니 앉아 있었다. 겨우 사 물이나 식별할 정도의 어두운 전구 하나만 켜진 실내에 남은 건 메케한 석유 냄새뿐이었다.
그렇게…시간을 죽였다. 순미가 올 때까지. 눈물이 났고, 순미가 불쌍했다가, 대단해 보였다가, 그러다 답답하고 무능한 나 자신에 대해서는 화가났다.
순하게 낳았다고 순미. 그녀의 이름이 새삼 곱씹어졌다. 나는 슬그머니 일어나 양장점 구석구석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쪼가리 헝겊과 실밥 과 갖가지 자투리 레이스들이 어지럽게 널린 양장점 바닥은 하루치의 일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저걸 순미가 공부 하고 돌아와 다 치우고 쓸고 닦고 하는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언짢았다.
순미는 10시가 넘어서 돌아왔다. 피곤한 표정이 역력한데도 나를 보자 환하게 웃었다.
“언니 언제 왔어? 미리 전화라도 하고 오지. 그럼 하루쯤 학원 안가도 되는데.”
그녀는 털실로 짠 목도리를 풀러 탁자에 놓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춥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직원이 난로를 끄고 간 후에 혼자 어둠 속에 앉아 있었던 터라 내 몸도 얼어있었다. 찬바람을 몰고 들어선 순미는 발간 볼을 두 손으로 비비며 서둘러 난로를 켰다. 석유냄새와 함께 발간 불꽃이 사랑처럼 피어올랐다. 불꽃이 온기로 변해 금세 실내가 훈훈해졌다.
“난로라도 켜고 있지, 답답한 거는 여전하네.”
순미는 어둠 속에 오도카니 앉아 있던 나를 보고 질책하듯 말했다. 나는 모처럼 따뜻한 눈길로 순미를 쳐다보며 말했다.
“양재 배우는 거는 재미있니? ”
“응, 엄청. 난 나중에 양장점 내서 돈 많이 벌거거든.”
순미의 눈이 반짝거렸다. 매사 욕심 많은 순미는 나랑 닮은 구석이 별로 없었다. 나는 건성 고개를 끄덕였다.
“나, 이런 거 만들면서 남은 시간 보내.”
방 안으로 들어간 순미가 외투를 벗자마자 예쁜 쿠션 하나를 꺼내왔다. 동그란 모양의 쿠션이었는데 색색의 헝겊이 조화롭게 어울려 아름다웠다.
“저녁에 공부도 한다면서 이런 건 언제 하니? 피곤할 텐데….”
나는 그걸 받아들고 조각조각의 헝겊을 골똘히 들여다보면서 심취했을 순미의 시간들이 떠올라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쪼가리 헝겊을 모아 서 어찌 그토록 어여쁜 쿠션을 만들 수 있는지…. 쓰레기같이 널려 있는 수많은 헝겊 조각들 중에서 그래도 쓸 만한 헝겊을 모아, 전혀 새로 운 물건을 만들어내는 순미의 재주는 탄복 할 만했다. 그건 자신의 인생을 빛나는 인생으로 만들어보려는 순미의 의지처럼 느껴졌다.
“그거 만드는 데 두 달 걸렸어.”
순미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런 거 만들어서 파니? ”
“가끔. 양장점 단골손님들이 주문하기도 하고. 마음에 든다는 손님이 있으면 팔기도 하고. 쏠쏠한 부수입이야. 지난번엔 단골 사모님이 여섯 개나 주문해서 그거 만드느라 몇 달 고생했지. 덕분에 수입이 쏠쏠했어.”
그 말을 하면서 웃는 순미의 표정이 무척 피곤해 보였다.
“너무 힘들게 일하지 마. 건강 생각도 하면서….”
그런 말밖에 할 수 없다는 것에 울컥해서 목이 메었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못해. 그냥 무념무상의 상태로… 오히려 조각 헝겊을 맞추어 뭔가를 만들 때… 오히려 그 순간은 쉬는 거지.”
그렇게 말하는 순미의 말을 나는 다 믿을 수 없었다. 영리한 아이였다. “언니 줄 것도 만들어 뒀어.”
“나한테 줄 것? ”
“응. 난 가끔 언니가 그립거든. 그때마다 한 조각 한 조각 이어나갔어. 물론 색감도 맞추어야 하고 무늬도 맞추어야 하지만, 그때쯤 되면 불행한 내 시간들이 멈추어서. 조각조각 헝겊을 이어붙일 때는 나도 모르게 행복해져.”
“행복해져? ”
“응. 버려지는 쓰레기가 아니라 아름다운 물건으로 환생하는 쪼가리 헝겊들이 고마워서.”
순미의 말을 들으며 나는 말없이 쿠션을 쓰다듬었다. 순미도, 나도, 정작 할 말은 피한 채 엄한 대화만 나누고 있었다. 나는 순미에게, 병원비가 많이 밀렸어, 엄마의 상태가 최악이야, 언제 운명하실지 모른대, 호흡기만 떼면 그대로…그런 말을 해야 했고, 선미는 나에게, 엄마 상태가 어때? 병원비는 얼마나 밀렸어? 언니, 너무 힘들지? 그런 말들을 물어야 했다. 꽃밭 같은 쿠션만 만지작거린 채 긴 침묵이 흘렀다. “저녁 안 먹었지? ”
순미가 먼저 입을 뗐다.
“으응, 뭐….”
“에구, 답답이. 나가자. 포장마차 가서 우동이라도 먹고 오자.”
순미가 벌떡 일어나 내 손을 잡아끌고 나섰다. 포장마차에서도 우리는 말을 아꼈다. 그저 뜨끈한 우동을 한 그릇씩 먹었고 말없이 소주 한 병을 나누어 마셨다.
“어이, 아가씨들. 우리 나이트 갈까? ”
침묵을 가르듯 휘장을 젖히고 들어선 취객 둘이 혀 꼬부라진 소리로 지껄였다. 걸음걸이로 보아 꽤나 마신 모양이었다.
“됐거든요, 아저씨들끼리 드세요.”
순미가 까칠하게 대꾸했다.
“우리, 아저씨 아니걸랑요. 순수한 총각이걸랑요.”
실실 웃으며 농지거리를 걸어오는 취객들의 눈동자가 풀어져 있었다. 순미가 발딱 일어났다. 그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술값만 치르고 내 손을 잡았다. 그들의 희롱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 자리에 더 오래 앉아 있었을까? 그랬다 해도 여전히 말없이 앉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 다 어쩜…서로 껴안고 울었을지도 모른다. 밤새 창문을 흔드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순미와 나는 꼭 부둥켜안고 잤다. 말없이 손만 잡고.
다음날 아침, 나는 일찍 기차를 타고 수원으로 내려왔다. 역까지 배웅 나온 순미가 열차에 오르려는 나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서로 웃어보였다.
“병원비가 밀렸을 거 같아서 조금 넣었어.”
봉투를 받으면서도 염치가 없어서 슬쩍 순미의 시선을 피했다.
“이건 내 생각하면서 사무실에다 놓고 써. 쿠션이야.”
순미가 종이가방을 불쑥 내미었다. 한 땀 한 땀 손바느질로, 버려진 헝겊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을, 진지하고 경건하게 했을 순미를 생각하니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버려진 것들을 아름답게 살려내려는 순미의 마음을 읽은 것 같아 가슴이 더욱 뭉클했다. 나는 수원으로 오는 내내 순미가 내밀었던 가방에 얼굴을 묻었다. 운 건 아니었지만 가슴이 칼로 베인 듯 쓰리고 아팠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순미가 준 종이 가방에서 쿠션을 꺼냈다. 곱게 싼 얇은 포장지를 펼치자 꿈같은 문장이 적힌 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언니, 우리는 꼭 축복받는 삶을 살게 될 거야.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트리 모양으로 이어붙인 동그란 쿠션 가운데에 작은 카드가 하나 끼워져 있었다. 아, 어느새 크리스마스? 메마른 겨울이 이어지는 나날, 성탄의 기쁨 따위 나에게는 사치였다. 축복받는 삶은 그녀가 원하는 삶일 것이다. 나는 그 카드의 문장을 곱씹으면서 오랫동안 울었다. 알록달록한 크리스마스트리는 그 수많은 쓰레기 헝겊 속에서 살아 난 것이리라.
어느새 한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눈도 내리지 않는 겨울은 혹독하고 맵기만 했다.
연말결산을 하느라, 정말 눈코 뜰 사이 없이 바빴다. 시장상인회의 회장은 눈치껏 봉투를 만들라 하고 나는 그런 일에 서툴러 경리과장에게 욕을 먹어야 했다.
“그렇게 눈치 없이 맑고 투명하게 어떻게 세상을 살아? ”
과장은 혀를 끌끌 차면서 나를 흘겨봤다. 칭찬일까? 아니 욕이야, 맑고 투명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의 말뜻도 못 알아채니 눈치가 없는 게 맞는 거다.
“너무 나무라지 말게. 지금 경미씨 정신이 제정신이겠어? ”
상인회 회장이 나를 두둔했다. 그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속은 알 수 없지만, 그 순간 상인회 회장의 말은 진실하게 들렸다.
퇴근 무렵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엄마가 의식이 돌아와 막내딸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불안했다. 나는 순미에게 전화를 걸어 얼른 수원으로 내려오라고 했다.
“엄마가 의식이 돌아와서 널 찾으신대.”
목소리에 울음이 고였다. 놀라는 순미와 지극히 짧은 통화를 하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는 경과가 좋아서 정신이 돌아온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 말에 숨겨진 뜻을 알 것 같았다.
겨우 눈을 뜬 엄마가 내 손을 잡았다. 오랜 동안 열리지 않던 입이 무겁게 열렸다.
“수, 순미는? 니 오라비는…? ”
“오고 있어요.”
나는 차가워지는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내가 오히려 더 얼어있었다. 덜덜 떨렸다.
“그래, 이거….”
야윌 대로 야원 손으로 엄마가 침대 밑에서 꺼낸 건 쪼가리 헝겊을 모아 순미가 만들어 준 헝겊 가방이었다.
“이게 뭐야, 엄마? ”
“서, 선…무…물. 마, 마…지…막…. 미…미안…하….”
바짝 마른 입술을 축여가며 엄마가 한 말은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엄마가 바튼 숨을 쉬기 시작했다. 숨을 몰아쉬며 나를 바라보는 눈에 회한이 그득했다. 눈동자 안에 오빠가 그득했다. 엄마는 늘 베개 밑에 다 깔고 있던 헝겊 가방을 내 손에 쥐어주고 눈을 감았다. 엄마가 마지 막으로 남긴 유산이 그 안에 들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큰 기대는 없었다. 유산이라고 남길 만한 재산이 없기도 하였지만 엄마의 죽음 앞에서 그걸 펼쳐 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어쩜 복권 당첨된 돈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다가 피식 웃었다. 엄마는 복권을 사온 날 저녁에는 주술 같은 말을 했다.
“복권 맞으면 너희들에게 똑같이 나눠 줄 거야.”
가진 것이 없는 엄마는 늘 그런 말로 우리들 앞에서 당당했다. 유산을 나누어 줄 수도 있다는 황당한 당당함.
“복권이 그리 쉽게 맞아요? ”
내 말은 언제나 퉁명스러웠다.
“맞을 때까지 사는 거지. 방구가 잦으면 뭐가 나온다잖니.”
긍정의 힘인지 착각의 힘인지, 어찌됐든 엄마는 어려운 형편에도 매주 복권을 샀다. 집안 형편은 엄마가 사는 복권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형편이 좀 나을 때면 엄마는 한꺼번에 복권을 열 장씩 살 때도 있었다.
“엄마, 차라리 복권 살 돈으로 짜장면 사 주세요.”
곁에 있던 순미가 톡 끼어들어 말했다. 순미는 짜장면을 유난히 좋아 했다.
“짜장면은 먹고 나면 그만이지만 복권을 사면 일주일이 행복하잖니. 그러다 맞으면 더없이 좋은 거고. 너희들한테도 유산을 물려줄 수도 있고….”
그 말을 할 때의 엄마 표정은 정말 행복해보였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엄마가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 우리도 덩달아 좋았다. 그것은 엄마 에게 혼날 일이 적어진다는 이야기와 같았으므로. 그런데 그 복권이 한 번이라도 맞은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보면 엄마는 우리를 맹렬히 사랑했다. 사랑의 방식에 대한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소통의 방식이 문제였던 것이다.
“이거 천만 원 맞으면 늬 오빠 4, 경미3, 순미2로 나누어주고….”
엄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순미가 발끈했다.
“왜 나는 2백이야? 언니랑 왜 달라? ”
“넌 동생이잖아. 그러고 백만 원은 내가 쓸란다, 사고 싶은 것도 사고, 먹고싶은것도사먹고….”
엄마가 하던 말이 머릿속에서 웅웅거렸다. 조그만 헝겊 가방을 열어 볼 기력도 없었다. 그냥 생각 없이 내 가방에 쑤셔 넣었다.
순미가 오길 기다렸다. 시간이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흘러갔다. 둔기 에 얻어맞은 것처럼 멍하니 앉아 있었다. 오빠는 어디 있을까? 어디다 연락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시간이 멈춘 것인지 흐르는 것인지 감각이 없었다.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 병실의 전화벨이 울었다. 순미일 거라 생각하고 전화를 받았다.
“김순미 씨 언니 되시죠? ”
딱딱하고 다급한 목소리였다.
“네, 그렇습니다만….”
불길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김순미 씨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셨습니다. ○○병원 응급실로 와주십시오.”
그 말의 충격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모든 소리들이 아득하게 멀어졌다. 교통사고로 사망이라니. 허둥허둥 길을 건너다 그랬을까, 아님 만취한 운전자가 순미를 못 보아서 그랬을까….
세상이 빙그르르 돌았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엄마와 순미는 동시에 내 곁을 떠나갔다. 교통사고로 즉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음에도 순미의 환한 얼굴만 떠올랐다. 엄마가 저승길이 외로워서 순미를 데려간 것일 까? 내 뒤통수를 치고 지나간 것은 끔찍한 영화 한 편이었다.
나는 유령처럼 흐느적거리며 현실을 헤맸다. 시간은 멈추어 있었다.
기억만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순미가 만들어준 조각쿠션이, 한 조각 한 조각 이어나간 조각 쿠션이 내 머릿속에서 터져 버렸다. 순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물론 색감도 맞추어야 하고 무늬도 맞추어야 하지만, 그때쯤 되면 불행한 내 시간들이 멈추어 서. 조각조각 헝겊을 이어붙일 때는 나도 모르게 행복해져.
예쁘게 꿰매진 쿠션이 터져버렸다. 쿠션의 조각조각이 칼날이 되어 나를 후볐다. 순미의 고운 시간들이 갈가리 찢겨버렸다….
기억에서 지워진 사람은 죽은 사람과 다를 바 없지만, 죽어도 잊히지 않는 사람은 살아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생의 기나긴 터널 저 편에, 신화처럼 달처럼 떠 있는 사람은 영원이다.
나는 그날, 두 사람을 잃었다. 나를 지탱해오던 버팀목이 한순간 무너져버렸다. 어디쯤에서 시간이 멈추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푸르죽죽하던 엄마 얼굴이 하얀 시트로 덮이는 순간에도 나는 아무 짓도 할 수 없다가 엄마의 시신이 영안실로 실려 나가기 직전에 입을 열었다.
“자, 자, 잠깐만요, 조금만요.”
나는 엄마의 시신을 덮은 시트를 들치고 급하게 엄마의 손을 잡았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손이 따뜻한 내 손 안에서 움직일 것만 같았다. 눈 물을 흘리면 안 될 것 같았다. 순미의 웃는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이미 죽은 엄마의 손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엄마는 한 줌의 재로 사라졌고 순미도 그렇게 사라졌다. 세상의 격식대로 장례를 치르고 허깨비처럼 흔들거리며 유골을 뿌렸다.
엄마와 순미의 체취가 아직 남아 있는 빈 집에 돌아와 넋을 놓았다. 비몽사몽, 엄마와 순미가 어른거렸다. 사위 잠을 자는 동안에도 곁에 있는 듯 생생했다. 홀로 된 나를 두고 떠나지 못해 엄마와 순미가 서성거리는 것 같았다.
나의 시간은 그즈음에서 멈추었다.
“아이고, 줄초상 치르는 줄 알았네. 방에 들어가는 건 봤는데 이틀 동안 꼼짝도 안 해서 와보니 이 꼴이잖아.”
주인아줌마가 내 뺨을 철썩철썩 때리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틀. 이틀 동안 나는 어디에 있었던 걸까?
“그런데 그건 뭔데 그렇게 껴안고 있어? ”
아줌마가 내가 끌어안고 있는 헝겊 가방을 툭 치며 물었다. “아, 이거요… 어, 엄마…가 남긴 유산….”
나는 헝겊 가방을 꽉 껴안고 말을 하다 말았다. 그러자 아줌마가 내 곁으로 바짝 다가앉으며 나를 재촉했다.
“열어봐. 그래도 너희 엄마가 새끼들 생각해서 푼푼이 모아두었던 모 양이지.”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아줌마가 바짝 다가 앉았다.
나는 천천히, 두툼한 헝겊 가방을 열었다. 그 안에는 기대 이상의 돈이 차곡차곡 들어 있었다. 그 안을 들여다보던 아줌마가 혀를 끌끌 찼다.
“니 엄마, 집 산다고 헛소리할 때부터 알아봤다. 이걸 왜 모아뒀대? 그런데 곱게 접어서 넣어둔 그 돈은 뭐냐? 쯔쯔.”
“칠만 원요. 순미가 준 거여요.”
내 말에, 아줌마가 실망한 듯 방문을 요란스럽게 닫고 나가버렸다. 가방 속에 차곡차곡 모아둔 돈은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그것이 진짜 돈 이라면! 조각조각 이어붙인 헝겊 가방에 가득 들어 있는 건 쓸모가 없어진 복권들이었다. 나는 그걸 한참 들여다보다, 엄마가 그랬듯 베개 밑에다 가방을 소중히 넣어두고 잠을 청했다.
나는 오래도록 선미와 엄마가 찾아 헤맨 시간을 함께 헤맬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