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사년 가을호1 2024년 9월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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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엇을 참회할 것인가
일제 식민지교육을 받고 식민지주체로 살았던 어느 정신적 난민은 역설적이게도 교단에서 “뼉따구 있는 사람이 되어라’고 훈시한다. 운동장에 모인 학생들은 웃었다. 학생들은 그의 위선적 훈시에서 웃은 것이 아니라 그의 강한 사투리 ‘뼉따구’라는 말에 웃었던 것이다. 이중의식에 길들어진 제자들은 다행히도 기생충보다 못한 한국사회의 불공정 불평등을 비판하며 지성인들의 침묵을 대신한다. 얼마나 다행인가, 이 시기의 시인들은 ‘다분히 뼈를 버려야 한다’든가 혹은 민달팽이처럼 ‘납작 엎드려야 한다’는 자학으로 당대를 냉소하지만 무슨 힘이 있겠는가, 참회록을 써야 할 단계다.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1886)의 하이드는 끝내 지킬 박사로 돌아오지 못하자 참회록을 써내고 자결한다. ‘진솔하게 죽음을 맞이할 시간임’을 깨달은 것이다. 인간의 인간에 의한 폭력은 한강의「작별하지 않는다」에서 한국적 민주화의 폭력 계보는 이문열의「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읽는다.
2. 이문열의「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1) 작가의 얼개
이문열(李文烈) 작가는 걸출한 작가여서 그의 작품을 읽는 것을 주저한 적이 있다. 유명시인의 시를 읽지 않고 명편의 영화는 보지 않는 습성은 무슨 심보인지, 남의 판단에 기대지 않으려는 내면의 어떤 명령 같은 것인가. 기존의 평단에서는 이문열의 문학을 ‘허무주의자’‘유려한 의고적 문체’‘개인과 자유를 위한 열망’‘다양한 소재와 해박한 전문지식’‘관념 편향적 창작방법’등(이경재 작품해설)으로 말하고 있다. 최종적인 해석은 또 다른 모순을 낳는다는 신 역사주의에 의거 텍스트가 암시하는 콘텍스트를 보기로 한다. 한 자연인의 윤리의식은 거의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형성된다는 것이 상식이다. 1950년 작가가 3살 때 한국동란이 일어나고 그로 인한 여진은 어느 모로나 작가에게는 치명적인 사실이 된다. 일반론적으로 말하더라도 있어야 할 것이 없다는 결핍의식과 반공을 국시로 하던 시대 이념적인 어떤 선입견은 청소년기의 영웅심을 꺾었을 터이고 불안한 현실의식을 갖게 하였을 것이다. 결정적인 사실은 소년기에 벌써 서울에서 고향인 경북 영양과 안동, 밀 양, 부산 등지로 10여 차례나 전학을 다녔다는 사실에 있다. 21세인 1968년에 대입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에 입학 했으나 사법고시를 하기 위해 중퇴한다. 26세에 결혼하고 군대에 입대 통신병으로 복무하고 30세인 1977년 대구매일신문에 소설「나자레를 아십니까」가 입선되어 이때부터 이문열이라는 필명을 사용한다고 연보에 나타나 있다. 한 인간으로서 이러한 삶의 궤적은 고난의 여정이었고 이후 그의 작품의 뼈대 또는 정신의 뼈대가 되었을 것으로 판단된 다. 자애한 모정과 결핍된 부정(父情)은 사상과 이념이란 무엇인가 또는 절망의 시대 신은 왜 말이 없는가라는 구원의 목소리에 경도하게 된다. 그의 시대는 정의와 폭력이 합리와 비합리의 이름으로 공존하고 인간의 자유가 자유라는 이름으로 훼손, 억압되던 모순의 사계였다. 이에서 비롯한 내면적인 균열과 서사적 정직성은 당대를 시대정신으로 해부하고 모순적인 현실을 자전적인 경험으로 해석하는 서사문학의 기조가 된다.
2) 소설의 얼개
소설의 30년 전은 자유당 말기에 해당한다. 자전적 소설인「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83)은 모두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유당 정권이 아직은 그 마지막 기승을 부리고 있던 그해 3월 중순 나는 그때껏 자랑스레 다니던 서울의 명문 초등학교를 떠나 한 작은 읍(邑) 의 별로 볼 것 없는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공무원이었다가 바람을 맞아 거기까지 날려 간 아버지를 따라 가족 모두가 이사를 가게 된 까닭이었는데 그때 나는 열두 살에 갓 올라간 5학년이었다.
① 운명적인 만남
경남 밀양은 작가에게 어떤 기억의 공간이던가. 대하소설「변경(邊 境)」(2021)에서의 밀양은 “그때 삶은 희망으로 밝았으며 세상은 기쁨으로 빛났” 고 “거기의 기억은 첫사랑이 있었으며 한 살이가 끝날 때까지 잊힐 수 없는 코흘리개 동무들이 있는 공간이”었으나「우리들의 일그 러진 영웅」에서는 밀양은 매우 낯선 곳으로 거대 절벽 같은 공간이다. 어쨌든 작가에게 밀양은 버릴 수 없는 기억의 공간이 된다. 연보에 의 하면 이 시기는 서울의 종암국민학교에서 밀양국민학교 5학년으로 전 학 간 시기다. 아버지가 공무원이었다가 바람을 맞아 거기까지 날려간 것인데 나의 기억에서 아버지가 왜 거기까지 날려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아니 의문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거기서 엄석대를 만난 것은 나의 운명이었고 내가 피할 수 없었던 시대적 상징성이다.
② 지방학교의 실망
벽돌로 지은 웅장한 본관 건물과 낡은 일본식 시멘트건물과 가교사, 한 학년 16학급의 학교와 6학급의 학교, 깔끔하고 활력에 찬 서울 선생님과 시골 아저씨처럼 후줄근한 선생님들 등이 비교되는 곳에서 새로 전학 온 나(한병태)는 처음부터 실망한다. 첫날 소개될 때부터 담임선생은 나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았고 어떤 학생인지조차 소개되지 않은 상태로 빈자리에 앉게 된다. 작은 학교에서 야심을 보일 기회였는데 처음부터 빗나간 것이다. 그 서먹하거나 낯선 풍경을 어떻게 자기 것으로 만들까 하는 것이 소년의 생각일터인데 막걸리 방울이 말라붙은 양복을 걸친 담임선생이며 서울서 미술대회 특선의 경력과 1등에 가까운 학교 성적은 물론 아버지의 높은 직급도 언급할 기회가 없었던 것에 나는 실망한다.
③ 머리통 하나가 더 큰
나는 실망한 학교에서 예상한 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반장인 엄석대라는 거대한 벽을 만나게 된다. 그에 의해서 나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으나 해결책은 보이지 않고 구원을 기대했던 아버지, 담임 선생 그리고 학교를 방문한 어머니마저 네가 잘못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담임선생에게 엄석대의 비리를 고발한다. 그러나 담임선생은 건성으로 듣고 스스로의 힘으로 도전해서 경쟁하라고 좋은 말만 한다. 반 아이들과 담임선생마저 엄석대의 편이고 석대의 권력은 학급에서 가히 제왕이다. 다른 아이들이 보여주는 거의 절대적인 복종과 반사적으로 일어나는 나의 오기는 이후 여러 가지 충돌로 야기되지만 해결책은 보 이지 않는다. 그와 친하기 위해서는 저항이 아니라 존경과 복종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저항과 복종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모순적 사실에 직면한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저항과 복종을 유연하게 상관지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석대의 비리를 담임선생에게 고발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고자질하는 아이로 치부된다. 불합리와 폭력적 세계가 눈에 보이는데도 선생과 학생들은 그것을 보지 못한다. 그러한 불합리가 나의 한이고 좌절이었으나 한편으로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비리가 정당화되고 폭력이 합리화되는 학교에서 싸워야하는 어려움에 빠진다.
④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폭력의 계보
엄석대의 폭력은 어떤 계보이고 유형일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 초점을 맞추어 폭력의 뿌리를 찾는 엘리스 밀러, 어빈 스타우브의 악의 뿌리 등이 있지만 엄석대는 학생인 점을 감안하면 칼 융과 에리히 노이만의 그림자 이론에서 보여준 자아와 페르소나 이론이 좋을 것 같다. 개인과 집단적 무의식 간의 갈등, 자신을 숨기려는 의식, 죄책감으로부터의 도피를 하기 위한 거짓 등이다.
석대는 나에게 절대로 직접 억압을 하거나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제 삼자로 하여금 폭력을 느끼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석대는 보통아이와 다른 것이다. 석대는 내가 복종하는 기미를 보이자 그는 내게 정을 주고 예전의 내 권위를 되찾아주기도 한다. 석대가 교실 안에서 돈과 물건을 합법적으로 가져가도 모든 권한은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어서 누구도 이의를 달 여지는 없으나 그의 지배와 폭력성은 끔직한 예감으로 남는다. 나는 그러한 석대를 아이들로부터 떼놓는 작업을 한다.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항하여 정의와 자유에 대한 어른들의 열망처럼 선동기술을 편다. 일제고사에서 예상대로 석대가 1등 하고 나는 2등을 하여 힘에서도 공부에서도 패배한다. 가망이 없어진 나는 개인적인 노력에 의해서 둥글 라이터 사건과 일제고사 성적조작 사건이라는 큰 사건을 알아낸다. 석대는 그러한 눈치를 알았음에도 직접적으로는 아는 체하지 않는다. 담임선생의 무기명 조사에서도 부정사건은 나오지 않는다.
⑤ 강자의 질서 안으로
1980년대는 비틀어 말하면 데모만 하다 끝난 바보 같은 시대인가, 자유당 독재를 무너뜨린 민주주의가 군부에 의해서 무너진 것은 민주주의 그 속에 도사리고 있는 대중적 우둔함도 포함하는 것인가. 소설은 비겁 한 다수 우둔한 다수가 힘의 현실 앞에 얼마나 무력한 것인가를 희화적 으로 보여준다. 라이터 사건 이후 주먹싸움에서도 진 나는 친구들로부 터도 철저히 소외되고 나의 자질구레한 범법과 부도덕한 사건들은 늘 아이들에 의해 고발당하고 석대는 청소검사 복장검사 등으로 합법적으 로 억압한다. 합법적인 압력을 버텨낼 힘을 잃은 나는 저항을 포기하고 눈물의 작전을 사용하여 석대의 질서 안으로 편입한다. 석대의 시혜를 받게 되자 나는 주먹의 서열을 회복하고 일제고사 성적도 2등을 하게 된다. 살기 위해서는 저항과 복종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⑥ 혁명,, 신의 한 수
혁명의 발단은 하늘에서 내려온 신적인 존재에 의해서다. 어디서 그런 훌륭한 선생님이 있었든지 새로 바뀐 담임선생에 의해서 비리의 문 제가 화산처럼 폭발한다. 반장 선거에서 몰표가 나온 것이 계기가 되고 일제고사에서 시험지에 이름을 지운 흔적이 화근이 된 것이다. 누구도 손댈 수 없었던 비리의 온상을 파헤친 것은 담임선생의 신의 한수였 다. 하늘에서 들리는 구원의 목소리였다.
담임선생은 불의 앞에 굴복한 부끄러움을 모르면 앞으로의 세상은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이다. 반 아이들이 차례로 석대의 비리를 폭로하고 그간의 비리에는 공통의 책임이 있다는 담임선생의 책임론에 의해 모두가 응당의 매를 맞는다. 그러나 나는 석대의 비리 폭로과정에서 “나는 잘 모릅니다”라고 대답한다. 아이들로부터“쓸개도 없는 놈”이라고 야유를 받는다. 나는 반에서 급작스런 개종자 또는 극적인 전향인 사가 된다. 그것은 오기였으나 교활한 변절자일 수밖에 없다. 왜 그랬을까. 나는 정의로운 마음에 석대의 비리를 캐고 다녔으나 강자의 권력에 안주할 때 그 비리를 눈감아줄 수 있고 비리는 합법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게 된다. 이후 교실은 자치회를 회복하고 말단까지 선거하는 선거만능풍조를 이룬다. 그것은 학급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다 바뀌게 한 일견 혁명적 조치다. 담임선생으로부터 모진 매를 맞고 기가 죽었던 석대는 급장 선거에서 자신의 표가 하나도 나오지 않자 “잘해 봐, 이 새끼 들아”하고 교실을 뛰쳐나간다.
석대가 물러간 뒤 4·19가 일어나고 민주당 시대는 혼란과 소모의 두 양상으로 혼재된다. 되찾은 민주주의가 우왕좌왕하고 국민탄핵제도는 밀고와 모함으로 변질된다. 나약했던 반 아이 5명은 미창 쪽에서 석대와 재대결한 결과 승리하고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케네디 대통령의『용기 있는 사람들』을 한 권씩 나누어준다. 이러한 자정능력은 당시의 언어로 말하면 민주주의와 시민의식을 되찾은 것이 된다. 실종된 합리와 자유를 회복한 것인가? 그러나 이 시기에도 민주주의와 전체주의가 혼재된 상태다. 이후 석대는 서울로 개가한 어머니를 찾아갔다는 소문이다. 그간은 조부모 밑에서 자란 것으로 석대가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는가를 알지 못한 것이다. 그로부터 나는 억눌림과 가치 박탈의 체험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일류학교를 나와 군대, 대기업, 고급 세일즈를 하 는 등 1970년대 후반까지 엄석대의 존재를 잊고 살 수 있었다.
일류학교를 나오지 못한 아이들도 사장이 되고 교수가 되는 현실에서 나는 1970년대를 고비로 헙수룩한 가장으로 전락하고 마지막 생명 줄이던 대리점마저 실패하게 되자 과거의 엄석대를 생각하게 된다. 고 향에서 들은 소문이다.
“엄석대 그 친구 역시 물건이더군만, 그라나다 뒷자석에 턱 제기고 앉아 가는 걸 봤지.”
나는 엄석대가 실패한 영웅이 아니길 바란다. ‘내가 언제나 나의 자유와 합리를 포기하거나 내 일부의 재능만 바치면 그는 전처럼 거의 모든 것을 내게 줄 수 있었던 ’존재였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자들이 말하는 악의 그림자가 엄석대에게서 발견한 것이라면 나에게도 그 영웅적인 악의 그림자가 존재함을 엄석대로 하여 알게 된다.
⑦ 실패한 자의 진실
여기서 나는 용기 있는 존재가 아니라 나약한 인간이었음을 실토한다. 내가 기댈 영웅이 없다면 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힘으로 대결하거니 극복하지 못하고 강자에 의존하여 자유를 얻으려는 생각은 패배자로서의 생각이다. 나에게 석대는 나를 비추는 하나의 거울이다. 석대를 통하여 나의 용기와 소심함의 근저를 찾는다. 그것은 실존하는 인간의 두 모습이다. 강한 것과 약한 것 권력과 순응, 지배와 피지배 사이에 존재하는 나의 모습이다. 인간은 끝내 합리적 존재가 아니라 불합리 또는 이항대립의 모순적 존재라는 것을 확인한다. 그것은 즉자로서 극복의 대상인 대자(對自)인 석대에 오히려 의존하려는 모습이다. 나는 가족과 함께 강릉으로 휴가를 가는 도중 수갑을 차고 형사들에 의해 끌려가는 석대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날 밤 나는 혼자서 늦도록 술잔을 비운다. 두어 방울의 눈물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안도의 것인지 비관의 것인지 지금도 뚜렷하지 않은 것이다. 부모의 보호 밑에 성장하고 일류 학교를 나왔으나 인생살이에서 실패한 자의 눈으로 볼 때 의지할 곳이 없어 개가한 어머니를 찾아 서울로 올라온 석대가 살았던 과정은 내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피안이다. 그의 권력은 정의와 합리에 기반 하 거나 4·19 같은 역사의 전면에 서 있었던 것은 어니다. 합리와 자유를 삶의 가치로 치부하는 나의 눈으로 판단할 때 그는 내가 가질 수 없는 능력을 소유한 점에서 그리고 개가한 어머니를 찾아 서울로 갈 정도로 외로운 인간이었다는 점에서 엄석대는 일그러진 인간이었으나 그는 나 에게 영웅상으로 남는다. 위대한 인물일수록 모순을 안고 산다. 뉘우침이 없는 욕망적 코드에서 보면 인간은 자신이 받은 억압을 투사할 희생양을 찾고 희생양을 죽임으로써 자신의 억압을 벗어나려 한다. 그것이 때론 정의가 된다. 1980년 공화국 시대에서 민주주의 모순과 폭력의 상관관계, 혁명의 정당성과 그 이후를 암시하는 풍자소설로 읽혀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3) 참회록으로서의 얼개
이문열 작가는 2000년대 초‘주사말류(主思末流)와 동비잔예(東匪殘 裔)’의 이른바‘이문열 책 장례식’이 있었고 그의‘책이 진흙탕에 버려져 마소에 짓밟히는 수모’를 당한다. 「변경」을 개고할 무렵인 2004∼ 2009년 미국으로 도피성 연구자로 갔다가 돌아온 사실이 그것이다. 그는 홍위병들의 강요에 고개 숙이지 않았고 비겁한 역사를 비겁하다고 비판한 작가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는 그 불합리한 비리와 폭력까지도 기억이란 이유로 일정한 가치를 부여한다. 우리 모두는 불행한 인연으로 버려진 유랑자의 후예이고 그것은 유연기의 상처로부터 비롯한다. 가치와 합법 또는 윤리란 기억이 멀수록 그 본질이 희석되고 영원하지 않는 시대정신이란 한때의 오기에 불과한 것인가 하는 불확실성을 제기한다. 누가 엄석대로 상징되는 시대의 폭력에 맞설 수 있었 던가, 소설을 통해 작가는 인간의 용기와 그 나약성을 이중구조로 조명한다. 인간형상은 뼈의 구조이면서 얼개 안의 내면구조는 수성(水性)이거나 몇 겹의 구조다. 소설「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기억속의 우리 스스로를 희화하고 참회하게 한다. 그것은 허무주의가 아닌 역사시대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신역사주의적 관점에서다. 폭력의 시대 또는 정치적 자유가 요구되던 시대의 역사적 담론은‘나’라는 한 인간 의 욕망과 좌절에 의해 비판될 수 있지만 끝내 그것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회의 안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메시아의 사랑이란 아직도 부활 하지 않은 속죄의 단계에 있음을 알아차린다. 철학자 어니스트 베커의 말처럼 “표면적인 이데올로기와 상관없이 모든 사회는 거짓의 토대 위 에서 세워지고 모든 사회는 악과 죽음을 이길 것을 약속하는 영웅시스템이기 때문이다.”인간을 거짓의 영웅으로 만드는 한 그것은 두 겹의 노래일 수밖에 없고 인간 참회록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3. 한강의「작별하지 않는다」
가) 사실론적 접근
① 이상한 유골 한 구
작가는「작별하지 않는다」(2021)에서 제주 4·3사건을 현지에서 취재 한다. 그리고 인선이란 제주 출신을 통하여 그의 어머니가 스크랩해 둔 지료 속의 생명의 현장을 분석한다. 4·3사건의 희생자 현장을 재구하는 일이지만 그것은‘명백한 사실’임을 확인한다. 그러나 애초 기획했던 제주 4·3사건의 영화화 작업은 여의치 않다. 제주인 인선의 아버지의 죽음과 남동생, 외삼촌 등의 가족의 실종을 추정해 가는 과정은 악몽을 헤매는 꿈과 미로였다. 소설은 어둠, 추위, 상실, 죽음의 경계를 헤매면서 그래도 살아 있고 살아 있을 실 같은 생명과 생명성을 찾아가는 매우 진지한 탐색이다. 그것은 누군가에 의해서 갇혀진 미지의 동굴 속에서 출구를 찾다가 새로운 것을 발견한 탐험가의 야심이기도 하다. 야만의 역사현장에 남아 있을 역사의 진실을 보기 위함이다. 4·3의 희생자들이 흙에 묻히는 순간에도 호흡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인선 가족들의 기록들을 통해 아직도 말하지 못한 기록들이 천천히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술적 작업을 초월하는 일이고 어둠에서 생명의 빛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구덩이 가장자리에 있던 유골 한 구가 이상하게 눈에 들어왔어.
다른 유골들은 대개 두개골이 아래를 향하고 다리뼈들이 펼쳐진 채 엎드려 있었는데, 그 유골만은 구덩이 벽을 향해 모로 누워서 깊게 무릎을 구부리고 있었어. 잠들기 어려울 때,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쓰일 때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처럼. (…)그 유골만 다른 자세를 하고 있는 이유가, 흙에 덮히는 순간 숨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그때 들었어.
② 뼈와 뼈들이
4·3사건은 제주인 인선이가 만든 영상을 통하여 죽음과 생명성이 부각된다. 4·3사건의 희생과 대구보도연맹사건의 죽음은 폭력에 의한 사실로 인정하면서 죽음의 한 가운데는 죽을 수 없는 생명의 영원성이 함께 존재한다. 아버지와 남동생, 외삼촌의 흔적이 그러하고 어머니와 인선의 삶 그리고 새 아미, 아마의 삶이 그러하다. 소설은 어둠에서 생명의 빛을 찾아간다. 과거의 어둠을 덮으려는 폭설이 내리고 어머니가 남 긴 희미한 자료는 촛불을 켜야만 볼 수 있다. 바다의 무덤들은 어둠 가운데 있고 인선의 생명마저 촛불처럼 위험하다. 무수한 죽음 가운데 죽지 않은 죽을 수 없는 생명이 있음에 작별할 수 없는 것이고 아직도 찾지 못한 뼈, 뼈들의 이야기가 있는 한 작별할 수 없다. 죽은 수천 명 가운데 한 명의‘앳된 청년’이 코발트 광산의 무덤에서 살아나와 피투성 이 옷을 갈아입고 사라진 사실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는가. 소설의 공간에는 어둠의 공간 내내 눈이 내리고 전기가 끊긴 상황에서 촛불은 유일한 생명성의 빛이 된다. 소설은 3부‘불꽃’에서 3만 명, 20만 명의 죽 음을 인정한다.
골짜기와 광산과 활주로 아래에서 구슬 무더기와 구명 뚫린 조그만 두 개골들이 발굴될 때까지 그렇게 수십 년이 흘렀고, 아직도 뼈와 뼈들이 뒤섞인 채 묻혀 있어. 그 아이들
③ 통나무 오브제
소설은 70년 전의 역사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순차적인 역사의식으로는 접근할 수 없다. 역사의식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혼용되고 나선형으로 전개된다. 그것은 악몽으로 시작하여 미래로 가거나 과거와 현재가 혼용된다. 4년 간 준비한 다큐 영화는 인선의 사고로 정체되어 있지만 다큐는‘검은 통나무들’의 기울고 휘어진 죽음의 등 신대형상이‘눈보라’에 묻히고 생명의 아픔이 꿈과 생시 사이에서 현현된다. 희생자의 생명도 생명이지만 새 아미, 아마의 생명과 인선의 생명 그리고 살아도 죽은 어머니의 생명, 동굴에서 생명을 보존했던 아 버지, 경산 코발트 죽음의 갱도에서 유일하게 살아 있을 외삼촌의 생명 등을 통해 시대의 아픔이 재현된다. 감옥에서 감옥으로 전전하며 죽음의 차례를 기다리는 생명을 상상해보라는 메시지, 그리고 나와 인선이가 준비하고 있는 99개의 통나무를 베어 세우려는 검은 나무들은 시대의 비극을 예술로 승화시키려는 작업이다. 통나무 오브제는 조형성과 시적 요소를 결합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려는 초현실적인 구상이다. 레비스트로에 의하면 그것은‘날 것의 시’이고‘詩 오브제’다. 죽음들을 어떻게 배치하고 구조화할 것인가. 작가는 언어 밖에서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고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 것이다.
④‘‘나사로’’의 초상
존재와 폭력성, 인간의 불안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불안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등을 물을 때 소설에서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신의 부재다. 소설의 전체적인 톤은‘너무 어둡고 음침하고 항상 죄악을 이야기’한다. 죽음의 그늘에서 발견하는 그 빛과 환희마저 신의 품에 이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글턴이 말한 아유슈비츠가 비극일 수 없는 이유처럼 4·3사건도 비극은 아니다.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성마저 박탈당한 공포는 비극적인 것을 초월한다. 소설의 전체적인 이미지와 비유는 살아서 돌아온 렘브란트의‘나사로’의 초상이다. 죽은 자들 사 이에서 나사로를 불러내는 목소리가 있다. 기괴한 죽은 자의 살아 있는 형상들이다. 신은 부재하거나 숨어 있다.
나) 참회론적 접근
① 한국역사관의 진화
1970년대 겨울에 태어난 한강 작가는 1947∼1954년 제주도에서 일어난 4·3사건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까. 미군 정말기에 당시 남로당과 토벌대의 무력 충돌로 발생했지만 정부수립까지 7년여, 희생자가 2 만 5000∼3만여 명이란 점에서 그 후유증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누구도 4·3사건을 정면으로 다루기는 벅찬 과제다. 좌우의 사상적 대립문제는 어는 한쪽에서 다룬 것은 많아도 중립적 입장에서 다룬 작품은 많지 않다. 애초부터 좌우에게 중립이란 없는 것이고 한국의 역사는 그렇게 진화되고 있다. 작가는 2014년 여름에 죽음의 섬에 대한 꿈을 꾼다. 무덤은 산이 아니라 밀물과 썰물이 들락거리는 바다 아래쪽이고 봉분들만 남고‘뼈들이 쓸려 가버린’그런 무덤들을 발견한다. 이미 물에 잠긴 무덤들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위쪽에 묻힌 뼈들은 옮겨야 한다 는 생각이다. 참회록으로서의 소설은 그렇게 시작한다.
② 어둠에서 빛을 찾아가는 구조
소설의 전체구조는 새, 밤, 불꽃의 구조다. 결정, 실, 폭설, 새, 남은 빛, 나무, 그림자들, 바람, 정적, 낙하, 바다 아래 등의 각 장은 인간이 태양 아래에서 살고 있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고 꺼져 가는 생명을 붙들고 어둠 속에서 빛을 찾으려는 작가의 고행을 엿보게 한다. 화자와 친 구 인선은 제주 4·3사건을 다큐 영화로 만들 기획을 하고 진행 중이었으나 인선의 작업 중 사고로 인하여 잠시 중단되고 화자는 제주도로 인선이 있는 P읍을 찾아간다. 도중에 폭설과 낯선 할머니를 만나면서 소설의 분위기는 점차 미궁으로 또는 동굴 속으로 빠진다. 이 단계에서 소설은 현실과 과거가 혼재하고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꿈이 악몽이 되 고 그런 어둠 가운데 희생자들의 증언과 기록들을 찾아간다. 죽은 새와 대화하고 나와 그림자가 하나의 생명으로 혼으로 숨쉬고 있다. 죽은 자 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고 공간이다. 시간과 공간은 나사형 또는 투 명한 입체형이어서 정직한 인식체계로는 접근할 수 없다. 제주도에는 처음 보는 폭설이 작품 내내 계속 내린다. 그 폭설이 과거를 덮으려 하고 죽은 자의 흔적을 지우려 하지만 과거는 인선의 어머니와 증언들에 의해 속속 밝혀진다. 그러나 그것은 어둠 속에서 실종자를 찾는 것이고 탐험과 같다. 불이 꺼지고 전기마저 나간 상황은 과거 속에 버려진 4·3 사건을 상징한다. 죽음을 포함한 어둠은 빛으로 조명할 때 진상은 들어 날 것이고 인선과 나가 작업을 중단할 수 없고 작별할 수 없는 이유다. 모든 과거가 눈에 덮이고 희생자들은 검은 숲속의 통나무처럼 서 있다. 그들에게 생명은 없는가 어둠 속에서 진척되는 탐색과정은 그들에게 종전의 생명을 재현해주는 일이다. 그러나 증언자를 만나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고 유일한 증인인 인선마저도 생명이 위태롭게 된다. 인선의 인내와 그 어머니가 수집한 살뜰한 기록들을 통해 당대의 모습을 재조명한다. 소설에는 폭설과 검은 숲, 그림자, 바람, 정적이 지배하고 인간 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바람소리 새 아미와 아마의 신음만 가끔 들 릴 뿐이다. 역사적 피해를 거시적 폭력의 계보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미시적이고 말초적 감각으로 접근한다. 관념적이 아닌 뼈와 살 의 아픔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③ 눈은 내리고
죽음은 드러낼 수 없는 것이 되고 죽음이 박명처럼 소멸되는 상황이다. 제주도 4·3과 경산 코발트 광산의 죽음은 단지 꿈으로 어둠으로 그리고 그런 사실을 덮어야 하는 눈으로 위장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증 언들이 촛불에 의해서 밝혀지고 인선의 생명도‘불꽃’으로 되살아남으로서 무언가 할 수 있다는 내적 환희를 마주한다. 심장처럼, 꽃봉오리처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인 것처럼”살아 있음이 ‘불꽃’으로 되살아난다. 역사의 어둠을 뚫고 나오는 빛의 힘은 작가의 예술적 시도인 오브제로, 눈앞의 대상물로 이미지화된다. 영상의 증언 과 자아의 내면적 호흡이 만들어내는 서사적 의미는 누구도 생명의 자 연적 가치를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1948년 11월 중순부터 3개월 간 중산간 마을에서 3만 명이 살해당한다. 인선의 가족들이 증언자로 살아 있는 것이다.
④ 남은 불꽃으로
소설은 악몽으로 시작하지만 소설의 종결은 악몽 아닌 불꽃으로 되살아난다. 마지막 성냥개비에서 불이 살아나고 숨소리도 들리지 않던 인선의 환부에 바늘이 꽂히는 순간 피와 전류가 함께 흐르고 불꽃이 솟 아난다. 설사 폭력이 죽음을 강요하더라도 살아야 할 생명력은 꺼지지 않는 불꽃이어야 하며 다시 불을 지펴야 하는 것이다. 야만의 시대가 아무리 폭력적이고‘절멸’을 시도하지만 절멸 가운데 생명은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남을 것임을 믿는다. 지난날 역사의 왜곡 아니 역사의 진실은 우선 유골들을 제대로 된 무덤 속으로 안치하는 일이다. 당시 생명들은 아버지가 동굴 속에서 말한 속속하라(숨을 죽이라)’며 살아왔 음을 기억하는 일이다. 우리는 역사의 야만을 반성해야 한다. 그것은 악몽이었고 그 악몽은 사실로 밝혀진다. 민족이 민족 스스로의 자유를 부정한 역사 현장으로서의 동굴과 제주 중산간 마을 그리고 바다무덤, 경산 코발트 광산, 방화된 폐촌을 상상한다. 내가 작별할 수 없는 것은 앵무새 아미와 아마를 사랑하듯 인간을 사랑하여 생명을 버리지 않는 일이다. 제주에서 목포로 목포에서 대구형무소로 다시 진주형무소로 이감되며 살아 있을 생명을 찾아다녔던 어머니의 사랑과 고난을 기억하는 일이다. 인선이 검은 통나무로 죽은 자의 영혼을 오브제로 조각하려는 시도는 미완의 단계에 있으나 남은 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⑤ 불꽃과 촛불
소설에는 신과 신성의 비유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소설의 톤은 어둠과 죽음, 절망, 공포 그리고 이것을 덮으려는 눈이 계속 내린다. 그것은 나사로가 죽어서 갔던 낙원과 대조된다. 소설에서 불꽃은 타오르는 지옥의 불꽃이 아니라 성냥개비로 붙인 촛불이다. 촛불이 만든 빛점에는 뼈들이 떠오르며 살아 있는 생명이 잔상 속에서 아름다운 빛이 된 다. 화자는 미군정의 한국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50년 전의 밀봉된 기 록물을 해체하고 1848∼49년 제주수형인 명부와 보도연맹 사건 등의 희생자 통계를 밝힘으로써 흥분하고 아직도 뼈와 뼈들이 뒤섞인 채 묻혀 있으나 수혈된 생명처럼 나에게 들어오는 것이다. ‘그들이 왔구나’ 로 생명들이 수혈처럼 흘러들어옴으로써 나는 광인이 되어? 격렬함과 기이한 기쁨에 빠진다. 이들을 오브제로 미루어 왔던 작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병상의 인선의 환부에 피와 전류가 흐르는 것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이는 것은 동일한 생명의 고귀함이다. 나는 인간이 아닌, 영혼으로는 인간인 “그들이 왔구나”하고 환희하게 된다.
⑥ 화해의 단계
남은 불꽃은 복수의 칼이 아니라 희생자들의 한을 풀어주고 위로하는 신원(伸寃)의 단계다. 제주 4·3특별법이 제정되고 <제주 4·3사건 진 상조사보고서> 이후 1994년부터 유족회 주최로 합동위령제가 봉행된 다. 소설 외적 이야기지만 4·3사건에 대한 역대 대통령의 사과와 국가 기념일로 제정되는 등으로 오늘에 이른다. 참회와 화해의 단계다.
4. 마치면서
지금까지 어두운 시대의 참회록으로서 이문열 작가의「우리들의 일 그러진 영웅」과 한강 작가의「작별하지 않는다」두 편을 읽었다. 그것은 엄연히 우리 역사의 시공간적 계보로서 우리가 겪었던 눈물이고 회 한이다. 그 눈물과 회한에는 선과 악이라는 역사의 이중성이 내포된다. 참회록 ‘헨리 지킬의 진술’을 써놓고 자결한 지킬 박사, 진정한 참회록은 가난한 시인과 작가의 몫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