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사년 가을호1 2024년 9월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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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초 시골에서 시부모님과 함께 생활을 하던 시절 첫겨울, 사십오년 전에는 시골의 겨울이란 너무도 추운 날씨로 새벽이면 식사준비로 부엌에 나가면 마치 거리에 서 있는 것처럼 덜덜 떨려오고, 전날 저녁 빨아 놓은 행주가 꽁꽁 얼어 있고 아궁이에 불을 땔 때까지는 견디기 힘든 추위로 무서운 긴장 속에서 하루를 시작해야 했다. 시부모님께서 겨울만 나면 서울로 살림을 내주신다는 말씀만 믿고 시골 여주로 내려 와 시집살이는 시작된 것이다.
하루 빨리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조금이라도 부모님 눈에 거슬리는 일은 하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가는 도중 어느 날 서울에 사시는 시고모님께서 시골에 오셨다. 서울로 살림을 내준다던 시부모님의 말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때라 나는 말도 못하게 고민하던 때인데 시고모님께서 나에게 선물이라고 주시며 저녁이면 바르라고 하신다.
손이 트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물론 화장품을 쓰고 있었으나 고모님이 사다주신 동동구루무는 시골에서는 구하기가 힘이 들었는데 너무나 고맙게 받았다. 시어머니도 생각을 못 하시는 것인데, 새댁이 시골생활에 고생하리라고 생각이 드신 모양이다. 얼마나 자상하고 온화한 마음인가?
그 시대는 시골 며느리들은 그렇게 생활하면서도 불만이나 내 자신의 인격은 무시당하고 살았던 것이다. 며느리는 월급 없는 노예처럼 살았다고 생각한다. 서울에서 미용실이나 하다가 시집 와 버릇없다는 말은 듣지 않으려 사소한 일에도 미음 졸이고 신경을 쓰며 애타는 시간을 보냈다.
남편은 그것이 마음 아파서 그런지 퇴근길에 주머니에 내가 먹을 주전부리를 사다 화장대 서랍에 넣어두기도 한다. 막내시동생이 중학교 1학년인데 시부모님이 아셨으면 뭐라고 하셨을까? 옛날부터 장남은 부모나 같다고 하는데 결혼하면 내 주머니가 우선인 생각이 들게 만드는 일이다.
새해가 오고 정월이다. 장날이면 친척들이 어른께 세배를 하기 위해 점심시간이면 우리 집으로 오신다. 점심식사는 모두 며느리인 내 몫이 되는 것이다. 대보름이 지나야 뜸해지기 시작했다. 어쩌다 장날 시장에 가려면 시어머님의 승낙을 받아야 되고, 시어머님이 먼저 나가실 준비를 하신다. 흰고무신을 닦아서 신으시기 좋게 마루 위에 나란히 놓으면 어머님은 외출을 하시고 덩그러니 큰집에서 하루 종일 강아지 메리하고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렇게 삼 년을 살고 더 이상은 살 수가 없다고 생각이 되어 결혼 때 받은 폐물과 내게 있던 얼마의 돈을 들고 서울로 살림을 나오고 말았다.
사랑이란 작고 잔살어린 오롯한 가슴에서 오는 것이고 큰 것이 아니라 아주 작고, 마음은 깊게 깊이가 있는 믿음이 있는 그런 사랑일 것이다. 지금도 겨울은 오고 80의 고갯길에서 시절 그리움 애착에 빠지기도 한다.
시고모님의 잔잔한 마음, 남편과 밤하늘의 별을 보며 네온보다 빛났던 화려한 별빛, 그이의 휘파람 소리, 자가용이 아닌 자전거의 뒷자리에서 그이의 허리를 꼭 잡았던 일, 주머니 속에 땅콩, 한여름 밤 얼음과자 콘의 달달한 그 맛이 짙은 안개 속의 꿈처럼 피어오르기도 한다.
사랑이란 풍기는 향기라고 지금은 조금이나마 알게 되고 철들어 가는 나이가 되며 나도 며느리와 손녀 손자가 있다. 살아가면서 성숙한다는 말처럼 며느리에게 나는 어떤 시어머니로 보일까? 주머니 속사랑 그보다 좀 더 예쁜 사랑으로 애뜻한 정을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