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사년 가을호1 2024년 9월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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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촌역 부근 돈지방 철로 건널목에서 한강대교 북단 방향으로 가는 아파트 뒤편에는 2차선 차도와 한적하기 짝이 없는 인도가 있다. 남쪽 차로 변에는 높이 세워진 방음벽이 있고 북쪽 인도 너머에는 경의중앙 선을 달리는 철로가 있다.
지대가 훨씬 높은 이 길과 40미터쯤 떨어진 철로 사이에는 이름 모를 잡목이 빽빽이 들어섰다. 울창한 숲 때문에 철로는 잘 보이지 않으며, 긴 나뭇가지가 인도 변에 세운 철조망을 넘어 길까지 뻗어나오기도 했다. 혼자 우산을 쓰고 다니기에도 비좁은 길이어서 사람들이 이용하기를 꺼리는 것 같다. 집에서 철로 건널목과 한강대교 북단으로 가는 삼거리까지의 길을 아침 산책로로 정한 지 달포가 되어간다.
걸어서 10분 거리의 가로수는 플라타너스가 주종을 이루고 있고 가끔 은행나무도 보인다. 가로수 사이에는 띄엄띄엄 가로등과 전봇대가 있으며 통신시설용으로 세워 놓은 긴 기둥도 몇 개 서 있다. 산책하는 동안은 어떤 것에도 방해가 되지 않도록 머리를 백지로 놔두고 싶다. 자주 듣던 음악도 삼간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야겠다는 심사가 없더라 도 무심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의 늪에 빠지면 음악은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산책은 멍때리는 기분으로 먼 곳을 바라보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심심하다. 산책로의 가로수가 몇 그루나 되는지 세어 보려면 돈지방 건널목을 지나 처음 나무를 만났을 때부터 세어야 한다. 그때 바로 긴장 하지 않고 지나치면 셀 수 없다. 가로수 하나 세어 보는 것도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가로수를 세기 시작한 지 1주일이 되었다. 셀 때마다 수효가 달랐다. 나무를 세다가 전봇대까지 함께 세거나 통신시설용 기둥도 함께 센 경우도 있었다. 나무와 전봇대를 혼동하여 센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만큼 주의를 게을리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2주일이 지났다. 아주 큰 드럼통을 짊어진 대왕 전봇대를 만나면 나무는 26번째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숫자를 세다가 26번째에서 대왕 전봇대가 아니면 이미 틀린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면 그만 셌다. 이것을 세어서 내가 무엇에 쓰겠다고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는 말이냐? 잘 세다가도 세는 것에 피로를 느끼면 당장 그만 세고 휘파람을 불며 걸어갔다.
숫자를 센 지 한 달이 되었다. 나무는 모두 48그루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 숫자가 제일 많았다. 이제 플라타너스와 은행나무를 분리해서 세어 보기로 했다. 몇 그루 되지 않는 은행나무만 세면 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한참 걷다가 깜박 착오를 일으킨 적도 있었다.
가로수 중 은행나무는 7그루였다. 플라티너스는 41그루가 되겠다. 최근에는 전봇대와 시설물과 가로등과 가로수 등 높이 세워진 모든 것을 합하여 세어 보려다가 그만두었다. 아주 쉬운 작업 같았지만 쉽기 때문에 다른 잡념이 일어나서 신경을 피로하게 하였다.
요즈음 쉽게 하는 일,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일이 아니라면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 한다. 어렵고 힘든 일은 온몸을 고달프게 하기 때문이다. 쉽게 해낼 수 있는 일을 두고 우리는 도전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난관에 맞서는 것이 도전이며 이를 극복하고 이루어 냈을 때 박수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도전하여 얻어낸 성취가 얼마나 아름답고 보람된 일인지 알지만 지 금의 내가 지향해야 할 것은 아닌 것 같다. 분수에 맞지 않은 줄 알면서 도 우직하게 매달리는 것은 망집(妄執)이라고 할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내 맘대로 하는 삶, 어느 것에도 거리낌 없는 무한의 자유를 만끽하며 살고 싶다. 시원한 바람을 쐬며 한들한들 산책하듯 나머지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것이 방종이며 늘어질 대로 늘어진 게으른 삶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러면 어떠냐? 늙은 세월도 이처럼 어느 것과 도 바꾸지 않을 좋은 것이 있단다.
나무의 수효를 내 맘대로 세다 말다 하는 것이 나에게는 제법 흥미로 운 일이었다. 머리를 말끔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세면서 신경 쓰던 머리가 세지 않으면서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는 것에 시원해졌다. 내가 반드시 나무의 수효를 셀 필요가 없다는 것에 안도하며 마음이 느긋해진다. 그것이 행복이었다.
이렇게 복잡한 것을, 산책하면서 틀림없이 그 수효를 파악해 오라고 누가 시켰다면 얼마나 신경이 날카로워졌겠는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이것이 나를 신나게 한다. 마음을 푹 놓이게 하는 것이다.
나무와 전봇대 등을 세어 본 지 달포가 지났다. 모두 합하면 101개였다. 그 중 가로등은 32개였다. 세지 않겠다고 하면서 나도 모르게 세는 데에 열중했던 것 같다. 세지 않는 자유를 누리는 것이 잔잔한 행복을 주는 것이었지만, 은근히 힘들어 하면서도 세어 결과를 얻어낸 후의 만족감은 그에 못지 않은 것이었다. 무엇인가 하나씩 매듭을 짓는 기분이었다.
이제 전봇대와 통신시설용 긴 기둥을 구별해서 각각 몇 개가 되는지 알아보고 싶다. 하지만 꼭 세어볼 것을 다짐하지는 않는다. 애쓰면서 그런 작업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또다시 은연 중 긴장을 하며 숫자를 세는 데에 힘들어할지 모른다. 살아 있는 한 우리가 한참 동안이라도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