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사년 가을호1 2024년 9월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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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요즘의 사건, 사고들을 보면 사회가 병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참을 인(忍)’자 세 개면 살인도 면한다는 데 소중한 생명을 함부로 대하는 것 같다. 우리도 어떤 나라처럼 총기 허용이 되는 나라였으면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아마 더 큰 희생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각종 흉기들을 휘둘러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었다.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고 조금만 수상해도 경계를 하게 된다.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람이 제일 무서운 존재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에 나갈 일이 있어 수인분당선 전철을 탔다. 분당선이었을 때는 자리에 앉아서 갈 기회가 많았는데 청량리와 인천까지 연장이 된 후로는 앉아서 갈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다.
내릴 때 쉽게 내리려고 출구 쪽에서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 편이다. 노약자석이나 임산부 배려석은 자리가 비어도 앉기가 꺼려진다. 노약자석은 노인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나 어린이, 몸이 아픈 사람 등이 이용하는 자리이다. 배려대상자가 아닌 일반 사람들이 노약자 석에 앉으려면 눈총 받을 각오와 가시방석에 앉았다 생각하고 얼굴에 는 철판을 깔아야 할 것이다.
출구 쪽에서 몇 정거장을 서서 가는데 마침 내 앞에 앉은 사람이 내리게 되어 운 좋게 앉을 수 있었다. 문이 열고 닫히며 새로운 사람이 탔고 내가 섰던 자리에는 베이지색 투피스 정장을 입은 젊은 여자가 섰다. 그 많은 사람 중에서 내가 앉아 갈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몇 정거장을 갔을까 내 왼편에 앉았던 여자가 내리려고 일어섰고, 출구 쪽에 서 있던 베이지색 투피스 여자가 내 왼편으로 와서 빈자리에 앉았다. 저쪽 편에서 뒤뚱거리며 걸어오던 나이 든 여자 분이 나 있는 쪽을 향하여 냅다 소리를 지르더니 “그 자리 내가 앉으려고 하는데 젊 은 ×이 앉고 지×이야”하며 삿대질과 욕지거리를 해댔다. 찬물을 끼 얹은 것 같은 싸한 분위기인데 나이 든 여자 옆에서 팔을 잡고 있던 젊 은 여자가 “내비둬. 그렇게 살다 가게”하고 큰소리로 비아냥거리듯 또박또박 이야기를 했다. 나이 든 여자는 여전히 소란을 피워댔다. 마침 그 두 사람도 자리에 곧바로 앉았다. 누군가 자리를 양보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자리에 앉았으면 되었지 계속 차 안을 공포의 분위기로 만들어 갔다. 젊은 여자는 “엄마, 가만히 있어. 가만히 있으라니까. 그렇게 살다 가게 내비둬”하며 큰 소리로 이야기 하는 모양새가 그 엄마에 그 딸이었다.
칠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엄마와 사십대쯤 되어 보이는 딸이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다. 말하는 본새가 배워먹지 못한 사람 같았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얄밉다는 속담이 떠 올랐다.
살벌한 분위기에서 내 옆에 앉은 베이지색 투피스 여자의 표정이 궁금하고 걱정이 되었다. 자칫하다가는 나에게도 불똥이 튈 것 같은 불안함이 밀려왔다. 똑바로 쳐다볼 수는 없고 곁눈으로 슬쩍 보니 스마트폰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누구의 웨딩사진인지 손가락으로 화면을 쭉쭉 올리며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어떻게 이 상황에서 저렇게 평화로울 수 있는지 궁금증이 일었다. 강심장인가 싶기도 하다가 아무리 강심장이어도 그렇지 저렇게 난리를 피우는데도 얼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자리에 꿋꿋하게 앉아 있을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오히려 내 가슴은 방망이질을 하고 요동을 쳤다. 자리에 앉아 가는 것이 행운인 줄 알았더니 좌불안석이다. 얼마 전 전철 안에서 난동을 피웠다는 뉴스도 본 상태고, 베이지색 투피스 입은 내 옆의 여자가 맞대응을 하면 더 큰 싸움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집에 와서 아들에게 내 옆의 아가씨가 어떻게 그렇게 태평할 수 있냐고 젊어서 그런가, 강심장도 그런 강심장은 없을 거라고 했더니 “엄마 옆에 앉은 사람이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었나 보네요”한다. 그랬다. 긴 머리카락 때문에 이어폰 꽂은 것을 못 보았지만 아마도 그랬나 보 다. 어쨌든 소귀에 경 읽기가 된 셈이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봐야겠다. 이어폰 덕에 손뼉이 마주치지 않았던 것이다. 온라인 세상은 즐거운 일 이 한가득이고, 오프라인에서는 그 난리를 피워도 나 몰라라 했으니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세상일 같다. 일상생활에서‘내비둬’라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되면 그날 전철 안에서 내지르던 그 상황이 떠오를 것 같다.
전철 안에서 빈자리가 나면 곧바로 앉기 보다는 주변을 둘러보는 편 이다. 배려대상자가 있으면 양보를 하고 때론 내가 배려를 받기도 한 다. 노령인구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대중교통의 빈자리는 어느 누구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