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한국문인협회 로고 박재일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사년 가을호 2024년 9월 68호

조회수82

좋아요0

박넝쿨은 초가의 벽을 타고 올라 지붕을 덮는다. 한여름 지붕은 초원 지대로 변신한다. 6월에서 8월에 꽃을 피우는데 밤에는 꽃잎을 열고 낮에는 닫는 수줍음이 많은 꽃이다. 가을이면 박속도 여물어 달밤이면 허연 박덩이가 알몸을 드러낸다. 잘 익은 박은 가운데를 갈라 속은 파내어 데쳐 박나물을 만들어 먹는다. 껍데기는 물에 삶아 말린다. 이때 볕에 말리면 모양이 뒤틀려 못쓴다.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 두어야 예쁜 바가지가 된다.
바가지는 살림에 긴요한 그릇이었다. 바가지는 다양한 용도로 쓰였고 이름도 용도에 맞추어 편리하게 붙였다. 쌀을 담으면 쌀 바가지라 불렀고, 드므에 담가 놓고 물을 뜨면 물 바가지요, 계란을 담아 두면 계란 바가지라 불렀다. 닭 모이를 담아 두고 마당에 한 줌씩 흩뿌려 줄 때 쓰면 모이 바가지다. 또 동냥치가 대문 밖에서 숟가락과 바가지로 장단을 맞추어 육자배기를 풀어 놓고 ‘밥 좀 주세요’하고 바가지를 내밀면 동냥 바가지다. 이때 들었던 육자배기는 내가 어른이 되어서도 흥얼거리고 있다.
무슨 바가지가 제일 좋은가. 두 말 할 필요 없이 쌀 바가지다. 동냥 바가지는 꿈에도 싫다. 물 바가지도 하나면 온 식구가 쓰기에 부족하지 않고, 이빨이 빠진 채 쓰고 있는 닭 모이 바가지도 하나면 족하다. 하지만 쌀 바가지는 다다익선이다. 쌀로 곳간을 채워 놓고 배 불리 먹고 이웃에 인심 쓰며 살고 싶었다.
살림살이에 팔방미인처럼 써 먹다 보니 자연 바가지가 들어 간 속담이 많다. 아내가 남편에게 불편한 잔소리를 늘어 놓으면 ‘바가지 긁는 다’고 했다. 옛날에 전염병이 돌면 무당을 불러 굿을 했는데, 무당은 바가지를 엎어 놓고 박박 긁어 귀신도 달아날 정도로 듣기 싫은 소리를 내었다. 여기서 아내의 잔소리에 빗댄 속담이 생겼고 또 요금이나 물건 값을 실제 가격보다 비싸게 지불하여 억울한 손해를 보게 하면‘바가지 씌운다’고 했다. 또 성품이 나쁜 사람은 어디를 가나 그 나쁜 본성을 드러내고 만다는 의미로‘집에서 새는 바가지들에 가도 샌다’와‘ 안 에 서 새는 바가지 바깥에서도 샌다’가 있다. 이재에 어둡고 게으른 사람을 보면‘바가지를 찰 놈’이라 했는데 훗날 철기문명의 혜택이 있고부터는‘깡통을 찰 놈’으로 고쳐 쓰기도 한다.
바가지는 화풀이 대상의 대역으로 쓰기도 했다. 값이 나가는 물건도 아니라 만만했다. 사람 속에 더불어 살다 보면 가시 돋친 말이 오가고 감정에 골이 생길 때가 있다. 참다 참다 화가 복받치면 앞뒤 가리지 않고 바닥에 엎어져 있는 바가지를 냅다 밟아 버린다. ‘팍’하고 깨지는 소리를 내면서 산산 조각이 난다. 동시에 미쳐 내뱉지 못한 응어리를 실타래 풀 듯, 묵은 체증을 토해내 듯 쏟아낸다. 바가지는 없어서는 안 되는 서민들의 분풀이 도구였다. 아내와 다투다가 바가지를 밟아 깨트리면 바가지는 아내의 대신이고, 회사 동료와 막걸릿집에서 홧김에 내려친 바가지는 회사 동료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번번이 내던지고 밟히는 바가지는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이 아닌가. 밖에서 따돌리고 업신여김 당하고도 시원하게 대거리 한번 못하고 기가 죽은 내 처지가 깨지는 바가지와 영락없이 닮은 꼴이 아니고 무엇인가.
우리 옛 여인들은 깨진 바가지를 버리지 않았다. 궁핍했던 살림에 당장 대신할 그릇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새 바가지를 얻으려면 내년 가을까지 몇 달을 더 기다려야 한다. 깨진 바가지를 물에 불려 조각을 맞추고 큰 바늘로 구멍을 뚫고 실로 깁는다. 찢긴 상처를 꿰맨 부상 입은 바가지의 탄생이다. 궁여지책이지만 얼마간은 긴히 사용했다. 이런 아내를 남들은 살림살이를 아끼고 낭비를 모르는 알뜰한 사람이라 하고 겉치레 인사말로 스쳐 지나겠지만, 실은 이때 남편들은 아내의 결연함을 본다. 한없이 기우는 집안을 일으키려고 이를 앙다물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사업 실패로 기진맥진한 가장과 어린 자식을 키우기 위해 여인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으리라.
쌀독에서 인심 나듯이 바가지에서 인심 났다. 홍시가 한 바가지 담기 면 담 넘어 이웃집을 불러 건넸다. 이웃도 감사히 받고 되돌리는 바가 지에 부침개를 담아 건냈다. 흉년에 양식이 떨어지면 이웃이 먼저 알고 보리쌀을 바가지에 담아 연명에 보태게 했다. 바가지는 이웃과 정을 나누고 사랑을 실어 나르는 그릇이었다.
요즘도 가끔 산골 여행길에 바가지를 볼 때가 있다. 순간 어려웠던 옛날이 떠오르고 동심을 키우며 살던 시절 초가지붕 위의 박이 떠오른다. 비록 일 년 남짓 쓰면 수명이 다하지만 색깔 고운 플라스틱 바가지가 갖지 못하는 애환이 스며 있고 서로 나누고 사랑했던 추억이 있었다.

광고의 제목 광고의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