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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사년 가을호 2024년 9월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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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광주 새벽 난장에서 다슬기 무더기가 눈에 띄었다 요즈음에는 쉽게 볼 수 없던 터라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6·25 전쟁통에 피난살이로 나는 외가에서 석 달을 보냈다. 드들강이 가까운 부근 냇가는 꼬마들이 여름 한철나기에 알맞은 놀이터였다. 바깥세상 돌아가는 것은 어른들의 걱정이고 우선 학교 안 가고 시골로 내려와 사는 피난살이 생활인데도 뭐가 그리 좋은지 또래가 모이면 배고픔도 잊어버리고 종일 뭉쳐서 놀았다. 뜨거운 한낮 지나면 뒷툼벙에 몰려가서 다슬기 잡아다가 밀가루 버무려서 수제비 끓인다고 법석도 떨었다. 다슬기 삶아낸 국물에 애호박 하나만 더 넣으면 그 맛은 꿀맛이었다. 허겁지겁 서로 얼른 먹으려고 나대니 엄청 뜨거웠을 텐데도 입 천장 데인 기억은 안 나고 입 안에 번지는 쌉싸래하면서도 시원한 국물 맛이 오래도록 맴돈다.
돌이 많고 강 속이 훤히 보이는 맑은 물속에서는 아무 돌이나 들추어 손으로 잡아내면 되는 끼리끼리 다닥다닥 붙어 있는 흔하디흔한 존재다. 냇가에 나가 한 시간 남짓 놀이하듯 몸을 놀리면 누구든지 한두 됫박은 거뜬히 잡을 수 있었다. 다슬기 먹이인 물이끼 때문에 바닥이 미끄러워 잘못 밟으면 미끄러져 자빠져서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곁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없으면 봉변도 당하고 크게는 익사 사고도 난다.
떼 지어 산란해서 사는 습성이 있으니 그냥 손으로 더듬거리며 손에 잡히는 대로 몽땅 떼거리로 잡을 수 있어서 재미에 푹 빠진다.
삶아서 껍데기 속의 속살만 이쑤시개나 바늘로 빼먹고 우려 낸 국물을 마시면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암녹색을 띠고 있는 껍데기는 이것이 바로 녹색소로 이뤄진 간의조직 원료로 신장을 돕고 간담의 약이 된다고 해서 숙취에 좋다고 술 마시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국물이다.
외할아버지는 젊은 날 공부하러 일본에 갔지만 해방 후에 귀국하여 남평에 자리 잡고 머무셨다. 때를 잘못 만나 한이 많은 세월을 사느라 약주에 많이 의지하셨다. 과묵한 성품이지만 무서운 분은 아니었고 지금 생각해보니 제일 큰손녀인 내게 뭔가 가르쳐주고 싶은게 많았지만 스스로 포기한 것 같았다. 말벗도 없이 외톨이의 고독을 사시느라 크게 소리 한번 내보지 못한 시간들은 돌 틈에 웅크린 다슬기의 시간만큼 외롭던 시간이었던가 보다. 다슬기는 단단한 껍질 속의 속살이 꽉 차게 되면 끓여져서 국물이 되고 그 맛은 담백하고 후련함을 더해준다. 할아버지의 가슴속 답답함도 쓸어내리고 녹여 내린 듯 후련해지니 따끈한 다슬기 국물 한 모금으로 뻥 뚫려 속내가 만족스러워서 뜨거운 국물인 데도 시원하다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하얀 머리카락에 미남이고 늘 혼자서 책을 읽다가 시조 한 수 노래하며 손수 담배써레질도 하시던 모습이 그림 같았다. 논밭일도 할 줄 모르고 사랑채에 앉아서 멍 때리시던 모습이며 시국이 조심스럽던 때라 바깥출입도 안하고 어울리는 사람도 없이 혼자서 그 세월을 사신 것이다.
내가 외가에 있는 동안 다슬기 잡아오면‘아! 시원하다’하면서 씨익 웃으시던 그 미소를 70년이 지난 지금도 그려낼 수 있다. 일등은 늘 쫓기며 피곤하니 공부도 적당히 하라고 말렸지만 다슬기는 다른 애들보다 내가 한 움큼 더 잡아오면 빙그레 웃으며 좋아하셨다. 약주 들고 취해서 잠이 든 할아버지는 어린 내 눈에 처량해 보였고 늙어지면 누구나 외로워지는가 보다고 어린 마음에 새겨졌다.
외할아버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들려주신 얘기인데 우리말에 서툴러도 친구처럼 종알거리던 내가 곁에 있어서 그 해 여름은 제일 행복했었노라고 하셨단다.
나이만큼 늙는 것이 아니고 생각만큼 늙는다는 말이 있듯이 그러고 보면 나도 일찍 철이 들었던가 보다. 외할아버지의 한 서린 외로움과 뜨거운 다슬기 국물로 풀어 보이던 나이 든 노년의 외로움을 내게 보여 주셨지만 더 달래 드리지 못한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가가 젖어온 다. 떼거리로 모여서 살찌우던 다슬기네 평화롭던 물속 풍광도 새삼 그립고 정겹게 다가온다.
한 됫박 다슬기를 사들고 돌아서면서 오랜만에 다슬기 맛도 외할아버지 모습도 품어 보게 된다.

땡볕 내리쬐는 한낮
무릎까지 차오른 냇물에서 다슬기 잡는다.
풍덩, 옷젖는것쯤나몰라라
바닥 훤히 들여다보이는 물속 돌멩이 사이사이 
다슬기 가족 모여 있는 곳 찾아내
오지게한움큼잡아낸다

막걸리 한잔에 다슬기 삶아낸 뜨끈한 국물 한 대접 
외할아버지‘아 시원하다’
만족해 웃으며 맛있게 드시는 모습이 그저 좋아서 
그 환히 만면에 번지는 미소가 보고파서
더 열심히 다슬기 잡는다
뭍으로 올라올 즈음 멱 감고 물장구치며
편 갈라 물놀이에 취해 신나게 놀던 그곳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외가의 뒷내
물속의 시원함이되어 외할아버지가 떠 오른다
어젯밤 꿈속에서 한 움큼 움켜쥔 다슬기
팔까지 쥐 내린 꽉 쥔 주먹은 펴보니 텅 빈주먹이다 
다슬기도 외할아버지도 어디서 찾아볼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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