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사년 가을호1 2024년 9월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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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사이 우리 경제가 많이 침체되어 있다. 생활물가는 뛰고, 기업은 기업대로 힘들다고 한다. 나라 살림도 휘청거린다고 하니 누가 나를 도와줄 것인가? 그래서 사람들에게 “어떻게 사느냐? ”고 물으면 “죽지 못해 산다”고 대답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만큼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이리라. 그래서 우리는 죽는 날까지 살아내야만 한다. 사는 동안 온갖 희로애락을 마주치게 된다. 특히 ‘머피의 법칙’ 처럼 안 좋은 일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심적으로 커다란 좌절을 하게 된다.
10여 년 전 가을 나는 강원도에서 약 한 달간 머물렀던 적이 있다. 그 무렵 나는 각박한 도시생활 속에서 약간의 좌절을 맛보고 있었다. 무언 가 돌파구를 찾기 위하여 수소문한 끝에 강원도 평창군에 있는 천년 고찰 월정사를 찾았던 것이다. 가을이 시작할 때쯤 들어가서 가을이 한창 무르익었을 때 나왔다. 처음 월정사 경내에 들어섰을 때 건너편 산등성이에는 하늘로 쭉쭉 뻗은 전나무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나무는 짙푸른 녹색으로 몸을 감고 있었다.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멀리 보이는 오대산 자락으로부터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점들이 하나둘 늘어나더니 그 원색의 물결이 어느새 월정사 뒷산까지 점령했다. 월정사 경내가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으로 활짝 물들었을 때 나는 절집생활을 마치고 하산하였다. 하지만 고속버스를 타고 도착한 서울 도심에는 아직 가을 소식이 감감이었다.
월정사에서는 불교의 기초 교리를 배우고, 108배를 포함한 예불, 발우공양, 운력, 참선 등을 직접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특히 끝이 보이지 않게 여겨졌던 삼보일배, 적멸보궁을 비롯한 오대산 곳곳에 있는 암자 탐방을 위한 등산, 중간에 멈출 수밖에 없었던 삼천 배 등 체력적으로는 무척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는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었다. 특히 어둠이 사라지지 않은 새벽 예불 시간과 하루 일과를 마감하는 저녁 예불 시간에는 경건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당시 느꼈던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하여 기록해 두었던 글을 꺼내어 다시 읽어 본다.
온산이 빨간색, 노란색, 주황색으로 물들어가는 오대산 월정사 범종루 (梵鐘樓). 지친 하루해가 구름 한 점 없는 서산 위로 떨어지자 법고(法鼓) 앞에 서 있던 스님의 너른 소매 자락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둥∼ 둥∼ 두 둥∼ 둥∼, 법고 소리다. 왠지 모르게 슬프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절로 눈이 감겼다. 슬픈 소리는 한참 이어졌고, 생각은 허공을 나르고 있었다. 순간 법고 소리가 멈췄다. 딱 따닥 따다닥. 눈을 떴다. 스님은 목어(木魚)를 두드리고 계셨다. 목어 소리는 물고기들을 구제한다고 했다. 이어서 챙∼ 챙∼, 이것은 구름 형상을 하고 있는 운판(雲版)두드리는 소리. 날짐승들을 구제하는 소리라고 했다. 이어서 댕∼ 댕∼ 댕∼, 웅장한 범종(梵鐘) 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리는 지옥에 빠진 중생들을 구제해 준다고 했다. 이 소리를 듣는 순간 중생들은 고통을 잊는다고 했다.
매일 법당 안에 꿇어앉아 예불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청아한 범종 소리가 귓전을 두드리곤 했다. 그 소리는 항상 내 정신을 맑게 씻어 주어 깨끗한 마음으로 예불을 드릴 수 있었다. 모처럼 내가 범종을 칠 기 회를 얻어 당목(撞木: 범종을 치는 나무)을 이어받았다. 굵은 당목이 범종을 두드리는 순간 파르르 손이 떨렸다. 손의 떨림에 이어 범종의 울림이 나에게 전해져 왔다. 내 가슴속까지 흔들어 대는 대단한 울림이었다. 얼 마나 아팠을까? 내 귀에는 그 소리가 범종이 울부짖는 소리로 들렸다. 인 간을 대신해서 아픔을 당하는 것이리라.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범종의 울림은 계속 이어졌다. 생각은 시간을 거 슬러 올라갔다. 여기에 범종이 매달렸을 때부터 새벽과 저녁이면 어김없이 범종은 울었으리라. 순간 내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활짝 펼쳐져 있던 쥘부채를 접듯이 세월을 축소시켜 보았다. 그러자 새벽과 저녁 사이 그리고 저녁과 새벽 사이 끊어졌던 소리가 어느 틈에 이어졌다. 그렇다면 이 범종이 이 세상에 태어나 이곳 범종루와 인연을 맺었을 때부터 쉬임없이 울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하여 끊임없이 울고 있었지만 어리석은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 았을 뿐이리라. 시간 여행이 종착역에 가까워졌는지 눈이 떠졌다. 타종 행사를 마칠 때가 되었나 보다. 이제 곧 저녁예불이 시작될 것이다. 나는 서둘러 적광전으로 들어갔다.
예불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싸늘한 바람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역시 오대산 자락의 가을 공기는 무척 차가웠다. 흑채를 뿌려 놓은 듯 까만 밤하늘에는 밝은 달이 떠 있었다. 그 뒤로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주황색 등 색색깔의 보석들이었다.
당시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다시 도시생활이 시작되니 월정사에서 느꼈던 감정들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이전의 일상처럼 또 다시 세월은 흘러 10여 년이 흘렀다. 머리에는 희끗희끗 서리가 내리고 허리도 힘이 많이 빠졌다. 문득 그 시절이 그리워졌다.
우리의 삶에도 끊어질 듯 이어지는 범종 소리처럼 각종 희로애락이 뒤섞여 끊임없이 나타난다. 그중에서 머피의 법칙처럼 나쁜 일만이 끊임없이 이어진다고 생각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꿔 생각해 보면 좋은 일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나쁜 일만 기억하고 있으니까 나쁜 일만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나쁜 일들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 치고, 좋은 일들만 기억하며 살아갈 수는 없을 까?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의 삶이 좋은 일들만 반복되는 행복한 삶이 될 것이다. 무릇 생각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바뀔 것 이다. 세상사 모든 일이 모두 그런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