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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로고 이상석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사년 가을호 2024년 9월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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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00여 종류의 수목화초에 묻혀 매일 매일 그들과 정겹게 대화를 나누며 살아갑니다. 그 중에서도 사철나무인 동백을 가장 좋아합니다. 늘 푸른 기상과 립스틱 짙게 바른 여인의 입술 같은 꽃도 좋지만 그보다도 나 어릴 적 아름다운 추억과 꿈을 심어준 나무이기에 더욱 그러합 니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 마을에는 인심 좋기로 소문난 ‘최 부자’집이 있었습니다. 그 집에는 인근 마을 가난한 사람들이 일을 해 주고 식량을 갖다 먹거나 초가지붕을 덮기 위해 짚을 가져가는 등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습니다. 어른들이 하루 일하면 품삯으로 쌀은 1되, 보리쌀은 2 되, 짚은 한 짐(열 뭇)을 주었으니, 이엉을 엮어 초가지붕을 덮기 위해서 는 꽤 여러 날 일을 해야 했습니다. 어린 자식들 여섯에 가난했던 우리 부모님도 그 집에서 모심기, 김메기, 벼베기 등을 하셨습니다. 나는 지 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모진 노동의 대가로 곡식을 받아오시던 어머니와 볏짚을 지게에 메고 옹골제 잔등을 넘어 터벅터벅 걸어오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오늘따라 부모님이 많이 보고 싶습니다.
3명의 머슴이 사는 사랑채 널따란 뒷마당에 100년 정도 됨직한 커다란 동백나무가 숲을 이뤄 이른 봄이면 아름다운 꽃을 피워 지상천국을 만들었습니다. 그곳은 우리들의 신나는 놀이터였습니다. 나보다 두 살 아래인 주인집 큰아들을 비롯해 동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으레 거기에 모였습니다. 해 지는 줄도 모르고, 남아들은 땅 따먹기, 구슬 치기, 딱지치기, 동전치기 등을 하고 여아들은 공기놀이, 줄넘기를 하며 놀았습니다. 때로는 달콤한 꽃술을 빨아 먹기도 하고 떨어진 예쁜 꽃봉오리를 골라 목걸이를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마음씨 착한 동백나무는 우리들이 얼마나 오르내리며 괴롭혔던지 반질반질하고 가지가 부러지고 온몸이 상처투성이여도 불평 한마디 없이 봄에는 꽃과 향기로,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로 조무래기들을 반겨주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무심코 뛰어 놀았지만 나는 사철 푸른 동백나무를 보면서 이 나무가 큰 부잣집을 상징하는 나무라 여겨져 나도 언젠가 집을 지으면 동백나무부터 심겠다는 생각을 갖곤 하였습니다.
가난하고 힘든 역경의 세월을 이겨 내고 스물셋에 행정공무원에 임용되고 그로부터 10년 뒤인 1985년에 그토록 갖고 싶었던 전원주택을 짓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재래종 동백나무 20여 그루를 심고 어서어서 자라기를 바라면서 아이들과 정성껏 가꾸었습니다. 그로부터 4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어린 시절 내가 놀던 부잣집 뒤뜰의 나무처럼 한 아름은 아니지만 제들끼리 얼굴 비비며 손을 맞잡고 숲을 이룬 낙원을 거닐 때마다 많은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내가 손수 심은 동백 나무와 함께 자란 내 아이들도 이제 불혹에 이르고 나 또한 칠순이 훌쩍 지났으니 세월 참 무상하고 야속합니다. 동백꽃의 꽃말은 기다림, 애타는 사랑(빨강색), 굳은 약속 등 많으며 대략 11월 말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해 2∼3월에 만발합니다.
지난겨울 이상기온으로 시련을 겪어서인지 예년처럼 많은 꽃을 피우지 못했지만 악전고투를 이겨 낸 병사처럼 위풍당당한 모습이 경이롭습니다. 추울수록 더 진하고 큰 꽃잎을 피우고 붉은색 치고는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모양의 꽃잎, 대부분의 꽃들은 가지에 매달린 채 시들지만 동백꽃은 하나씩 떨어지지 않고 통째로 지기 때문에 예로부터 여인이 나 선비의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데 많이 쓰였습니다. 꽃으로 주어진 임무를 다하면 새빨간 꽃잎을 간직한 채 통째로 떨어져 또 다른 꽃무리 를 이룬 고운 자태가 길손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니 동백이야말로 꽃 중의 꽃이 아닐까요?
내 어린 시절의 부잣집 동백숲은 아이들의 천국이었으나 우리 집 동 백숲은 새들의 천국입니다. 동박새, 직박구리, 참새, 까치, 비둘기는 물론 좀처럼 보기 드문 딱따구리가 구멍을 파는 것을 보았으나 조건이 맞지 않았는지 서식하는 것은 볼 수 없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작은 벌새 종류가 둥지를 틀고 나간 촘촘한 빈집도 발견되었답니다. 제들끼리 사랑을 나누고 알을 낳아 부화하여 떠날 때까지 몰랐다니 참으로 한심한 주인입니다. 내년에도 다시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옛날 생각이 날 때마다 고향 마을에 갑니다. 나와 같이 놀았던 친구 들이나‘최 부자’집 자녀들은 모두 객지로 떠나고 장남만 고향을 지키 며 아버지의 대를 잇고 있습니다. 옛집은 철거하고 주변을 정리해 고급 스러운 현대식 주택을 지었고 동백나무가 울창하던 뒷마당엔 큰 창고 가 들어서 지난날 우리들의 꿈을 가두고 빗장질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까지 남아 있다면 150년도 훨씬 넘었을 동백나무, 어린 시절 우리들의 꿈을 피워 준 동백나무, 한두 그루라도 남겨두었다면 좋을 텐데 참으로 아쉽습니다.
해질 무렵, 모두가 그리운 마음에 내 작은 뜰 동백나무 사이 길을 걸으며 상념에 잠겨 봅니다. 붉은 노을이 수만 송이 동백꽃으로 피어나고 어릴 적 친구들이 동백나무 숲속으로 하나 둘씩 모여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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