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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우산이 되어

한국문인협회 로고 오혜진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사년 가을호1 2024년 9월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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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장마가 계속되면서 엊그제부터는 비가 더욱 많이 내렸다. 호우경보도 계속되면서 물난리 사태를 예고하고 있다. 언제나 겪어야 되는 자연의 이변과 변화가 반복되면서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한계를 느끼게 된다. 올해는 커다란 자연재해 없이 장마철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시작인 줄 알았는데 거의 끝나가는 계절의 정점에 이르면 이내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게 된다. 수없이 반복되는 계절의 변화 속에서 사람들은 삶에 순응하는 자세를 배우게 된다. 사람들의 생각에 있어서 많은 변화의 과정을 겪으면서도 그 본질과 가치는 한결같은 것 같다. 하지만 각기 다른 환경과 상황 속에서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긴 해도 서로 일치 하는 생각과 관점을 위해 노력하다 보면 바람직한 생의 방향으로 나아 갈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내게 주어진 삶에 있어서 부족한 대로 최선을 다하다 보니 많은 것들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추구하는 생의 가치가 일치하지 않는 것은 절대로 받아들이고 싶지가 않다. 어찌 할 수 없는 현실적인 여건 속에서 잘못 판단하고 억지를 부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깊이 반성하는 태도가 필요할 것 같다. 물론 나는 나와 관계없는 타인이라도 객관적인 관점에서 이해를 하게 되었고 노력 여하에 따라 바람직한 삶으로 개선되기를 바란다.
베란다 창문 너머로 밖을 내다본다. 비바람에 흔들렸던 나뭇잎들이 생명에 필요한 물줄기를 잔뜩 머금고 여름이란 계절에 익숙해져 간다. 한때는 보기에 좋았던 탐스런 모양의 꽃들을 피웠건만 지금은 그 모습을 볼 수가 없다. 바람이 몹시 불던 날 흩날리더니, 아름다운 꽃들은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사라져 버렸지만 자연의 자양분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갔기를 바란다. 나와 관계는 없었지만 나는 이따금 그런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두었다가 이내 지워버리기도 했다.
얼마 전엔 내 생일이었다. 음력 유월 너무나 무더웠던 날이었다. 매 년 양력 날짜로 환산해서 생일을 지내다보니 매번 달라져서 번거롭다고 양력 날짜로 고정해서 지내는 게 어떠냐는 의견이 있었지만 어찌하다 보니 올해도 습관적으로 그냥 그렇게 지냈다. 나는 음력 날짜에도 양력 날짜에도 축하 문자메시지를 받는 게 기분이 좋았다. 나는 가족이 나 친지랑 모여서 케이크를 자르면서 깜짝 주인공이 되는 게 기분이 좋았다. 세상에 어느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는 단 하나뿐인 존재로 태어나 그날은 그렇게 의미가 되고 싶었다. 내 생일보다 한 며칠 앞서서 남편 생일날에 축하 모임을 가졌던 터라 나는 아들네가 더운데 오가느라고 힘들까 봐 걱정을 했다. 날마다도 아닌데 괜찮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로 만나고 사는 게 아닐까? 빛나는 1일 주인공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만 족할 수 있다.
어쨌든 나는 전혀 원치 않는 사람의 그림자가 되어 주는 것을 거절한다. 우리는 모든 나이를 다 떠나서 실체를 모르는 느닷없는 대상의 그림자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언제나 나서지 않고 뒤로 물러나 있지만 저절로 빛나는 존재로 우뚝 서 있고 싶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늘 가까이 살았던 사람들의 좋은 점은 잘 못 느낀다. 그저 조금씩이라도 안 좋은 면만을 생각하게 된다. 시간이 한참 흐르면서 나는 가까운 사람들의 좋은 점을 더욱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내게 주었던 많은 관심과 사랑에 감사한다. 우리는 가까운 사이든 그렇지 않든 주위의 사람들에게 그들의 어떤 점을 정말 좋아한다고 언어로 표현하며 살았는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들은 상대방의 좋은 점을 인정해주고 그저 상대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 서 나는 누구나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타인의 우산이 되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비가 그치고 활짝 개인 날 눈부신 햇살을 보면서 그렇게 살았던 여름날의 이야기가 남아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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