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사년 가을호1 2024년 9월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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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화려함으로 시작하여 쓸쓸함의 낭만으로 갈무리하며 한 계절을 보낸다. 화려함이란 붉은 가을 단풍과 노란 은행잎으로 이야기된다고 말할 수 있다. 붉고 노란 단풍은 모든 이들을 설레게 하고 들뜨게 한 다. 그래서 가을은 축제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혹자는 가을을 남자와 여 자가 연인이 되어 가을을 즐기는 낭만에 대한 계절의 시적 표현이라고도 말한다. 항상 둘이라는 연인의 의미에서 낭만이라는 말이 더욱더 어울리는 말일 것이다. 한 번의 가을은 하나의 나를 가을에 담고 그다음의 가을은 연인과 함께 둘을 가을에 담는다. 어쩌다 여인이 고개 숙여서 단풍잎을 하나 집으려고 하면 이를 놓칠세라 옆에 있는 남성은 얼른 예쁜 단풍잎과 은행잎을 주워서 여인에게 건넨다. 이를 받은 여인은 쑥스러워서 슬며시 미소를 머금은 채 사랑의 가을 이야기로 대답을 한다.
“나무 잎사귀가 가득 물들어서 아름다운 가을이네요? 요번 가을은 짙고 붉은 노란색으로 가을을 담아버렸네요? 그렇죠.”
그러면 남성은 정다운 화답을 여인에게 보낸다.
“단풍은 가을의 나와 그대의 본질이지 않겠어요? ”
그러면서 두 사람은 비로소 하나의 연인이 되어 간다.
단풍이 진다. 그리고 이어서 낙엽이 하나둘씩 떨어져 산 위에서 길바닥 신작로에서 나뒹굴고 있다. 단풍 든 나무는 벌거벗은 나목이 된다.
남성은 여인에게 먼저 이야기를 하였다.
“이제 나무는 단풍이 지는 시절이 되고 말았네요? 벌거벗은 나목의 슬픔을 아세요? ”
여인은 엉겁결에 대답한다.
“어머나 이를 어째야 하나.”
남성은 재빠른 화답을 한다.
“그러면 서로에게 편지를 써야겠지요? 가을의 우리 이야기 말입니다.” 그래서 혹자는 가을 이야기는 가을의 편지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낙엽으로 가는 가을 편지는 이유가 있든 변명이든 핑계이든 간에 서로에게 글을 쓰게 하는 명분을 부여한 첫 편지가 될 수 있고 이를 화 답하는 답장의 편지가 이어진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래서 우리는 가을 밤 귀뚜라미 소리를 처량하게 들으며 한참을 한 손으로 턱을 고인 채 앉아 있다가 가을의 편지를 쓴다. “귀뚜라미 소리가 내게는 사랑의 슬픈 음악 소리이다”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나무는 나목으로 벌거벗으면서 낙엽을 가득 모은다. 낙엽으로 인하여 낙엽 치우기 힘든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 대부분은 낭만을 느낀다. 단풍 든 낙엽을 곱게 모아서 책갈피에 끼워 놔두었다가 편지를 다 쓰고 나서 편지 여유 공간에 풀질하여 붙인 후 편지지를 봉투에 담아 넣는다. 그건 가을사랑의 가을 편지로 쓰는 연인들의 표식이다. 또 다른 가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다가오는 추운 겨울을 지나 새싹과 이 파리가 나오는 초록의 봄 그리고 뜨거운 태양의 계절 여름철을 지나야 만 된다. 이처럼 가을의 나목과 낙엽은 그리운 시절의 단풍과 낙엽의 표상이다. 가을이면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낙엽을 모아 모닥불을 피운다. 모은 낙엽을 소리 없이 태우기에 주위엔 항상 사람들로 가득하다. 낙엽 태우는 냄새와 가을 낙엽의 연기를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낙엽 태우는 연기와 냄새는 진정 가을 편지를 쓸 수 있는 충동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가을엔 편지를 쓸 수 있기에 사랑을 할 수가 있다. 가을 사랑을 말이다. 이처럼“어느 누가 사랑에 대한 사랑의 꿈이 없을 수 있겠는가? ” 스피노자가 말하였듯이 비록 오늘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노라고 말이다. 이처럼 사랑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처럼 희망이지 않겠는가? 내가 살아갈 인생의 꿈이자 인생의 포부이며 나의 연인에 대한 연모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가을 사랑을 할 수가 있고 가을 편지를 쓸 수가 있는 것이다.
어렸을 적 동네 신작로 옆에 큰 저택이 있었는데 옛 시절에 미국 사람이 살았다고 하여서 우리가 통용하는 말로 그냥‘미국 집’이라고 불렀다. 그 미국 집에는 50년이 넘은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었다. 우리는 그 큰 저택의 앞마당 한편에서 구슬치기를 하며 놀았다. 그 큰 은행나무는 열매인 은행알도 많이 열릴 뿐만 아니라 은행잎도 많이 떨어져 낙엽으로 쌓이곤 하였다. 그러면 미국 집에서는 낙엽을 한데 모아서 태웠는데 우리는 구슬치기를 하다가 집주인이 은행나무 낙엽을 태우면 우리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낙엽을 태우는 냄새를 맡기도 하고 낙엽을 태우는 연기에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하였다.
나는 단독주택에 살지 않고 아파트에 산다. 그래서 아파트를 지키는 경비 아저씨들이 계시는데 종종 마주치면 인사를 주고받고는 한다. “안녕하세요? 고생이 많습니다.”그러면 경비아저씨는 반갑게 인사를 받으신다. “예! 고맙습니다.”그러나 10월 말 이후가 되면 경비 아저씨 나 입주자인 우리들 간에 서로 난감한 일이 벌어진다. 어느 아파트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조경으로 아파트마다 오래된 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다. 보통 큰 나무일 뿐더러 나무 숫자도 많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떨어 지는 낙엽이 너무나 많고 치울 공간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그래도 지 금은 송풍기라는 기계가 나와서 바람으로 낙엽을 한꺼번에 모을 수 있어서 빗자루로 쓸던 때보다는 좀 나은 편인 것 같다. 그러나 나무낙엽이 다 떨어질 때까지 매일 두 달 넘은 기간을 낙엽 청소를 하셔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동네 산책길이나 등산로에는 낙엽을 치우거나 태우지 않고 그냥 낙엽을 밟고 가면서 낭만을 느낄 수 있게 한다는 것이 조금
좋은 면이라고 볼 수도 있다. 매년 가을 낙엽 시즌이 다가오면 나는 우리 집 아이들에게 당부한다. 경비 아저씨에게 말로 표현하는 가을 편지를 쓰라고, “아저씨 고생이 많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이다. 낙엽 시즌으로 인하여 우리 식구는 365일 감사의 가을 편지를 쓴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