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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도 같이 해주면

한국문인협회 로고 박영희(전주)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사년 가을호1 2024년 9월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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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절친한 후배의 슬픔을 접했다. 그녀는 자기도 죽겠다고 발버둥쳤다. 사랑하는 남편과의 사별이었다. 이제 회갑을 넘은 나이이니 그 슬픔이야 오죽하겠는가.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이라도 손잡고 그 슬픔을 같이 나누면 반으로 줄어든다는 말이 있기에, 나는 후배를 찾아가 같이 울었다.
억겁일우의 어려운 태어남에서 볼 때 짤막한 생과 사의 사이는 자연 인생의 가장 근원적인 비애를 낳을 수밖에 없겠지만, 그렇다고 그 짤막한 삶의 과정을 자학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오히려 생을 더욱 고귀하게 여기고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결코너의삶은너혼자의것이아니다. 남은 자녀 3명과 같이하는 것이다”라고.
그 후배는 하루아침에 교통사고로 하늘 같은 남편을 잃었다. 그 비애는 극도에 달하여 남편을 산에 묻던 날, 삽질하는 현장에서 자기도 따라 들어가겠다고 몸부림치는 것을 주위에서 간신히 말렸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죽음이란 너무나도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요 슬픔이라는 것, 그러한 죽음을 회피할 수 없는 생이라면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봤다.
부부는 일심동체, 천지지간이라고 흔히 말한다. 따라서 남편의 죽음을 곧 나의 죽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봉건적인 도덕성에 서 우러나온 것이지, 결코 현실적인 사고가 아님을 알아야 하리라.
삶의 현실을 떠나서 도덕이란 생각될 수 없고, 그 삶의 가치와 의미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서는 도덕의 내용이 설정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면 도덕의 원천은 아무래도 생사의 한계의식을 극복한 삶의 의지에다 주어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그 후배는 현세 밖의 어떤 경지를 필요로 할 것이 아니라 바로 현실을 재정비, 조직, 미화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스스로 구체화해야 할 것이다.
나는 어리석게도 본인의 현실을 가차없이 포기하려는 후배와의 투쟁을 몇 날 몇 밤을 같이했다. 무릇 인간은 생명의 존귀성을 인식해야 하며, 이 세상에서 그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것이 바로 나 자신이요, 나 자신의 기본적인 실제가 바로 나의 생명임을 누누히 강조했다.
내가 없다면 이 세상은 나의 세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즉 내가 있고서, 나의 의식이 있고서야 비로소 이 세상은 나의 세상으로, 나아가 서는 내 의지의 실현장으로 펼쳐져 있게 마련이라고. 때문에 생명의 귀중함을 외면한 그 어떤 사고도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도덕적 자각이 될 수 없음을 역설했다.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후배는 일을 당한지 한 달이 넘도록 생사의 갈림길에서 그토록 못 견디게 몸부림치는 것이었다. 나는 거의 매일 밤을 그녀와 같이 지내면서 그녀의 슬픔을 같이했다.
어느 일요일, 우린 조용한 산사를 찾았다. 후배에게는 이 세상에 생명으로 태어나기가 어렵고, 생명 중에서도 사람으로 태어나기가 어려우며, 사람으로서도 오든 것을 알고 가는 각자(覺者)가 되기 어려움을 인지시키기 위함이었고, 나 또한 어떤 강렬한 힘에 의지하여 터질 듯하고 답답한 마음을 실컷 풀고 싶어서였다.
깊은 산의 암자, 끝없는 고요가 흐르고 더없이 그윽하다. 이윽고 산사의 주변에는 독경 소리가 가득해진다. 후배는 다소 안정되는 듯, 생연(生緣)의 중요함을 깨닫는 듯 눈을 깜박거린다. 그리고는 엎드려 부처 앞에 수없이 절을 한다. 가슴에 박힌 응어리를 , 사무친 통곡을, 그리고 심장 깊숙이 꽃힌 비수를 뽑으려는 친구의 거듭나는 의지가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오는 길, 서녘 하늘에 붉은 노을이 아롱거리고 있다. 친구는 거듭나 는 인생을 자인하는 듯 심호흡을 깊이 한다. 그리고는 대자대비한 부처와의 만남을 어찌나 고마워하는지 연신 감동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서야 나는 후배의 얼굴에서 새로운 삶을 살려는 의지를 찾아냈다. 실로 그 얼마 동안의 방황이었던가. 나는 너울너울 춤을 추고 싶었다.
드디어 후배는 말한다.
“언니가 나의 슬픔을 같이해 준 것은 확실히 내 슬픔을 절반으로 줄 여 주었어. 그동안 너무 고마웠어요.”
이젠 서산 기슭의 노을이 조급하지도 않고 초조하지도 않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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