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사년 가을호1 2024년 9월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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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추하고 지저분한 동네 사이 좁은 길을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꼬불꼬불 나는 차를 몰았다. 좁은 데다 길 옆에 마구잡이로 지은 조립식 주택들의 낮은 지붕 모서리가 내 이마를 칠 것 같은 조바심이 들어 운전에 집중이 안 되려는데 집들이 끝나고 길이 탁 트인다. 저 앞 막다른 곳에 낡고 초라한 바라크처럼 생긴 회색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새아버지나 엄마를 보내던 깨끗하게 새로 지은 현대식 화장장과는 다르게 동네만큼 누추하고 작은 옛날 화장터 그대로다. 바라크 같은 화장 장 뒤로 동네사람들이 땅을 뒤져 일구었음직한 채마밭에 푸성귀들이 푸릇푸릇하다. 동네의 분위기도 화장장의 분위기도 한 세대쯤 과거로 되돌아간 풍경이다. 아버지가 죽기 전에 우리가 살던 동네의 기왓굴이 갑자기 떠올랐다. 기와를 굽지 않던 버려진 기왓굴에는 문둥이 엄마가 아기를 데리고 사는데 재수 없이 문둥이 엄마에게 잡히면 간을 내먹힌 다는 소문이 무서워서 아이들은 그곳에 가까이 가지 않았다. 저 채마밭 뒤로 몇 걸음만 더 들어가면 보리밭 가운데 버려져 을씨년스럽던 그 기 왓굴이 있을 것 같다. 이슬 같던 비는 이제는 개가 되어 내린다.
한 달이나 입원해 있었다던 시립병원과 연계한 화장장을 두고 어쩌면 이렇게 낡고 누추한 곳을 마지막 장소로 정했는지, 울컥하는 마음에 눈앞이 뿌예진다. 어제 저녁 늦게 장례식장에서 처음 대면한 연지 남편 이라는 남자가 시립 화장장은 예약이 꽉 차서 하루, 이틀은 안치소에서 대기해야 한다며, 거리가 좀 멀긴 하지만 시립이 한 군데 더 있다고 사무실에서 알려 주던데 거기로 갈 거라고 했다. ‘찬 냉골에 하루 더 있으면 뭐 할겨, 죽은 사람 욕만 보이는 겨.’충청도 말과 여기 말이 섞인 사투리를 쓰는 그를 오빠가 연지 남편이라고 소개하고‘나도 오늘 처음 봤다’하고 덧붙였다. 연지에게 남편이 있다는 말도 난데없지만 적게 봐도 연지보다 열 살은 더 들어 보이는 늙수그레한 남자가 소년처럼 옷 소매로 눈물을 훔쳐내는 모습도 익숙하지는 않았다.
주차장에 내리니 옆에 유족대기실이란 팻말을 단 유리문이 커다란 방이 있고 눈을 위쪽으로 돌리니 아무 표시가 없는 방이 따로 하나 더 있다. 대기실에는 아무도 없다. 따로 있는 허름한 방의 여닫이 유리문 을 여니 벗어놓은 신발 몇 켤레가 있고 또 문이 하나 더 있다. 들어가니 오빠네 아들 내외, 작은올케, 효성이가 서로 모르는 사람들처럼 앉았다 가 내가 들어오는 걸 본 조카 내외가 엉거주춤 일어서며 인사를 하고 효성은 힐끗 한 번 쳐다보더니 앉은 채로 엉덩이를 움직여 자리를 내어 준다. 작은올케가 ‘왔나? ’하고 아는 체를 했다. 효성의 옆에 앉으면서 ‘오빠는? ’하니, 턱짓으로 위쪽을 가리키며‘저기 화구실(火口室) 앞에 있어’했다. 조카댁인 영혜에게 ‘내가 많이 늦었지? ’인사치레를 하니 영혜는 손사래까지 치며 아니라고, 조금 전에 불 들어간다고 올 사람은 오라고 화부가 말해서 갔더니 제수씨하고 늬들은 저 방에 가 있거라고 오빠가 돌려보냈단다. 내가 오기 전에 무슨 제사인지 상 차려놓고 두 번씩 절하라는 장례지도사의 말에 따라 간단한 제사를 지냈다는 말도 했다. 그러더니 손으로 입을 가리고 말소리를 낮추어서 ‘장례 지도하는 사람이요, 글쎄, 복장도 안 갖추고 허름한 차림새로 그저 건성건성 이예요, 고모님 ’하고 흉을 본다.
방문을 열고 나가는 조카를 따라나가 올려보니 화구실 앞에 오빠와 연지 남편과 또 두어 사람이 서서 두세두세하고 있다. 그들 앞에는 길다란 탁자 비슷한 게 놓였고 연지 남편과 그가 입양해 길렀다던 딸아이 와 오빠가 흰 장갑을 끼고 탁자 주위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조카 가 돌아오더니 ‘다 끝났대요, 지금 분골 수습하고 있어요’하고 알려주었다. 이 사람들 깐에는 마지막 길 한 번 더 보고 가라는 의도일지 모르겠으나 고인의 유족에게 직접 뼈를 수습하라는 건 어디 방식인지 잔인 하다는 생각이 든다. 초라한 화장장에, 불친절하고 퉁명스러운 장례지 도사에, 제대로 된 운구차도 하나 없는 장례식에 속이 상하지만 내가 뭐라 불평할 처지도 아니니 어쩌겠는가.
점퍼를 입은 남자가 들어와서 쌀 한 그릇과 말라빠진 북어 한 마리, 배 한 개를 차려놓은 간단한 상을 진설하고 절을 두 번씩 하라고 시켰다. 그런 후에 아무 감정도 실리지 않은 메마른 어조로 이제 영영 이별하는 제사니 고인이 잘 갈 수 있도록 노잣돈을 듬뿍 주라고 한다.
‘내가 네 인생을 훔쳐서, 그래서 나 대신에 네가 일찍 가는 것 같아. 미안해 효정아, 네 이름 돌려줄게. 우리 엄마 대신 내가 너한테 용서를 빌게, 용서해 줘. 그리고 네 아버지도 너무 원망하지는 마. 거기 가면 만날텐데 미움도 원망도 다 버리고 훨훨 날아가, 효정아.’
비닐 방바닥 위에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진다. 연지를 위한 눈물인지,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인지 모르겠다.
나도 불쌍하단 말을 효진이 들었다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 거라는 생각을 하니 쓴웃음이 났다.
‘넌 이방인이야. 네 엄마는 할 수 없이 받아들이지만 넌 우리 가족이 될 수 없어. 그런데 하물며 남의 신분까지 탐내어 훔쳐가다니, 말이 돼? ’
내가 심효정의 이름을 쓰는 걸 알게 되자 효진은 길길이 뛰며 그 모든 과정의 배후는 내 욕심이라고 믿었다. 원래 내게 쌀쌀하던 효진은 어쩔 수 없이 내 이름을 불러야 할 경우 ‘야’ 하고 부른 뒤에 이어서 소리 내지 않는 입모양만으로‘도둑년’을 덧붙였다. 고개를 들고 일어나 보니 청소원인 듯 빗자루를 옆에 둔 나이 지긋한 아낙이 상 위에 깔았던 흰 종이와 제물을 한꺼번에 손으로 쓸어 옆에 놓였던 빈 라면상자에 담았다. 방 밖으로 나오니 빗줄기가 제법 굵어져 있다. 연지의 남편이 유골함을 든 딸아이 머리 위로 우산을 받쳐주며 주차장으로 걸어가고 있다. 다른 조문객은 물론, 가족조차도 전부 모이지 않은 쓸쓸한 절차 에 눈시울이 뜨뜻해왔다.
좀체 서로 연락할 일 없는 오빠가 어제 ‘효정이 죽었다, 췌장암으로’ 하고 난데없이 전화를 했다. 작년 겨울이었던가, 두 해만에 연지로부터 연락이 왔다. ‘일이 좀 있어서 왔어. 마치고 전화할게, 한 번 보자’하는 목소리가 연지답지 않게 시들어 있었지만‘알았어, 일 끝나면 전화 해’하고 끊었다. 무슨 일이 있는지는 만나서 물어보면 되려니 했다. 하던 일에 열중해서 시간이 많이 흐른 걸 모르고 있는데 연지로부터 다 시 전화가 왔다. ‘나, 그냥 갈란다’하기에 ‘지금 어딘데? 내가 그리로 갈게 ’주섬주섬 옷을 꿰어 입는데 ‘됐어, 오늘은 그냥 가고 다음에 오면 다시 연락할게. 벌써 표 끊어놔서 가야 해’하고 무언가 머뭇거린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워낙 연지가 해 오던 버릇이라서 그러려니 했다.
‘버스 타고 왔나 보네. 할 수 없지, 뭐. 근데 너 변덕은 여전하네.’ 자기가 먼저 만나자 연락해 놓고도 만날 시간이 임박해서는 연지가 전화로 약속을 취소하는 일이 몇 번 생기다 보니 최근에 내가 연지를 만난 게 벌써 대여섯 해는 더 된 것 같았다. 전화를 받고 생각하니 연지가 시든 목소리로 전화했던 그날, 병원에 왔었던가 보았다.
저녁 늦게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큰오빠 내외와 혜성이, 몇 년 전 교통 사고로 고인이 된 작은 오빠를 대신한 작은 올케가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혜성에게‘언니는? ’하니‘혜진이? 흥, 못 온대. 세미나로 해외에 있대’했다. 신분증에 붙은 증명사진을 확대한 듯 영정 속의 연지는 비교적 젊은 얼굴인데다 그나마 흐릿해서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다.
“장지는 어디로 할 거요? ”
“장지요? 갑자기 찾으려니 어디 갈 데가 있슈? 부랴부랴 집 가까운 공원묘지에 하나 알아두었더니 숨 거두기 전에 당자가 거기로는 안 간 다고 했슈. 선산에 아버지 묻힌 자리 옆에 가고 싶다고 허더만유. 유언 인 개비유. 저 사람하고 십 년 가차이 살았어도 오빠가 있다는 말도, 동 생이 있다는 말도 죽기 사나흘 전에 처음 들었슈. 얼굴이나 한 번 보고 갈란다고 전화해 달라더만유.”
오빠의 물음에 연지 남편은 대답했다. 의외였다. ‘아버지 옆에 묻히 고싶다’던 연지의 마지막 부탁이 내 마음에 폭탄처럼 날아와 순식간에 깊고 어두운 웅덩이 하나를 파놓는다.
엄마가 재혼한 새아버지의 집으로 나를 끌고 들어갔을 때 연지는 거기 살고 있지 않았다. 도시에서 하나뿐이던 사립대학 담장을 끼고 지은 집들이 있고 집이 끝나는 곳부터는 하얀 꽃이 만발한 탱자나무 울타리 가 길게 이어져 대학 담장 노릇을 하는 동네였다. 탱자나무 울타리가 시작되기 전 동네 끝집의 대문을 두드리니 엄마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보이는 남자가 문을 열고 엄마가 이고 온 보퉁이를 받아 내렸다. ‘오느라 고생했소’, 그리고 나를 향해서도‘잘 왔다’웃어 주었다. 아버지라고 불러야 된다고 엄마가 오는 내내 다짐을 두던 바로 그 사람인가 보 다. 마당가를 따라 만든 화단에 오밀조밀 키 작은 꽃들이 있고 담장 위로 붙여서 매어놓은 새끼줄에 수세미와 여지 덩굴이 올라가고 있었다.
부엌문인 듯 싶은 나무문 앞 장독간에 크고 작은 옹기가 여러 개, 그 앞 쪽에 펌프와 수도가 나란히 서 있었다. 마당에서 계단 서너 개 위로 흙으로 된 평평하고 넓은 축대가 있고 축대 위의 검은 색 나무마루도 잘 닦여진 것이 안주인이 없던 집 치고는 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댓돌 위에 흰 남자 고무신 한 켤레가 있고 그 옆에 엄마의 하얀 고무신이 나란히 놓였다. 아침 일찍 엄마가 우물가에서 빨랫비누 칠을 해가며 뽀득뽀득 씻어 신고 온 흰 고무신이었다.
엄마는 나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보퉁이를 든 새아버지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고 어색해진 내 눈에 마루에 앉은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눈썹 위에서 일자로 자른 앞머리가 아이를 촌스럽게 보이도록 했다. 마 당에서 그 아이를 올려다보자 그 아이도 마루 위에서 빤히 나를 내려보았다. 잠시 후 새아버지가 엄마 손을 이끌어 마루로 나오더니 그때까지도 나와 눈씨름을 하던 아이에게 옆에 선 엄마를 가리키며‘이리 와서 새어머니한테 인사해라 ’하자 아이는 어색하게 엄마에게 고개를 꾸벅 했다. 아홉 살인 효성은 무뚝뚝해 뵈는 첫 인상과 다르게 하루 종일 재 재거리는 수다스러운 아이였다. 언니와 둘이 쓴다는 큰방으로 효성이 나를 데려갔다. 세로로 길쭉한 직사각형의 방은 밖에서 보던 것보다 컸고 남향 벽에 난 두 짝 미세기 유리창으로 구름이 흘러가는 하늘이 들어와서 밝고 아늑했다. 이불장이 딸린 호마이카 장롱과 그 옆으로 앉은 뱅이책상이 벽 쪽으로 바짝 붙어서 놓였다.
“효신언니는 별나서 누가 자기 몸에 닿는 거 정말 싫어해.”
효성이 말했다.
“야, 너 공부 잘해? 나는 공부 못 해서 아버지가 싫어하는데. 효신언니는 공부벌레야. 그래서 아버지가 좋아해. 나랑 효정이는 공부를 못해 서 아버지가 싫어해. 너도 아버지 눈에 들려면 공부 잘해야 할 걸.”
“내 이름은 야가 아니고 하연지거든? ”
효성은 내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너 앞으로 우리 집에 같이 살 거야? 잘 됐다. 학교 갈 때 심심했거든.”
“근데 너 몇 살이야? ”
쉼 없이 쏟아내는 그 아이의 말을 한 방을 쓰면서 견딜 걸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혼자 쓸 내 방이 없는 상황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엄마와 함께 살던 집은 마당이 딸린 크지 않은 초가였지만 방은 두 개가 되어서 나 혼자 방 하나를 차지했다. 아버지가 죽은 후 엄마는 나에게 엄마가 쓰는 방을 같이 쓰자 했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몇 번 말해도 내가 말을 듣지 않으니‘야멸찬 것. 그런 것까지 제 애비를 닮았지’혀를 몇 번 차고는 다시 그 말이 없었다. 나는 지금껏 혼자 쓰던 내 방을 두고 같은 방에서 엄마의 넋두리를 받아낼 걸 생각하니 싫었다. 평소에도 걸핏하면 나오는 엄마의 넋두리는 대부분 죽은 아버지를 원망하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일찍 갈 줄 알았으면 니 아버지 얼 굴에 내가 넘어가지 말아야 했는데. 어째 남자가 얼굴에 핏기 하나 없이 하얀데 입술은 또 어찌나 붉은지, 그게 병색인 줄 내가 눈이 멀어서 몰랐지. 갈려면 돈이라도 좀 남겨두지 병치레로 자기 돈 다 쓰고 달랑 이 집 하나 남기고, 날더러 어쩌라고, 니를 달고 내가 뭘 해서 먹고 사 나’등 신세타령이지 나를 걱정하거나 안쓰러워하는 내용은 없었다. 넋두리 끝은 으레 눈물이 따랐다. 매일 듣는 같은 넋두리에 지치고 질렸다.
몸을 웅크리고 가시를 곤두세운 고슴도치마냥 경계심을 품고 엄마를 따라 왔지만 의외로 식구들은 무난하게 우리를 대했다. 안주인의 오랜 빈자리를 엄마가 대신해서 결핍을 채워주니 그랬을 것 같다. 맏딸인 효신만은 내게도 엄마에게도 냉랭했지만 엄마가 싸준 도시락 두 개는 꼬박꼬박 챙겨갔다. 효신은 두 개의 도시락을 챙겨 이른 아침에 학교에 가면 밤 아홉 시가 거의 되어야 돌아왔다. 씻고 난 뒤에도 앉은뱅이책상에 돌아앉아 우리가 뭘 하든 신경 쓰지 않고 혼자 공부에 파묻혔다. 갈래를 지어 귀 뒤로 빈틈없이 꼭꼭 묶은 머리 모양만큼 단단하게 자신의 루틴을 벗어나는 일이 없는 효신은 내게 별로 말을 걸지 않고 꼭 필요한 의사소통에는 효정을 메신저로 썼다. 일요일에도 어김없이 엄마 에게 도시락을 두 개를 받아 가방에 넣고 학교에 갔다. 그랬던 만큼 효신의 학교 성적은 뛰어났고 새아버지에게 그런 효신은 큰 자랑거리였다. 효신을 대하는 새아버지의 눈길은 효정에게 주는 그것과 많이 달랐다. 군대에 가 있던 큰오빠는 아직 마주친 적이 없고 얼굴도 뾰족하고 눈도 옆으로 뾰족하게 찢어진 작은오빠는 고등학교 졸업 후 집짓는 대목을 따라 다니며 일을 배운다고 집에 들어오는 날이 들쭉날쭉했다. 어쩌다 집에서 잠을 잔 날 아침에 나와 마주칠 때면 번번이 ‘이름이 뭐야? ’하고 물었다. 내 이름을 알려는 것보다 어색한 느낌을 지우기 위해 물어 보는 것 같았다.
허술했던 살림을 엄마가 맡으면서 부엌의 묵은 먼지가 벗겨지고, 별 재료가 아니어도 여러 가지를 만들어내는 엄마의 음식 솜씨로 밥상에 오르는 반찬 가짓수도 서운치 않게 차려졌다.
“우리 오기 전에는 밥이며 반찬이며 누가 했어? 빨래는 누가 하고? ”
어느날 궁금해서 효성에게 물었다.
“밥은 주로 효정이가 하고 빨래는 쉬는 날 우리 모두 같이 했어. 아버지하고 나하고 효정이 하고. 효신언니는 한 번도 안 했어. 아버지는 그래도 그냥 둬. 대신 자기 속옷이나 양말, 교복 같은 건 언니가 직접 빨아 입었어. 일요일에는 아침 먹고 나서 아버지가 커다란 고무다라이에 펌프질로 물을 받아 거기에 가루비누를 풀어서 휘휘 저어 놓고 우리더러 빨랫감을 모두 거기 넣으라고 시켜. 이불 호청 같은 것도 넣고 담요도 넣고 그리고는 나하고 효정이하고 양말 벗고 들어가서 밟아. 아버지 는 펌프질 담당이고 우리 둘은 밟아서 빨면 헹구고 짜는 건 셋이서 같이 해. 나랑 효정이는 공부를 못하니 집안일이라도 하래, 아버지가. 효정이는 별거 별거 다 했어. 김장도 하고, 아버지랑 같이 메주콩으로 메 주도 만들어 장도 담갔어. 겨울에는 효정이 손이 맨날 벌겋게 되고 손 등이 터져서 피가 났어.”
엄마는 새아버지와 사이가 나쁘지 않아 보였다. 여름날 마당 수돗가에서 등목을 하는 새아버지의 등에 정성스럽게 물을 끼얹고 손으로 고루고루 문질러 주는 엄마를 자주 보았다. ‘앗, 차거. 앗, 차거’를 연발하 면서도 새아버지는 겨드랑이 쪽이나 배 쪽을 비누칠을 하고 손으로 문질러달라고 요구하면 엄마는 웬지 부끄럼을 타는 것 같으면서도 뽀독 뽀독 소리가 나도록 헹궈주었다. 또 어떤 날은 어스름한 달빛 아래 엄마가 수돗가에서 목욕을 하고 먼저 씻은 나와 효성이 마루 끝에 앉아서 머리를 말리고 있는 옆에 새아버지도 부채질을 하며 앉아 있었다. 보름이 한참 지난 달빛이어서 어슴푸레하기는 해도 벗은 엄마 몸의 윤곽이 하얗게 드러났다. 곁눈질로 흘끗 보니 새아버지는 엄마가 목욕하는 걸 가만히 보고 있었다. 나는 엄마가 부끄러움도 모르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효성을 부추겨서 방으로 들어갔다. 이 집에 온 후로 엄마는 나와 둘이서 살던 때와는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내가 다니던 학교의 교감이던 새아버지는 무엇보다 학업 성적을 자식들을 대하는 가장 큰 잣대로 삼았다. 전학 온 학교의 일제고사에서 내가 6학년 전체로 1등을 한 적이 있었다. 새아버지는 내 성적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았던지 그날 저녁 밥상머리서 ‘네가 일제고사에서 일등 이더구나. 10개 반 전체에서 말이다’하며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다음날 담임선생이 반 아이들 앞에서 내 성적을 알려주기도 전이었다. 저녁상에는 군대에서 휴가 나온 큰오빠도 있었다. 새아버지의 말에 큰오빠는 ‘너 대단하구나’맞장구를 치고 효성은 밥을 한 숟갈 떠 넣은 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엄마는‘뭘, 그런 걸 가지고’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거만한 표정으로 국을 떠서 각자의 밥그릇 옆에 놓아 주었다. 그때까지 나를 대하는 새아버지 태도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일제고사 건 이후로는 내 것은 아닌데 가지고픈 마음이 드는 귀중품을 탐내는 눈길로 나를 봤다. 입이 가벼운 효성이 그냥 있을 수 없어 쪼르르 일러바 쳐서 효진도 내 성적을 알 법도 한데, 효진은 끝내 모른 척했다. 자다가 이불 속에서 발이라도 닿을라치면 내가 알 수 있도록 소리나게 휙 돌아 누우며 자기 발을 빼내곤 했지만 며칠 뒤부터는 아예 우리 둘과 거리를 두고 요와 이불을 따로 폈다.
연지에 대해서 내가 아는 내용은 모두 효성이 이야기 해 주었다. 효성은 단순해서 내가 일부러 궁금하지 않은 듯이 심드렁해하면 제풀에 더 많이 알리고 싶어서 안달을 내었다.
“그런데 다른 언니는 어디 있어? ”
“집 나갔어, 전에 내가 그랬잖아, 졸업식 다음날 집 나갔다고.”
효성이 말한 그대로라면 새아버지는 냉혹하고 악랄하기까지 했다. 동화 속 계모들처럼.
엄마가 자던 중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효성과 터울이 많이 지는 오빠들은 중학생, 고등학생이었지만 딸들은 일곱 살, 열 살, 열세 살이 었다고 했다. 하루아침에 맞닥뜨린 엄마의 죽음은 너무 갑작스런 일이어서 실감이 나지 않아 자신이나 두 언니들이나 별로 울지도 않았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엄마는 밥이나 이불이나 안방 윗목의 장롱처럼 집에 붙박이로 세팅된 존재일 텐데 그런 엄마가 세상에서 갑자기 사라진 것 이 실감나지 않았겠다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시간이 가며 점차 엄마 의 부재는 현실이 되어 와락 눈물이 쏟아지는 때도 있었지만 아이들이 나 아버지나 모두 슬픔에 오래 머물 수도 없었다. 집안일은 아내의 영 역으로 알던 아버지는 혼자서는 엄두가 안 나는 살림에 막내딸인 효성을 제외한 두 딸의 손을 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공부할 시간이 없다고 투덜대며 요리조리 빠지는 효진에 비해 원체 좋다 싫다는 티를 내지 않 는데다 부탁을 거절 못하는 효정이 아버지를 돕는 날이 더 많았다. 그러다 보니 효진은 매일 갈아 신는 양말을 빠는 일, 주말에 자기 운동화 나 자기 교복을 빠는 일, 제 도시락을 챙기고 도시락 그릇을 씻는 일같 은 자기한테 속한 것만 감당하고 효정과 아버지가 협업하여 집안일을 했다. 그마저도 아버지는 직장에 매여서 무싯날에는 시간 내기가 쉽지 않자 열한 살이 넘으면서 시나브로 집안일은 효정의 차지가 되었다.
아침에 아버지의 도시락을 싸고, 식구들이 남긴 설거지도 하다보면 학교에 지각하는 일은 부지기수였고 하교 후에는 다른 아이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고무줄놀이도 하고 공깃돌놀이, 사방치기, 꼬리잡기 따위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몇몇씩 어울려 학교 앞 가게에서 군것질을 하곤 했지만 효정은 가게에 들러 계란을 두 알 사거나 고등어자반을 신문 지에 둘둘 말아들고 저녁반찬을 걱정하며 집으로 갔다. 일요일에 효진이 도시락을 두 개 싸가지고 학교로 가면 아버지는 한 주일 동안 모아 둔 빨랫감을 비눗물이 담긴 큰 다라이에 넣고 남은 두 딸을 불러 빨래를 밟게 했다. 둘이서 손을 잡고 그 안에서 뛰기도 하고 가위바위보로 진 사람이 이긴 사람을 대신해서 빨래를 밟거나 하는 것이 효정의 놀이였다. 추위가 시작 되면 방 아궁이마다 연탄을 가는 일이 추가되었다. 새벽 시간에는 아버지가 연탄을 갈기도 했지만 어쨌든 연탄불을 꺼뜨리지 않아야 하는 것은 효정의 일이었다. 김장철이면 아버지와 둘이서 김장을 담가 땅을 파서 김칫독을 묻고, 부지런한 아버지가 콩을 쑤어 만들어 매달아 띄운 메주로 봄이면 장도 담갔다.
효정이 살림을 거의 도맡아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인 양, 성적표가 나 오는 날이면 효진의 성적을 비교하며 아버지는 효정을 닦달하였다. 효정은 입을 꾹 다물고 아버지의 잔소리가 끝나기를 묵묵히 기다렸다. 변명 한 마디도 하지 않는 딸이 답답한 아버지는 대답을 안 한다고 또 꾸지람을 하고 효정은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으로 애꿎은 방바닥만 밀었다. 그게 보기 싫었던 아버지는 미련스러운 짓만 골라 한다며 옆에 놓인 대나무로 만든 자를 들어 내리치는 바람에 효정의 오른쪽 손가락에 금이 간 일도 있었다. 한동안 금간 검지손가락에 부목을 대고 붕대를 둘러서 뻗정손가락이 되어 부엌일에 애를 먹었어도 효정은 꾸역꾸역 제 할 일을 해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꼬투리는 효정이 중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진 일이었다. ‘너 그 학교에 못 가면 중학교고 뭐고 다 집어치워라. 학교 같지도 않은 학교에 다니느니 일찍 기술 배워 돈 버는 게 더 낫다’고입 버릇처럼 말하던 아버지가 선택한 중학교 원서는 효진이 다니는 학교였다. 써 놓은 입학 원서를 받아들고 쓰다달다 말이 없던 효정이 입시에 낙방한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지만 아버지에게는 더없이 창피하고 체면이 깎이는 일이었다. 효정이 두어 해만 늦게 세상에 나왔더라면 겪지 않아도 될 고초였는데 불행히도 효정이 중학교 진학할 때는 아직 입학 추첨제가 아니었다. 시험에 떨어지고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한 달 정도를 아버지는 효정을 없는 아이처럼 대했다. 효정도 아침밥과 점심 도시락과 빨래한 옷을 준비하고 제공했지만 가능하면 아버지 눈 에 띄지 않고 우렁각시가 되었다. 효진은 대놓고 효정을 ‘돌대가리’라고 비웃었다.
“뛰어난 성적을 내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정원 안에 들면 되는데 그 걸 어떻게 떨어지니? 돌대가리 아닌 담에야 그 정도는 하겠다.”
낙방을 확인하고 방구석에서 울고 있는 효정에게 냉소적인 비난을 해서 언니 노릇을 했다.
“울지 마, 공부 못하면 사람이 아닌가? 다들 너무하네.”
효진이 들으라는 듯한 효성의 위로는 역시 공부 타박을 받고 사는 자신에게 하는 동병상련의 말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다른 거 아무리 열심히 해도 공부 못하면 사람 아니거든, 너도 내 꼴 되기 전에 정신 차려’하고 효정이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오히려 효성에게 충고했다.
졸업식이 있던 날 교문 앞에서 파는 꽃다발 하나를 사들고 온 효성이 자기를 축하하러 온 유일한 가족인 걸 알면서도 효정은 혹시 아버지나 효진이 왔을까 두리번거렸다. 졸업장을 손에 들고 둘은 타박타박 걸어 집으로 와서 같이 점심을 챙겨먹었다. 다음 날 봄방학이어서 친구들과 동네 큰마당에 고무줄놀이 하러 갔던 효성이 어둑어둑해져서 돌아오니 효정이 집에 없었다. 저녁 준비가 안되어 있으니 곧 오겠지 하며 효성은 기다렸지만 다른 식구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효정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날도 효정이 돌아오지 않자 갈만하다 싶은 친척집에 전화를 넣어 수소문해도 모른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이리저리 수소문하며 이틀을 보내고 아버지는 파출소에 가서 가출인 신고를 했단다.
내가 효정의 이름을 쓰기 시작한 건 중학생이 되면서였다. 집에서는 여전히 연지라고 불렸지만 학교에서 나는 심효정으로 살았다. 중학교 3년 내내, 고등학생이 되고도 이름에 적응이 안 되어 실수가 잦았다. 수업 시간에 이름을 불리고도 멍하니 있다가 몇 번씩 호명되어야 뒤늦게 대답을 하고, 시험답안지 이름 칸에 하연지라고 썼다가 낭패를 본 일도 있었다. 답안지 때문에 수학 선생은‘저 녀석 저거 공부만 잘 하지 다른 건 완전 맹추야, 맹추’하고 반 아이들 앞에서 대놓고 나를 못마땅해 했다. 내가 심효정이 아니라 하연지라는게 알려질까 봐 동그랗게 몸을 말아 죽은 척하는 쥐며느리처럼 항상 긴장을 놓지 않고 마음을 열지 않으니 친구도 없었다. 고등학교에 입학시험을 보고 3년 장학생이 되어 입학생 대표 선서를 하게 되었단 말을 듣고 새아버지는 연신 싱글벙글 하며 ‘우리 효정이답다’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 하고 서울의 명문대 의대를 다녀 새아버지의 크나큰 자랑인 효진도 입 학생 대표로 선서하는 건 못했다고 했다.
“너를 효정이로 이름 바꾼 건 참 잘한 일이었어. 그랬으니 널 심상조의 딸 심효정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
싫다는 마음이 확 들었다. 비뚤어진 내 귀는‘우연히 손에 들어온 물 건이 값나가는 고가품인 걸 알았으니 이건 횡재야’로 들었다. 내가 효정의 이름을 쓰는 건 엄마가 새아버지를 밀어붙여 성사된 일이 분명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아버지와 성이 다른 걸 혹시 친구들이 알면 사춘기 아이가 제대로 공부만 할 수 있겠어요? 안됐지만 우선 효정이 이름을 연지가 빌려서 쓰다가 효정이 돌아오면 정리해서 바루면 되지 않아요? 정 안되면 연지의 호적이 그대로 있으니까…’하고 새아버지를 졸라댔 을 엄마가 눈에 선했다. 엄마는 늘 그랬으니까. 겉으로는 조용하고 수동적으로 보여도 자기가 원하는 건 어떻게든 해야 하는 사람이니까.
고등학교 1학년 초가을 어느 토요일, 학교에서 돌아오니 효성이 집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다가 나를 보고는 펄쩍 뛰며 놀라는 시늉을 하며 내 손을 잡고 탱자나무 울타리 쪽으로 끌었다. 그리고 발을 동동 구르며‘너 어떡해, 어떡해’를 쉬지 않고 반복했다. 영문도 모르는 효성의 호들갑에 짜증이 나려 했다.
“뭔데 그래? 빨리 말 안 하면 갈 거야. 배고파.”
“알았어, 알았다고. 지한테 뭔 일이 일어난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빨리 말해, 내 이야기라며.”
“있잖아, 효정이 왔어.”
여전히 효정에게는 언니라는 명칭을 생략했다.
“…그래서? ”
“집 나갔던 효정이 돌아왔다고. 니가 지금 효정이 이름 빌려 쓰고 있잖아.”
“언제… 왔는데? ”
“몰라. 집에 왔더니 새엄마랑 마주 앉아 밥 먹고 있더라.”
“…….”
“그런데 어떻게 하고 왔는지 알아? 머리는 파마로 바글바글 볶고 구두 신고 양장 입고 왔더라.”
효정이 집 나간 지 4년 조금 더 되었단다.
주절대는 효성을 두고 집으로 갔다. 집으로 가서 방문을 열기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내 머릿속은 차곡차곡 잘 정돈된 서랍을 빼서 확 뒤집어 놓은 듯 생각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튀어나왔다. 두 사람 다 점심은 이미 다 먹었는지 흐트러진 밥상을 부엌으로 나가는 작은 문 앞에 밀어 두고, 내 또래와는 다른 성숙한 옷차림을 한 처녀아이가 윗목에 길게 눕고 엄마는 머리맡에 앉아 둘이 무슨 이야긴지 하다가 내가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멈추었다. 효성의 호들갑이 무색하게 둘은 함께 사는 모녀 가 일상적 대화를 하던 분위기였다. 내가 들어서자 연지는 눈만 위로 힐끗 떠서 나를 보았고, 엄마가 일어서서 내 팔을 잡고 마루로 나갔다. 말도 없이 엄마는 오른손 검지를 세워 입술에 대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내가 다시 방에 들어가니 연지는 어느새 일어나 윗목 벽에 비스듬히 기대 앉아‘네가 연지구나, 반가워’하고 웃어주었다. 나는‘응’ 하고 대꾸는 했지만 연지 앞에서 뭐라고 하나로 딱 짚기 어려운 감정들 이 밀려와 부끄럽고 초라한데다 죄책감마저 들어 교복 차림 그대로 도서관에 간다며 집을 나왔다. 창피스러워서 어디로든 달아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새아버지가 돌아오면 일어날 한바탕 분란을 피하고 싶기도했다.
연지가 집에 있는 동안 식구들은 약속이나 한 듯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날 부를 빌미도 만들지 않았지만 나도 방과 후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밤이 되어야 집에 왔다. 보아하니 연지는 효성에게 수시로 용 돈을 좀 쥐어주며 심부름꾼으로 부리는 것 같았다. 자격지심인지 효성조차 전과 달리 서먹하게 느껴졌다. 가족들은 연지에게 원래 걔의 이름인 효정으로 불렀다. 나는 내가 연기 같고 먼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죄책감 때문인지 엄마는 탕자인 친딸이 돌아온 것처럼 연지에게 따
뜻하고 곰살갑게 대했다. 연지도 무람없이‘새엄마, 새엄마’하고 부르 며 무난하게 잘 지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엄마의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수시로 보였다. 연지가 온 지 한 주일쯤 더 되려나? 일요일 오후였다. 어쩌다 보니 집에 나와 엄마만 있었다. 수돗가에 쪼그리고 앉아 운동화 를 씻고 있는데 엄마가 부엌에서 나와 장독대 턱에 철퍼덕 주저앉아서 말했다.
“걔가 영 돌아온 것도 아닌 갑더라. 주민등록증 만들러 왔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여름방학 기간 중에 이미 내가 심효정의 주 민등록증을 발급받아 버렸다.
“그럼 어째? ”
“어쩌기는. 말로 잘 해결해 봐야지. 그런데 좀 미안하기는 하다.” 간 큰 엄마도 걱정이 되기는 한 모양이었다. 입 가벼운 효성이랑 붙
어 다니는데 연지가 저간의 사정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주민등록증 건은 어쩌면 아직 모를 수도 있었다. ‘자, 넌 이제부터 성인이니 얼마든지 음흉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는 기분이 들어서 효성에게도 말하지 않았었다. 심효정이 올 때까지 대리인으로 살던 하연지를 데리고 땅속으로 꺼져 버리고 싶었다.
엄마는 역시 엄마였다. 기말시험을 앞두고 늦도록 공부하다가 머리를 식히려고 마루로 나갔는데 새아버지 방에서 두런대는 소리가 들려 마루 끝에 소리 안 나게 앉았다. 엄마와 새아버지가 연지에게 할 변명 이 궁금했다. 새아버지가 변명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너를 찾지 않은 것도 아니다. 파출소에도 가출 인 신고를 했고 알 만한 사람들에게는 빠짐없이 수소문했지만 어디로 갔는지 통 네 거취를 알 수 없었다. 네가 가출할 만한 이유도 짐작이 안가고. 너도 그렇다, 어째 그렇게 감감무소식이냐? 네 말로는 시외버스 타고 가다가 만난 마담이라는 사람에 꼬여 따라가 다방 주방에 설거지를 하느라고 잡혀 있었다지만, 네가 하려고만 들면 왜 연락을 못했겠어? ”
“별로 하고 싶지도 않았어. 그리고 꼬여 간 건 아니야. 나도 필요하니 까 갔지.”
“대체 집 나간 이유가 뭐였냐? ”
“내가 말해도 아버지는 몰라.”
“…연지가 공부를 매우 잘 한다. 두 해나 기다려도 너는 감감무소식이고 연지가 중학교 갈 때 네 걸 빌렸다. 사춘기가 되면 성 다른 아버지 때문에 공부도 안 하고 엇나갈까 봐 걱정도 되었고. 네가 한 번이나 연락을 했더라면 그런 생각은 절대 안 했겠지.”
“어떤 아버지는 딸이 실종되니까 딸 사진 가슴 앞에 달고 전국을 돌면서 찾던데, 아버지는 공부 지지리 못하는 앓던 이가 빠져서 좋았나봐. 그랬으니 나같은 돌머리가 아니라 공부 잘한다고 여기저기 자랑할 딸도 생기고.”
“효정아, 말을 왜 그렇게 하니? 아버지는 아무 죄 없다. 다 내 탓이다. 미안하구나. 내가 이렇게 사죄할게.”
엄마가 옆에서 새아버지의 말을 거들었다. 연지는 엄마의 말에는 대꾸도 없이 다시 새아버지에게 말했다.
“빌려 준 거라며? 그럼 다시 돌려줘야지.”
“이젠 집에 있으면서 검정고시 준비를 해라. 너도 고등학굔 가야지.”
새아버지는 대답 대신 다그쳤다. 연지가 뭐라고 대답하는 것 같았으나 나는 소리 나지 않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내 가슴에서 울리는 쿵쾅거리는 소리가 그 세 사람에게도 들릴 것 같았다.
다음 날 새아버지는 연지의 검정고시 준비를 위해 책을 한 꾸러미나 사 왔지만 연지는 그것들을 윗목에 던져두고 다시 집을 나갈 때까지 풀지도 않았다. 연지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외지에서 직장을 다니는 큰오빠가 주말에 다니러 왔다. 연지가 대문을 열어주러 갔는데 마루로 올라오기도 전에 문간에서 한바탕 오빠가 나무라는 소리가 났다. 인사 하러 방문을 열고 나가려던 나와 효성은 방문 손잡이를 잡은 채 서서 기다렸다. 엄마가 나가면서‘왔는가, 문간에서 그러지 말고 방에 들어 가서 조곤조곤 타이르지’해서야 오빠는 축대로 올라왔다. 아버지의 꾸지람 앞에서도 울지 않던 연지는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어깨를 들썩 이면서 울고 있었다. ‘들어와라’한 마디 던지고 오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고 나와 효성이 가서 연지를 방으로 데려왔다.
“큰오빠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오빠에게 서운해 하는 연지의 말이 내 가슴에 가시처럼 와서 박혔다. 그날은 저녁 자리가 번잡했다. 새아버지와 오빠가 한 상에 마주 앉았고,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는 효진을 뺀 효성과 연지와 나, 그리고 엄마는 두레상을 펴고 앉았다. 연지는 아까까지의 기분이 풀렸는지 오빠의 말에 대거리도 하고 웃기도 했다.
“공부 열심히 해, 검정고시 거쳐서라도 대학에 가. 그때쯤이면 오빠 월급도 효정이 학비 도와줄 만큼은 오르겠지? ”
“오빠, 나도, 나도 학비 도와 줄 거지, 응? ”
효성이 어리광을 부리자 밥을 먹던 사람들도 덩달아 가벼운 기분이 되어 웃었다. 오빠는 일요일 오후에 돌아갔다. 엄마 말로는 다들 학교로 등교하거나 출근한 월요일 오전에 오빠 방을 청소하려고 문을 열자 연지가 거기 자고 있더라고 했다. 니네 방에 가서 자라고 엄마는 연지를 깨우려고 흔들었는데, 한참을 흔들어도 기척이 없어 더럭 겁이 난 엄마가 새아버지에게 전화로 알리고 병원으로 옮겼다. 위세척으로 먹었던 약은 씻어냈지만 이틀을 더 병원에 있다가 핏기 없이 해쓱한 얼굴로 연지는 집에 돌아왔다. 연지는 ‘잠 좀 깊이 자려고 그랬어’하며 별일 아니라고 했다. 병원에서 돌아온 며칠 뒤 자려고 누울 때 옆자리에 자고 있는 걸로 생각했던 연지가 내 귀를 잡아당겨서 속삭였다.
“인제 내가 연지할게, 넌 살던 대로 효정이로 살아. 나 너 안 미워해. 아버지 마음에 들게 공부할 자신도 없고 집안일도 지겹고, 집에서 만큼 만 일하면 어디서든 돈을 벌 거라 생각했어. 바보같이. 네가 공부 잘해 서 우리 아버지 어깨 올라가게 해드려.”
연지가 아무리 부인해도 엄마는 영락없이 자살소동이라 우기던 사건이 있고 일주일쯤 지났을까, 연지는 올 때처럼 슬며시 다시 나갔다. 그 계기로 내가 효정으로 행세한다는 걸 안 효진은 새아버지와 엄마에게 비난과 원망을 퍼붓고 두 오빠들에게 이 사실을 폭로했다. 나는 고3이 되며 빈 자리가 생긴 학교 기숙사로 들어갔다. 연지를 포함한 의붓자매들, 의붓오빠 둘을 다시 만난 건 새아버지 장례식에서였다.
언젠가 자연다큐에서 뻐꾸기의 탁란(托卵)을 보면서 엄마가 뻐꾸기 어 미라고 생각했다. 몸 크기가 저보다 훨씬 작은 붉은머리오목눈이 둥지 에 뻐꾸기가 몰래 알을 낳았다. 알에서 먼저 깨어난 뻐꾸기 새끼는 필사적으로 몸을 버둥거려 붉은머리오목눈이의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 떨어 뜨렸다. 깃털도 제대로 나지 않고 눈도 못 뜬 뻐꾸기 새끼가 온몸으로 오목눈이 알을 밀어내는 모습에 전율이 일 정도였다. 뻐꾸기 알을 제 알로 아는 어미 오목눈이는 정성껏 알을 부화시키고 보살폈다. 어미 오목눈이가 구해 온 먹이를 게걸스럽게 받아먹으며 뻐꾸기 새끼는 오목눈이 어미보다 몸집이 더 크게 자라고, 그런 관계가 뻐꾸기가 이소해 날아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살기 위한 자연의 본능이라 하더라도 너무 이기적 이고 잔인했다. 엄마가 오목눈이 둥지에 알을 낳은 뻐꾸기이고 나는 살고자 하는 본능으로 연지를 둥지 밖에 밀어 떨어뜨린 뻐꾸기 새끼라는 모멸감이 들어 몸이 부르르 떨렸다. 새아버지가 여기저기 자랑하던 대 학을 나는 일 년 다니다 말고 휴학하고 구로공단의 미싱공으로 취업했다. 아무리 그래도 불쑥불쑥 올라오는 모멸감은 벗어날 수 없었다.
선산의 새아버지 산소로 안내할 오빠와 조카가 탄 차 뒤를 연지를 실은 연지 남편의 차가 빗속으로 멀어졌다. 영혜도 작은올케를 태우고 떠나자 효성이 물었다.
“요즘도 근로자복지관인가 거기 근무해? ”
“그렇지, 뭐.”
“큰올케언니가 관절염이 심해서 잘 걷지도 못하나 봐. 그래서 제사도 한 번에 몰아 했잖아. 그러니 전에 세 번 다 지낼 때보다 보기가 더 어려워졌지? 나도 바빠서 한 번 빠지고, 언니도 두 번인가 못 왔지, 아마? 삼년만에보네, 우리.”
“효진언니는 참석해? ”
“올 리가 있나. 아버지도 새엄마도 다 안 보고 살 거라고 난리 쳤는데 하물며 제사에? ”
어디 가서 차나 한잔 하자는 효성을 바쁜 일이 있다고 먼저 보내고 나는 채마밭 저쪽이나 가 볼까하는 요량으로 차에서 우산을 꺼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