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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물치잔치

한국문인협회 로고 황용수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사년 가을호1 2024년 9월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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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과 함께하는 하굣길은 언제나 즐거웠다. 3학년인 또래들보다 6 학년인 삼촌과 함께하는 하굣길 놀이가 훨씬 더 신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아버지와 어머니도 삼촌과 함께 하교하는 날은 늦어도 걱정을 덜 하셨다.
“경민아, 저수지에서 멱감고 갈까? ”
삼촌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뒤도 돌아다 보지 않고 마을 앞 저수지를 향하여 달음박질쳤다.
“응, 삼촌. 애들 몰려오기 전에 빨리 가서 멱감자.”
앞서 달려가는 삼촌의 뒤를 잰걸음으로 뛰어 따라붙었다. 애들이 몰려오기 전에 멱을 감아야 했다. 애들이 떼로 몰려들어 물장구를 쳐대면 흙탕물이 일어날 수도 있다. 모내기하러 논에 물을 대느라고 저수지 물을 빼는 바람에 물이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옷 벗지 마, 경민아! ”
먼저 저수지 둑을 내려가 옷을 벗고 물에 들어가려던 삼촌이 뒤로 돌아서 두 손을 저으며 도로 옷을 입기 시작했다.
“왜 삼촌, 갑자기 멱감기 싫어졌어? 너무 더워 땀이 줄줄 흐르는데 멱감지 않고 그냥 집에 가려고? ”
“아니, 멱감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생겼어. 저 저기 봐. 엄청나 게 큰 물고기가 어슬렁거린단 말이야.”
벗은 옷을 대충 꿰입은 삼촌은 물풀이 우거진 물이 자작자작해진 물가를 가리켰다.
“어디, 어디? 와, 고래가 나타났다! ”
“저수지에 웬 고래, 고래는 바다에 살지. 가물치야, 엄청나게 큰 가물치야. 와, 어른 장딴지 두 배도 넘겠다.”
“빨리 잡아, 삼촌! ”
“맨손으로 잡으라고? 힘이 쎄고 미끄러워서 못 잡아, 저렇게 큰 것을 어떻게 맨손으로 잡아. 어른도 맨손으로는 못 잡겠다. 글고, 가물치에 물리면 손가락도 잘려나간단 말이야.”
삼촌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물고기 잡는 선수인데도 말이다. 가물치에게 물려 손가락이 잘려 나갈까 겁나는 모양이었다.
“그럼, 어떡해? ”
“얼른 집에 뛰어가서 어까리 가져와. 어까리로 가물치를 덮어 씌워 물 밖으로 끌어내서 잡으면 돼. 물이 자작자작한 데다가 물풀까지 우거져 헤엄쳐서 도망치지는 못할 거야.”
“응, 삼촌. 후딱 집에 달려가 어까리 가져올 테니까, 도망치지 못하게 가물치 잘 지켜.”
옷을 벗으려다 말고 집으로 달음박질쳤다. 달음박질이라면 누구한테도 지지 않았다. 운동회 때마다 등수 안에 들어 상품으로 주는 공책을 놓치지 않아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애들이 몰려오기 전에 어까리를 가져와서 가물치를 덮쳐 잡아야만 돼. 애들이 몰려와 떠들어대면 가물치가 도망치고 말 거야.’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갔다.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눈앞에 보이는 어 까리를 들고나왔다.
꼬꼬댁 꼬꼬꼬, 삐약 삐약 삐약! 암탉이 꼬꼬댁거리고 병아리들이 삐악거리며 사방으로 흩어졌지만, 그것들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암탉이 왜 꼬꼬댁거리는지, 병아리가 왜 삐악거리는지 생각해볼 정신이 없었다. 머릿속에는 온통 가물치를 놓치지 않고 잡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어까리 얼른 줘! ”
숨을 헐떡이며 저수지 둑 위로 올라서기가 무섭게 삼촌은 둑까지 뛰어올라와 어까리를 잡아채 물가로 엎어지듯이 내려갔다.
“그래그래, 조금만 더 그대로.”
삼촌은 물가에 다다르자, 저벅거리는 발소리가 나지 않게 발걸음을 조심조심 떼며 가물치에게 다가갔다. 물이 자작자작한 진흙 바닥에 배를 깐 채 우거진 물풀 사이에 머리를 밀어 넣고 잠자듯이 엎드린 가물치의 검은 등을 향해 번개같이 어까리를 덮어씌웠다.
철푸덕, 툭툭 투둑 투투둑! 몸이 길어 어까리로 다 덮어씌우지 못한 꼬리를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머리로 어까리를 툭툭 치며 밖으로 빠져 나오려고 몸부림을 쳐대더니, 꼬리를 어까리 안으로 말아 넣고 뛰어올랐다.
“힘껏 내리눌러, 삼촌! ”
엎어지듯이 달려 내려가 삼촌을 도와 어까리를 내리눌렀다.
“엄청 힘이 쎄. 이러다가, 우리 둘 다 물풀 속으로 엎어지겠다. 어떻게든 물 밖으로 끌어내야 돼, 경민아.”
“삼촌, 가물치가 어까리 밖으로 도망치지 못하게 어까리를 힘껏 내리 누르면서 끌어내야 돼.”
“어까리가 진흙 속에 박히지 않게 눌러야 돼, 경민아.”
“어까리에 걸리는 물풀을 뜯어내야겠어, 삼촌.”
“영차, 영차, 영차! ”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용을 쓰느라 비지땀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이영차, 이영차! 와, 물 밖이다! ”
죽을힘을 다해 진흙과 물풀과 싸운 끝에, 가물치가 어까리와 함께 진 흙과 물풀이 뒤범벅이 되어 물 밖으로 끌려 나왔다.
“조금만 더 힘을 내자, 경민아. 어떻게든 뚝 위에까지는 이대로 밀고 올라가야 다 잡은 가물치를 놓치지 않는다.”
“어까리가 들리지 않게 누를 테니까, 힘쎈 삼촌이 어까리를 밀어올려! ” 투둑투둑 투두두둑! 가물치가 머리와 꼬리를 숨 쉴 새도 없이 흔들며
발버둥을 치는 바람에 어까리가계속 들썩거리며 손목이 시큰거렸다.
“안 돼, 뚝 위로 올라갈 때까지는 어까리가 들리면 안 된단 말이야! ” 밀어올리는 어까리가 들리지 않도록 팔뚝에 윗몸을 올리고 어깨에 힘
을 잔뜩 넣어 내리눌렀다. 땀이 비 오듯이 쏟아져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와, 뚝 위로 다 올라왔다! ”
삼촌이 환호성을 질렀다.
“숨도 쉴 수가 없어, 삼촌! ”
녹초가 되어 쓰러지듯이 주저앉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손등으로 눈두덩이에 흐르는 땀방울을 훔쳤다.
“바지 벗을 때까지 더 눌러야 돼, 경민아.”
삼촌은 바지를 허겁지겁 벗자마자 어까리를 옆으로 젖혔다. 벗은 바지로 가물치를 덮어씌워 옆으로 비스듬해진 어까리를 바로세웠다.
“어까리 들어, 경민아. 힘들어도 어까리 놓치면 안 된다.”
“삼촌, 바지 다 버려서 어떡해? ”
“이깟 바지가 대수냐. 가물치에게 물려 손가락 잘리지 않으려면 이렇게라도 해야지 어떡하냐.”
“집까지 빤스 바람으로 갈 거야, 삼촌? ”
“그럼 어떡하냐, 지금 빨아서 입을 수도 없잖냐? ”
삼촌은 바지가 뒤집어씌워진 가물치가 꿈틀거리는 어까리를 놓치지 않게 두 손을 뒤로 돌려 조심조심 들어올렸다.
“자, 출발이다.”
“너무빨리가지마, 삼촌.”
앞장서 성큼성큼 걸어가는 삼촌의 뒤를 잰걸음으로 따라붙었다. 땀 이 비 오듯이 흘러내려 눈으로 들어갔지만, 손을 들어 훔쳐낼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어까리를 놓치기라도 하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아이구구, 삼촌! ”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려 눈 앞을 가리고 다리가 후들거려 마당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땅바닥에 쓰러지듯이 주저앉고 말았다.
“괜찮아, 경민아? ”
그 바람에 삼촌도 어까리 위로 엎어지듯이 주저앉고 말았다. “어까리가 어디 갔나 했더니, 너희들 짓이었구나! ”
“병아리 가둬 놓은 어까리를 벗겨 가면 어떡해요? 솔개가 병아리 다 채갔잖아요, 삼촌? ”
뒤꼍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달려나오며 야단을 치셨다.
“이 어까리가 병아리를 가둬놓은 새 어까리였어요? 헛간에서 헌 어까리를 가져온 게 아니야, 경민아? ”
삼촌이 가물치가 담긴 어까리를 살펴보더니, 고개를 들어 집 안 여기 저기를 휘돌아봤다.
“저수지에서 엄청나게 큰 가물치를 잡아오느라고 그랬어요. 헛간 헌 어까리는 생각도 못했어요, 아빠. 마음이 급해 병아리는 생각도 못했어 요, 엄마. 삼촌은 잘못한 게 없어요, 제가 헛간 헌 어까리는 생각도 못하고 병아리 가둬 놓은 새 어까리를 가져갔어요.”
“큰 물고기 잡을 때 쓰려고 헌 어까리를 헛간에 둔 것을 몰라? 왜 병아리 가둬 놓은 새 어까리를 벗겨갔느냐 말이여? 경민이는 어리니까 뭣을 몰라 그렇다 쳐도 알 만한 막내 너까지 앞뒤 분간도 못하고 왜 일을 저지르냐 말이여? 올 닭농사를 망쳤으니 삼복더위 몸보신은 어떻게 헌다냐? ”
“경민이가 뭣을 알아요, 아직 어린앤데. 삼촌이 와서 헛간 헌 어까리를 가져갔어야지요. 제사에 올릴 닭이고 추석과 설 차례상에 올릴 닭이고 다 어찌해얄지 걱정이네요. 아버님도 어머님도 옻닭을 해마다 몇 번씩 찾으시는디, 몸보신에도 속애피에도 좋다고 허시면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뒤꼍에서 눈길을 거두지 못하며 삼촌을 야단치셨다.
“삼촌은 가물치 지키느라고 집에 올 수가 없었단 말이야, 아빠. 삼촌이 집에 와 헌 어까리 가져가는 사이에 가물치가 도망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요? 내가 혼자 그 큰 가물치를 지킬 수 있겠어, 엄마? ”
“경민이한테 헛간에 둔 헌 어까리를 가져오라고 일러라도 줬어야지요, 삼촌.”
“삼촌도 마음이 급해 그럴 정신이 없었어, 엄마.”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야단맞는 삼촌에게 너무 미안했다. 헛간에 둔 헌 어까리를 왜 생각하지 못했는지, 병아리를 가둬 놓은 새 어까리를 벗 겨가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왜 생각하지 못했는지 발등을 찧고 싶었다.
“처음 보는 엄청 큰 가물치라 보양탕을 끓여 우리 식구들 몸보신하면 좋겠다 싶어.”
삼촌은 고개를 떨구고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깟 병아리가 경민이보다 더 중허다냐? 야단 그만 치고 경민이부터 데리고 들어가라. 땀을 폭죽같이 흘리며 땅바닥에 주저앉은 경민이 는 안 보이냐? ”
“그래, 이미 엎질러진 물을 쓸어담겄냐? 막내 네가 일을 찬찬히 챙겼으면 이런 사단이 안났을 것인디, 쯧쯧! ”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뒤꼍에서 나오며 걱정을 하셨다.
“제가 가물치 지키고 있느라 경민이 더러 어까리 가져오라고 한 것이 잘못이구만요. 헛간에 가서 헌 어까리 가져오라고라도 했으면….”
삼촌은 가물치가 꿈틀거리는 어까리를 내려다보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니, 몸에 그렇게 좋다는 그 귀한 가물치 아니냐? 이렇게 큰 것을 어디서 어떻게 잡아왔냐? 하늘이 우리 막내와 경민이를 어여삐 여기셔서 이렇게 크고 귀한 가물치를 점지해주셨구나.”
할머니는 두 눈이 왕방울만 해져서 어까리에서 꿈틀거리는 가물치를 내려다보셨다.
“이렇게 큰 가물치는 내 평생에 첨 본다. 솔개에게 잃은 병아리 몇 배 값도 더 나가겄다. 손가락을 잘릴까 봐 어까리로 덮어씌워서 잡아왔구 나. 우리 막내 참 똑똑허구나. 우리 막내와 장손이 오늘 우리 집에 큰 복을 불러오는 큰일을 했구나. 장하다, 우리 막내와 장손! ”
할아버지는 어까리안에서 꿈틀거리는 가물치를 흐뭇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너털웃음을 치셨다.
“올 닭농사는 망쳤은개, 삼계탕 대신에 가물치 매운탕을 끓여서 우리 식구 삼복더위 몸보신을 미리 헙시다.”
“진흙 범벅이라 우물가로 들고 가서 깨끗하게 씻어야겄어요. 몸보신에는 닭보다 가물치가 백번 낫지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물치가 꿈틀거리는 어까리를 마주 들고 우물가로 가서 커다란 물통에 쏟아부으셨다. 
“허허, 커다란 물통이 그들먹허구나. 애비야, 가물치가 너무 커서 너랑 나랑 함께 씻어야겄다.”
“에미야, 너랑 나랑은 가물치매운탕 끓일 양념을 챙겨야겄다. 거, 뭣이냐? 내가 텃밭에 가서 솔 한 움큼 베고 대파 몇 개 뽑아올 텐개, 너는 정짓간에서 다른 양념들을 챙기거라. 참, 막내와 경민이는 얼른 등목허고 구판장에 가서 두부 몇 모 사와야겄다. 아참, 애비는 가물치 다 씻으면 미나리꽝에 가서 미나리 베어 와야겄다. 가물치 비린내 잡으려면 텃밭에서 방앗잎도 뜯어 와야겄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가물치를 씻으시고, 할머니와 어머니는 가물치 매운탕 끓일 준비를 하셨다.
“둘다 윗옷 벗고 이리 와서 엎드려라.”
“가물치 씻기 전에 너희들 몸부터 씻겨야겄다.”
할아버지의 말씀에 아버지는 두레박을 챙기셨다.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가마솥에서 가물치매운탕이 펄펄 끓어올랐다. 
“맛나게 끓었다. 인자 그만 끓여도 되겄다. 소두방 닫아라, 에미야. 얼큰헌 가물치매운탕 냄새가 온 집 안에 진동허구나.”
“저녁 바람이 살랑거려 얼큰헌 가물치매운탕 냄새가 울 너머로 넘어 가겄어요. 저녁때가 되어 꿀찍헌 동네 사람들이라도 몰려오면 어쩐대요, 어머님? ”
가마솥 소댕을 열어본 할머니와 어머니는 부엌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오셨다. 땀이 흐르는 불그레한 얼굴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가득했다.
“어쩌기는 어쩌, 동네에 가물치매운탕 잔치를 벌여야겄제. 안 그러냐, 애비야? 이 얼마나 흐뭇하고 대견스러운 일이냐.”
“그러면, 우리 식구들만 먹는 것보다 더 좋지요, 아버님. 하늘이 막내와 경민이를 어여삐 여겨 점지해주신 가물치매운탕이니, 동네 사람들 과 함께 즐겨야 우리 집에 또 복이 들어오겄지요.”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부엌을 들여다보며 흐뭇해하셨다.
“에미야, 너는 가마솥 가물치매운탕을 들통에 퍼서 담아라. 뜨거운개 데지 않게 조심헤야 헌다.”
“살강에서 수저와 대접을 내려 손잡이 달린 바구니에 담으세요, 어머 님. 대접은 애비더러 내려서 담아 달라고 하세요, 무겁고 미끄러워 떨어져서 다치기라도 허면 큰일인개요.”
“가물치매운탕 들통은 내가 들고 가지.”
“그릇 바구니는 이리 주세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물치매운탕 들통과 그릇 바구니를 챙겨 앞장서 셨다.
“삼촌, 우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모시고 가자.”
“그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우리가 모시고 가자.”
삼촌과 함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뒤를 따라나섰다.
“얼큰허고 몸에 좋은 가물치매운탕이요! ”
“모내기 허느라고 떨어진 기력을 얼른 찾으시라고 갖은 양념을 다해 가물치보양탕을 끓여왔어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느티나무 아래 정자에 가물치매운탕 들통과 그릇 바구니를 내려놓으셨다.
“우리 막내와 장손이 삼복더위 오기 전에 미리 할애비와 할미 몸보신 허시라고 저수지에서 내 평생 첨보는 엄청나게 큰 가물치를 잡아왔다네.”
“동네 가물치매운탕 잔치를 허고도 남을 정도로 큰 가물치를 우리 막 내와 장손이 잡아왔단개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정자에 올라가시며 막내와 장손을 자랑하셨다. “얼큰허고 몸에 좋은 가물치매운탕? ”
정자에 앉아 풋고추에 된장을 찍어 막걸리 잔을 기울이던 동네 어른 들은 귀가 번쩍 띄어 가물치매운탕이 담긴 들통을 들여다보셨다.
“할아버지 할머니 몸보신 허시라고 잡아온 가물치를 우리가 먹어도 될랑가 모르겄네요.”
“할아버지 할머니 몸보신 허시라고 잡아온 귀헌 보양탕을 우리가 무슨 염치로 묵는다요.”
모내기철이 끝나고 느티나무 아래 정자에서 쉬던 동네 어른들은 가물치매운탕 앞으로 둘러앉으셨다. 
“귀헌 가물치매운탕에는 복분자주가 딱이지라우.”
이장님이 복분자주를 챙겨 온다며 일어나셨다.
“거, 뭣이냐? 오미자주, 구기자주…. 귀헌 가물치매운탕으로 몸보신 허게 생겼은개, 집에 몸에 좋은 약술들 애껴뒀으면 얼른 일어나 챙겨오드라고.”
노인회장님도 가물치매운탕에 둘러앉은 동네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일어나셨다.
“경민이와 함께 따라가 들고 올게요.”
약술을 챙기러 가시는 동네 어른들을 삼촌과 함께 따라 나섰다.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며 챙겨주시는 귀한 약술들을 들고 왔다.
“귀헌 가물치매운탕에다가 몸에 좋은 약술이라, 오늘 써레시침 제대로 허는구만.”
동네 어른들은 얼큰한 가물치매운탕에 향기로운 술 몇 순배로 흥에 겨워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셨다.
“우리 집 올 닭농사는 망했네요.”
“망해도 아주 쫄딱 망했당개요. 솔개가 다 채가뿔고 한 마리도 안 남았당개요. 똥집만 빼묵고 뒤꼍 대밭에다가 버린 병아리들을 불쌍헤서 눈뜨고는 못 보겄당개요.”
“솔개가 다 채가, 병아리를 어까리에 가둬놓지 안했간디? ”
아버지와 어머니의 느닷없는 한숨에 동네 어른들의 눈이 둥그래졌다. “즐거운 써레시침 가물치매운탕 동네잔치에 한숨이 다 뭣이다냐, 애비야? ”
“에미야, 너희들 한숨에 땅꺼지겄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만하라는 눈빛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바라 보셨다.
“닭농사가 망했다고, 왜? ”
“우리 막내가 엄청나게 큰 가물치를 보고 놓칠까 봐, 맨손으로 잡다 가 손가락이라도 잘릴까 봐 조심이 돼서 어까리를 덮어씌워 잡느라고 그렇게 됐다네. 이렇게 동네잔치를 헐 정도로 큰 가물치를 잡아왔는디, 그깟 병아리들을 솔개가 채가 닭농사 한 해 망친 것이 대순가? 맨손으 로 잡으려다 놓치거나 손가락이라도 잘렸으면 어쩔 뻔혔는가? ”
“그런개요, 우리 집에 복이 들어와도 아주 큰 복이 들어왔당개요. 맨 손으로 잡으려다 우리 막내 손가락이라도 어떻게 됐으면 어쩔 뻔혔을지 생각허면 생각헐수록 하늘이 우리 막내와 경민이를 어여삐 여겨도 와주신 것이 틀림없당개요.”
“진작부터 알았지만, 오늘 본개 막내가 정말로 똑똑허네. 글고, 동네서 닭농사가 대풍이 들도록 만들어줄텐개 올 닭농사 망했다는 걱정은 안 헤도 될 것이여. 안 그런가, 이장? 동네서 모른 체허겄는가, 오늘 가물치매운탕으로 써레시침을 걸판지게 벌이게 해줬는데? ”
노인회장님은 심부름할 것이 없나 살피며 정자를 떠나지 않는 삼촌을 대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다보셨다. 올 닭농사는 망했다고 한숨을 쉬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걱정 말라며 이장에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예, 동네서 걱정 안 허게 나설 것이구만요. 절대로 그냥 모른 체허지는 않을 것이구만요. 우리 동네가 어떤 동넨데요. 서로 한 식구처럼 정이 뚝뚝 떨어지게 사는 동네라고 근동은 물론이고 군내에서도 다들 부러워하는데요. 큰 복이 들어온 기념으로 복분자 축하주 한 잔 가득 올리겄으니, 한 번에 쭉 비우세요.”
“복분자 한 잔으로는 안 되제, 오늘같이 기쁜 날. 오미자주에 구기자 주까지 다 따라주게.”
“몸에 좋은 귀헌 약술인개 몸보신에 좋은 가물치매운탕을 드심서 천천히 드시랑개요.”
이장님의 축하주를 할아버지가 껄껄거리며 단숨에 비우시자, 할머니 는 걱정이 되어 안주와 함께 천천히 드시라며 가물치매운탕을 더 떠 드렸다.

두어 장 도막이 지나면서부터 장날이면 동네 사람들이 중병아리를 한 마리씩 안고 왔다.
“장에 갔다가 한 마리 사 왔네요.”
“실해 보이길래 한 마리 사 왔어요.”
“내년에 병아리 깨려면 수컷도 한두 마리 키워야 헐 것 같고, 같은 값 이면 다홍치마라고 털빛이 누런 토종 수컷으로 두 마리 골라왔어요.”
“요즘은 보기 드문 털빛이 누런 토종 병아리라네요.”
“얼마 없으면 털갈이를 헐 정도로 큰 중병아리요. 초복에 복달임을 해도 되겄그만요.”
장날마다 중병아리를 안은 동네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비좁아서 어까리를 더 챙겨야겄네요.”
중병아리가 몇 마리씩 늘어날 때마다 아버지는 헛간에서 헌 어까리를 찾아 내오셨다.
“어까리로는 감당이 안 되겄다, 날갯짓을 허며 싸우는 것을 보니. 같은 붕어도 방죽이 커야 더 크게 자란단다.”
중병아리들이 날갯짓을 하며 하루가 다르게 커가자, 할아버지는 어까리에서 닭장으로 서둘러 옮기도록 하셨다.
“닭장이 좁아 하나 더 지어야겄네요.”
“가물치 덕에 올 닭농사 대풍이 들겄구나.”
중병아리들로 그들먹해진 닭장을 들여다볼 때마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함박웃음을 웃으며 좋아하셨다.
“동네 사람들 덕이지요.”
“아니지, 우리 막내와 우리 장손 경민이가 불러온 복이지.”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삼촌을 대견스러워하며 껄껄거리시는 웃음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우리 식구가 저 많은 닭을 어떻게 다 먹어요, 동네 사람들이 갖다 준 것을 장에 내다 팔 수도 없고? ”
“닭으로 동네잔치를 열어야겄제, 가물치매운탕 동네잔치를 해서 닭 대풍이 들었은개.”
“돌아오는 초복에는 녹두삼계탕으로 복달임 동네잔치를 헤야겄지요, 어머님? ”
“글먼, 좋제. 녹두는 작년에 농사지은 거 광에 아직 많이 남았을 거고, 인삼 남은 거 없으면 장에 가는 길에 잊지 말고 넉넉허게 사와야겄다. 삼계탕 여러 마리 끓여내려면 말이여.”
어머니와 할머니는 틈만 나면 닭장에서 홰를 쳐대는 닭들을 들여다 보며 즐거운 고민을 하셨다.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는 닭만큼이나 초복이 빠르게 다가왔다. “경민이 엄마, 뭣 사 올라고 장에 가? ”
동네회관에서 나오던 부녀회장님이 엄마를 부르셨다. 장에 가는 엄마 손을 잡고 학교 가는 길이었다.
“거 뭣이냐, 인삼도 사야겄고….”
“낼 초복에 삼계탕 끓여 복달임 헐라고? 나도 삼계탕 끓이려고 지난 장에 미리 넉넉허게 사다 뒀은개 몇 뿌리 가져다 써, 이 더운 날 땀 뻘뻘 흘려가며 장에 가지 말고.”
“몇 뿌리 가지고는….”
“왜, 이번에는 삼계탕으로 동네잔치 헐라고? ”
“어떻게 알고….”
“척허면 삼천리라고, 이 동네 부녀회장이 그것도 못 알아채겄는가. 땀 뻘뻘 흘리며 장에 갈 것 없어, 이 부녀회장이 집집이 댕기며 한두 뿌리 씩 좀도리 모으듯 모아다 줄 텐개. 낼 동네잔치 헐 삼계탕 끓이려면 땀을 억수로 쏟을 판인개 말이여. 글고, 삼계탕을 여러 마리 끓이려면 인 삼도 솔찮이 많이 들어갈 것인디, 그런 돈까지 애쓰는 경민이네가 들이게 허고 모른 체해서는 정으로 뭉친 우리 동네 사람들 도리가 아니제.”
“어떻게 미안해서….”
“미안허긴 뭐가 미안해, 우리가 넘인가? 우리 동네 사람들은 모두가 한 식구나 마찬가지가 아니냔 말이여? 경민이 너는 삼촌 따라 어서 학교 가라, 엄마 장에 갈 필요가 없은개.”
부녀회장님은 장에 갈 것이 없다며 엄마를 도로 집으로 돌려세우셨다. 
“부녀회장 말이 백번 옳은 말이요.”
“부녀회장이 언제 틀린 말을 허든가.”
이장과 노인회장님이 동네회관에서 나오며 맞장구를 치셨다.
 “그렇지 않아도, 방금 셋이 경민이네 얘기를 했그만요. 인삼은 부녀 회장님이 어떻게든 챙길 것이니 걱정허지 않아도 된다고 했그만요.” “경민이네가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인개, 이 부녀회장이 나서 동네에서 인삼을 준비허자고 했지.”
“이심전심 아닌가.”
이장과 부녀회장의 말에 노인회장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으셨다.
해가 저물고 어둑발이 내리기를 기다려 복달임 삼계탕을 날랐다. 푹푹 찌는 불볕더위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릇 바구니는 이리 주세요. 경민이와 함께 조심조심 들고 가면 돼요.” 
“오늘도 막내와 경민이가 어른 몫을 허는구나.”
삼계탕이 담긴 들통을 들고 가는 아버지가 대견스러워하셨다.
“오늘도 막내와 경민이가 어른 한몫을 단단히 허네.”
복달임 음식을 나르는 것을 도우러 온 부녀회장님도 대견스러운지 칭찬을 하셨다.
“오늘이 초복이라고 복달임을 시켜준다요.”
“땀을 얼매나 많이 흘렸을까, 이 푹푹 찌는 복더위에 이 많은 삼계탕을 끓여내느라고? ”
“오늘은 삼계탕으로 동네 사람들 몸보신을 시켜준다요, 지난번에는 가물치매운탕으로 동네 사람들 몸보신을 시켜주더니.”
동네 어른들이 모여들며 고마워하셨다.
“왼종일 꿈쩍도 않던 나뭇잎이 움직이는 것이 산바람이라도 불어 내리는 모양이네.”
정자에 둘러앉아 이마에 손바람을 일으키던 동네 어른들은 느티나무를 올려다보셨다.
“삼계탕 투가리가 뜨거운개 조심해야 해요.”
“삼계탕에 넣은 인삼은 부녀회장님이 애써서 챙겼그만요.”
“갈증이 싹 가시라고 오미자주를 준비했어요.”
“더위에 지친 몸에는 오미자주가 최고랑개요.”
부녀회장님과 어머니는 삼계탕을 떠 드리고, 이장님과 아버지는 잔을 돌리며 오미자주를 따르셨다.
“초복 복달임은 경민이네가 준비鄕은개, 중복과 말복 복달임은 동네에서 준비헤야겄그만. 인삼은 부녀회장이 또 챙길 것인개, 닭 농사가 잘된 집에서 닭 한 마리씩만 준비허드라고.”
“그러면 백중 호미씻이 동네잔치는 우리 집서 맡아 준비헤야겄그만.” 
노인회장님이 중복과 말복 복달임 얘기를 꺼내시자, 할아버지는 백중 동네잔치는 우리 집에서 맡는다고 하셨다.
“백중에는 닭백숙과 닭볶음탕이 좋겄지요? ”
“백중잔친개 밀개떡도 찌고, 밀전병도 지지고, 호박부침개에 들깻잎 부침개도 부쳐야겄지요? ”
할머니와 어머니는 백중 동네잔치 음식 준비 걱정을 하셨다.
“애호박을 송송 썰어 부친 호박부침개라, 벌써부터 군침이 도네.” 
“애호박에다가 양파와 당근까지 채 썰어 넣어 부추부침개를 부쳐 내
도 기막히게 맛이 좋지.”
할아버지와 노인회장님은 침을 꿀꺽 삼키셨다.
“삼복더위도 지나고 만도리가 끝나 추수를 할 때까지는 좀 한가할 땐 개, 그날 하루는 농사일을 쉬고 풍년을 기원하는 풍물을 신나게 울리면서 즐겁게 놀아야겄지요.”
“그럴려면, 부녀회에서 나서 철몇개걸고부침개라도 넉넉허게 부쳐 내야겄네요. 애호박과 가지에다가 들깻잎에 부추까지, 텃밭에만 나 가도 부침개 거리는 지천으로 널렸을 땐개요.”
“오늘이 유월 열흘 초복인개 칠월 보름 백중이 돌아오려면 한 달이 더 남았는디, 그때까지 어떻게 참고 기다린대.”
이장과 부녀회장님의 백중 잔치 이야기에 노인회장님은 침을 꿀꺽거리며 할아버지를 바라보셨다. 
“속이 출출헐 때마다 말씀만 해요, 닭백숙이라도 삶아 내올 텐개요.” 
“동네 사람들 덕분으로 닭이 대풍년이 들어 닭장마다 그들먹헌개요.” 할머니와 어머니는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노인회장님을 바라보며 언제든지 닭백숙을 삶아 내온다고 하셨다.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그때마다 막내와 경민이는 따라와서 심부름을 헤야 헌다.”
“암, 그래야지. 우리 막내와 경민이는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지. 아무렴, 그렇고 말고.”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심부름할 것이 없나 살피며 정자를 떠나지 않는 삼촌을 대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다보셨다.
“동네잔치 때마다 따라다니며 심부름을 스스로 찾아서 하는 막내와 경민이가 참으로 갸륵하고 기특허구나.”
노인회장님이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동네잔치 때마다 데리고 다니 면서 심부름을 하게 하는 아들 바보 손자 바보가 부럽다고 하셨다. 심부름을 스스로 찾아서 하다 보면 웃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은 저절로 우러나오게 되니 얼마나 좋으냐고 하셨다. 
“그러면, 경민이네 덕으로 닭 대풍년 동네잔치가 끝날 날이 없겄네요.” 
“경민이네 가물치잔치 덕이 넉넉한 마음으로 베풀고 기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정이 많은 우리 동네 사람들에게 복을 불러다 줬어요.” 
이장과 부녀회장님은 한껏 부풀어 오른 즐거운 분위기를 더 끌어올리셨다. 그렇다. 삼촌과 함께 잡은 가물치가 동네잔치를 열게 하고, 가물치 동네잔치가 닭 대풍년을 들게 하고, 닭 대풍년이 동네잔치를 끊임 없이 이어지게 했다.
“덕은 베풀수록 커지고 복은 나눌수록 커지는 법이라는 말은 우리 동네를 두고 허는 말이라네.”
노인회장님은 끊임없이 열리는 동네잔치를 기다리는 모두의 설렘을 한껏 더 끌어올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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