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사년 가을호1 2024년 9월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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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체가 땅에 닿았다. 은빛으로 번쩍이는 날개를 비스듬히 앞으로 기울이고, 바퀴가 지면에 닿는 순간 육중한 기체가 기우뚱했다고 소영은 생각했다.
‘어쩌면 안 그랬는지도 모르지.’
돌아다보니 어머니 얼굴은 그저 그래 보였다. 헤어져 공부하시던 아버지가 미국 어느 명문대학 박사학위를 따고 다니러 오신다는데도 어머니 얼굴은 아무런 감동이 없어 보인다.
‘속으로만 떨고 계신 거겠지.’
소영이도 어머니 따라 이제 막 문을 향해 다가가는 트랩을 본다. 문이 열리면 아버지가 나오실 거고 십육년만에 소영이는 아버지 얼굴을 보게 된다. 여섯 살 때 떠난 아버지, 막연하게 젊고 멋있는 모습만을 소영의 기억 속에 남겨 놓고 떨어져 산 아버지, 그때 어머니는 스물여섯 이었다. 그 후로 어머니는 사진 외에 아버지 얼굴을 본 적이 없고, 연구 때문이었는지, 계속 미국에 머물러 있었으며 가볍게 전해오는 풍문엔 한국에서 간 여자 유학생과 같이 동거생활을 하신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거기서 이미 난 딸이 열 살이 넘는다던가? 어머닌 아버질 어떻게 대하실까? 그리고 또 나는? 어머니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어머닌 어떤 감정으로 아버질 맞아야 할지 모르는 걸까? 어머니의 눈 초리를 곁눈질하면서 소영이도 막 기체에 다가가 트랩을 본다. 연구 때문이었건, 또다시 시작한 사랑 때문이었건 그토록 잊다시피 돌아오지 않으신 게 소영이는 못마땅했다. 학문에 대한 욕심도 도가 지나치면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가끔 잊혀질 때쯤 생활비가 보내졌다. 보내진 돈을 펴 놓고 보면 아버지는 그 돈을 통해 자신이 가진 작은 양심을 지켜 나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소영은 목에까지 차오르는 불평을 입 밖에 내어 말하진 못했다. 어머니와 둘이 살아온 생활이 굳이 불 편했다고 말할 순 없었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가장의 짐을 딸과 아내 에게 나누어 지워 놓고 아버진 자신의 취미 속에 탐닉해 살아오질 않았나. 아버지가 지금 가졌을 만족감, 소영이는 그 생각이 날 때마다 얼굴 이 달아오르도록 화가 나는 걸 느꼈다.
파랗게 맑은 하늘에 하얀 조각구름이 몇 떠 있고 그 아래 하얀 새처럼 내려앉은 여객기 문으로 승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다른 비행기들의 이착륙하는 소리며 공항 안내원 목소리며 젖어보지 못했던 생소한 분위기 속에서 소영이는 쌉싸롭한 설렘을 동시에 느꼈다. 추운 겨울밤, 화려한 연회 장소를 다른 볼 일로 지나치면서 예쁘게 차려 입은 남녀가 즐거운 소리로 떠들면서 들어가는 걸 볼 때의 그런 기분. 소영이는 출입구로 들어오고 있는 승객들을 살펴본 다 많은 사람들 틈에서 유독 자 신의 눈이 머물게 되는 중년의 신사 한 분.
“저분이 아버지시죠? ”
어머니는 소영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시며 웃으신다. 얼굴이 몹시 피로해 보인다. 가슴이 뛰시겠지. 계곡물 소리처럼 견디기 힘들게 가슴이 뛰실 거야.
“일렉트라 콤플렉스지.”
안경 낀 여교수가 분필을 든 채 어느 학생의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다른 여학생이 질문을 한다.
“그럼, 선생님 아버지가 어느 딸만 특별히 귀여워하는 것은요? ” 여교수는 질문을 한 학생에게 눈으로 웃음을 보내며 분필을 놓고 교탁에 기대어 강의실을 둘러본다.
“제 친구 중에 결혼할 나이의 딸이 있는 친구가 있어요. 그 딸이 세련 되고 예뻐서 나에게 그 나이의 아들이 있다면 내가 며느리로 맞고 싶을 정도로 탐나요. 사실 우리 집 아이는 지금 초등학교 육학년이라 힘든 거죠.”
교수가 말을 잠시 끊자 학생들이 작은 소리로 웃었다.
“그런데 그 딸이 선 보는 남자마다 아버지가 마음에 안 든다고 퇴짜를 놓는다는 거야. 내 친구가 나를 붙잡고 하는 말이 이것도 자기 남편이 너무 딸을 귀여워해서 일어나는 일종의 병적인 상태가 아니냐고 물으면서 분명히 ‘일렉트라 콤플렉스’라고 하는 거예요. 딸이 좋다고 해도 어머니가 좋다고 해도 부득불 아버지가 마음에 차지 않는다고 하는게 스무 번이 넘는다잖아. 여러분 어떻게 생각해요? ”
“너무했어요.”
“어느 쪽이? ”
“어머니 쪽이요.”
“그래요? 어머니 쪽이 그르고 아버지 쪽 편드는 거 보니 지금 그 학생도 ‘일렉트라 콤플렉스’현상이 농후해요.”
학생들이 갑자기 와그르르 웃고 교수도 잠시 입을 가리는 듯 따라 웃다가 이야기를 계속한다.
“그럴 경우 그 아버지에게 증상이 있느냐 없느냐는 전문적인 의사만이 가려낼 문제라 더 이야기할 성질의 것이 못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듯이 모든 컴플렉스 현상이 과연 그 상태의 그 사람에게 한 증상으로 나타났느냐 아니냐는 미묘한 문제입니다.”
여교수는 안경을 고쳐 쓰고 학생들을 둘러보고 차근히 강의를 이어 나간다.
“여러분들이 지금 이렇게 앉아 수업을 받고 있으면서도 몸의 어느 부분엔가는 조금씩 고장이 있을 수 있어요 그래도 그걸 느끼지 않고 살아 갈 수 있듯이 정신적인 면에서도 다소 이상이 있다고 해서 그걸 곧 병이라고 볼 필요는 없어요. 그러한 콤플렉스 현상이 다소 있다 해도 곁 의 사람들이 거슬리거나 자기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면 상관 없어요. 우리의 정신을 이루고 있는 모든 요소가 적당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사회생활에 부작용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어떤 때 나타나는 콤플렉스라는 것은 그 증상 자체가 정신에 주는 해독보다는 그 상태에 있기 때문에 주위와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못하게 되는 소외감 혹, 내가 그런 상태를 의심하고 불안해하는 암시가 오히려 더 큰 독인 것 같아요.”
교수가 칠판에 필기하러 돌아서자 곁에 앉은 미정이가 나직이 속삭인다.
“난 우리 아버지 참 훌륭한 분이라고 존경하지만 그런 콤플렉스 걱정은 한번도 한 적 없어.”
소영은 미정을 보고 대답 대신 웃어 보였지만 가슴엔 수십 가지 색깔의 안개가 자욱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소영은 아버지가 다가오시는 걸 지켜보며 어느 따뜻한 봄날 강의 시간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다가 생각의 꼬리를 이어 한 선생님 생각에 잠긴다. 미정이 아버지 한 선생님, 아버지와 대학 시절 퍽 친하셨다고 했고 아버지가 안 계신 동안 가끔 미정이와 같을 정도로 소영을 돌보아 주었다기보다는 소영이가 한 선생님의 수수하면서 고상한 성품에서 느낀 존경심 때문에 아늑하고 편안한 기분에 젖어 있었다는 게 옳은 표현일 거다. 선생님 곁에 있게 되면 자기 자신을 한번 돌이켜보게 되고 거기서 단점, 결점을 발견해내어 고치려 애쓰게 되고, 다른 사람과의 복잡한 연관 관계나 심리적 갈등에 시달리고 해를 입는것 같은 피로감이 선생님 곁에 서면 사라지고 만다. 항상 맑고 신선한 공기가 감싸고 있는것 같은 선생님.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 틈에 끼어 나오시며 웃고 계셨다.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댔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항상 붐비는 출입구가 더욱 복잡해졌다. 새롭게 쳐다보지 않았어도 어머니는 잔뜩 긴장하여 다리까지 뻣뻣해지셨을 거다. 하긴 교사생활 이십여 년이 지나셨으니 그렇지 않아도 다리는 항상 뻣뻣이 굳어져 있었을 테니까.
“엄마, 아버지가 이리로 오시고 계세요.”
어머니가 어색하게 웃으셨다. 미라처럼, 기다리다 지쳐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떨어져 있어서 낯설어진 얼굴 때문에 감정을 잡을 수 없는지 그냥 어색하게 웃으시기만 한다.
“당신 왔소? 그리고 너 소영이구나. 잘 있었니? ”
“안녕하셨어요? ”
소영은 꾸벅 인사하고 고개를 들다 아버지 눈길을 보고 마음을 읽었다. 없는 사이에 다 커버린 딸에 대한 대견함과 낯선 마음을, 곁에선 기자들이 쉴새 없이 카메라 플레시를 눌러댄다.
“어머니! ”
소영은 뒤로 쳐져 선 어머니를 당기어 아버지와 마주 서게 했다.
“오셨어요? ”
“잘 있었소? ”
대답 없이 질문뿐인 두 분의 대화. 두 분 가슴엔 상대방의 물음에 대답을 준비할 만한 친밀감, 따스함 그런게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나 보다. 그 순간 소영은 가슴이 아프게 싸르르 해온다. 기다렸던 아버지, 그리고, 자신을 여태 홀로 돌보아온 어머니, 그 두분이 만나면 나는 양쪽 부모가 다 계시어 든든할 거라고 그날 만을 기다려 왔는데…. 지금 두분의 상면은 너무나 서먹서먹해서 낯선 타인들 같았고 그 순간 어머니 조차도 기댈 곳 없는 외로운 여인으로 느껴져 모든게 다 깨지는 소리 가 들렸다. 지금의 이 싸르르한 기분은 야외에 놀러 갔다 혼자 있게 되거나, 외출에서 돌아와 옷을 갈아입을 때 불현듯 느끼는 그 기분, 소영 이가 느끼는 감정 중 가장 싫어하는 그 기분이 하필 이때 되돌아와 가 슴에 자리 잡을 게 뭐람.
“십육 년만에 아버님을 뵙는 감정을 좀….”
기자가 질문을 해 온다.
“다음에 말씀 드리죠.”
기자에게 웃어 보이고 앞서가는 아버지와 어머니 곁으로 갔다. 아버지 는 걸으시면서 기자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곁에는 언제 오셨 는지 한 선생님이 같이 걷고 있었다. 한 선생님이 돌아보시며 웃으신다.
“소영이 좋겠구나? ”
“오셨어요, 선생님.”
고개를 숙여 인사드리고 어머니 곁으로 갔다. 어머니는 생각에 잠기신 듯 땅을 보고 걸으신다. 무슨 생각일까? 한 이십 년전쯤 아버지와 다정했던 어느 날? 아니면? 소영은 어머니 얼굴을 보았다.
“엄마! ”
어머니가 쳐다보자 소영은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어머니가 가진 모든 가슴의 상처를 손으로 감싸듯, 아버지가 승용차 곁에서 모녀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어제 한 선생님이 맡긴 원고 정서를 돌려 드리려고 ‘영’ 다방에 갔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한 선생은 저쪽 구석에 등을 돌리고 이미 먼저 와 계셨다. 선생님 앞으로 가 인사를 드리고 나서야 소영이가 온 걸 알고 자리에 앉으라는 소리를 하셨다. 한 선생님은 뭔가 책에 줄을 열심히 긋고 계시다 덮으시며 소영에게 커피 주문을 하라고 하신다.
“알고 있지? 아버지 돌아오신다는 얘기? ”
“네, 일주일 전에 편지가 왔었어요.”
“좋겠구나.”
“글쎄요. 어떤 기분인지 모르겠어요. 돌아와 보셔야 알겠어요.”
“허긴 아주 어릴 때였으니까. 아버지 얼굴 기억나? ”
“잘… 가끔 사진을 보아서 희미하게 기억이 나요. 아마 아버진 줄 모르고 뵈면 몰라볼 것 같아요.”
한 선생님은 고개를 돌려 무언가 생각에 잠기신다. 선생님을 바라보며 소영은 졸음 같은 나른한 감정에 젖는다. 선생님 곁에 있으면 항시 난 편안해. 선생님이 인간으로써의 무게를 어떻게 평가하시든 선생님 앞에선 난 부끄러운 게 없어. 모자라는 건 가르쳐 주시고 잘못된 건 고쳐주시고…. 선생님에게서 풍겨 나오는 것 내부에서 생기는 지식인의 사고와 그 사고와 지내온 경험을 통한 결단력, 평가 이전에 가지시는 이해심, 그런 게 얼굴 표정과 움직이시는 태도에 나타날 때마다 놀라고 존경하게 만드시는 것 같다. 과하여 역하지도 않고, 적어서 미흡하지도 않고, 뭘까? 한마디로 표현하면 뭘까? 중용? 아니고, 원만? 아냐, 원숙? 그것도 아니고. 그러면….
“어머닌 아버지 돌아오시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니? ”
“글쎄 모르겠어요.”
“기뻐하시던가? ”
“글쎄요. 어머니도 어떻게 하셔야 할지 모르시겠나 봐요.”
“그러시겠지.”
한 선생님은 소영이가 가져온 원고 뭉치를 끌어다가 여기저기 뒤적거린다. 소영은 한 선생님을 보다가 문득 선생님이 ‘같이 교외로 놀러 가지 않겠느냐’고 말하시는 걸 상상하다가 진짜 그렇게 말하는 한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 깜짝 놀랐으나 계속 원고지를 보고 계시는 선생님을 보고는 생각 속으로 돌아왔다.
그때 나는 아마 말할 수 없이 기쁠 거야. 파랗게 맑은 하늘 눈부시게 하얀 구름 길게 뻗은 길. 선생님과 그 길을 함께 걷게 되면 난 마치 든 든한 담장 속에 선 것처럼 마음이 편안할 거야. 외부와 닿지 않고 난 쉴 수 있을 거야. 엄마와 둘이서 경계하고 버티어 온 그간의 생활, 겉껍질 이 벗겨진 과일이 드러난 속껍질만으론 외부의 자극에 상하기 쉬운 것처럼 우리는 피곤했어. 긴장의 연속이었지. 아버지라는 울타리 아버지라는 겉껍질. 만일 한 선생님이 내가 추울까 봐, 아니면 힘들까 봐 어깨를 안아 주신다면, 선생님의 팔로 아무것도 닿지 않게 나를 보호해 준 다면 나는 편안히 쉴 수 있을 거야. 힘겹게 두 다리로 버티고 설 필요도 없고 ‘휴우’ 숨을 내쉬고 나는 쉴 수 있겠지. 외로운 사람은 불안한 고뇌에서 벗어나려고 자유와 주체성을 내던지고 ‘전체’의 품안에 훈훈히 몸을 잠그기를 원한다는데. 내가 선생님에게서 훈훈히 잠겨 쉴 수 있다면 선생님은 나의 ‘전체’ 아니 나의 ‘우주’?
미정이가 지금의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면 그것이 여태까지 내가 굶주려온 아버지 정에 대한 태도에서일 뿐이란 걸 그가 안다 해도 이전의 나에 대한 태도 같지는 않을 거야. 나를 경멸하기 전에 자기 자신이 혐오스러운 기분에 빠질 거야 . 담장이라는 걸, 울타리라는 걸 필요로 목 마른 적이 없는 애니까.
“미정이가 곧 나오겠다고 기다리라던데. 난 지금 출판사에 가야겠고… 그리고 이건 수고비.”
하얀 봉투의 뚜껑을 봉하지 않은 채로 소영이 쪽 탁자에 밀어 놓고 한 선생님은 원고뭉치와 책을 챙겨 드신다.
“미정이 보고 밀크 마시라고 그래. 그렇게 찻값 치르고 나갈 테니까.” 아버지 오신 날 저녁. 부엌에서 달그락 소리를 내며 설거지하는 소리
가 들린다. 자기가 하겠다는 소영을 굳이 방에 들어가게 하곤 어머니 혼자 하신다. 아버지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방의 가구, 낡은 나무옷장, 동양자수를 놓은 액자, 어머니 제자들이 사온 분홍드레스의 프랑스 인 형, 고등학교 때 만든 목제 잡지꽂이, 한 짝뿐인 나무문갑, 아버지가 눈길을 돌리실 때마다 따라 바라보며 소영은 아버지의 심정을 살핀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지나간 날에 대한 그리움? 이 방에 앉아 계시면서 느끼는 생소함? 잠잠한 아버지의 표정이 소영에겐 차게 느껴진 다. 소영은 서먹한 기분에 잠시 멍해진다. 아버지의 모습. 귀 밑을 지나 목덜미를 파랗게 간추려진 머리 굴릴 때마다 생각 속에 잠긴 듯 보이는 눈동자, 소영 자신이 일상 먹어오던 음식과는 달리 기름진 음식을 상식 (常食)하여 왔기 때문에 얼굴 전체에 흐르는 윤기와 학문에 탐닉하여 그 만족을 얻으므로 해서 나타나는 위엄과 동안기(童顔氣), 멋과 실용성이 균형을 이룬 옷차림. 소영은 아버지에게서 느껴지는 풍토를 머릿속에 서 낱낱이 말로 옮겨 보았다.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려 온다. 굵지도 않고 가늘지도 않으면서 단지 교단 위에 서 있기 위해 생긴 것처럼 강해 보였다 웃음은 인색치 않은데 어머니의 얼굴을 보면 평소에는 늘 굳어져 있다. 생활의 고난, 학생들에게 시달리는 것, 혼자 살면서 그 먼 곳에 있는 남편을 위해 지켜야 했던 정절, 젊어서 지금까지 아름다운 집, 고운 옷에 대한 욕심을 누르고 차곡차곡 잠재워야 했던 소망들, 그 소망에 남아 있을 지난날의 애환, 이 모든 요소가 어머니의 얼굴을 딱딱하게 만든 거라고 소영은 생각해왔다.
“그동안 고생했겠구나.”
아버지가 생각에서 깨어나 소영에게 말을 건네신다.
“고생은 뭐 어머니가 하셨죠.”
“그건 내 다 안다만….”
말을 맺지 않고 곁에 있는 신문지를 끌어다 보신다. 소영은 그 말씀 이 뭔지 모르게 걸리고 불길하게 생각이 들렀다. 다 아시지만, 그렇지만 뭐가 어떻다는 걸까?
옛날의 아버지와 어머닌 어떠셨는지 모르지만 지금 두 분이 나란히 서 계시면 안 어울릴 것 같아. 이 집하고도 안 어울리고, 그리고 나의 아버지라는 것도 좀 과해. 만일 우리 곁에서 아버지가 그렇게 정신과 외양이 훌륭해지셨다면 별 문젠데, 그렇게 먼 곳에서 우리의 손은 조금 도 사용 않은 채 그렇게 되신 거라 가족으로서의 영광도 과분한 것 같은 생각이야. 우리 집 살림살이, 어머니와 나의 모든 게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 지금 저기 앉아 계신 저 박사님께 심한 열등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한 선생님이 나가시고 난 후, 미정이 차를 마시고 의자에서 일어서며 소영에게 말했다.
“너 오늘 원고 교정료 탔지? 찻값 좀 내줘.”
“아까 내고 나가셨는 걸.”
“빠르시다.”
같이 다방 문을 나서며 소영은 자기 아버지의 친구이며 미정의 아버지인 한 선생님 원고 정서의 일을 맡고, 거기서 탄 돈으로 용돈에 보태 쓰면서도 어째서 미정에게 조금도 부끄러운 생각이 않드는지 자신의 일이지만 이해하기 어려웠다. 정말 그런 감정은 조금도 생기지를 않았다. 미정이 쪽에서도 그랬다 천만다행한 일이다.
미정이에게 부끄럽고 같이 있으면서도 조용히 숨기는 감정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럴 때면 가끔 한 선생님이 유명한 사찰로 데리고 가 서 점심을 사준다던가, 아니면 아주 시끄러운 뮤직다방 한구석에 앉아 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거나, 한적한 길을 같이 걷자고 선생님 이 말씀하시는 공상을 해보고 거기서 자신의 행복감을 얻는다는 그것 뿐이다. 미정이완 둘이서 잘 떠들고 웃고 하여 보통 땐 모르고 지내다 가 문득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오르면 그 한 가지 이유로 미정은 저 높은 곳에 있고 자신은 한없이 깊은 구렁텅이로 떨어져 내리는 씁쓸한 기분에 젖곤했다.
“점심 먹었니? ”
미정이가 소영을 보고 놀란 듯 웃는다.
“몇 신데 벌써 먹어? ”
“열한 시 반이구나, 내가 오늘 점심 사줄게.”
“정말? ”
“음.”
“뭐? 냉면? 떡볶이? 튀김만두? ”
“아니, 너 전번에 가보고 싶다던데 있지? 실내 중앙에 커다란 분수가 있고 이층은 화랑식으로 되어 있다던데.”
“샹제리 부근에 새로 차린 벨사이유? ”
“음. 거기서 너 먹고 싶은 거 사줄게.”
“거기 보통 데보다 비싸고 붙는 게 많아.”
“괜찮아”
“이번에탄것다써버릴작정이야? ”
“음, 한 번쯤은 그래 볼래.”
미정에게 갖는 묘한 죄책감을 씻어 보려고 그를 데리고 그 으리으리 하다는 ‘그릴’에 가서 한 끼 식사를 해본들, 호기--그래 쪼개고 쪼개 어 쓸 곳은 다 정해둔 돈이지만 호기롭게 써버림으로써 한 번쯤 돈에 얽메어 있지 않은 여유를 확인해 본대도… 소영은 그 돈으로 해 입어려던 황금색 바바리가 바람에 휘익 날아가는 걸 본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나가는 노란색 택시를 세웠다.
설거지를 끝내시고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오셨다. 어머니는 수건으로 손을 닦고 조심하는 눈치로 콜드크림을 손에 바르시며 수건을 걸이에 걸어 놓고 주위를 둘러보시다가 흐트러진 신문지를 접어 신문꽂이에 꽂고 아버지 곁을 피해 윗목으로 가 앉으셨다. 그러는 동안 아버지는 어머니의 동작을 줄곧 바라보시고 계셨다. 세 식구는 말없이 방바닥만 보다 소영이가 먼저 어머니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엄마, 내일 학교 안 나가셔도 돼요? ”
“나가야지.”
“아버지 오셨는데 쉬시지 그래요? ”
“그래도 애들 수업을 뺄 수 없지.”
아버지는 한쪽에 세워 놓은 화분대를 보시며 생각에 잠긴 듯했다. “일주일 있으면 연합수능 고사인데….”
그리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바라보셨다. 어머니에게 이제 새삼스럽게 아버지에게 타오르는 것 같은 사랑을 바라겠는가. 그런 게 두 분 사이 의 가슴에 남아 있겠는가. 다만 떨어져 사시는 동안에 아버지의 뇌리에 항상 어머니 모습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는가. 이젠 많이 퇴색되긴 하였겠지만 그 옛날 아내의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는 어머니로만 생각 해주시면 족하실 거다. 또, 다른 방법으로 어머니의 수고를 치하할 필요는 없을 거다. 소영은 숨 막힐 듯 답답한 이 자리에서 자신이 할 일이 무언가 찾아내려 했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아버지, 내일은 어떻게 보내실려고 하시는데요? ”
“나? 대학에 특강이 있어서 일찍부터 나가야 할까 봐.”
“몇 시쯤요? ”
어머니가 아버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열한 시부터인데 들를 데도 있고 해서 여덟 시에 나가야 될까 봐요.”
아버지는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드시고 소영 쪽을 보셨다.
“학교는 잘 나가니? ”
“네.”
“재미있어? ”
“글쎄요, 재미있을 때도 있고, 안 그럴 때도 있어요. 아버진 미국 생활 좋으셔요? ”
“나도 글쎄다. 어디 사람이 좋기만 해서 세상을 사니? ”
그러고는 빙그레 웃으신다. 꺼내 드신 담배를 거꾸로 들고 방바닥에 대고 톡톡 치신다. 소영은 아버지 손끝에 잡힌 담배를 바라보며 만일 아버지가 담배를 입에 무시면 라이터를 켜 드려야지 생각했다.
얼마 전 미정이네 집에서 저녁을 먹고 거실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미정이 어머니는 사과를 깎고 계셨고, 한 선생님은 월부로 사드린 화집 중 르느와르 컷을 보고 계셨고, 미정이와 소영은 먼 거리에서 그림을 넘겨보고 있었다. 소영은 그림을 보며 참 곱고 꿈같은 여자들이라고 다시 느낀다.
피부가 장미꽃 빛깔로 곱고, 풍성하고 부드럽게 흐르는 머릿결과 까만 눈동자 속에 하얀 별빛 하나를 받는 것처럼 빛나고 있고 그림을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가슴이 환하게 가득 차는 화사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러다가 소영은 한 장 한 장 넘겨지는 여인의 모습 속에서 또 다른 분위기를 찾아낸다.
얼굴과 몸 전체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나른하고 풍요로워서 비참이라든가, 우울, 고난 같은 것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모습들이다. 귀족 계급 이라 느껴지는 품위, 거기서 나타나는 나태하고 권태로운 분위기가 아득히 죄악 같은 걸 느끼게 한다. 나태, 권태, 벗어나기 어려운 침체상태, 의욕부진, 부정, 그런 것들이 생각난다.
기가 막히게 아름답고 천진스러운 표정, 모습과 졸립도록 나른하고 진부한 느낌 그 두 가지가 불시에 느껴지면서 소영은 르느와르의 여인을 어떤 쪽으로 이해해야 할까 하고 고개를 까딱거렸다. 가끔 그런 류의 고상하고 풍족한 사람들에 비해 뭔지 생활에 때 묻고 허우적대며 사는 것 같은 소영 자신이 초라한 것 같아 자신에 대해 비참하게 생각해 온 적이 많았다. 그러나 왠지 오늘이 그림을 보면서 그들에게 느끼는 그런 따뜻하고 달작지근한 분위기보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소박한 소망들, 노력해서 얻는 자자 분한 물건들이 훨씬 생기가 돌고 값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영이가 미정이 어머니를 거들어 깎아 놓은 사과 껍질을 빈 그릇에 담고 사과접시를 바로 놓자, 책장을 덮어 밀어 놓고 한 선생님이 담뱃갑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무셨다. 곁에서 무료하게 앉아 있던 미정이 냉큼 라이터를 켜댄다. 불을 붙이시며 한 선생님이 미 정에게 웃음을 보내신다. 두 부녀 사이의 그 재빠른 행동조화, 두 사람 사이에 그 순간에 흐르는 같은 감정. 소영도 혼자 빙그레 웃으며 미정과 선생님을 본다. 어떤 일이든 한 순간에 두 사람 사이에 그렇게 마음이 통한 다는 건 곁에서 보기에 참 신나고 재미있는 일이다. 언제고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내가 먼저 할 일은 담뱃불 붙여 드리는 거야.
“아버지.”
미정이가 아버지를 부르며 다리를 흔들거렸다. 한 선생님이 쳐다보자 장난 어린 표정으로 말을 한다.
“그 그림 말이에요, 르느와르 그림은 순전히 남자들을 위해 그린 그림 같아요.”
“왜? ”
“음, 설명이 곤란한데 생략해 버릴까? 소영아.”
소영이 쪽을 보며 묻는다.
“내가 무슨 말인지 알아야지.”
“좀 말예요, 아버지 뭐랄까 오직 남자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아름답고 좀 소영이 같은 얼굴이나 지나치게 부드러운 피부가… 마치 남자들 이 원하는 걸 모조리 갖추고 기다리는 것 같아서… 아무래도 그만둬야 겠어요.”
미정이 얼굴 빨개가지고 얼버무리고 한 선생님이 미정을 보고 웃고, 영문 모르는 미정이 어머니는 왜 그러느냐고 그러고…. 그 생각이 날 때면 소영은 가슴에 안개가 뿌옇게 낀 것 같은 불투명한 감정에 사로잡히곤 한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신문꽂이에 꽂았던 신문을 다시 꺼내들고 뒤적이신다. 어머니는 그동안 앉아 있던 자세가 불편해지셨는지 다리를 바꿔 앉으신다. 소영은 두 분을 바라보다가 입을 연다.
“일정이 어떻게 되는데요? ”
아버지는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하신다.
“세 군데나 대학 강연을 끝내고 6일 후에 떠나오, 일요일에.”
소영은 어머니의 얼굴을 살핀다. 아버지는 소영의 질문에 대한 답변 보다도 어머니에게 본인의 태도를 밝히신다. ‘6일 후에 떠나오.’ 그 말 에 어머니는 가슴이 사르르 내려 앉으셨겠지. 십육 년 동안 떨어져 있었지만 ‘이젠 당신 곁에 있겠오.’ 그 말이 아니라 ‘6 일 후에 떠나오, 일 요일에. ’소영은 그 대답이 소영이가 할 모든 질문을 한꺼번에 막아버리는 힘을 느꼈다. 어머니와 소영이가 가장 궁금하면서도 입을 못 떼는 말 당신은 나의 남편입니까? 지금 저에게 아버지 몫을 해 주시고 계신 겁니까? 앞으로 내내 우리들은 가족으로 이어나가는 겁니까. 그 말을 못하고 주춤거리는 지금, 아버지는 일단 그들의 의문을 연기시킨 것이 다. 아직은 나의 아버지고 어머니의 남편 노릇을 할 때가 아니시구나. 그날은 언젠가 될런지 모르는 것. 엄연히 남편, 아버진데 그런데 곁에서 울타리가 되고 기둥이 되어서 보호해 주실 날은 언젠가 있겠지만 지금은 아닌 것이다.
“사는 데 곤란은 없었소? ”
“별로….”
학생들 앞에선 그렇게 엄하고 무서운 어머니, 친구들 사이에서도 사무적으로 일을 처리하시므로 빈틈이 없으시던 어머니, 그런 분이 아버지 앞에서는 이렇듯 무력해지고 만다. 아버지가 놓아두었던 담배를 입에 무신다. 소영은 방심했던 마음에서 깨어나 바쁘게 라이터를 켜려 했다. 아버지는 당황해하시며 라이터를 빼앗듯이 받아 드시고 손수 불을 켜 대셨다. 라이터를 바닥에 놓으시는 걸 보며 소영은 분명히 아버지가 당황해하셨다고 생각했다. 온몸과 얼굴에 찬피가 밀려옴을 의식했다. 왜 그러셨을까? 다 큰 딸이 담뱃불을 켜 대는 게 천해 보였나. 보통들 그러던데, 아버지도 나처럼 너무 오래 헤어져서 부녀 사이를 스스럼없이 못 느껴서 그럴까. 아버지는 외출하시고 어머니는 출근하시고 수요일엔 열한 시에 첫 강의가 있는 소영은 방바닥에 엎드려 멍하니 있다. 작은 소리로 켜 놓은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음악소리에 따라 생각은 흘러가는 듯하고 머릿속을 휴식시키기는 듯 텅 비워놓고 그냥 엎드려있다. 그 상태를 자신에게서 따로 떼 내어 관조하듯.
소영은 뒹구는 책을 끌어다 넘겨본다. 그러다가 치워버리고 뺨을 바닥에 찰싹 댄다. 방바닥의 따뜻한 기운이 피부를 통해 온 몸에 퍼진다. 한숨이 나온다. 뭐가 되는 거야, 마는 거야? 아버지는 아직 우리 아버진 거야. 아니라는 거야? 그분과의 관계는 무엇이고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쫓아내고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엷은 햇살을 바라본다. 마음을 훌훌 털어버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 시가지를 내려다 볼 때의 감정대로 작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끼리 질투와 폭력, 시 기와 미움으로 가득 한 채 인신매매와 살인으로 얼룩진 손바닥 속의 군 상을 우습다고 여기고 이젠 생각하지 말자. 거대한 바다생활을 보여주는 영화를 보고 앉아있으면 느끼는 그 거창한 감동, 이 세상 모든 걸 사랑하고 살아야지. 아름다운 자연과 가엾은 사람들을, 있는 자 만의 난폭한 취권을 그래, 좁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뛰어 넘어야지. 소영은 또 다시 집요하게 계속되는 잡념을 털어버리듯 머리를 흔든다. 따뜻한 방바닥에 아주 누워버리며 천정을 바라본다. 나른한 졸음이 온다.
내 이름을 모두가 좋아하는데 ‘흴 소(素)’ 자에 ‘꽃부리 영(英)’. 소영이라는 이름을 들을 때 마다 내 이름 같지 않게 듣기가 좋아 자연의 섭리에 따라 본능 그 자체로 곱고 예쁜 근원이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그렇게 지어셨다지. 하얀 한복을 입은 여자들이 하얀 꽃밭에 서 있고… 아버지가 커다란 도랑에 빠져 계셨다. 추운 날씨라 허우적거리시며 덜덜 떨고 계셨다. 모피 외투를 따뜻하게 입은 소영이가 구경꾼들 틈을 헤치고 들어가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어 끌어 올렸다. 추위와 부끄러움 에 덜덜 떠시는 아버지가 가엾게 보여 두 손을 꼭 쥐어 드렸다. 가슴이 찌르르하게 아파왔다. 깜짝 잠이 들었나 보다. 소영이는 일어나 앉았다. 꿈속에서 느꼈던 찌르르한 감정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놀란 듯 손을 들여다본다. 어제 라이터 때문에 당황했던 게 다시 생생해지며 가슴속이 메슥하도록 꺼림직한 기분이 든다.
미정과 소정은 강의가 막 끝나 강의실에서 꾸역꾸역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 틈을 빠져 나와 건물 뒤쪽 벤치에 가 앉는다. 한 무리의 학생들 이 그들 앞을 지나 강당 쪽으로 갔지만 아직 학생들로 현관은 복잡하다. 소영이가 떨어져 있는 나뭇잎을 툭툭 차는 걸 보며 미정이 묻는다.
“아버지 돌아오셔서 기쁘겠구나? ”
소영이가 발을 멈추고 학생이 몰려나오는 현관을 본다.
“글쎄, 모르겠어”
“모르겠다구? 그게 무슨 말이니? ”
소영은 미정에게 착잡한 웃음을 웃어 보이고 입을 연다.
“어렸을 때 다섯 살이나 여섯 살일 때야. 설날이었어, 설날이라고 난 좋아서 기다렸지. 그 전날 잠도 안 오는 걸 겨우 잤는데 막상 설날이 되니까 아버지는 망년회에서 밤샘하고 돌아와서 주무시고, 엄마는 음식 만드시느라 지쳐 누우시고 나 혼자만 들락날락 거리다가 문득 뭐 이렇게 재미가 없나 하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재미없는 정도가 아니라 허전하고 슬픈 생각까지도 들었어. 오래 됐는데 그때의 그 기분이 생생해, 지금 그런 상태야.”
미정이 소영의 기분을 살핀다.
“너무 기다리다가 이루어지면 실망한다 그런 이야기니?”
“그것도 아냐 뭔지 모르는데 그냥 그래.”
뭘까? 아버지가 곧 돌아가신다고 해서 그런 걸까? 아닌데, 아버지를 계시라고 붙잡고 싶은 심정은 없었다. 어느 강의시간에 미정이 자신은 아버지에게 ‘일렉트라 콤플렉스’ 현상이 없다고 말했을 때 무어라 말 할 수 없이 미묘한 감정에 빠졌던 일, 더구나 한 선생님과 같이 한적한 길을 걷고 싶다고 느끼다가 미정을 마주하게 될 때의 그 감정, 미정이 한 선생님 앞에서 ‘르노와르’ 그 그림이야길 하다 맺지 못하고 얼굴이 빨개지는 걸 볼 때의 그 감정. 오늘 아침의 꿈. 그것 때문일까? 아버지 가 오시자 자꾸만 마음속이 편치 못한 것은. 그것 때문인 것 같다.
부엌문을 여니 어머니가 저녁 준비를 하고 계신다.
“엄마 일찍 오셨네요? ”
“그래, 지금 오니? ”
소영은 막 튀겨 내놓은 새우튀김을 하나 집어 먹으며 어머니 곁에 쪼그리고 앉는다. 갓 튀김옷을 입혀 기름에 집어넣은 새우가 ‘짜락’ 소리를 내며 튀겨진다. 어머니 손에 기름 방울이 튀었는지 젓가락을 쥔 오른 손을 얼른 뒤로 가져간다. 그리고 허리를 펴고 서서 이마의 땀을 닦으신다.
“엄마는 왜 아버지 앞에선 그렇게 쩔쩔 매시우? 학생 애들 앞에선 그렇게 무서우시면서.”
“내가 그렇든? 아무래도 같이 안 있으니까 어려운 거지.”
“정식으로 음식 장만해서 상 보려니까 귀찮죠? ”
“그렇다 얘, 귀찮고 마음이 불편해서 원….”
“그러니까 엄마는 천성적으로 아버지와 떨어져 사는 거지 뭐.” 어머니가 튀김을 뒤집다 소영을 돌아보신다.
“그래서 넌 좋다는 얘기니? ”
“아뇨, 사실 제가 잘못 말했어요.”
“내 앞에선 괜찮지만 밖에서 그러면 아버지 곁에서 안 자라서 그렇다고 흉본다.”
“엄마는….”
소영은 새우튀김 하나를 집어 들고 부엌을 나와 제 방으로 갔다. 책을 책상 위에 놓고 옷을 갈아입고 막 세수하러 나가는데 아버지가 들어 오셨다.
“날씨가 좀 덥구나.”
아버지가 상의를 벗으시는데 어머니가 부엌에서 나오시며 뻣뻣이 서 있는 소영에게 이르신다.
“아버지 양복 받아 드려라.”
소영은 상의를 받으려 한 걸음 나서다 어제 라이터 일이 생각나 주춤 한다. 아버지가 소영을 보며 웃으신다.
“좀 받아다 방에 걸려무나, 왜 그러니? ”
“아네요.”
소영은 양복을 받아들고 안방으로 간다. 상의가 유난히 무겁고 빨리 자신의 손에서 떼어야 물건처럼 느껴진다.
골목 모퉁이를 돌자 보안등 불빛이 비추지 못해 길이 어둡다. 지난주 폭우로 시멘트 블록이 내려앉은 데가 많아 헛딛기 쉬웠다. 속이 거북하시다는 아버지를 위해 소화제를 사 가져오는 길이라 빨리 걸어야 했다. 길 옆집 창문에서 전등불빛이 비쳐 나오고 텔레비전 소리와 같이 그 집 식구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대문을 여니 문간방에 세든 아주머니가 방문을 열어보고 ‘학생이유’ 하고 다시 닫는다. 아버지는 약을 받아 한쪽에 놓으시더니 소영에게 이르신다.
“잠깐 너하고 얘기가 있는데 네 방으로 갈까? ”
소영은 순간 어머니 얼굴을 살폈다. 담담하시다. 저렇게 표정 없이 담담하신 건 오히려 무슨 일이 있으실텐데, 나 없는 사이 두 분이 무슨 말씀이 있으셨구나.
“네.”
다시 어머니를 돌아보고 소영은 앞서 제 방문을 열었다. 소영이가 밀 어 놓은 방석에 아버지는 앉으시며 손에 들고 온 담배를 입에 무신다. 몇 번을 담배연기만 내시며 초점 없이 벽을 보시다가 곁에 있던 빈 과자접시에 담뱃불을 눌러 끄시고 소영을 바로 바라보신다.
“결론만 이야기하지. 나 네 어머니와 헤어지기로 했다.”
소영은 호흡이 탁 멎음을 느낀다. 사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가 돌이 킬 수 없을 정도로 서먹서먹하시다는 걸 느끼고 아버지가 어머니 마음에 돌아와 자리 잡으시리라는 건 생각지도 않고 있었지만 그래도 어느 한 끈이 세 사람을 묶어 놓고 있는 걸로 생각해 왔다. 막상 헤어지신다 는 그 말씀을 언젠가는 하시리라 짐작은 하면서도 그 말씀이 끊어 내 버리는 가족의 관계를 계산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보금자리는 여기에 놓아두시고 훨훨 날아 여행하는 새라 생각해 왔다.
“미국에 있으면서 안 사람이 있는데 그 사이에서 네 남동생 하나와 여동생 하나를 각각 두었다.”
자신의 문제가 아닌 다른 사람 이야기처럼 담담한 말투로 짤막하게 끊어 말 하신다. 움직이지 못할 기정사실을 다만 통고만 하고 계신다.
“그 사람과 정식으로 혼인관계를 가지고 싶고, 이제 너의 어머니와의 정은 돌이킬 수가 없는 것 같다. 그것이 내가 곁을 떠나 너무 오래 외국에 있었기 때문이라 해도 말이다.”
나와 어머니를 자신의 마음에서 빼내어 잊어버리고 미국에 있는 여인과 당당하게 살고 싶으시다. 나와 어머니가 아버지에겐 짐 같고 먼지 같고 지푸라기 같고, 걸레쪽 같고 그래서 걷어차 버리고 싶고, 미국에 있다는 그 사람은 소중하고, 아버지와 같이 호흡하고 싶고 그리고, 가치가 있어 영원히 놓치고 싶지가 않고. 소영은 이를 악 물었다. 온 몸에 서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의 무엇이 아버지에게 쓸모없고 바랄 것 없는 군더더기로 느끼게 하였고, 그것은 아버지에겐 아무런 책 임이나 과오가 없는 건가요. 어머니와 내가 기댈 데 없이 비참한 상황 에 내동댕이쳐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인가요. 그것이 우리의 잘못 과 결함에 대한 대가인가요. 그리고 당신, 아버지는 이런 사태에 아무런 마음의 동요 없이 새 생활에 만족해 살아가실 건가요. 소영은 말없이 방바닥을 쏘아보며 생각에 골몰하자 아버지는 일어나 나가버리신 다. 소영은 왈칵 눈물이 나왔다. 그래도 어머니는 기다렸는데, 이제 아버지가 돌아오셔도 마음먹고 서먹하다고 헤어지자고는 않을 거야. 그 리고 먼 곳에 계시던 아버지에 대해 그간 나는 무한히 자랑스럽게 생각 해 왔다. 그 빈 시간을 채워줄 보상은 아버지가 돌아오시는 것인데 한 없이 모자라는 보상이지만 그래도 그것뿐이었는데 우리를 귀찮은 짐 마냥 벗어버리고 가신다는 아버지. 그리고 나서 자신의 행복한 생활을 계속하시겠다니, 소영은 아버지의 얼굴이 두꺼운 가면같이 느껴지고 그 가면을 깨뜨리는 한이 있더라도 표정을 바꾸게 하겠다고 생각하며 방문을 열었다. 마루에 서니 안방문을 통해 어머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를 염두에 두지 마세요. 당신이 없었던 동안 제가 숨을 멈추고 기 다리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음식을 끊고 당신, 당신을 기다린 것도 아 니고 현실에 닥치는 일에 재미와 기쁨을 얻고 살았어요. 그간의 생활이 분하거나 억울하진 않아요 . 만일 제가 원망할 상대라면 이전 십육 년 전에 제 곁을 떠날 때의 소영 아버질 뿐이지, 우리와 좀 다른 모습을 하고 제 앞에 낯설게 앉아 있는 당신은 아니에요.”
방 안이 잠잠해진다. 소영은 문을 열고 들어가 아버지를 보고 앉았다 벗어나, 이제 이 말을 마치고 간단한 수속만 끝나면 한국을 떠나는 순 간 나는 자유다,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쯤은 얼마든지 들을 여유가 있다, 그런 생각을 속에 감춘 가면.
“아버지.”
소영은 목에까지 차오르는 격한 감정을 누르느라 먼저 아버지를 불렀다.
“엄마와 제가 아버지에게 짐 되는 것, 아버지가 좀 더 학문에 몰두하기 위해서라든가 아니면 인류를 위해 자신의 명예와 가문을 위해 하는 어떤 일이라면 전 아무 말도 안 했을 거예요. 하지만 그쪽에도 하나의 가정을 만들어 놓고 두 쪽을 저울질하다가 그쪽이 무겁다고 이쪽을 떼 어버리러 오신 아버지니까 전 아버지에게 버릇없는 소리를 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어머니가 싫어지셨다면 헤어지시는 게 당연해요. 아버지 가 미국에서 양심에 걸리지 않는 즐거운 생활을 누리기 위해 우리 두 사람을 마치 헌 넝마 팽개치듯 하고 가시지만 거기에 안주하시더라도 언젠가는 후회하실 때가 있을 거예요. 그땐 당신이 버린 두 사람에 대 한 죄책과 동정 때문에 가슴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사과의 말이 아버지 의 가슴을 아프게 하길 빌겠어요. 지금의 그 당당한 기풍, 미국의 기름 진 음식과 만끽한 학문과 살면서 얻어 가진 배짱이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위엄을 얼굴에 풍기고 있지만, 언젠가 그 얼굴이 후회의 고통 으로 일그러진 적이 있게 된다면 가진 게 아무리 많아도 일생을 네 발로 기어 다니는 동물로써 살다 갈 것뿐이라는 것 말이에요.”
말이 끝나는 순간 소영은 어머니의 손이 뺨에 아프게 날아 온 걸 느꼈다. 어머니 얼굴을 보며 소영은 아무 말도 못했다. 다만 사귈 수 없었던 아버지와 딸 사이, 그게 어떤 식으로든 끝이 났다는 사실이 소영은 시원했다.
부르르. 하늘가엔 비행기가 높이 떠가고 있다. 소영은 마루에 앉은 채로 하늘을 쳐다본다. 한가한 일요일 정오. 모든 게 움직이지 않는 것 같은 적막 속에 비행기만 하늘을 떠가고 있다. 소영은 햇빛을 받으며 신문을 보시는 어머니를 바라다보았다.
“저 비행기에 아버지가 타고 계실까? ”
어머니는 안경을 벗고 하늘을 바라보신다.
“글쎄.”
“엄마 생각엔 어때요? ”
“타고 계실 것 같구나.”
“엄마 섭섭해요? ”
“아, 아니.”
어머니는 다시 신문을 보신다. 다시 눈을 들어 소영은 먼 하늘로 사라져 가는 비행기를 본다.
“엄마! 아버지 미워요? ”
“아 아니.”
“그럼? ”
“옛날 애인같이 느껴지더라. 이젠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내가 함부로 굴 수 없는 그런 사람 같아.”
“아버지가 엄마에게 미안한 생각 가질까? ”
“그러실 거다.”
“어떻게 알아요? ”
“너의 아버진 성격이 모진 분이 아니야. 이미 일이 기울어진 거라 그렇게 처리하셨지만 너와 나를 흙먼지처럼 생각해서 잊을 분이 아냐. 그 가슴이 얼마나 답답하고 아팠을지 너는 모르는 거야.”
“엄마는 지금 옛날 아버지 얘기하시는 거죠? 젊고 책임감 있고 엄마를 좋아하시던….”
어머니는 신문에서 눈을 떼고 아직도 비행기 소리가 나는 먼 하늘을 본다. 얼굴에는 연한 미소가 떠오른다.
“엄마, 엄마에겐 지난일일 망정 남편이 있었지만 나에겐 한 번도 아버지가 없었어.”
“그건 무슨 소리냐?”
“몰라. 하지만 나에겐 아버지가 없어.”
소영은 이제 보이지 않는 비행기를 좇다가 지난 추억을 회상해 본 다. 묵묵히 기다려온 작은 소망의 날들을 이젠 과거 속으로 밀어버려야 만 하는 운명의 바람들이 엄마에게서 조용히 멀어져가는 것을 느끼며 닿지 않는 인연을 안고 한 세월 무한히 그려오기만 했던 어머니의 행복 이 무엇이었는지 나른하게 밀려오는 졸음을 느끼며, 그게 행복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했다.